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6.5일장의 추억 본문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이라는 실리적인 기능 말고도 정보와 사교와 낭만과 유흥 기능이 복합된 우리 한국인의 原點이었다.
닷새 만에 돌아오는 장날에 장에 못 가면 안달을 하고, 그것이 심하면 머리 싸매고 눕기까지 하는 병을 '돌뱅이병(病)'이라 한다. 일종의 심신병(心身病)으로 닷새 만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병이라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골 장날은 가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신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 집산하는 物産만 보아도 눈이 뒤집히는데, 약장수는 배꼽을 거머쥐게 하고, 허벅지 드러내 놓은 색주가는 오금이 저리게 하며, 입으로 불을 뿜는 차력사(借力士)는 간담이 서늘케 한다. 윗마을에 소도둑이 들고, 아랫마을 과수가 아랫배가 부르며, 옆마을 큰아기가 곡마단에 팔려갔느니 등등의 정보를 그곳에서 듣는다.
겉보리 한 됫박만 자루에 부어주면 막걸리 한 사발에 도마 위의 내장고기 두어 점, 거기에 국말이밥 한 그릇에 허리띠 풀고 배꼽을 노출시킨다. 나뭇짐 팔고 난 지겟다리에 건고등어 한 마리 사서 매달고 석양을 등지고 돌아오는 파장길...... 그 아니 신나는가.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이라는 실리적인 기능 말고도 정보와 사교와 낭만과 유흥 기능이 복합된 우리 한국인의 원점(原點)이었다.
18세기의 기록인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 보면 조선팔도에 30~50리 거리마다 1천 51개의 시장이 있었는데, 그 중 닷새 만에 열리는 5일장이 9백 5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가운데 1만명 이상의 장꾼이 집산하는 큰 장으로 경기도의 송파장(松坡場) · 사평장(沙平場) · 안성장(安城場) · 공릉장(恭陵場) · 충청도의 강경장(江景場) · 덕평장(德坪場), 전라도의 전주장(全州場) · 남원장(南原場), 경상도의 마산포장(馬山浦場) · 강원도의 대화장(大化場)을 쳤다. 장돌뱅이는 대체로 정월 보름을 쇠고 집을 떠나 초파일 전에 돌아오는 초파일 돌뱅이, 단오날 돌아오는 단오 돌뱅이, 추석 전에 돌아오는 추석 돌뱅이, 동지날 또는 그믐 전에 돌아오는 돌뱅이로 대별되었다. 그래서 시장 상인들이 많이 사는 개성(開城)에는 추석동(秋夕童)이니 동지동(冬至童)이니 하는 한날에 태어난 아이가 많다고 했다. 그리하여 같은 생일의 아이들이 자라서 계(契)를 묻어 상업자본(商業資本) 형성의 한 밑거름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정조 때 기록을 보면 고성장(固城場)에서는 여상(女)들의 파워가 굉장하여 사내들이 자칫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都家의 여장부 지휘로 집단 폭행을 했다 하니, 시장은 우리 한국 서민여성들의 활달한 기품을 보존시켜 온 남녀평등의 온상이요, 남존여비의 저항전선이기도 했던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유통구조의 변화 때문에 5일장이 사양길에 접어들다가 근간에 자가용족(自家用族)의 팽창이 배경이 되어 서울 근처에 5일장이 부활, 활기를 띠고 또 나름대로 낭만과 향수가 깃들인 각종 시장문화(市場文化)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다. 근 7~8만 명이 집산한다는 성남(城南)의 모란장도 그중 하나다. 유통 단계가 단축되어 값싸게 거래한다는 장점 말고라도 국제화시대에 한국의 원점을 부활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전국적으로 부활, 육성시켜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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