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살리고 싶은 버릇 93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3. 밥상머리 예절

숟가락을 먼저 들지 않는 것은 지키기에 수월한 법이지만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말아야하는 것은 지키기 괴롭고 고달픈 법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소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祖孫)간의 겸상은 관습이 아니라 멀어지기 쉬운 조손 간의 정을 가깝게 하려는 실생활의 버릇이 가르치는 가정교육의 한 교과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숟가락을 들어서는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놓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서도 안 되었다. 숟가락을 먼저 들지 않는 것은 지키기에 수월한 법도이지만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키기 괴롭고 고달픈 법도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이가 약하셔서 느리게..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2. 눈에는 꿀칠하고, 귀는 솜으로 막아

서양사람도 참고 한국 사람도 참지만, 서양사람이 참는 것은 그저 물리적인 억제 이상의 뜻도 이하의 뜻도 없는데, 왜 우리 한국사람의 참음은 미덕이라는 윤리로까지 미화돼 있는 것일까. ■칼날에 마음이 짓눌린 참을 '인’ 자 참을 인(忍)'자를 찬찬히 뜯어보면 참 재미있게 생겼다. 칼날[刃]이 마음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위에서 짓누르고 있다. 마음이 위로 솟으려 하거나 옆으로 빠져나가려 꿈틀거린다면 날카로운 칼날에 당장 베일 것 같은, 그래서 금방 피라도 흘릴 것 같은 모양이다. 세상은 살다 보면 고락도 있고 희비도 있으며 애도 있다. 이같은 마음을 밖으로 노출시키지 못하게끔 흉기로 짓눌러 놓은 심정 억제의 역학이 바로 '참는다'는 것이다. 물론 남자도 참고 여자도 참는다. 그런데 참는다 하면 바로 여자를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1. 닦고 또 닦고

정신적으로 울적함이나 불만이나 갈등이나 고독이나 질투 같은 오염을 자체 내에서 지워 없애려는 청결에의 꿈과 안간힘이 닦는 동작으로 직결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고 지어미가 되면 ‘부(婦)’라고 불린다. 이 '婦'란 한문 글씨를 뜯어보면 빗자루나 걸레〔帚〕를 들고 있는 여자(女)란 모둠 글씨임을 알 수 있다. ‘妻’도 정갈스럽게 다듬고 쓸고 닦는 도구를 들고 있는 여자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쓸고 닦는다는 일이 여자의 일생에 또 여자의 운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 같다. 꼭 사내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생산 도구로서의 여자, 그리고 쓸고 닦는 가사 노동력으로서의 여자 이외의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데 인색했던 여성 천대의 동양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50. 한국인, 왜 일하는가

아무리 돈이 많은 거부가 돼도 한국인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법이 없다. 오히려 할 일이 없다는 공백은 한국인에게 있어 불행과 공포로 작용한다. 신록이 물든 5월의 들판에서 모를 심고 있는 농부에게 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왜 모를 심고 있습니까?” “왜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한국 농부들은 왜 이같은 질문을 하는가 뜻을 몰라 그저 이상한 눈으로 훑어볼 뿐 대꾸를 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당신 좀 돈 사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가을의 수확을 위해 지금 심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년이 들지도 모를 일이기에 지금부터 수확의 일을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론은 그렇고 실제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모를 심고..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9. 하면서주의

미국 사람들은 상전의 사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업무에 종사하는 비서일지라도 정해진 업무 외에는 사적으로 예속받는 법이 없다. 원숭이성 때문에 우리 한국인은 서툴고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하는 '하면서주의', 곧 공과 사의 한계가 분명치 않은 또 다른 노동관의 특성을 형성해 놓고도 있다. 사자는 먹이를 잡을 때는 비록 그것이 조그마한 토끼일지라도 혼연의 힘을 집중하여 전력투구를 한다. 곧 일할 때는 그 일에 전념을 다한다. 일단 잡고 나면 편안히 누워서 쉰다. 일하고 일하지 않는 생활의 구분이 명확하다. 그런데 원숭이는 하루종일 먹기 위해 나부대고, 나부대면서 먹고, 먹으면서 쉬고, 쉬면서 먹는다. 곧 일한다는 것과 일하지 않는다는 생활의 구분이 애매하다. 미국 사람은 일..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8. 가족의식

한국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일할 때 가족의식이 촉발되며 이 가족의식은 이해나 타산이나 피로나 권태나 불만이나 그 모든 이기적 조건을 이타적으로 승화시킨다. 어머니는 서천에 달이 지기 전에 일어난다. 그리고 하루종일 자식들을 위하여 지치도록 일하고 젖먹이 팔베개 베우고 재우면서 늦은 겨울밤에는 자신의 등이 노출된 것도 모르고 곤히 잠든다. 대개 자시(子時)가 넘을 무렵이기 마련이다. 그동안 어머니는 부엌일이며, 빨래며, 남새갈이며, 남의 집일 품앗이며, 바느질이며, 길쌈이며, 잠시도 쉬질 않고 고되게 일한다. 일제시대 때 한 학자가 한국 여인의 노동량을 측정, 비교한 논문에 보면 한국 남자보다 76퍼센트나 더 고되게 일을 하며, 일본 여인보다는 82퍼센트, 영국의 여인보다는 212퍼센트, 미국 여인보다는 ..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7. 장승

장승을 해치면 동티가 나 죽게 된다는 터부가 있었으며, 이 같은 터부가 있게 된 것은 그것에 초자연적인 신령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가운데 으뜸가는 탕녀(蕩女)는 의 옹녀다. 옹녀가 상대한 사나이의 호칭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정부(情夫)·간부(夫)·애부(愛夫)·기둥서방·눈흘레·입마치·젖쥔치·새후루기·거드모리……… 이 천하의 탕녀와 천하의 탕부 변강쇠가 만나 마음을 돌리고 내외 삼아 함양(咸陽) 땅에 살림을 차렸다. 잡질 이외에는 전혀 재간이 없는 강쇠란 놈 나무 해오라고 시키니까 동구 밖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는 장승만을 뽑아 와서 이를 패어 때고 뜨근뜨근한 방에서 옹녀와 놀아나는지라, 원통한 함양 장승의 우두머리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6. 선(禪)

경화증에 걸린 간뇌를 마사지하는 것이 명상이며, 그 실효를 거두고 있기에 실용주의가 아니면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 그토록 이 동양주의가 성행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 요가 · 좌선(坐禪) · TM 같은 동양적인 명상수도(溟想修道)의 풍조가 크게 일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일이다. 하이 콕스 박사의 《동양회귀(東洋回歸)》란 저서를 보면 이 미국의 동양회귀 현상을, 첫째 개인주의의 당연한 귀결인 고독, 둘째 인간적 인격적 만남의 격감, 신(神)·아버지의 권위 타락으로 새로운 의존체의 모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근간 《헤럴드 트리뷴> 지(紙)에 보니 미국의 세계적 대기업들뿐 아니라 정치 · 행정 · 군대에까지 사고체계의 전환, 잠재능력의 개발, 경쟁력 향상 등 경영 효과를 높이는 수단으로 이 명상..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5. 제야의 종

한국의 좋은 외타형(外打型)인 데다가 소리를 육중한 종벽 속에 가두어 놓고 아낄 대로 아껴가며 인색하게 흘려보내기에 그렇게 은은하고 여운이 길다. 명화인 밀레의 을 보면 우리 한국 사람은 산사(山寺)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은은한 종소리를 그 그림 속에서 듣는다. 그런데 이 명화의 배경이 된 퐁텐블로의 숲 마을에 가서 들어보면 교회의 종루(鐘樓)에서 울려 나오는 종소리는 은은하다는 것과는 인연이 멀다. 서양 종은 위아래로 돌려가며 종의 內壁을 난타하는 내타형(內打型)이기에 소리가 개방적이고 요란스러워 마치 방울이 흔들리는 듯하다. 기도하는 시간만 알리면 되는 시보성(時報性) 종에 불과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종은 외타형(外打型)인 데다가 소리를 육중한 종벽 속에 가두어 놓고 아낄 대로 아껴가며 인색하게..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44. 소

소는 재(財)라는 확고한 생각이 불교의 윤회사상과 복합되어 남에게 빚을 갚지 않고 죽으면 후생에 소로 태어난다는 생각도 옛 우리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한 핏줄의 가족을 식구(食口)라 하고 식구와 구별하기 위해 생구(生口)란 말이 따로 있었다. 식구와 한 핏줄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종, 곧 노비를 그렇게 불렀다. 주의를 끄는 것은 생구 속에 사람 아닌 짐승 하나를 유일하게 끼워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똑같은 특혜를 받았던 존재가 다름 아닌 바로 소였다. 농경 민족에게 있어 노역(勞役)을 대신해주는 소는 그만큼 소중했고, 소중했기에 그만한 대접을 해주었음 직하다. 그래서 노비를 사고파는 인신매매를 할 때 그 단가는 소 한 마리 값이 고대부터 극히 근대까지 상식이 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