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古岸子
馮異大樹- 馮異를 大樹將軍이라고 칭송하다
後漢馮異字公孫 穎川父城人.
後漢의 馮異는 字가 公孫이니 穎川 父城人이다.
好讀書 通左氏春秋‧孫子兵法.
글 읽기를 좋아하여 <左氏春秋傳》과 <孫子兵法>에 능통했다.
漢兵起 以郡掾守父城.
漢나라 군사가 일어날 때, 郡의 掾吏로서 父城을 지키고 있었다.
光武爲司隸 道經父城 卽開門迎.
이때 光武帝는 司隷이었는데, 그가 父城을 지나게 되자 즉시 문을 열어 맞았다.
光武署爲主簿.
광무제는 主簿로 임명했다.
▶署: 임명하다
及王郞起 光武自薊東南馳 至饒陽無蔞亭.
王郎이 난을 일으켰을 때 光武帝는 薊 지방의 동남쪽으로부터 달려와 饒陽 無蔞亭에 이르렀다.
天寒衆飢疲. 異上豆粥.
날씨가 춥고 병사들이 주리고 피로했는데, 풍이가 콩죽을 올렸다.
明旦光武曰
昨得公孫豆粥 飢寒俱解.
이튿날 아침 광무제가 말하였다.
“어제 公孫의 콩죽을 얻어서 굶주림과 추위가 모두 풀렸노라.”
及至南宮 遇大風雨 光武入道傍舍燎衣.
南宮에 이르러 큰바람과 비를 만났고, 광무제는 길가의 집으로 들어가서 옷을 말렸다.
▶燎: 타다 번지다 태우다. (의복 등을)불에 쬐어 말리다
異進麥飯菟肩.
풍이가 보리밥과 菟肩(아욱과 비슷한 식물)의 요리를 올렸다.
▶菟肩: 植物名。属葵类,可食。
因渡滹沱河 還拜偏將軍.
이 때문에 滹沱河를 건넜고, 還都하여서는 풍이를 偏將軍에 임명했다.
爲人謙退不伐.
사람됨이 겸손하고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다.
行與諸將軍相逢 輒引車避道.
길을 가다가 장수들을 만나면, 그때마다 수레를 이끌고 길을 피해주었다.
進止皆有表識.
나가고 그치는 것이 모두 모범이 되었다.
軍中號爲整齊.
軍中에서는 그를 잘 整齊(정리되어 가지런함)라고 했다.
每所止舍 諸將並坐論功. 異常獨屛樹下. 軍中號曰大樹將軍.
군대가 宿營할 때마다, 장수들은 모두 앉아서 공훈을 토론했는데, 풍이는 항상 홀로 큰 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었으므로 군중에서 大樹將軍이라고 불렀다.
▶止舍: 驻扎宿营;安顿休息。舍:쉬다
▶屛: ‘가리다’. ‘차단하다’의 뜻이므로 ‘떨어져 있다’로 해석함
及破邯鄲 乃更部分諸將 却有配隸.
邯鄲을 깨뜨리자, 장수들에게 다시 부서를 나누고 配隸하였다.
▶配隸: 1.犹隶属。 2.将流放犯人发配至某地服役。(포로 따위를 배치함)
軍士皆言 願屬大樹將軍.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수장군에게 소속시켜 달라고 했다.
光武以此多之.
광무제가 이로써 그를 훌륭하게 여겼다.
▶多: 칭찬하다. 훌륭하게 여기다.
後封陽夏侯 拜征西大將軍.
뒤에 陽夏侯에 봉하고 征西大將軍에 임명하였다.
賜珍寶衣服錢帛. 詔曰
倉卒無蔞亭豆粥 滹沱河麥飯 厚意久不報. 異稽首謝.
진기한 보배와 의복과 錢帛을 하사하고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창졸간에 無蔞亭의 콩죽과 滹沱河의 보리밥의 두터운 恩意를 오랫동안 갚지 못했노라.”
異稽首謝.
풍이는 머리를 조아려 사례했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7의 기사임.
▶王郎- 이름은 昌. 邯鄲의 점쟁이였는데 漢나라 成帝의 아들이라고 속이면서 군사를 일으키어 한때 한단을 점거했다가 토벌당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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