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 261

孟子序說

孟子序說 ▶[맹자]는 논리가 치밀하다. [맹자]가 經에 들어간 것은 주자 이후라고 보는 설이 있다. 史記列傳曰: 「孟軻, 騶人也, 受業子思之門人. 道旣通, 游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 當是之時, 秦用商鞅, 楚魏用吳起, 齊用孫子·田忌. 天下方務於合從連衡, 以攻伐爲賢.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 是以所如者不合. 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 述仲尼之意, 作孟子七篇. 」 史記 列傳에 일렀다. “孟軻는 騶땅의 사람으로 子思의 문인에게서 수업하였다. 유학의 도에 통달하고 난 뒤에 (노나라를 떠나) 齊宣王을 섬겼는데, 宣王이 등용하지 못하였다. 梁나라로 갔으나, 梁惠王도 맹자가 말한 바를 실행하지 않았으니, 현실 사정에 迂闊하다고 여겨졌다. 이때를 당하여 秦은 商鞅을 등용하고, 楚와..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1장

孟子集注卷一 梁惠王章句上 凡七章. 모두 7장이다. ▲集註: 주자가 이전의 註와 疏를 모았음을 말함. ▲何必曰利章이라 한다 孟子見梁惠王. 孟子가 梁惠王을 만났다. 梁惠王, 魏侯罃也. 梁惠王은 魏侯인 罃(영)이다. 都大梁, 僭稱王, 溢曰惠. 大梁땅에 都邑하여 王이라 僭稱하고 시호를 惠라고 하였다. 史記: 「惠王三十五年, 卑禮厚幣以招賢者, 而孟軻至梁. 」 史記에 일렀다. ‘惠王 35年에 자신을 낮추는 禮法으로 폐백을 厚하게 하여, 賢者를 초청하니 孟軻가 梁나라에 이르렀다.’ ▲卑禮: 예로써 자기를 낮춤. 자기를 낮추는 예법 ▲賢: 才德出衆曰賢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 王이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千里를 멀다고 여기지 않고 오시니, 또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습니까?” ▲有以: 방법..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2장

▶이 장은 與民偕樂章이라 한다. 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鴈麋鹿, 曰: 「賢者亦樂此乎? 」 孟子가 梁惠王을 만났다. 王이 못가에 서서 鴻鴈과 麋鹿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賢者도 또한 이것을 즐깁니까?” ▶賢者: 맹자를 말함 沼, 池也. 沼는 못이다. 鴻, 鴈之大者. 鴻은 기러기 중 큰 것이다. 麋, 鹿之大者. 麋는 사슴 중 큰 것이다. 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 不樂也. 孟子께서 대답하였다. “賢者이라야 이것을 즐길 수 있고, 不賢者는 비록 이것을 가지고 있어도 즐기지 못합니다. ▲賢者:才德出衆者. 能任其職者 此一章之大指. 이것은 한 章의 큰 뜻이다. 詩云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 ..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3장

▶이 장은 王無罪歲章이다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梁惠王이 말하였다 “과인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利民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亦然.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지방으로 이주시키고 (이주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는) 그 곡식을 하내 지방으로 옮기며, 하동지방이 흉년이 들면 또한 그렇게 합니다. 察鄰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습니다. 鄰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 」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무엇 때문입니까?” 寡人, 諸侯自稱, 言寡德之人也. 寡人은 諸侯의 자칭이니, 德이 적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河內河東皆魏地. 하내와 하동..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4장

▶以刃與政章이라 한다.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 」 梁惠王이 말하였다. “寡人은 마음을 편안히 하여 가르침을 받들기 願합니다.” 承上章言願安意以受敎. 위의 장을 이어서 마음을 편안히 하여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心之所發曰意. 마음이 발현함을 意라고 한다.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 有以異乎? 」 孟子가 대답하였다. “사람을 죽임에 몽둥이와 칼날을 사용하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曰: 「無以異也.」 왕이 말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梃, 杖也. 梃(정)은 몽둥이이다. 「以刃與政, 有以異乎? 」 “칼날과 정사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曰: 「無以異也. 」 답하였다. “다름이 없습니다.” 孟子又問而王答也. 孟子가 다시 물으니 왕이 답하였다. 厚斂於民以養禽獸, 而使民飢..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5장

▶可使制梃章이라 한다 梁惠王曰: 「晉國, 天下莫强焉, 叟之所知也. 梁惠王이 말하였다. “晉나라가 天下에 莫强함은 老선생께서 아시는 바입니다. ▶莫强焉:莫强於之 그보다 강한 것이 없다. 及寡人之身, 東敗於齊, 長子死焉; 西喪地於秦七百里; 南辱於楚. 寡人의 몸에 이르러서, 동쪽으로 齊나라에 패하여 長子가 전사하였고, 서쪽으로 秦나라에게 땅 七百 里를 잃었고, 南쪽으로 楚나라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及=至 ▶東敗於齊=東見敗於齊 寡人恥之, 願比死者一洒之, 如之何則可? 」 과인은 이것을 부끄러워하여 戰死한 자를 위해서 한번 설욕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比: 위하여, 때문에 ▶洒: =灑(뿌리다. 씻다) ▶如之何: =奈之何 =於之如何 ▶可:可以洒之 魏本晉大夫魏斯, 與韓氏趙氏共分晉地, 號曰三晉. ..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6장

▶不嗜殺人章이라 한다 孟子見梁襄王. 孟子가 梁襄王을 만나보았다. 襄王, 惠王子, 名赫. 襄王은 惠王의 아들이니 이름은 赫이다. 出, 語人曰: 「望之不似人君, 就之而不見所畏焉.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人君같지 않고, 그 앞으로 나아가도 두려운 바를 볼 수 없었다. 卒然問曰: 『天下惡乎定? 』 갑자기 물었다. ‘天下가 어디서 安定되겠습니까?’ 吾對曰: 『定于一. 』 내가 대답하였다. ‘한 곳에 정해질 것입니다.’ 語, 告也. 語는 말함이다. 不似人君, 不見所畏, 言其無威儀也. 不似人君不見所畏이란 그에게 威儀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威儀: 威嚴(辭氣)과 儀表(용모) 卒然, 急遽之貌. 卒然은 急한 모양이다. 蓋容貌辭氣, 乃德之符. 其外如此, 則其中之所存者可知. 대개 容貌와 辭氣는 곧 ..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상 제7장

齊宣王問曰: 「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 齊宣王이 물었다 “齊桓公과 晉文公의 사업을 들을 수 있습니까?” ▶齊宣王:강씨에게 제나라를 빼앗은 田和의 후손. 제환공의 손자 齊宣王, 姓田氏, 名辟彊, 諸侯僭稱王也. 齊宣王은 姓은 田氏이니 이름은 辟彊이고, 諸侯로서 王이라고 僭稱하였다. 齊桓公·晉文公, 皆霸諸侯者. 齊桓公과 晉文公은 모두 諸侯의 霸者가 된 사람이다. 孟子對曰: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 是以後世無傳焉. 臣未之聞也. 無以, 則王乎? 」 孟子가 대답하였다. “仲尼의 門徒는 齊桓公과 晉文公의 일을 말한 사람이 없으므로, 이 때문에 後世에 (환문지사를) 傳함이 없습니다. 臣도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괜찮다면 王道를 말씀드리겠습니다.” ▶聞: 聞과 見은 ‘알다’의 뜻으로 많이 쓰임. ▶未之聞: 未聞..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하 제1장

孟子集註大全卷之二 梁惠王章句下 凡十六章. 모두 16장이다. ▶莊暴見孟子章이라 한다 莊暴見孟子, 曰: 「暴見於王, 王語暴以好樂, 暴未有以對也. 」 莊暴가 孟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왕을 뵈오니, 王께서 저에게 音樂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시거늘,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曰: 「好樂何如? 」 말하였다. “音樂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孟子曰: 「王之好樂甚, 則齊國其庶幾乎! 」 孟子가 대답하였다. “王이 매우 音樂을 좋아하시면, 齊나라는 아마도 거의 잘 다스려질 터입니다.” 莊暴, 齊臣也. 장포(莊暴)는 齊나라 臣下이다. 庶幾, 近辭也. 言近於治. 庶幾는 가깝다는 말이니, 잘 다스려짐에 가까움을 말한다. 他日, 見於王曰: 「王嘗語莊子以好樂, 有諸? 」 다른 날에 孟子가 王을 뵙고 말하였다. “王께서..

맹자집주 2023.03.24

맹자집주 양혜왕장구 하 제2장

齊宣王問曰: 「文王之囿方七十里, 有諸? 」 齊宣王이 물었다. “文王의 동산이 사방 七十里라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孟子對曰: 「於傳有之. 」 孟子가 말하였다. “傳에 그러한 것이 있습니다.” ▶囿: 苑囿 囿者, 蕃育鳥獸之所. 囿란 새와 짐승을 번식시키고 기르는 곳이다. 古者四時之田, 皆於農隙以講武事. 옛날에 四時의 사냥은 모두 농한기에 武藝를 익히는 일이었다. ▶武:戎武 然不欲馳騖於稼穡場圃之中, 故度閒曠之地以爲囿. 그러나 곡식을 심는 농토와 채소를 가꾸는 場圃의 가운데에서 말을 달리지 않으려고, 한가롭고 빈 땅을 헤아려 동산을 만들었다. 然文王七十里之囿, 其亦三分天下有其二之後也與? 그러나 文王의 七十里 되는 동산은 그가 또한 天下를 三分하여 그중 二를 所有한 뒤였을 터이다. 傳, 謂古書. 傳은 ..

맹자집주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