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319-元凱傳癖(원개전벽)

구글서생 2023. 4. 5. 03:02

蒙求(몽구) (원개전벽)

by 古岸子

元凱傳癖- 元凱에게는 左傳을 좋아하는 習癖이 있었다. 

 

晉書
晉書에 일렀다.

 

杜預字元凱.

杜預元凱이다.

 

旣立功之後 從容無事.

나라에서 공을 세운 뒤에 조용하고 일이 없었다.

 

乃耽思經籍 爲春秋左氏經傳集解 又參考衆家譜第 謂之釋例.

又作盟會圖‧春秋長歷 備成一家之學.

이에 經籍耽思하여 春秋左氏經傳集解를 만들고 또 諸家系譜를 참고하여 釋例라는 것을 만들었다.

盟會圖春秋長歷을 만들어 一家의 학문을 갖추어 이루었다.

 

比老乃成.

이런 것들은 큰 일거리였으므로 노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又撰女記讚.

<女記讚>을 지었다.

 

當時論者謂 預文義質直.

당시의 의논하는 자가 이르기를, “杜預의 문장은 질박하고 直筆이다.”라고 하였다.

 

世人未之重.

世人이 그를 중히 여기지 않았다.

 

唯秘書監摯虞賞之曰

左丘明本爲春秋作傳. 而左傳遂自孤行.

釋例本爲傳設. 而所發明 何但左傳.

故亦孤行.

오직 秘書監 摯虞가 칭찬하였다.

左丘明이 본래 <春秋>를 위하여 을 짓자 左氏傳이 드디어 스스로 단독으로 간행되었다.

<釋例>도 본래 <좌씨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밝힌 것은 어찌 <좌씨전>뿐이겠는가?

그러므로 역시 단독으로 간행되었다.”

 

時王濟解相馬 又甚愛之.

이때 王濟가 말을 감별할 줄 알고 또 몹시 말을 사랑했다.

 

而和嶠頗聚斂.

和嶠는 자못 재산을 거두어들였다.

 

預嘗稱 濟有馬癖. 嶠有財癖.

두예가 말한 적이 있다.

왕제는 말을 좋아하는 習癖이 있고 화교는 재물을 좋아하는 習癖이 있다.”

 

武帝聞之謂曰

卿有何癖.

武帝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그대는 무슨 벽이 있는가?”

 

對曰

臣有左傳癖.

대답하였다.

에게는 <좌씨전>習癖이 있습니다.”

 

終司隸校尉.

司隷校尉로 관직을 마쳤다.

 

位特進 贈征南大將軍.

죽은 후 지위를 特進시키어 征南大將軍贈職했다.

 

初預好爲後世名 常言高岸爲谷 深谷爲陵.

처음에 두예는 後世에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여 항상 말하기를, ‘높은 언덕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는 언덕이 되기까지라고 했다.

 

刻石爲二碑 紀其勳績 一沈萬山之下 一立峴山之上. 曰

焉知此後不爲陵谷乎.

그러므로 돌을 깎아서 두 개의 비석을 만들고 그 勳績을 썼는데, 하나는 萬山 아래에 묻고 하나는 峴山 위에 세우면서 말하였다.

어찌 이후에 언덕과 골짜기가 되지 않을 줄 알리오?”

 

[註解]
晉書- 晉書<列傳> 4의 기사임.
譜第- 世統註序의 기록.
摯虞- 나라 長安 사람, 武帝 太子舍人에 발탁되고 뒤에 太常卿이 되었다. 많은 저서가 있었다.
左丘明- 나라의 太史로서 공자의 春秋에 해석을 붙인 春秋左氏傳을 지었음.
春秋- 공자가 저술한 나라의 역사책.
左傳- 공자의 春秋左丘明이 해설한 책.
王濟- 나라 사람. 젊었을 때 글재주가 있었으며 勇力이 남보다 뛰어났다. 武帝의 딸 常山公主에게 장가들어 늘 황제를 뵈었으나 일찍이 인물을 의논하지 않고 淸談을 잘했다.

- 和嶠. 나라 西平사람. 젊어서 風格이 있고 潁川太守가 되었는데 정치가 맑고 간단했다. 惠帝 散騎常侍에 이르렀는데 집이 부자인데도 성질이 지극히 인색해서 杜預가 그에게 錢癖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