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124

酒池肉林(주지육림)

달기에 빠져버린 주왕은 국력을 기울여 호화찬란한 궁정을 짓고 미주와 포육으로 酒池肉林을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沒我의 恍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狂宴이 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렇듯 暴君淫主로 악명을 떨치던 주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周나라 始祖인 武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아래 글은 殷本紀를 발췌한 것이다. 帝紂資辨捷疾,聞見甚敏;紂왕은 천부적으로 말을 잘하고 행동이 민첩하며, 견문이 뛰어났다.材力過人,手格猛獸;힘이 보통사람 보다 강하여..

史記/成語 2024.08.14

鷄口牛後(계구우후)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대왕께서 秦을 섬긴다면, 秦은 틀림없이 宜陽과 成皐를 요구할 터입니다.今玆效之, 明年又復求割地.지금 이것을 바쳤는데, 내년에는 또다시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할 터입니다.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弃前功而受後禍.땅을 주다 보면 줄 땅이 없어질 터이고, 주지 않으면 前功을 포기하여 뒷날의 재앙을 받을 터입니다.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또 대왕의 토지는 유한하고 秦의 요구는 끝이 없을 터입니다.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秦의 요구에 응함은 이것이 소위 원한을 사고 재앙을 맺는 일이라, 싸우지도 않고 땅만 줄어듭니다.臣聞鄙諺曰 : ‘寧爲雞口, 無爲牛後.’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

史記/成語 2024.08.11

家徒四壁(가도사벽)

相如之臨邛,從車騎,雍容閒雅甚都;及飲卓氏,弄琴,文君竊從戶窺之,心悅而好之,恐不得當也。상여가 임공으로 갈 때 車騎를 거느렸으며 그의 모습은 풍채가 당당하고 우아하여 매우 성대하였다.상여가 탁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탈 때, 탁문군이 문틈으로 몰래 엿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가 자신의 심정을 알지 못할까 걱정하였다.既罷,相如乃使人重賜文君侍者通殷勤。주연이 끝나자 상여가 사람을 시켜서 탁문군의 시종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게 하였다.文君夜亡奔相如,相如乃與馳歸成都。탁문군이 밤을 틈타서 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오니, 상여가 그녀와 함께 급히 달려 성도로 달려갔다.家居徒四壁立。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4면의 벽이 둘러져 있을 뿐이었다. 사마천의 사기 사마상여열전에서 발췌하..

史記/成語 2024.08.10

徙木之信(사목지신), 家給人足(가급인족)

(上略) 孝公曰 :「善.」효공이 말하였다.“좋다.”以衛鞅爲左庶長, 卒定變法之令.위앙을 左庶長으로 삼고 마침내 변법의 법령을 제정하였다.令民爲什伍, 而相牧司連坐.백성을 열 집이나 다섯 집을 한 조로 짜서 서로 감시하여 연좌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不告姦者腰斬, 告姦者與斬敵首同賞, 匿姦者與降敵同罰.부정을 고발하지 않으면 허리를 베는 형에 처하며, 부정을 고발하는 사람은 적의 수급을 벤 사람과 동일하게 상주고, 부정을 감춘 자는 적에게 항복한 사람과 같게 벌하였다.民有二男以上不分異者, 倍其賦.민가에 두 명 이상의 남자가 있으면서 분가하지 않으면, 그 세금을 배로 물렸다.有軍功者, 各以率受上爵 ; 爲私鬪者, 各以輕重被刑大小.軍功이 있는 자는 각각 정도에 따라 나은 벼슬을 받았고, 사사로이 싸운 자에게는 각각 경..

史記/成語 2024.08.10

列傳권130-太史公自序(태사공자서)

사기는 前漢의 사학가 太史 司馬遷이 상고시대로부터 전한 武帝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간의 역사를 기술한 고대 중국 역사서로 12권, 10권, 8권, 30권,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太史公自序는 司馬遷 의 마지막 130권, 列傳의 마지막 제70편으로 수록되어 있다. 태사공자서는 열전의 마지막 편이지만 사실은 史記 129권 전체에 대한 序文이자 結論에 해당한다. 자신의 생애와 가문내력, 그리고 학술적 배경과 경력을 담고 있다. 특히 아버지 사마담의 중요 논문인 「논육가요지」 전문을 수록하여 아버지의 염원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자신의 학술적 입장을 동시에 밝혔다. 전문은 7,812자로 이루어졌는데, 1)사마천의 가계 서술, 2)사마씨 부자의 「논육가요지」, 3)사마천의 청년시절과 부친의 죽음, 그리..

史記/列傳 2023.10.27

列傳권129-貨殖列傳(화식열전)

이 편은 춘추시대 말기부터 漢 초기까지 재산을 늘리는 활동에 傑出한 인물에 대한 傳記이다. 貨殖은 재산을 늘림을 말하며 상인을 말하기도 한다. 이 편에서는 사마천의 經濟思想과 物質觀을 피력하였으며 중국 각지의 지형과 산물 풍토를 기술하고, 春秋時代의 大商人으로 꼽히는 范蠡, 子贛, 白圭, 猗頓과 漢 초기의 大商人인 卓氏, 程鄭, 孔氏, 任氏 등의 行蹟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에서 사마천은 ‘정치를 방해하지 않고 백성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물건을 사고팔아 재산을 늘린 벼슬 없는 보통 사람들을 貨殖列傳에 기술하였다.’라고 하였다. 老子曰: 「至治之極,鄰國相望,雞狗之聲相聞,民各甘其食,美其服,安其俗,樂其業,至老死,不相往來。」 老子가 말하였다. “치세의 극치는 이웃한 나라가 서로를 바라..

史記/列傳 2023.10.25

列傳권128-龜策列傳(귀책열전)

이 편은 占術에 대한 기록으로 龜策은 고대에 거북이의 등껍질과 蓍草로 점을 치는 것을 말한다. 蓍草는 가새풀로 점을 치는 데 사용한 것을 말하며, 후대에는 대나무를 깎아 시초 대신 점을 쳤으므로 筮竹이란 말이 생겼다. 卜筮는 禮記 曲禮上에 “龜甲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卜이라 하고, 蓍草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筮라 한다(”龜爲卜,策爲筮”)라고 하였다. 이 편은 사마천의 저술이 漢 때 없어지매 서론 부분만 있던 것을 褚少孫이 보충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편에서는 사마천의 卜筮에 대한 관점과 그 변천사를 기록하였으며 저소손이 보충하여 귀책의 변천과정을 설명하였다. 太史公曰: 自古聖王將建國受命,興動事業,何嘗不寶卜筮以助善! 태사공은 말한다. “옛날부터 聖明 君主가 천명을 받아서 나라를 세우려 할 때, 王業을..

史記/列傳 2023.10.24

列傳권127-日者列傳(일자열전)

이 편은 日者에 대한 전기이다. 日者는 고대의 점쟁이를 말하며 음양학으로 길흉을 점치는 사람을 말한다. 이 편은 楚 사람인 司馬季主에 대한 내용인데, 中大夫인 宋忠과 博士인 賈誼가 日者 司馬季主를 만나 점쟁이를 비판하자, 사마계주의 이에 대한 반박이 위주이다. 褚少孫이 사마천의 유실된 기록을 보충한 것으로 전해지며, 저소손은 일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기록하였다. 自古受命而王,王者之興何嘗不以卜筮決於天命哉! 예로부터 천명을 받아 왕이 되었으니, 君王이 興起함에, 언제 점괘로써 천명을 결정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其於周尤甚,及秦可見。 그것은 주나라에서 가장 심하였고, 秦에 이르러서도 볼 수 있다. 代王之入,任於卜者。 代王 劉恒이 입조하여 천자가 됨도 점쟁이의 판단에 맡겼었다. 太卜之起,由漢興而有。 太卜 관..

史記/列傳 2023.10.21

列傳권126-滑稽列傳(골계열전)

이 편은 익살스러운 말로 남을 감동시킨 사람에 대한 逸話를 열전으로 엮은 것이다. 사마천은 전국시대의 인물인 淳于髡, 優孟, 優旃에 대하여 기록하였으며, 후세에 前漢의 사학자인 褚少孫이 郭舍人, 東方朔, 東郭先生, 淳于髡, 王先生, 西門豹 등 여섯 명의 일화를 덧붙여 놓으며 호사가들의 마음과 귀를 편하고 놀라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중 순우곤은 중복되어 있다. 孔子曰: 孔子가 말하였다. 「六藝於治一也。 “六藝가 나라를 다스림에서 있어서는 서로 같은 작용을 한다. 禮以節人,樂以發和,書以道事,詩以達意,易以神化,春秋以義。」 禮記는 인간의 행동을 절제하게 하고, 樂經은 인간의 마음을 조화롭게 하고, 書經은 옛일을 말하여 본받게 하고, 詩經은 감정을 표현하여 전하고, 易經은 천지의 기묘한 변화를 알 수 있게 ..

史記/列傳 2023.10.20

列傳권125-佞幸列傳(영행열전)

이 편은 漢의 佞臣이었던 鄧通, 韓嫣, 李延年 등의 合傳이다. 佞幸은 아양을 떨어 얻게 된 총애를 말하며, 아첨하는 자 또는 宦官을 총칭하여 말하기도 한다. 사마천은 高祖로부터 文帝, 景帝, 武帝에 이르기까지의 미색으로 인하여 총애를 받은 영신에 대하여 간략히 평가하였다. 이 장에서는 漢武帝 때의 鄧通에 대하여 주로 논하였다. 鄧通은 文帝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上大夫에 이르렀고 銅山을 하사받아 자신의 화폐를 주조하는 특전을 얻었다. 그가 주조한 ‘鄧氏殿’이 세상에 유포되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모함을 당하여 가난하게 살다 죽었다. 諺曰 「力田不如逢年,善仕不如遇合」,​固無虛言。 속담에 이르기를 “힘써 농사를 지어도 풍년을 만남만 못하고, 정성껏 벼슬하여도 군주의 뜻에 迎合함만 못하다.”라고 하였는데 근거 없..

史記/列傳 202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