한글 文章 269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할머니의 눈깔사탕

비단 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한국인은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지푸라기 하나, 물 한 됫박이라도 버리는 법이 없었던 전통적 유전질을 우리 할머니가 대행했을 뿐이다. 6·25사변 때 국에 종군했던 영국 군인 두 명과 음악 동호 클럽 멤버로서 교제한 일이 있었다. 그때 놀란 것은 이 군인들이 입고 나오는 외출 군복의 무릎 부분이며 팔꿈치 부분 등 잘 해어지는 부분마다 기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손수 기워 입느냐고 물었더니 부대 안에 옷을 입는 부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몰락 과정에 있다고는 하지만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군인인데, 군비가 모자라 군복을 기워 입게 하리라고는 도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없어서 기워 입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서도 기워 입게 하는 어떤 정신적 플러스..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2.옥(屋)보다 사(舍)를 택한 조상

집을 화려하게 짓고 살거나 거처를 사치스럽고 참람하게 한 사람은 禍敗를 당하게 마련이고 작은 집에 베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명예와 직위를 보전한다는 사고가 보편화되기까지 했다. 한국인의 집을 겸허함은 이를 데 없었다. 요즘처럼 집을 재물시(財物視)하여 사고파는 것으로 이득을 남긴다는 생각은 극히 최근에 생긴 것이었다. 고려 때에 있었던 일화를 통해 한국인의 전통적 주택관을 살펴보자. 산원동정(散員同正)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벼슬아치인 노극청(盧克淸)이 가세가 가난하여 집을 줄일 작정으로 팔려고 내놓았다. 워낙 변변치 않은 집이라 작자가 좀체로 나서지 않았다. 나랏일로 노극청이 지방에 가 있는 동안에 郎中벼슬의 현덕수(玄德秀)가 그 집을 사겠다고 나서 그의 아내가 백금 열두 근을 받고 그 집을 팔았..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1.구두쇠론

옛날 서민들 집에서는 옷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 특정인의 옷이 아니요, 그집 모든 사람의 옷이었다. 물려서 입는 옷물림의 습속이 그것이다. ■한국인과 비축 심리 악의건 선의건 간에 한국의 구두쇠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비축형(備蓄型) 구두쇠 규범형(規範型) 구두쇠 절검형(節儉型) 구두쇠 이 세 유형을 실례를 들어가며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유형이 독립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개의 경우 서로가 복합되어 나타나게 마련이요,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그 구두쇠 기질이 나타나는 상황에 따라서 복합 요인은 드러나지 않고 어느 한 단면만 나타나기도 한다. 미리 양해를 구해 둘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구두쇠'란 그 말이 갖는 상식적인 개연성, 곧 수전노(守錢奴)나 노랑이만..

선비의 의식구조-27.後記(후기)

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일본의 인류학자 이즈미(泉靖一) 교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帝國大學)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분으로 한국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노(老)학자였다. 그 후 그는 저자를 자기집으로 초대했었다. 그 집에 들리자마자 이 노 교수가 저자에게 묻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 가문에 족보가 있읍니까. 』 『예, 있읍니다. 』 『문집도 전해 내려온 것이 있읍니까. 』 『예, 몇 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 『아, 당신은 양반(兩班)이십니다. 그럼 잘 됐읍니다. 나는 당신을 누추하고 불편한 우리집에 초대한 것에 맘을 놓을 수가 있게 됐읍니다. 한국의 양반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에 대범하니까요. 나는 세상을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의 양반들처럼 물질..

선비의 의식구조-26.儉約性向(검약성향)

■ 냉장고와 짚신 6·25사변 때 한국에 종군했던 영국 군인 두 명과 음악 동호 클럽 멤버로서 교제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이 군인들이 입고 나오는 외출 군복의 무릎 부분이며 팔꿈치 부분 등 잘 해어지는 부분마다 기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느낀 일이 있다. 손수 기워 입느냐고 물었더니 부대 안에 옷을 입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몰락과정에 있다고는 하지만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군인인데 군비가 모자라 군복을 기워 입게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없어서 기워 입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서도 기워 입게 하는 어떤 정신적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독 여행 때 그곳에 사는 한 친구 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백화점에 가서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놈..

선비의 의식구조-25.義理性向(의리성향)

■ 누이의 犯禁을 告発한 閔判書 민지제는 강직하여 법을 잘 지켰다. 형조판서로 있을 때 비(妃)의 누이동생의 시집인 참봉 홍우필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지제는 본시 술을 즐기므로서 누이가 집에서 정성들여 빚은 술을 내왔다. 술맛은 아주 좋았으나 안주가 김치 한 가지 뿐이었다. 『너희 가난한 집에서 이런 맛좋은 술을 어디서 구했느냐』하며 입맛을 다셔가며 마셨다. 바로 그 전날이 홍참봉의 생일날이었기에 술을 담갔다. 또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집안사람을 대접했던 것이다. 당시 금육(禁肉)의 금령이 내려있던 때고, 또 민공의 법 지키는 것이 엄하였기로 겁이나 감히 쇠고기를 내놓지 못하고 다만 술만 대접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누이는一 『어제는 시아버님의 생신이므로 술은 조금 빚었습니다』 고 대꾸하자 민공..

선비의 의식구조-24.謙遜性向(겸손성향)

■ 밥상에서의 겸손 教育 4형제의 막내동이였던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대여섯 살 때의 일로 기억된다. 밥상이 들어오기 전에 어머니는 몰래 나를 불러내어 그날 밥상에 오른 반찬 가운데 뭣, 뭣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손가락질과 눈매만으로 금기(禁忌) 음식을 지시했다. 이 금기 음식은 대개 시식(時食)이나 절식(節食) 또는 고기반찬이거나 먹고 싶은 반찬이게 마련이었다. 사실 욕망을 억누르기에 길들지 않은 어린 시절에 금기 음식을 앞에 두고 밥을 먹기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할아버지를 위한다는 차원을 벗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극소화시키는 일종의 인간수련의 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도 어린 것이 오죽 먹고 싶을까 하는 정이 동하겠지만 그 정을 결코 ..

선비의 의식구조-23.氣節性向(기절성향)

□ 玩物을 배척하는 기절(氣節) 인조 병술년에 이시백에게 나라에서 집 한 채를 내려주었는데 그 집 뜰에 전부터 한 포기 희귀한 꽃나무가 있었다. 「금사낙양홍(金絲洛陽紅)」이라는 꽃인데 중국에 사신 갔다 온 사람이 애지중지 옮겨 심은 것이었다. 하루는 중국에서 내관 한 사람이 일군을 거느리고 이 집을 찾아들었다. 임금의 하명을 받고 그 꽃을 궁궐 뜰에 옮겨 심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공은 임금의 하명에 응한다 응하지 않는다는 말도 없이 그 꽃 가까이 가서 꽃을 꺾어버리고 꽃뿌리까지 파내어버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내관에게 말했다. 『오늘날 국세가 아침에 어떨지 저녁에 어떨지 알지 못하는데 주상(主上)께서 어진 인재는 구하지 않고 꽃을 구하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나는 차마 꽃을 가지고 임금에게 아첨하여 ..

선비의 의식구조-22.寬容性向(관용성향)

■ 官權에 눌린 人權의 숨결 백인걸이 과거에 올라 창평현감으로 있을 때 늙은 어머니를 위해 자주 잔치를 베풀었다. 이에 고을을 잘못 다스린다는 훼방이 있어 당시 전라감사이던 최보한이 이를 탓하여 파면을 시켰던 것이다. 백인걸이 정언벼슬 시절에 최보한을 탄핵한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를 보복한 것이라고들 말했다. 인종 초년 국상(國喪) 중에 최보한이 기생을 끼고 놀다가 적발되어 파면되었다가 명종이 즉위한 후 대사령을 내려 복직하게 되었으나 사간원에서는 이를 부당하다고 탄핵하려 했다. 이때 사간원(司諫院)의 헌납 벼슬에 있던 백인걸은 이 탄핵거론에 반론을 폈다. 『최가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것은 풍문으로 들은 것이니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옛말에 군자는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는다 했는데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