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선비의 의식구조 28

선비의 의식구조-27.後記(후기)

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일본의 인류학자 이즈미(泉靖一) 교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帝國大學)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분으로 한국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노(老)학자였다. 그 후 그는 저자를 자기집으로 초대했었다. 그 집에 들리자마자 이 노 교수가 저자에게 묻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 가문에 족보가 있읍니까. 』 『예, 있읍니다. 』 『문집도 전해 내려온 것이 있읍니까. 』 『예, 몇 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 『아, 당신은 양반(兩班)이십니다. 그럼 잘 됐읍니다. 나는 당신을 누추하고 불편한 우리집에 초대한 것에 맘을 놓을 수가 있게 됐읍니다. 한국의 양반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에 대범하니까요. 나는 세상을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의 양반들처럼 물질..

선비의 의식구조-26.儉約性向(검약성향)

■ 냉장고와 짚신 6·25사변 때 한국에 종군했던 영국 군인 두 명과 음악 동호 클럽 멤버로서 교제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이 군인들이 입고 나오는 외출 군복의 무릎 부분이며 팔꿈치 부분 등 잘 해어지는 부분마다 기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을 느낀 일이 있다. 손수 기워 입느냐고 물었더니 부대 안에 옷을 입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몰락과정에 있다고는 하지만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군인인데 군비가 모자라 군복을 기워 입게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없어서 기워 입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서도 기워 입게 하는 어떤 정신적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독 여행 때 그곳에 사는 한 친구 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백화점에 가서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아들놈..

선비의 의식구조-25.義理性向(의리성향)

■ 누이의 犯禁을 告発한 閔判書 민지제는 강직하여 법을 잘 지켰다. 형조판서로 있을 때 비(妃)의 누이동생의 시집인 참봉 홍우필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지제는 본시 술을 즐기므로서 누이가 집에서 정성들여 빚은 술을 내왔다. 술맛은 아주 좋았으나 안주가 김치 한 가지 뿐이었다. 『너희 가난한 집에서 이런 맛좋은 술을 어디서 구했느냐』하며 입맛을 다셔가며 마셨다. 바로 그 전날이 홍참봉의 생일날이었기에 술을 담갔다. 또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집안사람을 대접했던 것이다. 당시 금육(禁肉)의 금령이 내려있던 때고, 또 민공의 법 지키는 것이 엄하였기로 겁이나 감히 쇠고기를 내놓지 못하고 다만 술만 대접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누이는一 『어제는 시아버님의 생신이므로 술은 조금 빚었습니다』 고 대꾸하자 민공..

선비의 의식구조-24.謙遜性向(겸손성향)

■ 밥상에서의 겸손 教育 4형제의 막내동이였던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대여섯 살 때의 일로 기억된다. 밥상이 들어오기 전에 어머니는 몰래 나를 불러내어 그날 밥상에 오른 반찬 가운데 뭣, 뭣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손가락질과 눈매만으로 금기(禁忌) 음식을 지시했다. 이 금기 음식은 대개 시식(時食)이나 절식(節食) 또는 고기반찬이거나 먹고 싶은 반찬이게 마련이었다. 사실 욕망을 억누르기에 길들지 않은 어린 시절에 금기 음식을 앞에 두고 밥을 먹기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할아버지를 위한다는 차원을 벗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극소화시키는 일종의 인간수련의 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도 어린 것이 오죽 먹고 싶을까 하는 정이 동하겠지만 그 정을 결코 ..

선비의 의식구조-23.氣節性向(기절성향)

□ 玩物을 배척하는 기절(氣節) 인조 병술년에 이시백에게 나라에서 집 한 채를 내려주었는데 그 집 뜰에 전부터 한 포기 희귀한 꽃나무가 있었다. 「금사낙양홍(金絲洛陽紅)」이라는 꽃인데 중국에 사신 갔다 온 사람이 애지중지 옮겨 심은 것이었다. 하루는 중국에서 내관 한 사람이 일군을 거느리고 이 집을 찾아들었다. 임금의 하명을 받고 그 꽃을 궁궐 뜰에 옮겨 심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공은 임금의 하명에 응한다 응하지 않는다는 말도 없이 그 꽃 가까이 가서 꽃을 꺾어버리고 꽃뿌리까지 파내어버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내관에게 말했다. 『오늘날 국세가 아침에 어떨지 저녁에 어떨지 알지 못하는데 주상(主上)께서 어진 인재는 구하지 않고 꽃을 구하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나는 차마 꽃을 가지고 임금에게 아첨하여 ..

선비의 의식구조-22.寬容性向(관용성향)

■ 官權에 눌린 人權의 숨결 백인걸이 과거에 올라 창평현감으로 있을 때 늙은 어머니를 위해 자주 잔치를 베풀었다. 이에 고을을 잘못 다스린다는 훼방이 있어 당시 전라감사이던 최보한이 이를 탓하여 파면을 시켰던 것이다. 백인걸이 정언벼슬 시절에 최보한을 탄핵한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를 보복한 것이라고들 말했다. 인종 초년 국상(國喪) 중에 최보한이 기생을 끼고 놀다가 적발되어 파면되었다가 명종이 즉위한 후 대사령을 내려 복직하게 되었으나 사간원에서는 이를 부당하다고 탄핵하려 했다. 이때 사간원(司諫院)의 헌납 벼슬에 있던 백인걸은 이 탄핵거론에 반론을 폈다. 『최가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것은 풍문으로 들은 것이니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옛말에 군자는 너무 심한 일을 하지 않는다 했는데 어찌..

선비의 의식구조-21.道仙性向(도선성향)

■ 現代에 살아있는 道術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금강(金剛) 이남의 제일 산수로, 괴산(槐山)의 선유동문(仙遊洞門)을 치고 있다. 청화산(靑華山) 밑까지 이르는 아홉 구비마다 망선대(望仙臺), 격천벽(擊天壁), 은선암(隱仙岩) 등 선(仙)에 관련되지 않은 지형이 없다. 이 동문이 바로 한국에서 토속화한 선도(仙道)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속리산(俗離山)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단술도장(丹術道場)으로 이곳을 택한 선인(仙人) 남궁두(南宮斗), 불사연년(不死延年)의 양생도장(養生道場)으로 이곳을 택한 진인(眞人) 최도, 새처럼 날아다니려다가 끝내는 왜적(倭賊)에게 몰려 못 날고 만 화담문인(花潭門人) 박지화(朴枝華)의 축지도장(縮地道場)도 바로 이곳이다. 도교(道敎)의 원전(原典)인 「포박자(抱朴..

선비의 의식구조-20.護國性向(호국성향)

■ 龜岩老人의 이야기 군산지방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귀암(龜岩)노인이란 한말의 병사가 있다. 아무도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귀암서 살다 자결했기로 귀암노인이라 불렀다. 그는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근위 제2연대 1대대 소속의 하사졸(下士卒)로 당일 해산식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항일 의거에 참여한 저항 군졸이었다. 해산식이 있기 이전에 이미 일군들은 어깨의 견장을 떼고 은사금(恩賜金)명목으로 80원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동 대대 소속 다른 군졸이 모두 그러했듯이 지폐를 찢어 버리고 무기고를 털어 당시 서소문 안에 있었던 군영을 뛰쳐나와 남대문 근처에서 일군과 접전을 벌였었다. 그길로 일군에게 쫓겨 창의문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내려가 약 2년 동안 의병으로 항일을 했었다. ..

선비의 의식구조-19.忠義性向(충의성향)

■ 피보다 진한 弘文館의 물 한국선비의 근본사상을 풀이하는데 「忠」이란 말뜻의 풀이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이 글씨를 뜯어 보면 가운데 「中」자와 마음 「心」자의 함의(含意) 문자임을 알 수가 있다. 「中」이란 한복판을 뜻하지만 아울러 가운데가 가득 찬 상태, 가슴 속이 꽉 차 빈틈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허위가 없는 충실한 참마음이 중심이요 충이다. 오늘날 우리들은「충」은 단지 나라에 투사되는 참마음만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좁은 의미의 충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빈틈없는 참마음을 나라에 투사했을 때의 충이 된다. 그러나 이 빈틈없는 참마음은 비단 나라에 뿐 아니라 그 밖에도 투사될 많은 대상을 찾고 있으며 그 투사체가 달라짐에 따라 가치도 또한 달라진다. 이를테면 의로운 일에 투사되었을 때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