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화려하게 짓고 살거나 거처를 사치스럽고 참람하게 한 사람은 禍敗를 당하게 마련이고 작은 집에 베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명예와 직위를 보전한다는 사고가 보편화되기까지 했다.
한국인의 집을 겸허함은 이를 데 없었다. 요즘처럼 집을 재물시(財物視)하여 사고파는 것으로 이득을 남긴다는 생각은 극히 최근에 생긴 것이었다.
고려 때에 있었던 일화를 통해 한국인의 전통적 주택관을 살펴보자.
산원동정(散員同正)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벼슬아치인 노극청(盧克淸)이 가세가 가난하여 집을 줄일 작정으로 팔려고 내놓았다. 워낙 변변치 않은 집이라 작자가 좀체로 나서지 않았다.
나랏일로 노극청이 지방에 가 있는 동안에 郎中벼슬의 현덕수(玄德秀)가 그 집을 사겠다고 나서 그의 아내가 백금 열두 근을 받고 그 집을 팔았다. 노극청이 돌아와서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장을 풀기도 전에 현덕수를 찾아가서 말했다.
"내가 처음 이 집을 살 때 백금 아홉 근만 주었는데, 수년 동안 거처하면서 서까래 하나 보탠 것이 없는데, 어찌 백금 서 근을 더 받는다는 말인가. 이것이 도리가 아니기에 백금 서 근을 돌려주러 왔으니 받아 주게나."
이 말을 듣고 현덕수는
“자네는 능히 그로써 의를 지키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다는 말인가?"
하고 끝내 그 백금 서 근을 받지 않았다.
이에
"내가 평생에 不義의 짓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헐하게 집을 사서 비싸게 팔므로써 재물을 탐하겠는가. 자네가 만약 남은 서근을 끝내 받지 않는다면 나머지 아홉 근마저 돌려주고 내 집을 도로찾겠네.“
하며 서로 사양하느라 날이 저물었다 한다.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집을 사고파는 것으로써 돈을 남긴다는 것을 불의(不義)로 생각했던 사고방식은 고려 때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주택관과 유교의 도학사상이 몰아 온 청빈관(淸貧觀)이 조화되어 분에 넘치게 집사치를 하거나, 살던 집을 늘리는 것마저도 불의로 선비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같은 주택관이 체질화되어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살거나 거처를 사치스럽고 참람하게 한 사람은 화패禍敗)를 당하게 마련이고 작은 집에 베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명예와 직위를 보전한다는 사고가 보편화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선비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머까지 번져 있었다.
큰 집을 옥(屋)이라 하고 작은 집을 사(舍)라 하는데 '屋'자를 풀어보면 송장(尸)이 이른다는 말이요, '舍'자를 풀면 사람(人)이 길(吉)하다는 말이니, 큰 집에 사는 사람은 화를 입게 되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사실상 험난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사실로 입증되었고, 따라서 집을 둔 청빈사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학자로선 최고의 벼슬인 대제학(大提學)에 있던 김유(金楺, 1653~1719)의 집이 죽동(竹洞)에 있었는데, 거처하는 사랑이 겨우 두 칸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었다. 당시 다 큰 아들들은 사랑에서 거처하는 것이 상식이었기에 그의 여러 아들들이 뒤 처마 밑에다 자리를 깔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좁게 살면서도 집을 늘린다는 것이 정도가 아니었기에 불편한 대로 살았던 것이다.
김유가 평안감사로 전직되어 집을 비우고 있을 때 사랑채가 낡아 비가 새고 흙담이 비에 씻겨 내리는 바람에 끊어질 위험이 있으니 증수하길 편지로 간곡하게 청했으나 그는 허락치 않다가 끝내 한쪽이 주저앉자 그 전의 모습대로만 복구하라고 허락을 하였다.
아들들이 복구를 하면서 처마를 예전보다 조금 더 달아내고 방도 약간 늘려서 고쳐 놓았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이를 보고는 말했다.
“어째 예전보다 처마 끝이 넓은 것 같구나.”
“예전에도 방 한 칸, 마루 한 칸이었는데, 지금도 예전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하자 유심히 돌아보더니 말했다.
"과연 그렇구나. 한데 내 눈에는 어찌 이리 넓어 보이는지………….”
높은 벼슬일수록, 또 보다 잘살수록 집을 늘리거나 사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한국인의 주택관이 손에 잡히는 것만 같아 싱그럽다.
같은 핏줄이요, 또 시대도 그렇게 현격하지 않은데 이같은 전통이 티끌만큼도 남아 있거나 전승되지 않은 현대인의 주택관이 한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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