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594

몽구 跋文 및 해석자의 自嘆

浩浩萬古 不可備甄- 많고 한없는 세월의 일을 모두 갖추어 살필 수는 없네 李子言 自史記至晉宋 子史向千卷. 況搜神列異 浩浩雜書. 難可時復見錄. 且古人窮一經明 猶辭皓首哉. 此甄擇恐難全備也. 나(李翰)는 말한다. 로부터 晉, 宋까지의 歷史 책은 1천 권에 이른다. 더구나 搜神를 위시한 괴이를 기록한 책 등 숱한 雜書는 가히 모두 보아 기록하기 어렵다. 또 古人은 하나의 經書를 究明하는 데 皓首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이렇게 간추리는 데는 전부를 구비하기가 어렵다. ▶甄擇: 1.甄別選擇。 2.指選拔人才。 [註解] ▶史記- 歷史的 史實을 기록한 책. 여기서는 책의 이름으로서 모두 130권. 漢나라 司馬遷이 저술한 것으로서 黃帝로부터 漢武帝에 이르기까지의 3천여 년의 일을 적은 紀傳體의 史書. 12本紀, 1..

蒙求(몽구) 2023.04.17

몽구(蒙求)에 대하여

by 耽古樓主 몽구(蒙求)에 대하여 몽구(蒙求)는 당(唐)나라 중기(8세기)에 이한(李瀚)이 지은 책으로서, 책 이름은《주역(周易)》 몽괘(蒙卦)의 에서 딴 것으로 한자로, '어리석다, 어리다'라는 뜻의 몽(蒙)자와 '구하다, 찾다'라는 뜻의 구(求)자가 더해져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자의 뜻을 연결해 보면, 蒙求란 '어리석은 어린 사람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라는 뜻이 된다. 3권이며, 아동용 교과서로 의도하였음을 알수 있다. 체재는 손강영설(孫康映雪), 차윤취형(車胤聚螢)의 경우처럼 한가지 사항을 4자 1구로 요약하여, 비슷한 내용의 2구로 한 대구(對句)를 만들고, 1구 걸러 운을 달며, 또 8구마다 운자를 바꿈으로써 음조도 좋고 기억하기도 좋게 고안되어 있다. 596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1-王戎簡要(왕융간요)

by 耽古書生 王戎簡要- 王戎은 간단하고 요령이 있었다. 晉書 王戎字濬沖 琅邪臨沂人. 에 보면, 王戎의 字는 濬沖이니, 琅邪의 臨沂사람이다. 幼而穎悟 神彩秀徹 視日不眩.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게 총명하고, 정신과 안색이 남달랐으며, 眼力이 날카로워서 태양을 한참 보고 있어도 눈이 부시는 법이 없었다. 裴楷見而目之曰, 戎眼爛爛如巖下電. 배해가 그를 보고 평하기를, “왕융의 눈은 빛나서 마치 바위 아래에서 번개를 봄과 같다.”라고 하였다. 阮籍素與戎父渾爲友. 완적은 평소 왕융의 아버지 왕혼을 친구로 사귀었다. 戎年十五隨渾在郞舍. 왕융의 나이 15세 때에 왕혼을 따라서 郞舍에 살고 있었다. 少籍二十歲 籍與之交. 완적보다 20세나 젊었으나, 완적은 왕융과 사귀고 있었다. 籍每適渾去 輒過視戎 良久然後出 謂渾曰, 濬..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2-裴楷淸通(배해청통)

by 耽古書生 裴楷淸通- 배해는 맑고 통달했다 晉裴楷字叔則 河東聞喜人. 晉나라 裴楷의 字는 叔則이니 河東의 聞喜사람이다. 明悟有識量 少與戎齊名. 총명하고 슬기롭고 識見과 度量이 있어서, 젊었을 때 王戎과 함께 나란히 명성이 있었다. 鍾會薦於文帝 辟相國掾. 鍾會가 文帝에게 천거하여, 재상의 屬官에 임명되었다. 及吏部郞缺 帝問鍾會 曰 裴楷淸通 王戎簡要 皆其選也. 吏部의 郞이 缺員되어 文帝가 적임자를 종회에게 묻자, 종회가 말하였다. “배해는 맑고 사리에 정통하며, 왕융은 간략하고 요령이 있사오니, 모두 그 뽑힌 자들입니다.” 於是用楷. 이에 배해를 起用하였다. 楷風神高邁 容儀俊爽 博涉群書 特精理義. 배해는 風采와 정신이 남보다 뛰어나고, 용모와 태도가 남다르게 맑았으며, 널리 많은 서적을 읽었는데, 특히 이..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3-孔明臥龍(공명와룡)

by 耽古書生 孔明臥龍- 공명은 누워있는 용이다. 蜀志 의 기사이다. 諸葛亮字孔明 琅邪陽都人. 諸葛亮의 字는 孔明이니, 琅邪 陽都 사람이다. 躬耕隴畝 好爲梁父吟 每自比管仲‧樂毅. 몸소 밭을 갈면서 읊기를 좋아하고, 늘 자신을 管仲과 樂毅에 비교했다. 時人莫之許. 당시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惟崔州平‧徐庶與亮友善 謂爲信然. 오직 崔州平과 徐庶만이 제갈량과 친하게 사귀며, 믿을 만하다고 여겼다. 時先主屯新野 徐庶見之謂曰 諸葛孔明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 此人可就見 不可屈致. 宜枉駕顧之. 이때 先主는 新野에 머물러 있었는데 徐庶가 그를 보고 말하였다. “諸葛孔明은 臥龍이온데 將軍께서는 어찌 만나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가히 찾아보거나, 가히 불러서 볼 것이 아니오니, 마땅히 수레를..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4-呂望非熊(여망비웅)

by 耽古書生 呂望非熊- 여망은 곰이 아니다. 六韜曰 에 말하였다. 文王將田, 史編布卜曰 田於渭陽 將大得焉, 非龍 非彲 非虎 非羆. 兆得公侯, 天遣汝師 以之佐昌 施及三王. 文王이 장차 사냥을 나가려고 하는데, 太史 史編이 점을 치고 말하기를, “대왕께서 渭水의 남쪽에서 사냥하시면, 장차 큰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龍도 아니고 이무기(彲)도 아니며, 虎도 아니며 큰곰(羆)도 아닙니다. 公侯를 얻을 징조이니, 하늘이 전하의 스승을 보내어 전하를 돕고, 전하를 三王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文王曰 兆致是也. 문왕이 말하기를, “징조가 이러한 것을 나타내는가?”라고 하였다. 史編曰 編之太祖史疇爲舜占得皐陶. 兆比於此. 사편이 말하기를, “저의 先祖 史疇가 舜임금을 위하여 점을 쳐서 皐陶를 얻었으므..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5-楊震關西(양진관서)

by 耽古書生 楊震關西- 楊震은 關西의 孔子이다. 後漢楊震字伯起 弘農華陰人. 後漢 楊震의 字는 伯起이다. 少好學明經 博覽無不窮究.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經書에 밝았으며, 널리 보고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諸儒爲之語曰 關西孔子楊伯起. 선비들이 그를 가리켜 “關西의 孔子 楊伯起”라고 하였다. 常客居於湖 不答州郡禮命數十年 衆謂之晩暮. 항상 나그네로 湖北에 살았는데, 고을에서 예로써 초빙하여도 받지 않은 지 수십 년이 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벼슬이 늦었다고 하였다. 而志愈篤. 그러나 그는 뜻이 더욱 도타웠다. 後有鸛雀 銜三鱣魚 飛集講堂前. 그 뒤 황새가 세 마리의 뱀장어를 물고, 그가 강의하는 講堂에 날아와서 모였다. 都講取魚進曰 蛇鱣者卿大夫服之象也. 數三者法三台也. 先生自此升矣. 都講이 물고..

蒙求(몽구) 2023.04.17

蒙求(몽구)6-丁寬易東(정관역동)

by 耽古書生 丁寬易東- 丁寬은 周易이 동쪽으로 가게 했다. 前漢丁寬字子襄 梁人. 前漢 때 丁寬의 字는 子襄이니 梁땅 사람이다. 初梁項生從田何受易. 時寬爲項生從者. 처음에 梁의 項生이 易學의 대가인 田何를 쫓아서 역학을 배웠는데, 이때 丁寬은 項生의 從者였다. 讀易精敏 材過項生. 遂事何. 學成東歸. 주역을 읽어 精緻하고 민첩하여 재주가 항생에 지나치자, 이어서 田何를 섬기다가 학문이 이루어지자 동쪽으로 돌아왔다. 何謂門人曰 易已東矣. 田何가 門人들에게 이르기를, 주역이 이미 동쪽으로 갔다고 하였다. 寬復從周王孫受古義 號周氏傳. 정관은 다시 周王孫을 쫒아서 古義를 배웠는데, 이를 이름하여 이라고 한다. 景帝時 爲梁孝王將軍. 作易說三萬言. 訓詁擧大誼而已. 景帝 때에, 梁孝王의 장군이 되어, 易說 三萬言을 지..

蒙求(몽구) 2023.04.16

蒙求(몽구)7-謝安高潔(사안고결)

by 耽古書生 謝安高潔- 謝安은 고상하고 깨끗했다. 晉書 에 일렀다. 安字安石 陳國陽夏人. 謝安의 字는 安石이니, 陳國 陽夏 사람이다. 年四歲桓彛見而嘆曰 此兒風神秀徹. 後當不減王東海. 나이 4세 때에 桓彛가 그를 보고 감탄하기를, “이 아이는 풍채가 빼어나고 밝으니, 훗날 마땅히 王東海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王導亦深器之. 王導도 깊이 그를 人材로 여겼다. 由是少有重名. 이로 말미암아 어려서부터 무거운 名望이 있었다. 初辟除 並以疾辭. 처음에 불러서 벼슬을 제수했으나, 모두 병을 핑계하고 사양하였다. 有司奏 安被召歷年不至 禁錮終身. 이에 有司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謝安이 부름을 받은 지 여러 해인데도 오지 않으니, 終身토록 禁錮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함) 하소서.” 遂棲遲東土. 그래..

蒙求(몽구) 2023.04.16

蒙求(몽구)8-王導公忠(왕도공충)

by 耽古書生 王導公忠-王導는 공변되고 충성스러웠다 晉王導字茂弘 光祿大夫覽之孫. 晉나라 王導의 字는 茂弘이니, 光祿大夫 王覽의 손자이다. 少有風鑒 識量淸遠. 젊어서부터 風采와 사람을 아는 識鑒이 있었고, 견식과 도량이 맑고 원대했다. 陳留高士張公見而奇之 謂其從兄敦曰 此兒容貌志氣將相之器也. 陳留의 高士 張公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그 從兄 王敦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용모와 志氣가 將相의 그릇이다.” 元帝爲琅邪王 與導素相親善. 元帝가 琅邪王일 때 왕도와 더불어 평소 친하였다. 導知天下已亂 遂傾心推奉 潛有興復之志. 帝亦雅相器重. 왕도는 천하가 어지러워졌음을 알고 마음을 기울여 받들었는데, 은밀히 나라를 復興할 뜻을 가졌고, 황제도 평소 신임하였다. 會帝出鎭下邳 請導爲安東司馬. 마침 황제가 下邳로 鎭撫하러..

蒙求(몽구) 202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