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살리고 싶은 버릇 93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3. 강강술래

손으로 추는 춤을 '무(舞)'라 하고 발로 추는 춤을 '용[踊]'이라 한다면, 한국춤은 주로 손을 흐느적거려 정적(靜的) 腕曲美를 추구하는 무다. 아시안 게임 폐막식의 맨 끝마당인 '강강술래'는 그렇고 그러려니 했던 예상과는 달리 감흥과 인상을 주었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우리 아가씨들과 각국 선수들이 손을 잡고 돌아대는 강강술래는 우리 전통 유희라서가 아니라 이 같은 화합을 다지는 상징적 차원의 국제 유희로서 이보다 더 좋은 유희가 세상 어느 다른 나라에 있는가 싶었다. 또한 이 세상의 전통무용치고 이렇게 마치 저희 나라 춤추듯 저항감 없이, 또 배우지도 않고 당장에 출 수 있는 국제성의 춤이 어느 다른 나라에 있는가도 싶었다. 손으로 추는 춤을 '무(舞)'라 하고 발로 추는 춤을 ‘용(踊)’이라 한다면..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2.내나무

딸을 낳으면 그 딸 몫으로 논두렁에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그 아들 몫으로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었다. 아이에게 있어 그 탄생과 더불어 심은 나무가 내나무인 것이다. 어릴 적에 즐겨 불렀던 동요에 이라는 게 있었다. 청명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은 이처럼 내 밭두렁에 내나무로 끝난다. 에 나오는 모든 나무들은 실제 있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내나무는 식물도감을 찾아보아도 없는 나무다. 그..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1. 천단(天壇)

정치 제도가 태고적부터 구관(九官), 곧 삼정승 육판서로 벼슬의 품계를 수천 년 고수해 내려 온 것도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리를 다스린다는 뿌리 깊은 구천 사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광주(廣州) 삼성산(三聖山)에 있는 고대 백제의 성터에서 구각정(九角亭)을 세운 듯한 아홉 기둥의 주추가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이 축조물의 쓰임새가 달라질 수 있으나 천제(天帝)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천단(天壇)이었을 확률이 크다. 곧 임금님이 천제의 뜻을 받드는 천정정치(天政政治)의 신성한 현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에는 구천(九天)이 있어 각기 아홉 명의 천제가 구궁(九宮)을 지어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무제(漢武帝)는 천제의 뜻을 받들어 제사하는 신성한 집을 짓고 구천대(九天臺..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0. 아침 문화

조선(朝鮮)이라 했던 우리나라 이름부터가 그렇고, 나라를 다스리는 장소를 朝庭 · 朝堂이라 하고, 나라 다스리는 정승과 판서들을 朝臣이라 했던 것도 아침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 세상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해가 지면 일찍 잠드는 아폴로 문화권(文化圈)과 늦게 일어나 밤늦게 잠드는 디오니소스 문화권으로 대별된다. 남(南)유럽으로 내려갈수록 아침이 늦고 밤을 즐기는 디오니소스 문화권에 속한다. 스페인에서는 정오쯤 돼야 우리나라 8시 정도의 러시가 이루어지며, 극장은 밤 10시에 시작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탈리아에도 '저녁밥을 9시에 먹는 바보'란 속담이 있는데, 너무 일찍 먹는 것을 빗댄 것이다. 이에 비해 독일과 영국 사람은 아폴로 문화권에 속한다. ‘굿 모닝’, ‘구텐 모르겐'처럼 인사에 아침..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9.천리인

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걷는 것을 달리듯 한다 했고, 연나라 모용초 집권 때 고구려로부터 '천리인(千里人)'으로불리는 선주자(善者走) 10명을 초빙해 통신에 썼다 했다. 신빙할 만한 페르시아 전쟁 기록인 헤로도투스의 《역사(歷史)》에 마라톤 전쟁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마라톤전(戰) 직전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원군을 청하고자 피디피데스라는 한 건각(健脚)을 달려가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는 아테네, 스파르타간의 1백 60킬로미터를 출발한 이튿날에 도착하고 있다. 초인적인 러너였음에 틀림없다. 이 희랍의 건각은 최소한도 이틀 만에 1백 60킬로미터를 주파하여 역사상의 영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2백 킬로미터를 12시간에 달린 건각이 있다. 한말에 왕실의 재정을 주물렀던 이용익(李容翊) 대감..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8.술래잡기의 의미

숨바꼭질 술래잡기는 부모나 가정의 보호막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으로 옮겨가는 중간 과정에서의 인생 수업이요, 인생수련인 것이다. 도시 어린이 1천 8백 명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놀이 조사 결과에서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모르거나 놀아보지 못한 아이가 78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 놀이 가운데 가장 많이, 가장 흔히 노는 전통놀이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노는 놀이가 아니라 세상 사람치고 이를 놀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만큼 세계적으로 공통된 놀이기도 하다. 《구약성서》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7.鍊武를 겸한 유희

부녀자들의 대보름 유희인 널뛰기도 그네와 더불어 오랑캐들이 성벽을 넘어갈 때 이용했던 반동역학(反動力學)의 무술이었다. 우리 세시민속의 3분의 1이 집중돼 있는 날이 정월 대보름날이다. 그런데 이날에 놀았던 민속유희의 대부분이 무기(武技)를 단련하는 연무유희(鍊武遊戱)라는 데 주의하게 된다. 이웃 마을과 돌을 던지며노는 편쌈〔投石戰)도 그것이다. 우리 편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수서(隋書)》에 나오는데 고구려사람들은 편을 갈라 패수(浿水)에 들어가 수석을 집어던지는 편쌈을 하는데, 임금까지도 옷 입은 채로 강물에 들어가 독전(督戰)을 했다고 쓰고 있다. 강을 넘어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한 국가적인 연무유희임을 시사하고 있다. 고려의 병과(兵科) 가운데는 투석군(投石軍)이라는 게 따로 있었다. 이태조(..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6.5일장의 추억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이라는 실리적인 기능 말고도 정보와 사교와 낭만과 유흥 기능이 복합된 우리 한국인의 原點이었다. 닷새 만에 돌아오는 장날에 장에 못 가면 안달을 하고, 그것이 심하면 머리 싸매고 눕기까지 하는 병을 '돌뱅이병(病)'이라 한다. 일종의 심신병(心身病)으로 닷새 만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병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골 장날은 가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신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 집산하는 物産만 보아도 눈이 뒤집히는데, 약장수는 배꼽을 거머쥐게 하고, 허벅지 드러내 놓은 색주가는 오금이 저리게 하며, 입으로 불을 뿜는 차력사(借力士)는 간담이 서늘케 한다. 윗마을에 소도둑이 들고, 아랫마을 과수가 아랫배가 부르며, 옆마을 큰아기가 곡마단에 팔려갔느니 등등의 정..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5.한국인의 식사 문화

우리의 옛 선조들의 속담에 ‘따뜻한 밥이 고기 반찬이라...’ 햇듯이 음식이 따습다는 것은 반찬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여길 만큼 '온식(溫食)'에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양식은 맨 처음 수프가 나오고 것을 먹고 난 다음 야채가 나오고, 그것을 먹고 난 다음 스테이크가 나오는 등 식사하는 구조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하나씩 나오고 그것을 먹어 치운 다음 다른 하나가 나오도록 되어 있다. 곧 시간계열형(時間系列型)으로 식사가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식사도 하나씩 먹어 치우는 시간계열형으로 구미와 같다. 일본도 맨 처음에 일반(一飯), 일즙(一汁), 일채(一菜)가 놓여진 밥상이 나오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그 후에 차례로 일선(一膳), 이선(二膳), 삼선(三膳)하는 독립된 요리가 차례로 배부된다는 점에서 시간계열..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4. 국물

국물 식품의 특성은 혼자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 먹는다는 데 있다. 곧 개체의 선택을 용서하지 않고 집단의 동질성을 똑같이 나눠 누린다는 데 그 특성이 있다. 설렁탕 집에서 수육 한 접시 시켜놓고 서넛이 둘러앉아 먹을 때마다 또 생률(生栗)을 안주로 시켜놓고 몇이 맥주를 마실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접시에 마지막 남게 마련인 고기 한 점, 생률 한 톨의 개연성 때문이다. 누구라 마지막 한 점, 마지막 한 톨을 먹지 말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또 마지막 한 점이나 한 톨을 먹으면 불행이 닥친다는 주술적(呪術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개의 경우 접시에 남은 마지막 한 점의 고기는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고 끝내는 남은 채로 접시채 들려 나가게 마련이다. 이것은 나만의 체험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