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의 제목은 雜言이지만 실제 내용은 잡다한 말을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여러 事例들이 있으나 주된 내용은 君子의 品德을 修養하는 데 필수적인 典籍들로 편성되어 있다.
군자는 大體에 힘쓰고 사소한 것은 잊어야 한다는 논리로, 舜‧姜太公‧惠施‧西閭 등의 事例를 열거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군자는 困厄을 당하여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品行을 바꾸지 않고 본래의 節操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군자의 品格임을 제시하였다.
孔子께서 子路가 盛服 차림으로 자기를 뵌 일로 君子와 小人의 구별을 말씀하였고, 또 자로의 질문을 통하여
“君子는 終身의 즐거움이 있고 하루의 근심이 없으며, 小人은 終身의 근심이 있고 하루의 즐거움은 없다.”라고 대답하여,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제시하였다.
1.
賢人君子者,通乎盛衰之時,明乎成敗之端,察乎治亂之紀,審乎人情, 知所去就.
賢人과 君子는 盛衰의 時機에 통달하고 成敗의 단서에 밝으며, 治亂의 준칙을 잘 살피고 사람의 常情을 자세히 알아서 去就할 바를 안다.
故雖窮不處亡國之勢,雖貧不受汙君之祿.
그러므로 곤궁하더라도 亡國의 형세에는 살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無道한 임금의 녹봉은 받지 않는다.
▶ 汙君 : 無道하고 용렬한 임금을 이른다.
是以太公七十而不自達,孫叔敖三去相而不自悔;何則?
이 때문에 姜太公은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스스로 顯達을 구하지 않았고, 孫叔敖는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를 떠났으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았으니, 무엇 때문인가?
不強合非其人也。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太公一合於周而侯七百歲,孫叔敖一合於楚而封十世;
大夫種存亡越而霸,句踐賜死於前;
李斯積功於秦,而卒被五刑。
태공은 한번 周나라와 뜻이 투합하여 700년 동안 諸侯 노릇하였고, 손숙오는 한번 楚나라와 뜻이 투합하여 10대 동안 封地를 소유하였고,
大夫 文種은 망하게 된 越나라를 보존하고 霸業을 이루어주었으나, 구천이 面前에서 賜死하였고,
李斯는 秦나라에 功을 쌓았으나 끝내 五刑을 당하였다.
▶ 李斯 : 秦나라 上蔡 사람으로, 荀卿의 제자이다. 客卿을 지내고 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丞相이 되었다. 郡縣制를 제정하고 禁書令을 내렸으며, 小篆을 만들어 표준 문자를 통일하였다.
시황이 죽자, 趙高의 계책에 따라 胡亥를 二世皇帝로 세웠다. 뒤에 아들 由가 반란에 가담했다는 조고의 모함으로 腰斬당하고 三族이 멸족되었다. 《史記 李斯列傳》
▶ 五刑 : 輕重이 각기 다른 다섯 가지 형벌이다.
秦代 이전에는 墨‧劓‧剕(刖)‧宮‧大辟(殺)을 五刑이라 하였고, 秦漢시대에는 黥‧劓‧趾‧梟首‧菹를 五刑이라 하였다. 《書經 虞書 舜典》‧《史記 秦始皇本紀》
盡忠憂君,危身安國,其功一也;
或以封侯而不絕,或以賜死而被刑;
所慕所由異也。
충성을 다해 임금을 걱정하고 몸을 위험하게 하면서 나라를 안정시킨 공은 한가지인데,
어떤 이는 제후에 봉해져서 代가 끊어지지 않았고, 어떤 이는 사사되어 사형을 당했으니,
사모하는 道와 지나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故箕子去國而佯狂,范蠡去越而易名,智過去君弟而更姓,皆見遠識微,而仁能去富勢,以避萌生之禍者也。
그러므로 箕子는 나라를 떠나 미친 체하였고, 范蠡는 월나라를 떠나면서 이름을 바꾸었으며, 智過는 임금의 아우라는 신분을 버리고 姓을 고쳤으니, 이들은 모두 멀리 내다보고 기미를 알았으며, 仁者의 道로 富貴와 權勢를 버려서 싹트는 禍患을 미리 피한 사람들이다.
▶ 智過 :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으로, 智伯의 家臣이다. 過는 果로도 쓰는데, 晉나라의 大夫로, 智氏의 일족이라고 한다. 《國語 晉語 9》‧《戰國策 趙策 1》‧《韓非子 十過》
夫暴亂之君,孰能離縶以役其身,而與于患乎哉?
사납고 혼란한 임금에게 누가 구속되어 몸 바쳐 일하면서 그와 함께 환난에 참여하겠는가?
故賢者非畏死避害而已也,為殺身無益而明主之暴也。
그러므로 현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여 災害를 피할 뿐이 아니니, 자신을 희생하여도 유익함이 없고 임금의 포악함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比干死紂而不能正其行,子胥死吳而不能存其國;
二子者強諫而死,適足明主之暴耳,未始有益如秋毫之端也。
比干은 紂를 위해 죽었으나 그의 행위를 바로잡지 못했고, 伍子胥는 吳나라를 위해 죽었건만 그 나라를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은 억지로 諫하다가 죽어서 다만 임금의 포악함만 드러내기에 충분했을 뿐, 당초에 털끝만큼도 유익한 단서도 있지 않았다.
是以賢人閉其智,塞其能,待得其人然後合;
故言無不聽,行無見疑,君臣兩與,終身無患。
그 때문에 賢人은 그의 지혜를 감추고 능력을 숨겨서, 적절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投合하매,
말을 하면 들어주고, 시행함을 의심받지 않아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신뢰하여, 종신토록 근심이 없었다.
今非得其時,又無其人,直私意不能已,閔世之亂,憂主之危;
以無貲之身,涉蔽塞之路;
經乎讒人之前,造無量之主,犯不測之罪;
傷其天性,豈不惑哉?
그런데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하고, 또 적절한 임금이 없는데, 단지 자기의 생각을 그만두지 못하여 세상의 혼란을 안타까워하고 임금의 위험을 근심한다.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몸을 가지고 막힌 길을 가고,
참소하는 사람의 앞을 지나고 도량이 없는 임금을 만나 예측하지 못한 죄를 지어,
자기의 天性을 손상한다면 어찌 미혹함이 아니겠는가?
故文信侯、李斯,天下所謂賢也.
그 때문에 文信侯와 李斯를 천하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 文信侯 : 전국시대 말기 사람 呂不韋의 封號이다.
衛나라 濮陽(지금의 河南省 濮陽 西南) 사람으로, 원래 큰 商人이었다. 趙나라 首都 邯鄲에 있을 때, 人質로 조나라에 와 있던 秦나라 公子 異人(뒤에 이름을 子楚로 고쳤고 莊襄王이 됨)을 만나 그를 구출해주고, 자기와 通情하여 임신한 여인을 그에게 바쳐 아들 政을 낳았는데, 정이 王位를 이어 秦 始皇이 되었다. 뒤에 相國이 되어 仲父의 칭호를 받았으나, 太后와 간통한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 賓客을 모아 《呂氏春秋》를 지었다. 《史記 呂不韋列傳》
為國計揣微射隱,所謂無過策也;
戰勝攻取,所謂無強敵也。
나라를 위한 계책을 세워 隱微한 일을 헤아리고 살피니, 이른바 ‘잘못된 계책이 없음’이고, 전쟁하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빼앗으니, 이른바 ‘强敵이 없음’이다.
積功甚大,勢利甚高, 賢人不用,讒人用事,自知不用,其仁不能去;
制敵積功,不失秋毫;
避患去害,不見丘山。
쌓은 공로가 매우 크고 權勢와 財利가 매우 높았으나, 賢人을 쓰지 않고 참소하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여, 스스로 重用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인자한 마음에 차마 떠나지 못하여,
적을 제압하고 공을 쌓음에는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으나,
患難과 피하고 危害를 제거함에는 산처럼 큰 것도 보지 못하였다.
積其所欲,以至其所惡,豈不為勢利惑哉?
자기의 욕망을 쌓아서 그가 싫어하는 데 이르렀으니, 어찌 권세와 재리에 미혹되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詩》云:
「人知其一,莫知其他。」
此之謂也。
《詩經》에 말하기를, “사람들이 하나만 알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이다.
▶ 詩云……莫知其他 : 《詩經》 〈小雅 小旻〉에 보인다.
2.
子石登吳山而四望,喟然而歎息曰:
「嗚呼悲哉!
世有明於事情,不合於人心者;
有合於人心,不明於事情者。」
子石이 吳山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다가 탄식하였다.
“아, 슬프구나.
세상에는 事情에 밝으면서도 남의 마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며,
남의 마음에 부합하되 事情에 밝지 못하는 자가 있다.”
▶ 子石登吳山 : 子石은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이다. 姓은 公孫, 이름은 龍인데, 子石은 字이다.
孔子의 제자로,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 公孫龍과 同名異人이다.
吳山은 지금의 浙江省 杭州市 서남쪽에 있는 城隍山으로, 산 위에 伍子胥의 사당이 있다. 胥山이라고도 한다.
弟子問曰:
「何謂也?」
弟子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子石曰:
子石이 말하였다.
「昔者吳王夫差不聽伍子胥,盡忠極諫,抉目而辜;
太宰嚭、公孫雒,偷合苟容,以順夫差之志而伐齊, 二子沈身江湖,頭懸越旗。
“예전에 吳王 夫差는 伍子胥가 충성을 다해 극진히 諫함을 듣지 않고 눈알을 뽑아 처벌하였고,
太宰 嚭와 公孫雒은 영합하고 附和하면서 夫差의 뜻에 순종하여 齊나라를 정벌했다가, 두 사람이 몸은 강물에 던져지고 머리는 越나라 깃대에 매달렸다.
▶ 太宰嚭公孫雒 : 太宰 嚭는 춘추시대 吳나라 大臣이다. 본서 권9 〈正諫〉 20 ‘伯嚭’ 참고.
公孫雒은 춘추시대 吳王 夫差의 신하이다. 雒은 駱으로도 쓴다.
▶ 齊 : 저본에는 ‘吳’이나, 《群書拾補》와 여러 史書를 따라 ‘齊’로 바로잡았다.
昔者費仲、惡來革、長鼻決耳,崇侯虎順紂之心,欲以合於意,武王伐紂、四子身死牧之野,頭足異所,比干盡忠剖心而死。
예전에 費仲‧飛廉‧惡來革과 코가 길고 귀가 찢어진 崇侯 虎는 紂王의 마음에 순종하여 영합하려다가 武王이 紂王을 토벌함에, 네 사람은 牧野에서 죽어서 머리와 발이 잘리어 소재를 달리하였고, 比干은 충성을 다하다가 심장이 갈려 죽고 말았다.
▶ 費仲惡來革 長鼻決耳崇侯虎 : 모두 紂王의 寵臣들 이름이다.
費仲‧惡來‧革‧崇侯虎의 네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群書拾補》에 “아래 글에서 四子라 하였으니, 費仲 아래에 飛廉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또 《說苑校證》에는 “來革은 《楚辭》 〈惜誓〉에 來革이 있으니, 곧 惡來革이라 하였다.”
역자는 이 두 설을 따라 번역하였다.
崇侯 虎는 商代 崇나라의 제후이다.
西伯 姬昌(뒤의 文王)이 紂王이 사람을 마구 죽인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자, 이를 紂王에게 참소하여 옥에 갇히게 하였다. 뒤에 옥에서 풀려난 西伯이 崇을 정벌하여 그곳에 豐邑을 조성하였다.
今欲明事情,恐有抉目剖心之禍,欲合人心,恐有頭足異所之患。
그러므로 사정에 밝으려 하면 눈알이 뽑히고 심장이 갈리는 재앙이 걱정되고, 人心에 부합하려 하면 머리와 다리가 소재를 달리하는 환난이 걱정된다.
由是觀之,君子道狹耳。
이로 말미암아 관찰하면 君子가 가는 길은 좁을 뿐이구나.
誠不逢其明主,狹道之中,又將危險閉塞,無可從出者。」
진실로 현명한 군주를 만나지 못하면, 좁은 길에서 또 위험하거나 막히어 빠져나갈 곳이 없을 터이다.”
3.
祁射子見秦惠王,惠王說之,於是唐姑讒之,復見,惠王懷怒以待之。
祁射子가 秦 惠王을 뵙자 혜왕이 기뻐하다가, 이때 唐姑가 기사자를 참소하매, 기사자가 다시 혜왕을 뵙자 혜왕이 怒氣를 품고 그를 대하였다.
▶ 祁射子見秦惠王 : 祁射子는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呂氏春秋》 〈去宥〉와 《淮南子》 〈修務訓〉에는 모두 ‘謝子’로 되어 있고 ‘祁’자가 없는데, 墨家學派의 인물이라 한다.
▶ 唐姑 : 秦나라 大夫로, 墨家學派의 인물이라 한다.
《呂氏春秋》 〈去宥〉에는 ‘唐姑果’로, 《淮南子》 〈修務訓〉에는 ‘唐姑梁’으로 되어 있다.
非其說異也,所聽者易也。
그의 말이 달라짐이 아니라, 듣는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故以徵為羽,非絃之罪也;以甘為苦,限味之過也。
그러므로 徵音을 羽音이라 여김은 弦의 죄가 아니고,
단맛을 쓴맛이라 여김은 맛의 잘못이 아니다.
▶ 以徵(치)爲羽 : 徵音이 羽音에 해당한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4.
彌子瑕愛於衛君,衛國之法:竊駕君車罪刖。
彌子瑕는 衛나라 임금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위나라의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타면 발꿈치를 자르는 형벌로 治罪하였다.
▶ 彌子瑕 : 춘추시대 衛 靈公에게 총애를 받던 大夫이다. 彌는 姓이고, 瑕는 이름인데, 뒤에 총애를 잃고 죄를 얻어 廢黜되었다. 《春秋左氏傳 定公 6년》‧《韓非子 說難》‧《孔子家語 困誓》
彌子瑕之母疾,人聞,夜往告之, 彌子瑕擅駕君車而出.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자, 누군가 이를 듣고 밤에 미자하에게 가서 알려주니, 미자하가 임금의 수레를 함부로 타고 나갔다.
君聞之,賢之曰:
「孝哉!
為母之故犯刖罪哉!」
임금이 알고 훌륭하게 여겨 말하였다.
“효성스럽구나.
어머니 때문에 발꿈치가 잘리는 죄를 범하였구나!”
君遊果園,彌子瑕食桃而甘,不盡而奉君,君曰:
「愛我而忘其口味。」
임금이 과수원에서 놀 때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달자 다 먹지 않고 임금께 바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나를 사랑하여 좋은 맛마저 잊었구나!”
及彌子瑕色衰而愛弛,得罪於君,君曰:
「是故嘗矯吾車,又嘗食我以餘桃。」
미자하의 용모가 쇠퇴하고 애정이 식었을 적에 임금에게 죄를 지으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 자는 詐稱하여 내 수레를 탄 적이 있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적이 있다.”
故子瑕之行未必變初也,前見賢後獲罪者,愛憎之生變也。
그러므로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과 전혀 변하지 않았건만, 전일에는 훌륭히 여겨지고 후일에는 죄를 얻음은 사랑과 증오의 발생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5.
舜耕之時不能利其鄰人,及為天子,天下戴之。
舜이 농사를 지을 때는 이웃 사람에게조차 이익을 주지 못했었는데, 天子가 되어서는 천하 사람들이 높이 받들었다.
故君子窮則善其身,達則利於天下。
그러므로 君子는 곤궁하면 자신을 善하게 수양하고, 현달하면 천하를 이롭게 한다.
▶ 隣 : 저본에는 ‘都’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隣’으로 바로잡았다.
▶ 窮則善其身 達則利於天下 : 《孟子》 〈盡心 上〉의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은택을 백성에게 베풀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낸다. 곤궁하면 자신의 몸만을 선하게 수양하고, 현달하면 천하를 아울러 선하게 한다.[古之人 得志 澤加於民 不得志 修身見於世 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6.
孔子曰:
「自季孫之賜我千鍾而友益親,自南宮項叔之乘我車也,而道加行。
故道有時而後重,有勢而後行,微夫二子之賜,丘之道幾於廢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季孫氏가 나에게 千鍾의 녹봉을 주자 벗이 더욱 친근히 하고, 南宮敬叔이 나에게 수레를 주어 타게 하자 나의 道가 더욱 잘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도는 때를 만나서야 重視되고, 권세가 있어야 시행되니, 두 사람의 하사가 없었다면 나의 도는 폐기될 뻔하였다.”
▶ 季孫 : 본서 권7 〈政理〉 02 참고.
▶ 千鍾 : 많은 祿俸을 말한다. 鍾은 6斛 4斗 들이의 量器이다.
▶ 南宮敬叔 : 춘추시대 魯나라의 大夫이다. 姓은 姬, 이름은 說(열), 시호는 敬인데, 南宮은 氏이다.
아버지 孟僖子의 命으로 孔子의 제자가 되었다. 《春秋左氏傳 昭公 7‧11년》‧《春秋左氏傳 哀公 3년》‧《禮記 檀弓 上》
7.
太公田不足以償種,漁不足以償網,治天下有餘智。
姜太公이 농사를 지음에 종잣값을 보상하기에 부족하고, 물고기를 잡음에 그물값을 보상하기에 부족하였으나, 천하를 다스림에는 넉넉한 지혜를 가졌다.
文公種米,曾子架羊,孫叔敖相楚,三年不知軛在衡後,務大者固忘小。
晉 文公은 쌀을 심었고, 曾子는 羊에 수레를 메었으며, 孫叔敖는 楚나라에서 재상이 되어 3년에 멍에[軛]가 끌채 끝의 가로나무[衡] 뒤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 큰일에 힘쓰는 자는 본디 작은 일은 잊는 법이다.
▶ 文公種米 : 文公은 晉 文公 重耳이고, 種米는 쌀을 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공이 쌀을 심은 일은 《新語》 〈輔政〉에 ‘文公種米’, 《淮南子》 〈泰族訓〉에 ‘文公授米’로 보이나 역사적 근거는 찾을 수 없다.
智伯廚人亡炙𥶷而知之,韓魏反而不知;
邯鄲、子陽園人亡桃而知之,其亡也不知。
智伯은 요리사가 炙𥶷를 잃어버리자 그것을 알았으나, 韓‧魏가 배반할 줄은 알지 못했고,
邯鄲·子陽은 과수원지기가 복숭아를 잃어버리자 그것을 알았으나, 자신이 망할 줄은 알지 못하였다.
▶ 炙𥶷 : 주방에서 고기를 구울 때 쓰는 대로 만든 그릇이다.
▶ 韓魏反而不知 : 智伯이 晉陽에서 趙襄子를 공격할 때, 韓康子‧魏桓子와 연합하였으나 뒤에 조양자의 가신 張孟談의 설득을 받아들여 지백을 배반하고 조양자와 합력하여 智氏를 멸망시켰다. 《戰國策 秦策 4‧趙策 1》‧《資治通鑑 周紀 1》
▶ 邯鄲·子陽 :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務小者亦忘大也。」
작은 일에 힘쓰는 자는 또한 큰일을 잊는 법이다.
8.
淳于髡謂孟子曰:
「先名實者,為人者也;
後名實者,自為者也。
夫子在三卿之中,名實未加上下而去之,仁者固如此乎?」
淳于髡이 孟子께 말하였다.
“명예와 실적을 앞세우는 자는 백성을 위하는 사람이고,
명예와 실적을 뒤에 두는 자는 자신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先生께서 三卿으로 계시면서 명예와 실적을 상하에 더해주지 않고 떠나시니, 仁者가 본래 이와 같습니까?”
▶ 淳于髡 : 본서 권6 〈復恩〉 21 참고.
▶ 孟子曰……自爲者也 : 《孟子》 〈告子 下〉에 보인다.
孟子曰:
「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伯夷也;
五就湯,五就桀者,伊尹也;
不惡汙君,不辭小官者,柳下惠也。
三子者不同道,其趣一也。
一者何也?曰仁也。
君子亦仁而已,何必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현명함으로써 불초한 임금을 섬기지 않은 사람은 伯夷이고,
다섯 번 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桀王에게 나아간 사람은 伊尹이며,
無道한 임금을 싫어하지 않고 작은 벼슬이나마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柳下惠였다.
세 사람은 道를 같이하지 않았으나 그 취지는 한가지였다.
한가지는 무엇인가? 仁이다.
君子도 仁을 행할 뿐이니, 어찌 항상 같겠는가?”
曰:
「魯穆公之時,公儀子為政,子思、子庚為臣,魯之削也滋甚。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순우곤이 말하였다.
“魯 穆公 때에 公儀子가 정치를 담당하였고, 子思와 子庚이 신하이었으나 魯나라 국토의 削減이 더욱 심하였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賢者가 나라에 無益함이.”
▶ 公儀子 : 곧 公儀休이다. 본서 권7 〈政理〉 20 참고.
▶ 子庚 : 전국시대 魯나라의 賢人이다. 魯 穆公이 그를 만나러 갔으나, 문을 닫고는 만나주지 않았다 한다. 《孟子》 〈告子 下〉에는 ‘子柳’로 되어 있는데, 곧 ‘泄柳’라고 한다.
曰:
「虞不用百里奚而亡,秦穆公用之而霸.
故不用賢則亡,削何可得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虞나라는 百里奚를 쓰지 않아 나라가 망하였고, 秦 穆公은 그를 써서 霸者가 되었다.
그러므로 현자를 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데, 국토가 삭감될 뿐이겠는가?”
▶ 削何可得也 : 직역하면 ‘삭감을 어찌 얻겠는가?’로 될 터이다. ‘나라가 망하는데 국토의 삭감 정도를 가지고 말하느냐?’라는 뜻이다.
曰:
순우곤이 말하였다.
「昔者王豹處於淇,而河西善謳;
綿駒處於高唐,而齊右善歌;
華舟杞梁之妻善哭其夫而變國俗。
“예전에 王豹가 淇水 가에 살자, 河西 사람들이 동요를 잘 불렀고,
綿駒가 高唐에 살자, 齊나라 서쪽 사람들이 노래를 잘 불렀고,
華舟와 杞梁의 아내가 남편의 죽음에 哭하기를 잘하여 나라의 風俗을 변화하였습니다.
▶ 王豹處於淇 : 王豹는 춘추시대 衛나라의 노래를 잘 부르던 사람이다.
淇는 위나라에 있던 물 이름으로, 지금의 河南省 북쪽을 흐르는데, 옛 黃河의 支流이다. 《孟子 告子 下》‧《水經注 淇水》
▶ 綿駒處於高唐 : 綿駒는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노래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다.
高唐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邑으로, 지금의 山東省 禹城縣 서남쪽에 있었다. 《孟子 告子 下》‧《讀史方輿紀要 山東 濟南府》
▶ 華舟杞梁之妻 : 본서 권4 〈立節〉 15‧10) 참고. ‘舟’는 《孟子》 〈告子 下〉에 ‘周’로 되어 있다.
有諸內必形於外;為其事,無其功,髡未睹也。
마음에 있는 것은 항상 밖에 나타나는 법이니,
어떤 일을 하고 그에 따른 功效가 없는 경우를 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是故無賢者也,有則髡必識之矣。」
이 때문에 현자가 없다고 하니, 있다면 제가 틀림없이 알아볼 터입니다.”
曰:
「孔子為魯司寇而不用,從祭膰肉不至,不脫冕而行;
其不善者以為為肉也,其善者以為為禮也。
乃孔子欲以微罪行,不欲為苟去,故君子之所為,眾人固不得識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孔子께서 노나라 司寇가 되셨는데 말을 써주지 않고, 제사 고기를 보내오지 않음을 근심하여, 면류관을 벗을 새도 없이 떠나셨다.
공자를 좋아하지 않는 자는 제사 고기 때문이라 말하고, 좋아하는 자는 예법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자는 하찮은 죄를 구실로 떠나려 하였을 뿐, 구차하게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군자의 행위는 사람들이 본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9.
梁相死,惠子欲之梁,渡河而遽墮水中,船人救之。
梁나라의 재상이 죽어 惠子가 양나라로 가려고 河水를 건너다가 갑자기 물에 빠지자, 뱃사람이 그를 구출하였다.
▶ 惠子 : 본서 권11 〈善說〉 08 참고.
船人曰:
「子欲何之而遽也?」
뱃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디를 가려고 서두르시오?”
曰:
「梁無相,吾欲往相之。」
혜자가 말하였다.
“양나라에 재상이 없으매 내가 가서 재상이 되려 하네.”
船人曰:
「子居船橶之間而困,無我則子死矣,子何能相梁乎?」
뱃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는 좁은 배 안에서도 곤란하여 내가 없었으면 죽었을 터인데, 그대가 어떻게 양나라의 재상이 되겠소?”
惠子曰:
「子居艘楫之間則吾不如子;
至於安國家,全社稷,子之比我,蒙蒙如未視之狗耳。」
혜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배에 있으면 내가 그대만 못하지만,
국가를 편안히 하고 社稷을 보전함을 말하자면, 그대를 나에 견주면 蒙昧하기가 앞을 보지 못하는 개와 같을 뿐이다.”
10.
西閭過東渡河中流而溺,船人接而出之,問曰:
「今者子欲安之?」
西閭過가 동쪽으로 河水를 건너다가 중류에서 물에 빠지니, 뱃사람이 붙잡아 구출하고 물었다.
“지금 그대는 어디로 가려고 하시오?”
▶ 西閭過 :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西閭過曰:
「欲東說諸侯王。」
서려과가 말하였다.
“동쪽으로 가서 제후왕에게 유세하려네.”
船人掩口而笑曰:
「子渡河中流而溺,不能自救,安能說諸侯乎?」
뱃사람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물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물에 빠졌으나 자신을 구출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제후를 유세하겠소?”
西閭過曰:
서려과가 말하였다.
「無以子之所能相為傷也。
“그대가 잘하는 일을 가지고 상대방을 폄하하지 말라.
子獨不聞和氏之璧乎?價重千金,然以之間紡,曾不如瓦磚;
隨侯之珠,國寶也,然用之彈,曾不如泥丸;
騏驥騄駬,倚衡負軛而趨,一日千里,此至疾也,然使捕鼠,曾不如百錢之狸;
干將、鏌釾拂鐘不錚,試物不知,揚刃離金斬羽契鐵斧,此至利也,然以之補履,曾不如兩錢之錐。
그대는 어찌 和氏의 璧에 관한 일을 듣지 못했는가? 가치가 千金이나 되지만 이것으로 紡錘를 만들면 진흙을 구워 만든 瓦磚만 못하고,
隨侯의 구슬은 國寶이지만 탄환으로 쓰면 진흙으로 만든 탄환만 못하며,
騏驥와 騄駬는 수레끌채 마구리에 의지하여 멍에를 지고 달리면 하루에 천 리를 가서 이는 지극히 빠르지만, 쥐를 잡게 하면 百錢짜리 삵만 못하고,
干將과 鏌鎁는 鐘을 쳐도 울리지 않고 물건을 시험하여도 베어짐을 알지 못하며, 칼날을 휘두르면 금속을 자르고 깃털을 베며 쇠도끼를 끊으니 이는 지극히 날카롭지만, 이것으로 신을 꿰매면 2전짜리 송곳만 못하다.
▶ 和氏之璧 :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 卞和가 楚山에서 얻은 寶玉이다. 변화가 璞玉을 얻어 厲王에게 바쳤으나 왕을 속였다 하여 왼쪽 발꿈치를 베였고, 武王에게 바쳤으나 오른쪽 발꿈치마저 베였다. 文王 때 비로소 이 박옥을 알아보고 다듬어 천하의 진귀한 玉璧이 되었다. 《韓非子 和氏》‧《淮南子 說山訓》
▶ 間紡 : 물레로 실을 자을 때 실이 감기는 공구의 일종이다. 곧 紡錘로, 처음에는 진흙을 구워서 만들었으나 후대에는 쇠나 나무‧소뼈 등으로 만들었다. 《齊民要術 10》
▶ 隨侯之珠 : 隨侯가 상처 입은 뱀을 약을 발라 치료해주고 그 보답으로 받았다는 전설상의 구슬이다. 隨는 漢水 동쪽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湖北省 隨州市에 있었다. 隋로도 쓴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淮南子 覽冥訓》
▶ 騏驥騄駬 : 騏驥와 騄駬로, 둘 다 駿馬의 이름이다. 騄駬는 騄耳로도 쓰는데, 周 穆王이 탔다는 八駿馬의 하나이다. 《楚辭 離騷》‧《竹書紀年 下》‧《史記 秦本紀》
▶ 干將鏌鎁 : 干將과 鏌鎁로, 모두 寶劍 이름이다.
간장은 춘추시대 吳나라의 劍을 만드는 匠人이고 막야는 그의 아내인데, 陽劍인 간장과 陰劍인 막야를 만들어 吳王 闔廬에게 바쳤다 한다. 鏌鎁는 주로 莫耶로 쓴다. 《荀子 性惡》‧《莊子 大宗師》‧《吳越春秋 闔閭內傳》
▶ 拂鐘不錚 : 鐘을 쳐도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拂은 刜과 통용하니, 친다는 뜻이다.
今子持楫乘扁舟,處廣水之中,當陽侯之波,而臨淵流,適子之所能耳。
그런데 그대는 노를 잡아 조각배를 타고 넓은 물에서 陽侯의 물결을 맞으며 깊이 흐르는 물을 굽어보고 있으니, 그대의 재능에 적합하다.
▶ 陽侯之波 : 파도의 神인 陽侯가 일으키는 물결이라는 뜻으로, 물결이나 파도를 이른다. 《戰國策 韓策 2》‧《淮南子 覽冥訓》
若誠與子東說諸侯王,見一國之王,子之蒙蒙,無異夫未視之狗耳。」
만일 진실로 그대와 함께 동쪽으로 가서 제후왕에게 유세하되, 한 나라의 임금을 뵙게 되면 그대의 蒙昧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개와 다름이 없을 터이다.”
11.
甘戊使於齊,渡大河。船人曰:
「河水間耳,君不能自渡,能為王者之說乎?」
甘戊가 齊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黃河를 건넘에, 뱃사람이 말하였다.
“하수는 시냇물 같은데도 그대가 스스로 건너지 못하면서, 王者가 되는 유세를 할 수 있겠는가?”
▶ 甘戊 : 전국시대 秦나라 下蔡 사람이다. 秦 武王 때 左相이 되어 韓나라 宜陽을 빼앗았다.
昭王 때 참소를 받아 齊나라로 망명하였다. 戊는 茂로도 쓴다. 《史記 樗里子甘茂列傳》
▶ 間 : 澗과 통용이다.
甘戊曰:
감무가 말하였다.
「不然,汝不知也。
“그렇지 않음을 너는 알지 못한다.
物各有短長,
謹愿敦厚,可事主不施用兵;
騏驥、騄駬,足及千里,置之宮室,使之捕鼠,曾不如小狸;
干將為利,名聞天下,匠以治木,不如斤斧。
事物은 각각 長處과 短處가 있으니,
성실하고 敦厚함은 임금은 잘 섬길 수 있으나 용병하지는 못하고,
騏驥와 騄駬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으나 집안에 두어 쥐를 잡게 하면 삵만 못하고,
干將의 날카로움은 천하에 이름이 났으나 목수가 이것으로 나무를 처리함에 자귀나 도끼만 못하다.
今持楫而上下隨流,吾不如子;
說千乘之君,萬乘之主,子亦不如戊矣。」
그러니 노를 잡고 물결을 따라 오르내림은 내가 그대만 못하지만
千乘의 제후와 萬乘의 帝王에게 유세함은 그대가 또한 나만 못하다.”
12.
今夫世異則事變,事變則時移,時移則俗易.
세상의 道가 달라지면 일이 변화하고, 일이 변화하면 시기가 바뀌며, 시기가 바뀌면 풍속이 따라 變遷한다.
是以君子先相其土地,而裁其器,觀其俗,而和其風,總眾議而定其教。
이 때문에 君子는 먼저 그곳의 토지를 살펴서 농기구를 만들고, 그곳의 풍속을 관찰하여 民風을 조화시키며, 대중의 의견을 종합하여 敎化의 방향을 결정한다.
愚人有學遠射者,參天而發,已射五步之內,又復參天而發;
世以易矣,不更其儀,譬如愚人之學遠射。
어리석은 사람에 활을 멀리 쏘기를 배우는 자가 있어서,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아 이미 다섯 걸음 안에 화살이 떨어졌는데, 또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그 법도를 고치지 않음은 비유하면 愚人이 활을 멀리 쏘기를 배움과 같다.
▶ 天 : 저본에는 ‘矢’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淮南子》 〈說山訓〉에 ‘하늘을 향해 발사한다.[參天而發]’로 되어 있고, 또 《呂氏春秋》 〈知度〉와 본서 〈尊賢〉에 ‘물고기를 쏘면서 하늘을 가리킨다.[射魚指天]’는 말이 있으니, 參天은 곧 指天이라는 말과 같다.”라고 함을 따라 ‘天’으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 以 : 以는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지시사로 쓰인다. 때로는 대명사가 되고, 형용사도 되며, 상황어, 즉 부사도 된다. “이, 이것, 이와 같이”
¶ 有時朝發白帝, 暮到江陵. 其間千二百里, 雖乘奔御風, 不以疾也. 《水經注 三峽》
어느 날 아침 백제성을 출발하여, 저녁 무렵에 강릉에 도착했다. 이동 거리는 1,200여 리, 설사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기 예문에서 以는 다음에 동사 또는 형용사가 이어지고 있으므로 부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문의 허사 以 참조>
目察秋毫之末者,視不能見太山;耳聽清濁之調者,不聞雷霆之聲。何也?唯其意有所移也。
눈은 秋毫의 끝을 보아도 泰山은 보지 못하고, 귀는 淸濁의 音調를 들어도 우레 소리를 듣지 못함은 무엇 때문인가? 단지 그의 마음에 移動이 있기 때문이다.
百人操觿,不可為固結;
千人謗獄,不可為直辭 ;
萬人比非,不可為顯士。
백 사람이 매듭을 푸는 뿔송곳을 가지고 있으면 노끈을 견고하게 묶을 수 없고,
천 사람이 獄事를 비방하면 바른말로 판결할 수 없으며,
만 사람이 일제히 옳지 않다고 하면 이름난 선비가 될 수 없다.
13.
麋鹿成群,虎豹避之;
飛鳥成列,鷹鷲不擊;
眾人成聚,聖人不犯。
고라니와 사슴이 떼를 지으면 범과 표범도 두려워 피하고,
날아가는 새가 대열을 이루면 솔개와 새매도 공격하지 않으며,
대중이 모여 있으면 聖人도 침범하지 않는다.
騰蛇遊於霧露,乘於風雨而行,非千里不止;
然則暮託宿於鰍鱣之穴,所以然者,何也?用心不一也。
騰蛇는 안개 속에서 놀다가 風雨를 타고 날아가서 천 리가 되지 않으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날이 저물면 미꾸라지나 드렁허리의 구멍에 寄宿하니, 그런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 씀이 전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 騰蛇 : 전설상 날아다닌다는 일종의 뱀이다. 《韓非子 難勢》
夫蚯蚓內無筋骨之強,外無爪牙之利;
然下飲黃泉,上墾晞土。所以然者,何也?用心一也。
지렁이는 안에 강한 筋骨이 없고 밖에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이 없다.
그러나 내려가서 黃泉을 마시고 올라와서 마른 흙을 뒤집어엎으니, 그런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 씀이 전일하기 때문이다.
聰者自聞,明者自見,聰明形則仁愛者,廉恥分矣。
귀가 밝은 사람은 본래 잘 듣고, 눈이 밝은 사람은 본래 잘 보므로, 총명이 형성되면 仁愛가 되고, 廉恥가 분명해진다.
▶ 自 : 저본에는 ‘耳’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耳’와 ‘目’은 응당 《韓詩外傳》 권1을 따라 모두 ‘自’자로 써야 한다.”라고 함을 따라 ‘自’로 바로잡았다. ‘明者目見’의 ‘目’도 이와 같다.
故非其道而行之,雖勞不至;
非其有而求之,雖強不得;
智者不為非其事,廉者不求非其有;
是以害遠而名章也。
그러므로 바른길이 아닌데도 가면 수고로우나 도달하지 못하고,
자기 소유가 되지 않을 것을 구하면 억지를 부려도 얻지 못하고,
智者는 자기 일이 아니면 하지 않고, 廉者는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면 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해가 멀어지고 이름이 밝게 드러난다.
▶害遠 : 저본에는 ‘遠容’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의 “‘遠容’은 응당 《韓詩外傳》 권1을 따라 ‘害遠’으로 써야 된다. ‘害’와 ‘容’의 모양이 비슷해 잘못 썼으며, ‘遠’자는 또 잘못하여 ‘害’자 위에 있게 되었다.”라고 함을 따라 ‘害遠’으로 바로잡았다.
《詩》云:
「不忮不求,何用不臧。」
此之謂也。
《詩經》에 “남을 미워해 해치지 않으며 탐욕스럽게 구하지 않으면, 어찌 善하지 않으리오.”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 詩云……何用不臧 : 《詩經》 〈邶風 雄雉〉에 보인다.
14.
楚昭王召孔子,將使執政而封以書社七百。子西謂楚王曰:
「王之臣用兵有如子路者乎?
使諸侯有如宰予者乎?
長官五官有如子貢者乎?
昔文王處酆、武王處鎬之間百乘之地,伐上殺主立為天子,世皆曰聖。
王今以孔子之賢而有書社七百里之地,而三子佐之,非楚之利也。」
楚 昭王이 孔子를 불러 國政을 집행하게 하고 書社 700리를 봉하려고 하자, 子西가 楚王에게 말하였다.
“王의 신하가 用兵함에 子路처럼 하는 이가 있습니까?
제후에게 사신 보냄에 宰予 같은 이가 있습니까?
長官이 五官(百官)을 관리함에 子貢 같은 이가 있습니까?
예전에 文王이 계시던 酆과 武王이 계시던 鎬의 지방은 兵車 100輛의 땅이었지만 윗사람을 토벌하여 紂王을 죽이고 즉위하여 天子가 되었으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聖王이라고 합니다.
왕께서 孔子같이 현명한 사람이 700리나 되는 書社를 소유하고, 세 사람이 보좌하게 함은 楚나라의 이로움이 아닙니다.”
▶ 書社 : 周代에 25家를 단위로 社를 세워 社內의 田地와 戶口를 장부에 기록하는 일을 말한다. 또는 장부에 등록된 人口와 田地를 말하기도 한다. 《春秋左氏傳 哀公 15년》‧《呂氏春秋 愼大》
▶ 子西 : 춘추시대 楚나라 公子 申이다. 子西는 그의 字이다.
楚 平王의 庶子로, 令尹 子常이 王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昭王을 세우고 令尹이 되었다. 뒤에 白公 勝의 반란에 피살되었다. 《春秋左氏傳 成公 6‧15‧17년, 襄公 2년, 哀公 6년》
▶ 長官五官 : 百官을 관장할 우두머리 官員을 말한다.
五官은 殷周 때 政事를 分掌하던 다섯 고위 관직인데, 여기서는 百官을 가리킨다. 《禮記 曲禮 下》‧《周禮 春官 小宗伯》
▶ 酆 : 본래 商나라 때 崇侯 虎의 邑이었으나, 周 文王이 崇을 멸한 후 이곳에 도읍하였다. 지금의 陝西省 戶縣 북쪽에 있었다.《春秋左氏傳 僖公 24년》
▶ 鎬 : 西周시대의 國都 鎬京이다. 周 武王이 商나라를 멸하고 酆에서 이곳으로 遷都하여 國都가 되었다. 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서남쪽 灃水 가에 있었다. 宗周 또는 西都라고도 부른다. 《詩經 大雅 文王有聲》‧《逸周書 作雒》
楚王遂止。
楚王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夫善惡之難分也,聖人獨見疑,而況於賢者乎!
善惡을 분별하기 어려우매, 聖人도 그렇게 의심을 받는데, 하물며 賢人이랴!
是以賢聖罕合,諂諛常興也。
이 때문에 賢人과 聖人은 때를 만남이 드물고, 아첨하는 사람은 언제나 흥성하는 법이다.
故有千歲之亂而無百歲之治,孔子之見疑,豈不痛哉!
그러므로 천 년의 난세는 있되 백 년의 治世도 없었으니, 孔子께서 의심을 받음을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15.
魯哀公問於孔子曰:
「有智者壽乎?」
魯 哀公이 孔子께 물었다.
“지혜 있는 사람은 長壽합니까?”
孔子曰:
「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人有三死而非命也者,人自取之。
사람에게 세 가지 죽음이 있어 ‘天命이 아님’인데, 사람이 스스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夫寢處不時,飲食不節,佚勞過度者,疾共殺之;
居下位而上忤其君,嗜欲無厭,而求不止者,刑共殺之;
以少犯眾,弱以侮強,忿怒不量力者,兵共殺之。
눕고 앉음이 때에 맞지 않고, 음식을 절제하지 않으며, 安逸과 勞苦를 과도한 자는 질병이 함께하여 죽이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위로 임금을 거스르고, 기호와 욕망에 만족이 없어서 끊임없이 탐하는 자는 형벌이 함께하여 죽이고,
적은 인원이 대중을 범하거나, 약하면서 강함을 능멸하거나, 분노하여 역량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은 전쟁이 함께하여 죽입니다.
▶ 厭 : 저본에는 ‘度’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厭’으로 바로잡았다.
此三者,非命也,人自取之。
이 세 가지는 천명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詩》云:
『人而無儀,不死何為?』
此之謂也。」
《詩經》에 “사람이면서 威儀가 없으면 죽지 않고 무엇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 詩云……不死何爲 : 《詩經》 〈鄘風 相鼠〉에 보인다.
16.
孔子遭難陳、蔡之境,絕糧,弟子皆有饑色,孔子歌兩柱之間。
孔子께서 陳나라와 蔡나라 地境에서 곤란을 당하시어 양식마저 떨어지자, 제자 모두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었는데,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셨다.
▶ 孔子遭難陳蔡之境 : 본서 권11 〈善說〉 10 참고.
子路入見曰:
「夫子之歌,禮乎?」
子路가 들어와 뵙고는 말하였다.
“夫子께서 노래를 부르심이 禮法입니까?”
孔子不應,曲終而曰:
「由,君子好樂為無驕也,小人好樂為無懾也,其誰知之?
子不我知而從我者乎?」
공자는 응답하지 않고 노래를 마친 다음에 말씀하셨다.
“由야. 君子가 음악을 좋아함은 교만을 없애기 위해서이고, 小人이 음악을 좋아함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인데, 누가 이런 道理를 알겠느냐?
너는 나를 알지 못하면서 나를 따르는 사람이냐?”
子路不悅,援干而舞,三終而出。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면서 방패를 잡고 춤추다가 세 曲이 끝나자 나가버렸다.
▶ 援 : 저본에는 ‘授’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援’이 옳다.”라고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孔子家語》 〈困誓〉에 ‘援戚而舞’로 되어 있다.”라고 함에 의거하여 ‘援’으로 바로잡았다.
▶ 三終 : 三章의 음악 연주를 마치는 일이다. 《儀禮 大射禮》‧《禮記 鄕飮酒禮》
及至七日,孔子脩樂不休,子路慍見曰:
「夫子之脩樂,時乎?」
7일이 되도록 공자가 음악을 연주하여 그치지 않으니, 자로가 성이 나서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夫子께서 음악을 연주하심이 때에 맞습니까?”
孔子不應,樂終而曰:
「由,昔者齊桓霸心生于莒,句踐霸心生於會稽,晉文霸心生於驪氏.
故居不幽,則思不遠,身不約則智不廣.
庸知而不遇之。」
공자는 응답하지 않으시고 음악을 마치고 말씀하셨다.
“유야.
옛날 齊 桓公의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莒나라에서 생겼고, 句踐의 覇心은 會稽에서 생겼으며, 晉 文公의 覇心은 驪氏에게서 생겼다.
그러므로 유폐에 처해보지 않으면 사려가 원대하지 않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지 못한 법이다.
네가 어찌 나의 不遇를 알겠느냐?”
▶ 齊桓霸心生於莒 : 齊 襄公이 無道하여 제나라가 혼란하자 公子 小白(후의 桓公)이 莒나라로 도망쳐서 難을 피하였는데, 이때 莒나라에서 無禮하게 대하니, 公子 小白이 이에 자극을 받아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莒는 지금의 山東省 莒縣에 있던 周代의 제후국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2년, 莊公 8년, 昭公 3년》
▶ 句踐霸心生於會稽 : 句踐이 會稽山에서 곤욕을 치른 후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본서 권9 〈正諫〉 20 참고.
▶ 晉文霸心生於驪氏 : 晉 獻公의 寵姬 驪姬가 자기의 친아들 奚齊를 세우기 위해 太子 申生을 참소하여 죽였고, 公子 重耳(후일의 晉 文公)와 夷吾는 외국으로 달아났다. 중이는 19년 동안 여러 나라를 유랑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이때에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4‧23‧24년》
於是興,明日免於厄。
이에 모두 振作되었는데, 이튿날 곤액에서 벗어났다.
子貢執轡曰:
「二三子從夫子而遇此難也,其不可忘已!」
子貢이 말고삐를 잡고 말하였다.
“제자들이 부자를 따르다가 이러한 재난을 만났으니, 아마 잊지 못할 듯합니다.”
▶ 已 : 저본에는 ‘也’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已’로 바로잡았다.
孔子曰:
「惡是何也?
語不云乎?
三折肱而成良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 무슨 말인가!
古語에 말하지 않았더냐?
‘팔을 세 번 부러뜨려보아야 좋은 의술을 이룬다.’
▶ 三折肱而成良醫 : 자기의 팔이 세 번 부러져보아야 良醫의 치료법을 안다는 뜻이다. 《春秋左氏傳 定公 13년》‧《孔叢子 嘉言》
夫陳、蔡之間,丘之幸也。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의 일은 나의 행운이었다.
二三子從丘者皆幸人也。
너희 나를 따르는 자도 모두 행운이 있는 사람이다.
吾聞人君不困不成王,列士不困不成行。
내 듣기에, 임금이 곤경을 겪지 않으면 王道를 이루지 못하고, 名望 있는 선비가 곤액을 겪지 않으면 좋은 品行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昔者湯困於呂,文王困於羑里,秦穆公困於殽,齊桓困於長勺,句踐困於會稽,晉文困於驪氏。
옛적에 湯王은 呂에서 곤란하였고, 文王은 羑里에 收監되었으며, 晉 穆公은 殽山에서 패배하였고, 齊 桓公은 長勺에서 곤액을 당했으며, 句踐은 회계에서 곤욕을 치렀고, 晉 文公은 驪氏에게 고초를 겪었다.
▶ 湯困於呂 : 夏桀이 夏臺라는 감옥에 湯王을 가두었다는 기록이 《史記》 〈夏本紀〉에 실려 있으나, 呂에서 곤욕을 받은 일은 미상이다.
▶ 文王困於羑里 : 商紂가 잔인무도한 일을 자행하자 西伯 昌(후일의 周 文王)이 탄식하였는데, 崇侯 虎가 이를 紂에게 참소하여 羑里라는 감옥에 갇힌 일을 말한다.
羑里는 감옥 이름인데, 일설에는 지금의 河南省 湯陰縣 북쪽에 있던 地名이라고 한다. 《莊子 盜跖》‧《史記 殷本紀》
▶ 秦穆公困於殽 : 魯 僖公 33년(B.C. 627)에 晉 襄公이 殽에서 秦 穆公의 군대를 섬멸한 일을 말한다.
殽는 崤로도 쓰며, 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서북쪽에 있는 山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33년》
▶ 齊桓困於長勺 : 魯 莊公 10년(B.C.684)에 齊 桓公이 魯나라를 침공, 長勺에서 전쟁하여 齊나라가 패배한 일을 말한다.
長勺은 지금의 山東省 莱蕪縣 동북쪽에 있던 地名이다. 《春秋左氏傳 莊公 2년》
▶ 句踐困於會稽 : 본서 권9 〈正諫〉 20 참고.
▶ 晉文困於驪氏 : 앞 참고.
夫困之為道,從寒之及煖,煖之及寒也,唯賢者獨知而難言之也。」
곤액의 규칙은 차갑게 함으로써 따뜻함에 이르고, 따뜻하게 함으로써 차가움에 미치니, 오직 賢者가 알기만 할 뿐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易》曰:
『困亨貞,大人吉,無咎。有言不信。』
聖人所與人難言信也。
《周易》에 “困은 형통하고 곧다.
大人이라 吉하고 허물이 없으나, 말하여도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성인이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믿겠다.
▶ 易曰……不信 : 《周易》 〈困卦 卦辭〉에 보인다.
17.
孔子困於陳、蔡之間,居環堵之內,席三經之席,七日不食,藜羹不糝.
孔子께서 陳나라와 蔡나라 사이에서 困厄을 당하여 좁고 누추한 집에 거처하시고 三經을 펼쳐놓은 자리에 앉아 계시며, 7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시고 쌀을 넣지 않은 명아주 나물국을 드셨다.
▶ 孔子困於陳蔡之間 : 본서 권11 〈善說〉 10 참고.
▶ 環堵 : 사방을 1丈 높이로 빙 둘러 친 흙담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거처하는 좁고 누추한 방을 형용하는 말이다. 《禮記 儒行》‧《淮南子 原道訓》
▶ 席三經之席 : 세 部의 經書가 펼쳐져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이다. 세 부의 경서는 아래에 보이는 《詩經》‧《書經》‧《周禮》인 듯하다.
▶ 藜羹不糝 : 나물국에 쌀을 넣어 끓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藜羹은 명아주잎으로 끓인 국으로 맛없고 거친 음식을 형용하며, 糝은 쌀이나 쌀가루를 음식에 버무려 조리하는 것을 말한다.
弟子皆有饑色,讀詩書治禮不休。
제자 모두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었으나 공자는 《詩經》‧《書經》을 읽고 禮를 연구하여 쉬지 않았다.
子路進諫曰:
「凡人為善者天報以福,為不善者天報以禍。
今先生積德行,為善久矣。
意者尚有遺行乎?
奚居之隱也!」
子路가 와서 뵙고 諫하였다.
“사람으로서 善行을 하는 자는 하늘이 福으로 갚아주고, 不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재앙으로 갚아준다고 합니다.
지금 선생님께서는 德行을 쌓고 선행하심이 오래되었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러고도 빠뜨린 행위가 있습니까?
어찌 이처럼 곤궁한 처지에 있습니까?”
▶ 〈之〉 : 저본에는 ‘之’자가 없으나, 《群書拾補》에 《韓詩外傳》 권7과 《孔子家語》 〈在厄〉에 의거하여 ‘之’자를 보충하였고, 《說苑校證》도 이를 따라 보충하면서, 《荀子》 〈宥坐〉에도 ‘之’가 있다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孔子曰:
「由,來,汝不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仲由야, 이리 오너라.
너는 알지 못하는구나.
坐,吾語汝。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해주리라.
子以夫知者為無不知乎? 則王子比干何為剖心而死?
너는 知者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王子 比干은 어찌하여 심장이 갈라져서 죽었느냐?
▶ 王子比干 : 본서 권4 〈立節〉 02 참고.
以諫者為必聽耶?伍子胥何為抉目於吳東門?
諫하는 말을 항상 듣는다고 여기느냐? 伍子胥는 어찌하여 눈알을 뽑아 吳나라 都城의 동쪽 문에 걸었느냐?
子以廉者為必用乎?伯夷、叔齊何為餓死於首陽山之下?
너는 청렴한 사람을 반드시 起用한다고 여기느냐? 伯夷 叔齊는 어찌하여 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느냐?
子以忠者為必用乎?則鮑莊何為而肉枯?
너는 충성하는 사람은 반드시 任用된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鮑莊은 어찌하여 살이 말라 죽었느냐?
▶ 則鮑莊 何爲而肉枯 : 鮑莊은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則鮑叔 何爲而不用”으로 되어 있다.
荊公子高終身不顯,鮑焦抱木而立枯,介子推登山焚死。
荊公 子高는 종신토록 顯達하지 못하였고, 鮑焦는 나무를 안고 말라 죽었으며, 介子推는 산에 올라가 불에 타 죽었다.
▶ 荊公子高 : 어떤 사람인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葉公子高’로 되어 있는데, ‘섭공자고’는 춘추시대 楚나라 葉縣尹 沈諸梁으로, 子高는 字이다.
▶ 鮑焦 : 춘추시대 周나라의 隱士이다. 세상을 비난하며 天子에게 신하 노릇하지 않고 諸侯와 벗하지 않으면서 홀로 가난하고 깨끗하게 살았다. 子貢이 그의 행실을 꾸짖자,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莊子 盜跖》‧《韓詩外傳 1》‧《風俗通 愆禮》
▶ 介子推 : 본서 권6 〈復恩〉 04 참고.
故夫君子博學深謀不遇時者眾矣,豈獨丘哉!
그러므로 君子는 박학하고 깊이 계획하나 때를 만나지 못하는 자가 많은 법이니, 어찌 나 뿐이겠느냐?
賢不肖者才也,為不為者人也,遇不遇者時也,死生者命也;
有其才不遇其時,雖才不用,苟遇其時,何難之有!
현명과 不肖는 재주에 달렸고, 큰일을 하고 못함은 사람에 달렸고, 때를 만나고 못 만남은 시운에 달렸고, 생사는 天命에 달린 것이다.
재주가 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면 재주를 펼치지 못하지만, 만일 때를 만나면 재주를 펼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故舜耕歷山而陶於河畔,立為天子則其遇堯也。
그러므로 舜이 歷山에서 농사짓고 黃河 가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나 즉위하여 天子가 됨은 堯를 만났기 때문이다.
▶ 歷山 : 舜이 天子가 되기 전에 농사를 지은 곳이라는 옛 山 이름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說이 있다. 山西省 永濟縣 남동쪽에 있는 일명 雷首山, 浙江省 永康縣 남쪽에 있는 일명 釜歷山, 河南省 范縣(옛 濮陽)의 남동쪽, 山東省 濟南市 남동쪽에 있는 千佛山(일명 舜耕山) 등의 설이 있다. 《書經 虞書 大禹謨》‧《史記 五帝本紀》‧《讀史方輿紀要 浙江 金華府 永康縣》
▶ 陶 : 저본에는 ‘逃’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陶’로 바로잡았다.
傅說負壤土、釋板築,而立佐天子,則其遇武丁也。
傅說이 흙을 져서 담을 쌓다가 담틀과 공이를 버리고 입신하여 천자를 보좌함은 武丁을 만났기 때문이다.
▶ 傅說(열) : 본서 권11 〈善說〉 10 참고.
▶ 武丁 : 본서 권1 〈君道〉 27 참고.
伊尹,有莘氏媵臣也,負鼎俎調五味而佐天子,則其遇成湯也。
伊尹은 有莘氏의 媵臣이다가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五味로 음식을 조리하여 천자를 보좌함은 成湯을 만났기 때문이다.
▶ 媵臣 : 옛날 諸侯의 딸이 시집갈 때 파견하여 隨行하는 사람을 媵臣이라 하였다. 《史記 殷本紀》‧《史記 秦本紀》
呂望行年五十賣食於棘津,行年七十屠牛朝歌,行年九十為天子師,則其遇文王也。
呂望이 나이 50세에 棘津에서 밥을 팔고 나이 70세에 朝歌에서 소를 잡다가 나이 90세에 천자의 스승이 됨은 文王을 만났기 때문이다.
▶ 呂望 : 본서 권1의 〈君道〉 16 ‘太公’ 참고.
▶ 棘津 : 河南省 滑縣 남서쪽의 黃河 가에 있던 나루 이름이다. 南津‧石濟津이라고도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17년》‧《史記 游俠列傳》
▶ 朝歌 : 河南省 북쪽 淇縣의 縣 所在地이다. 예전의 沬邑인데, 商나라 말기에 朝歌로 고치고 帝乙과 帝辛의 別都가 되었다. 周 武王이 상나라를 멸한 뒤 이곳에 康叔을 봉하여 衛나라가 되었다. 《書經 周書 酒誥》‧《淮南子 說山訓》‧《漢書 地理志 上》
管夷吾束縛膠目,居檻車中,自車中起為仲父,則其遇齊桓公也。
管夷吾가 결박당하고 눈이 가려진 채 檻車에 있다가 함거에서 일어나 仲父가 됨은 齊 桓公을 만났기 때문이다.
百里奚自賣取五羊皮,伯氏牧羊以為卿大夫,則其遇秦穆公也。
百里奚가 자신을 팔아 다섯 마리 양가죽을 취하고 秦伯의 양치기가 되었다가 卿大夫가 됨은 秦 穆公을 만났기 때문이다.
▶ 百里奚 : 본서 권2 〈臣術〉 09 참고.
▶ 伯氏牧羊 : 伯氏는 秦伯, 곧 秦 穆公을 말한다. 《韓詩外傳》 권7에는 “爲秦伯牧牛”로 되어 있다.
沈尹名聞天下,以為令尹,而讓孫叔敖,則其遇楚莊王也。
沈尹이 천하에 이름나매 令尹이 되었으나 孫叔敖에게 양보함은 楚 莊王을 만났기 때문이다.
▶ 沈尹 : 누구인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虞丘’로 되어 있고, 본서 권14 〈至公〉 13에는 ‘虞丘子’로 되어 있다.
伍子胥前多功,後戮死,非其智益衰也,前遇闔廬,後遇夫差也。
伍子胥가 앞에는 戰功이 많았으나 뒤에 죽임을 당함은 그의 지혜가 전보다 쇠퇴하였기 아니라, 전에는 闔閭를 만났고 뒤에는 夫差를 만났기 때문이다.
夫驥厄罷鹽車,非無驥狀也,夫世莫能知也;使驥得王良、造父,驥無千里之足乎?
천리마[驥]가 소금 수레를 끄는 액운을 만나 피로함은 천리마의 형상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 만일 천리마가 王良이나 造父를 만났다면 천리마에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발이 없었겠느냐?
▶ 王良造父 : 본서 권15 〈指武〉 05 참고.
芝蘭生深林,非為無人而不香。
芝蘭이 깊은 숲속에 삶에, 사람이 없다고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故學者非為通也,為窮而不困也,憂而志不衰也,此知禍福之始而心不惑也,聖人之深念獨知獨見。
그러므로 學者는 현달하기 위함이 아니매, 貧窮에 처해도 곤궁을 표하지 않으며, 憂患 중에 있어도 志氣가 쇠퇴하지 않으니, 이것이 禍福의 시작을 미리 알아 마음이 현혹되지 않고, 聖人은 깊이 생각하여 홀로 알아본다.
▶ 而志 : 저본에는 없으나, 《群書拾補》에 “‘而志’ 2자가 빠졌는데 《韓詩外傳》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라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舜亦賢聖矣,南面治天下,唯其遇堯也;
使舜居桀紂之世,能自免於刑戮固可也,又何官得治乎?
舜도 聖賢이지만 南面하여 천하를 다스림은 다만 요를 만났기 때문이니,
가령 순이 桀‧紂의 시대에 살았다면, 스스로 刑戮에서 벗어남은 진실로 가능하였겠지만, 게다가 어떻게 벼슬을 얻어 천하를 다스렸겠느냐?
夫桀殺關龍逄而紂殺王子比干,當是時,豈關龍逄無知而比干無惠哉?此桀紂無道之世然也。
걸은 關龍逢을 죽였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으나, 당시에 어찌 관용방이 無知하고 비간이 지혜가 없었겠느냐? 이는 걸‧주의 무도한 시대가 그렇게 한 것이다.
▶ 關龍逢(방) : 본서 권9 〈正諫〉 02 참고.
▶ 無惠 : 《說苑校證》에 “‘無惠’가 《韓詩外傳》에는 ‘不惠’로 되어 있다.
‘惠’는 ‘慧’와 통용이다.”라고 하였다.
故君子疾學修身端行,以須其時也。」
그러므로 군자는 학문을 쌓고 몸을 수양해 행실을 단정히 하여 때를 기다려야 한다.”
18.
孔子之宋,匡簡子將殺陽虎,孔子似之。甲士以圍孔子之舍.
孔子께서 宋나라로 가실 적에 匡簡子가 陽虎를 죽이려고 했는데, 공자가 양호와 닮았으매 甲士를 보내 공자가 묵는 집을 포위하였다.
▶ 匡簡子將殺陽虎 : 匡은 지금의 河南省 長垣縣 서남쪽에 있던 땅 이름이다. 춘추시대 衛나라의 邑으로, 일찍이 陽虎의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孔子는 얼굴 모습이 양호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다가 양호로 誤認한 匡邑 사람에게 감금을 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簡子의 행적은 미상이다. 혹 광읍 사람들의 우두머리인 듯하다. 《論語 子罕》‧《史記 孔子世家》
子路怒,奮戟將下鬥。
子路가 노하여 창을 들고 나가 싸우려고 하였다.
孔子止之,曰:
「何仁義之不免俗也?
공자가 만류하면서 말씀하셨다.
“어찌 仁義를 講習하면서 俗習을 벗어나지 못하느냐?
夫詩、書之不習,禮、樂之不脩也,是丘之過也。若似陽虎,則非丘之罪也,命也夫。
詩‧書를 익히지 않음과 禮‧樂을 닦지 않음은 나의 잘못이지만, 양호와 비슷함 같은 것은 나의 죄가 아니라 운명이다.
由,歌, 予和汝。」
仲由야.
노래를 불러라.
내 너의 노래에 화답하겠다.”
子路歌,孔子和之,三終而甲罷。
자로가 노래하자 공자께서 화답하시어 세 曲을 다 부르자 포위했던 군사들이 해산하였다.
19.
孔子曰:
「不觀於高岸,何以知顛墜之患;
不臨深淵,何以知沒溺之患;
不觀於海上,何以知風波之患。
失之者其不在此乎?
士慎三者,無累於人。」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무엇으로 추락하는 우환을 알며,
깊은 연못에 임해보지 않으면 무엇으로 물에 빠지는 우환 알며,
바다에서 넓은 물을 보지 않으면 무엇으로 風波의 우환을 알겠는가?
실수함은 이런 곳에 있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선비가 이 세 가지에 신중하면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 터이다.”
20.
曾子曰:
「響不辭聲,鑑不辭形,君子正一而萬物皆成。
曾子가 말하였다.
“메아리는 소리를 사양하지 않고, 거울은 형체를 사양하지 않으니, 君子가 단정하고 純一하면 만물이 모두 이루어진다.
夫行非為影也,而影隨之;呼非為響也,而響和之。
행동은 그림자를 위함이 아니지만, 그림자가 따르고,
큰소리로 외침은 메아리를 위함이 아니지만, 메아리가 화답한다.
故君子功先成而名隨之。」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功業을 이루어서 명예가 따르게 한다.”
21.
子夏問仲尼曰:
「顏淵之為人也,何若?」
子夏가 仲尼께 여쭈었다.
“顔淵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曰:
「回之信,賢於丘也。」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回의 信實함은 나보다 낫다.”
曰:
「子貢之為人也,何若?」
자하가 말하였다.
“子貢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曰:
「賜之敏,賢於丘也。」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賜의 明敏함은 나보다 낫다.”
曰:
「子路之為人也,何若?」
자하가 말하였다.
“子路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曰:
「由之勇,賢於丘也。」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由의 용감함은 나보다 낫다.”
曰:
「子張之為人也,何若?」
자하가 말하였다.
“子張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曰:
「師之莊,賢於丘也。」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師의 장중함은 나보다 낫다.”
於是子夏避席而問曰:
「然則四者何為事先生?」
이에 자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쭈었다.
“그렇다면 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을 섬깁니까?”
曰:
「坐,吾語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해주겠다.
回能信而不能反,賜能敏而不能屈,由能勇而不能怯,師能莊而不能同。
回는 능히 信實하되 변통하지 못하고, 賜는 능히 명민하되 굽히지 못하고, 由는 능히 용감하되 겁내지 못하고, 師는 능히 장엄하되 同和하지 못한다.
兼此四子者,丘不為也。
이 네 사람이 가진 것을 아울러 나의 道와 바꾸려 한다면 나는 허락하지 않겠다.”
▶ 兼此四子者 丘不爲也 : 저본의 이 구절은 뜻이 완전하지 못하니, 아마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
《列子》 〈仲尼〉에 “네 사람이 가진 것을 아울러 나의 道와 바꾸려 한다면 나는 허락하지 않겠다.[兼四子之有以易吾 吾不許也]”로 되어 있고, 《淮南子》 〈人間訓〉에는 “세 사람의 재능을 나의 한 도와 바꾸는 것은 내가 하지 않을 것이다.[以三子之能 易丘一道 丘不爲也]”로 되어 있다.
夫所謂至聖之士,必見進退之利,屈伸之用者也。」
이른바 가장 뛰어난 성인[至聖]은 반드시 進退의 이로움과 屈伸의 작용을 아는 사람이다.
22.
東郭子惠問於子貢曰:
「夫子之門何其雜也?」
東郭子惠가 子貢에게 물었다.
“夫子(孔子)의 門下에는 어찌 그리 잡다합니까?”
子貢曰:
「夫隱括之旁多枉木,良醫之門多疾人,砥礪之旁多頑鈍。
자공이 대답하였다.
“隱括의 곁에는 굽은 나무가 많고, 良醫의 문전에는 病者가 많으며, 숫돌의 곁에는 무딘 칼이 많은 법이오.
夫子脩道以俟天下,來者不止,是以雜也。
부자께서는 도덕을 수양하여 천하 사람들을 기다리므로 오는 사람이 그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잡다한 사람이 모이는 것이지요.
부자께서는 도덕을 수양하여 천하 사람을 기다리므로 오는 사람이 그치지 않으매, 이 때문에 잡다하지요.”
《詩》云:
『苑彼柳斯,鳴蜩嚖嚖;
有漼者淵,莞葦淠淠。』
言大者之旁,無所不容。」
《詩經》에 “무성한 저 버드나무에는 매미가 맴맴 울고 있고,
깊은 연못가에는 많은 갈대가 자라네.”라고 하였으니,
큰 것 곁에는 포용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다.
23.
昔者南瑕子過程本子,本子為烹鯢魚。
옛적에 南瑕子가 程本子를 방문하자 정본자가 鯢魚를 끓여 내왔다.
▶ 南瑕子 :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 程本子 : 저본에는 ‘太’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太平御覽》 권938에 ‘本’자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本’으로 바로잡았다. 아래도 같다.
또 程本子는 본서 권8 〈尊賢〉 26 참고.
▶ 鯢魚 : 도롱뇽이다. 兩棲類 동물에 속하며, 山椒魚‧娃娃魚라고도 한다. 《爾雅 釋魚》‧《本草綱目 鱗 4 鯢魚》
南瑕子曰:
「吾聞君子不食鯢魚。」
남하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君子는 예어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程本子曰:
「乃君子不食?子何事焉?」
정본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먹지 않다고요?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소?”
▶ 不食 : 저본에는 ‘否’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太平御覽》 권938에 ‘不食’으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不食’으로 바로잡았다.
南瑕子曰:
「吾聞君子上比所以廣德也,下比所以狹行也,比於善自進之階也, 比於惡自退之原也。
남하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군자가 위를 견줌은 德을 넓히는 방법이고, 아래를 견줌은 행실을 좁히는 방법이고, 善에 견줌을 자신이 진보하는 계제이고, 惡에 견줌은 자신을 퇴보시키는 근원이다.
▶ 〈比於善……比〉 : 저본에는 이 아홉 글자가 없으나, 《群書拾補》와 《太平御覽》을 따라 보충한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詩》云:
『高山仰止,景行行止。』
吾豈敢自以為君子哉?
《詩經》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따라서 간다.’라고 하였으니,
내 어찌 감히 자신을 군자라 여기겠소.
▶ 詩云……景行行之 : 《詩經》 〈小雅 車舝〉에 보인다.
志向之而已。」
군자가 되기를 지향할 뿐이지요.”
孔子曰:
『見賢思齊焉,見不賢而內自省。』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게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를 보면 마음속으로 반성하여야 한다.”
▶ 孔子曰……見不賢而內自省 : 《論語》 〈里仁〉에 보인다.
24.
孔子觀於呂梁,懸水四十仞,環流九十里,魚鱉不能過,黿鼉不敢居;
有一丈夫,方將涉之。
孔子께서 呂梁에서 관광하셨는데, 폭포의 높이가 40仞이나 되고, 소용돌이치며 흐르기 90리였고, 물고기와 자라가 지나가지 못하고, 큰 자라와 악어도 감히 살지 못하는데,
어떤 남자가 막 건너려고 하였다.
▶ 呂梁 : 江蘇省 銅山縣 동남쪽 50리쯤에 있는 옛 泗水 중의 물살이 빠른 여울이다.
《水經注》 泗水注에 “泗水 위에 돌다리가 있기 때문에 呂梁이라고 한다.[泗水之上有石梁焉 故曰呂梁也]”라고 하였다.
▶ 懸水四十仞 : 懸水는 폭포를 말하고, 仞은 7尺이라는 설과 8尺이라는 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길이나 발이라 한다.
孔子使人並崖而止之曰:
「此懸水四十仞,圜流九十里,魚鱉不敢過,黿鼉不敢居,意者難可濟也!」
공자께서 사람을 보내어 언덕에 다가가서 만류하게 하셨다.
“이 폭포는 40길이나 되고, 90리를 감돌아 흐르고, 물고기와 자라도 지나가지 못하고, 큰 자라와 악어도 감히 살지 못하니, 아마 건너기 어려울 듯하오!”
▶ 竝 : 傍과 통용으로, ‘가까이 다가가다’의 뜻이다.
丈夫不以錯意,遂渡而出。
그 남자가 개의치 않고 마침내 물을 건너서 나왔다.
▶ 錯 : (시간을) 겹치지 않도록 비키다. (날짜를) 물리다. 늦추다. 떼어 놓다.
孔子問:
「子巧乎?且有道術乎?
所以能入而出者何也?」
공자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무슨 기술이 있소? 아니면 무슨 道術이 있소?
능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법이 무엇이오?”
丈夫曰:
「始吾入,先以忠信,吾之出也,又從以忠信;
忠信錯吾軀於波流,而吾不敢用私。吾所以能入而復出也。」
그 남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처음 물에 들어갈 때, 내 마음과 힘을 다하고[忠] 굳은 신념[信]을 가지며, 제가 물에서 나올 때도 忠과 信으로 합니다.
충과 신을 가지고 내 몸을 물결에 맡겨두고, 내가 감히 사사로운 마음을 쓰지 않음이 내가 물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孔子謂弟子曰:
「水而尚可以忠信,義久而身親之,況於人乎?」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물조차 충신으로 자신과 친하게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 義久 : 《孔子家語》 〈致思〉와 《列子》 〈說符〉에 모두 ‘義久’ 두 글자가 없다. 이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25.
子路盛服而見孔子。孔子曰:
子路가 의복을 성대히 차려입고 孔子를 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由,是襜襜者何也?
“由야.
이렇게 잘 차려입음은 무엇 때문이냐?
▶ 襜襜 : 옷을 화려하게 잘 차려입은 모양이다.
昔者江水出於岷山;
其始也,大足以濫觴,及至江之津也,不方舟,不避風,不可渡也,非唯下流眾川之多乎?
옛날 長江이 岷山에서 발원하였는데,
그 시작되는 지점은 크기가 잔을 띄울 정도였으나 강의 나루에 이르러서는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우지 않으면 풍랑을 피하지 못하여 건널 수가 없으니, 다만 아래로 흘러가면서 많은 하천이 모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 岷山 : 四川省과 甘肅省 변경에 이어져 있는 산이다. 長江과 黃河의 分水嶺으로, 岷江과 嘉陵江의 支流인 白龍江의 발원지이다. 《書經 夏書 禹貢》
▶ 濫觴 : 長江이나 黃河 같은 큰 강물도 발원하는 곳은 겨우 술잔을 띄울 정도의 작은 물이라는 말이다. 사물의 起源이나 發端을 비유하는 말로 쓴다. 《水經注 江水 1》‧《初學記 16》
▶ 方舟 :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움을 이른다.
今若衣服甚盛,顏色充盛,天下誰肯加若者哉?」
그런데 너의 의복이 화려하고 안색은 흡족하니, 천하에 누가 너를 도와주려 하겠느냐?”
子路趨而出,改服而入,蓋自如也。
자로가 달려나가 옷을 갈아입고 들어와서 전처럼 천연스럽게 있었다.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由,記之,吾語若:
“유야, 기억해라. 내 너에게 말해주겠다.
賁於言者,華也,奮於行者,伐也。
말을 꾸며서 하는 사람은 浮華하고, 행동을 과장하는 사람은 자랑을 잘한다.
▶ [賁](비) : 저본에는 ‘貴’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賁’로 바로잡았다.
夫色智而有能者,小人也。
자신의 지혜와 유능함을 안색에 드러내는 자는 小人이다.
故君子知之為知之,不知為不知,言之要也;
能之為能之,不能為不能,行之至也。
그러므로 君子가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함은 말하는 요령이고,
能한 것은 능하다고 말하고 능하지 못한 것은 능하지 못하다고 말함은 행동의 지극함이다.
▶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 《論語》 〈爲政〉에 보인다.
▶ 為能之 : 저본에는 ‘之’자가 없으나, 《說苑校證》에 “위의 文例와 《荀子》 〈子道〉와 《韓詩外傳》 권3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라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言要則知,行要則仁;
既知且仁,夫有何加矣哉?」
말이 요령을 얻으면 지혜롭고, 행동이 요령을 얻으면 仁하니,
이미 지혜롭고 인하면 무슨 더할 것이 있겠느냐?”
由,《詩》曰:
『湯降不遲,聖教日躋』。
此之謂也。
《詩經》에 “湯王의 誕降이 늦지 않았으며, 성스럽고 공경한 덕이 날마다 오른다.”
하였으니, 이를 이름이다.
▶ 由 : 저본에는 ‘由’자가 있으나, 《說苑校證》에 “‘由’는 衍字이다.
이는 作者(劉向)가 《詩經》을 인용한 것이지 孔子가 《詩經》을 인용하여 子路에게 고해준 것이 아니다. 《韓詩外傳》에도 ‘由’자가 없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 詩曰……聖敎日躋 : 《詩經》 〈商頌 長發〉에 보인다.
26.
子路問孔子曰:
「君子亦有憂乎?」
子路가 孔子께 여쭈었다.
“君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까?”
孔子曰:
「無也。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없다.
君子之脩其行未得,則樂其意;
既已得,又樂其治。
군자가 자기의 품행을 수양하여 벼슬을 얻기 전에는 다스리려는 뜻을 즐거워하고,
이미 벼슬을 얻고 나서는 또 다스리는 일을 즐거워한다.
▶ 旣 : 저본에는 없으나, 《說苑校證》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 治 : 저본에는 ‘知’로 되어 있으나, 《荀子》 〈子道〉와 《孔子家語》 〈在厄〉에 모두 ‘治’로 되어 있음을 따라 ‘治’로 바로잡았다.
是以有終生之樂,無一日之憂。
이 때문에 종신의 즐거움은 있고 하루아침의 일시적인 근심은 없다.
小人則不然,其未之得則憂不得,既已得之又恐失之。
小人은 그렇지 않아서 벼슬을 얻기 전에는 얻지 못함을 근심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또 잃을까 걱정한다.
是以有終身之憂,無一日之樂也。」
이 때문에 종신의 근심은 있고 하루아침의 일시적인 즐거움은 없다.”
27.
孔子見榮啟期,衣鹿皮裘,鼓瑟而歌。
孔子께서 榮啓期를 만나셨는데, 그가 사슴가죽의 갖옷을 입고 瑟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榮啓期 : 춘추시대의 隱士이다. 《孔子家語》 〈六本〉에는 ‘榮聲期’로 되어 있다. 혹은 榮益期라고도 한다.
孔子問曰:
「先生何樂也?」
공자께서 물으셨다.
“선생은 무엇이 그렇게 즐겁소?”
對曰:
「吾樂甚多。
영계기가 대답하였다.
“나의 즐거움이 매우 많지요.
天生萬物唯人為貴,吾既已得為人,是一樂也。
人以男為貴,吾既已得為男,是二樂也。
人生不免襁褓,吾年已九十五,是三樂也。
하늘이 生育한 만물 중에 오직 사람이 가장 고귀한데 나는 이미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사람은 남자를 귀히 여기는데 나는 이미 남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사람이 태어나 襁褓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미 95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세 번째의 즐거움이지요.
夫貧者士之常也,死者民之終也,處常待終,當何憂乎?」
가난은 선비의 일상이고, 죽음은 사람의 생을 마치는 것이오.
일상을 살며 생을 마치기를 기다리는데, 도리어 무엇을 근심하겠소?”
28.
曾子曰:
曾子가 말하였다.
「吾聞夫子之三言,未之能行也。
“나는 夫子의 세 가지 말씀을 들었으나 능히 실행하지 못하였다.
夫子見人之一善而忘其百非,是夫子之易事也。
부자께서는 남의 한 가지 善行을 보면 그의 백 가지 非行을 잊으셨으니, 부자께서 남이 자기를 쉽게 섬기게 하는 원인이다.
夫子見人有善若己有之,是夫子之不爭也。
부자께서는 남에게 善行이 있음을 보면 마치 자기가 선행을 가진 듯이 여기셨으니, 이는 부자께서 남과 다투지 않는 원인이다.
聞善必躬親行之,然後道之,是夫子之能勞也。
좋은 말을 들으면 항상 몸소 실천하시고 난 뒤에 말씀하시니, 이는 부자께서 노력하기에 능함이다.
夫子之能勞也,夫子之不爭也,夫子之易事也,吾學夫子之三言而未能行。」
부자께서 노력하심에 능함, 부자께서 남과 다투지 않음, 부자께서 남이 자기를 쉽게 섬기게 함, 나는 부자의 이 세 가지 말씀을 배웠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29.
孔子說:
「回,若有君子之道四:
強於行己,弱於受諫,怵於待祿,慎於持身。」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回야.
너에게는 君子의 道가 있으니 넷이다.
자신을 단속함에 엄격하며, 남의 勸告를 수용함에 수월하며, 녹봉을 받음에 두려워하며, 몸을 가짐에는 신중하다.”
30.
仲尼曰:
「史鰌有君子之道三:
不仕而敬上,不祀而敬鬼,直能曲於人。」
仲尼께서 말씀하셨다.
“사추에게는 君子의 道가 있으니 셋이다.
벼슬하지 않을 적에도 윗사람을 공경하며, 제사 지내지 않을 적에도 귀신을 공경하며, 정직하면서도 남에게 몸을 굽힌다.”
▶ 史鰌 : 본서 권2 〈臣術〉 22 참고.
31.
孔子曰:
「丘死之後,商也日益,賜也日損;
商也好與賢己者處,賜也好說不如己者。」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죽고 난 뒤에 商(卜商, 子夏)은 날마다 진보하고, 賜(端木賜, 子貢)는 날마다 퇴보할 터이다.
상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사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비평하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32.
孔子將行,無蓋。
孔子께서 출행하려고 할 때 車蓋가 없었다.
▶ 蓋 : 車蓋를 말한다. 비나 볕을 가리기 위하여, 수레 위에 우산같이 만들어 세우는 휘장이다.
弟子曰:
「子夏有蓋,可以行。」
제자가 말하였다.
“子夏에게 거개가 있으니, 그것으로 출행할 수 있겠습니다.”
孔子曰:
「商之為人也,甚短於財。
吾聞與人交者,推其長者,違其短者,故能久長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商의 사람됨은 재물에 매우 인색하다[短].
내가 들으니, 남과 교유하는 사람은 그의 장점을 치켜세우고 그의 단점은 피하매, 그 때문에 오래 간다고 한다.”
33.
子路行,辭於仲尼曰:
「敢問新交取親若何?
言寡可行若何?
長為善士而無犯若何?」
子路가 길을 떠날 적에 仲尼께 하직하면서 말하였다.
“감히 여쭙습니다.
새로 교유하여 친한 사람을 얻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말은 적게 하되 시행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길이 善士가 되어 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仲尼曰:
「新交取親,其忠乎!
言寡可行,其信乎!
長為善士而無犯,其禮乎!」
중니께서 말씀하셨다.
“새로 교우하여 친할 사람을 취하려면 아마 마음을 다해야[忠] 할 터이다.
말은 적게 하면서 행하여지게 하려면 아마 미더워야 할 터이다.
길이 善士가 되어 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아마 禮義가 있어야 할 터이다.
34.
子路將行, 辭於仲尼, 曰:
「贈汝以車乎? 以言乎?」
子路가 출행하려고 仲尼께 하직인사를 하자, 중니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수레를 줄까? 말해줄까?”
子路曰”
「請以言.」
자로가 말하였다.
“말씀해주십시오.”
仲尼曰:
「不强不達, 不勞無功, 不忠無親, 不信無復, 不恭無禮, 愼此五者, 可以長久矣.」
중니께서 말씀하셨다.
“굳세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고, 수고롭지 않으면 功績이 없으며, 마음을 다하지[忠] 않으면 친근한 사람이 없고, 미덥지 않으면 실천이 없으며, 공손하지 않으면 禮遇를 받지 못한다.
이 다섯 가지를 삼가면 오래 갈 수 있을 터이다.
▶ 達 : 저본에는 ‘遠’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遠’은 마땅히 《孔子家語》를 따라 ‘達’로 되어야 한다.”라고 함을 따라 ‘達’로 바로잡았다.
35.
曾子從孔子於齊,齊景公以下卿禮聘曾子,曾子固辭.
曾子가 孔子를 따라 齊나라에 가니, 齊 景公이 下卿의 禮로 증자를 초빙하였는데, 증자가 굳이 사양하였다.
▶ 晏子送之 : 葉大慶의 《考古質疑》에 의하면, 晏子는 B.C.500년에 죽었고, 曾子는 B.C.505년에 태어났으니, “안자가 증자를 전송하였다.”는 말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곳의 증자는 아마 증자의 아버지 曾晳의 잘못인 듯하다.
將行,晏子送之,曰:
떠나려고 할 때 晏子가 전송하면서 말하였다.
「吾聞君子贈人以財,不若以言。
“내가 알기로는, 君子가 남에게 재물을 줌이 좋은 말을 줌 못하다고 합니다.
今夫蘭本三年,湛之以鹿醢,既成則易以匹馬.
지금 3년 묵은 蘭의 뿌리를 사슴고기로 만든 肉醬에 담가서 완성하면 한 필의 駿馬와 바꿀 수 있습니다.
▶ 湛(점) : ‘담그다, 적시다’의 뜻으로, 漸과 통용이다.
非蘭本美也。願子詳其所湛。
난의 뿌리가 좋아서가 아니니, 그대는 자신을 어디에 담글지 자세히 고려하기 바랍니다.
既得所湛,亦求所湛。
담글 곳을 얻고 나면 또한 담그기를 추구하십시오.
吾聞君子居必擇處,遊必擇士.
내가 알기로는, 군자가 거주함에 항상 장소를 가리고, 交遊함에는 항상 선비를 가린다고 합니다.
居必擇處, 所以求士也, 遊必擇士, 所以脩道也。
거주함에 항상 장소를 가림은 선비를 찾는 까닭이고, 교유함에 항상 선비를 가림은 도덕을 수양할 방법입니다.
吾聞反常移性者欲也,故不可不慎也。」
나는 들으니, 常道를 위반하고 本性을 바꿈은 욕망 때문이라고 하매,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6.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中人之情,有餘則侈,不足則儉,無禁則淫,無度則失,縱欲則敗。
“보통 사람[中人]의 마음은 여유가 있으면 사치하고, 부족하면 검박하며, 금지하지 않으면 방종하고, 법도가 없어 放佚하며, 제멋대로 탐욕하여 실패한다.
▶ 失(일) : ‘佚’자로 읽는다. 《孔子家語》 〈六本〉에는 ‘佚’자로 되어 있다.
飲食有量,衣服有節,宮室有度,畜聚有數,車器有限,以防亂之源也。
음식에 일정한 양을 가지고, 의복에 절제를 가지며, 집에 한도를 가지며, 축적함에 일정한 수효를 가지며, 수레와 기물에 한도를 가져서 환란의 근원을 막아야 한다.
故夫度量不可不明也,善言不可不聽也。」
그러므로 度‧量을 명확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善한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37.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巧而好度必工,勇而好同必勝,知而好謀必成;
愚者反是,夫處重擅寵,專事妒賢,愚者之情也。
志驕傲而輕舊怨,是以位尊則必危,任重則必崩,擅寵則必辱。」
“工巧하면서 법도를 좋아하면 精巧하기 마련이고, 용감하면서 함께하기를 좋아하면 승리하기 마련이며, 지혜로우면서 계책을 좋아하면 성공하기 마련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와 반대라서,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 총애를 독점하고, 일을 독단하며 어진 이를 질투함은 어리석은 사람의 常情이다.
심지가 교만하여 舊怨이 있는 사람을 輕視하기 때문에 지위가 높아지면 필시 위태롭고, 임무가 重大하면 필시 무너지며, 총애를 독점하다가 필시 치욕을 받는다.”
▶ 位尊 : 저본에는 ‘尊位’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글자가 倒置된 듯하다. 《荀子》 〈仲尼〉에는 ‘位尊’으로, 《孔子家語》 〈六本〉에는 ‘位高’로 되어 있다.”라고 함 따라 ‘位尊’으로 바로잡았다.
38.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鞭扑之子,不從父之教;
刑戮之民,不從君之政,言疾之難行。
“매를 맞고 자란 자식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형벌을 받는 백성은 임금의 政令을 따르지 않으니, 급하게 다그치면 실행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故君子不急斷,不意使,以為亂源。」
그러므로 君子는 급하게 결단하지 않으며, 不意의 부림은 禍亂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 鞭朴 : ‘鞭’은 채찍이다. ‘朴’은 ‘扑’과 통용이니, 회초리이다. 둘 다 가벼운 벌을 주는 刑具인데, 鞭은 관청에서, 朴(扑)은 학교에서 사용하였다. 여기서는 매질을 한다는 뜻이다. 《書經 虞書 舜典》
39.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終日言不遺己之憂,終日行不遺己之患,唯智者有之。
“종일 말하더라도 자기에게 憂患을 끼치지 않고, 온종일 행동하더라도 자기에게 禍患을 끼치지 않음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가진다.
故恐懼所以除患也,恭敬所以越難也;
終身為之,一言敗之,可不慎乎!」
그러므로 두려워함은 禍患을 제거하는 방법이고, 공경함은 患難을 넘어가는 방법이다.
종신토록 잘하다가도 한마디 말에 실패하는 법이니, 삼가지 않아서 되겠는가!”
40.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以富貴為人下者,何人不與?
以富貴敬愛人者,何人不親?
眾言不逆,可謂知言矣,眾嚮之,可謂知時矣。」
“부귀한 몸으로 남의 아래에 있는 사람은 누가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겠는가?
부귀한 몸으로 남을 敬愛하는 사람은 누가 그와 친하지 않겠는가?
대중의 말을 거스르지 않으면 말을 안다고 이를 만하고, 대중이 호응하면 때를 안다고 이를 만하다.”
41.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夫富而能富人者,欲貧而不可得也;
貴而能貴人者,欲賤而不可得也;
達而能達人者,欲窮而不可得也。」
“자기가 富裕하면서 남을 부유하게 하는 사람은 가난해지려 해도 되지 않고,
자기가 尊貴하면서 남을 존귀하게 하는 사람은 卑賤해지려 해도 되지 않고,
자기가 顯達하면서 남을 현달하게 하는 사람은 困窮해지려 해도 되지 않는다.”
42.
仲尼曰:
仲尼께서 말씀하셨다.
「非其地而樹之,不生也,非其人而語之,弗聽也;
得其人,如聚沙而雨之,非其人,如聚聾而鼓之。」
“적합하지 않은 땅에 나무를 심으면 生長하지 못하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면 듣지 않는다.
적합한 사람을 얻어 말하면 마치 모래를 모으고 물을 뿌림과 같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면 귀머거리를 모아놓고 북을 침과 같다.”
43.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船非水不可行,水入船中,則其沒也,故曰:君子不可不嚴也,小人不可不閑也!」
“배는 물이 아니면 갈 수가 없으나 물이 배에 들어오면 침몰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자는 嚴正하지 않으면 안 되고, 小人은 막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閑 : 저본에는 ‘閉’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程榮本을 따라 ‘閑’자로 썼다.”라고 함을 따라 ‘閑’으로 바로잡았다.
44.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依賢固不困,依富固不窮,馬趼斬而復行者何,以輔足眾也。」
“어진 이에게 의지하면 절대로 窘迫하지 않고, 부자에게 의지하면 절대로 궁핍하지 않는다.
노래기[馬趼]가 발이 잘려도 다시 걸을 수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보조하는 발이 많기 때문이다.”
▶ 馬趼 : 노래기를 가리킨다. 馬陸, 馬蚿이라고도 한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길며 발이 많다.
45.
孔子曰: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不知其子,視其所友;不知其君,視其所使。」
“그의 자식을 모르면 그가 사귀는 벗을 보고,
그의 임금을 모르면 그가 부리는 신하를 보아라.”
又曰:
또 말씀하셨다.
「與善人居,如入蘭芷之室,久而不聞其香,則與之化矣;
與惡人居,如入鮑魚之肆,久而不聞其臭,亦與之化矣。
“선량한 사람과 거처함은 蘭草와 白芷가 있는 방에 들어감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니, 함께 同化되었기 때문이고,
사악한 사람과 거처함은 절인 생선을 파는 가게에 들어감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썩은 냄새를 맡지 못하나니, 또한 함께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故曰:丹之所藏者赤,烏之所藏者黑。君子慎所藏。」
그 때문에 ‘丹砂를 저장한 곳은 붉게 변하고, 검정색을 저장한 곳은 검게 변한다.’라고 하는 것이니, 君子는 자신을 간수함에 신중하다.”
▶ 蘭芷 : 蘭草와 白芷로, 둘 다 香草이다.
▶ 鮑魚之肆 :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생선을 파는 가게를 말한다.
주로 부패하여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사악한 사람이 있는 곳이나 小人이 모여 있는 곳을 비유하여 이른다. 《大戴禮記 曾子疾病》‧《孔子家語 六本》
46.
子貢問曰:
「君子見大水必觀焉,何也?」
子貢이 물었다.
“君子가 큰물을 보면 반드시 觀賞하음 무엇 때문입니까?”
孔子曰: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夫水者,君子比德焉。
“물이란 군자가 德을 그것에 비교한다.
遍予而無私,似德;
所及者生,似仁;
其流卑下句倨,皆循其理,似義;
淺者流行,深者不測,似智;
其赴百仞之谷不疑,似勇;
綽弱而微達,似察;
受惡不讓,似包蒙;
不清以入,鮮潔以出,似善化;
主量必平,似正;
盈不求概,似度;
其萬折必東,似意。
두루 베풀어주되 私心이 없음은 德과 같고,
이르는 곳의 만물이 生長함은 仁과 같으며,
낮은 곳으로 구불구불 굽이져 흐르되 모두 합당한 이치를 따름은 義와 같고,
얕은 곳은 흘러 지나가고 깊은 곳은 헤아릴 수 없음은 智와 같으며,
백 길[仞]이나 되는 골짜기를 의심 없이 내달림은 勇과 같고,
나약하면서도 미세한 곳까지 도달함은 살핌[察]과 같으며,
더러움을 사양하지 않음은 어리석은 사람을 包容함과 같고,
청결하지 못한 상태로 들어가서 깨끗하게 되어 나옴은 敎化를 잘함과 같으며,
용량을 주관하여 항상 고르게 됨은 公正함과 같고,
가득 차도 평미레질을 요하지 않음은 法度와 같으며,
만 번 꺾이고도 끝내 동쪽으로 감은 意志와 같다.
▶ 句倨 : ‘구불구불 굽이지다’의 뜻이다.
▶ 綽 : 저본에는 ‘綿’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楊倞이 《荀子》 〈宥坐〉의 注에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綽’으로 씀에 의거하여 ‘綽’자로 고쳤다.
《說苑校證》에도 ‘綽’으로 고치면서 “‘綽弱’이 《大戴禮記》 〈勸學〉에는 ‘弱綽’으로, 《荀子》에는 ‘綽約’으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綽’으로 바로잡았다.
綽弱은 유약함이다.
▶ 主 : 저본에는 ‘至’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至’는 응당 《荀子》를 따라 ‘主’로 써야 한다. 楊倞의 注에 ‘主’자로 읽어야 한다.”라고 함을 따라 ‘主’로 바로잡았다.
是以君子見大水觀焉爾也。」
이 때문에 군자가 큰물을 보면 관상한다.”
47.
「夫智者何以樂水也?」
“智者는 무엇 때문에 물을 좋아하는가?”
曰:
이렇게 대답한다.
「泉源潰潰,不釋晝夜,其似力者;
循理而行,不遺小間,其似持平者;
動而之下,其似有禮者;
赴千仞之壑而不疑,其似勇者;
障防而清,其似知命者;
不清以入,鮮潔以出,其似善化者;
眾人取平品類以正,萬物得之則生,失之則死,其似有德者;
淑淑淵淵,深不可測,其似聖者。
“샘물의 원천이 밤낮으로 끊임없이 흐름은 力士와 같고,
이치를 따라 흘러가서 작은 공간도 빠뜨리지 않음은 공평함을 지키는 사람과 같으며,
움직여서 낮은 곳으로 감은 禮가 있는 사람과 같고,
천 길[仞]의 골짜기를 의심 없이 내달림은 勇士와 같으며,
제방에 막혔으나 맑음은 天命을 아는 사람과 같고,
청결하지 못한 상태로 들어가 깨끗하게 되어 나옴은 敎化를 잘하는 사람과 같으며,
대중이 공평함을 얻고 만물이 바르게 되매, 만물이 물을 얻으면 생장하고 물을 잃으면 죽음은 德이 있는 사람과 같고,
맑고 깊어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이 聖人과 같다.
▶ 潰潰 : 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孟子》 〈離婁 下〉에는 ‘混混’으로, 《春秋繁露》 〈山川頌〉에는 ‘混混沄沄’으로 되어 있다.
▶ 取平 : 저본에는 ‘取乎’로 되어 있으나, 《韓詩外傳》에 ‘平’으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 ‘平’으로 바로잡았다.
通潤天地之間,國家以成,是知之所以樂水也。
천지 사이의 만물을 두루 윤택하게 하여, 국가가 이것으로 형성되니,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詩》云:
『思樂泮水,薄採其茆;
魯侯戾止,在泮飲酒。』
樂水之謂也。」
《詩經》에
‘즐거운 泮水에서 蓴菜를 뜯노라.
魯侯가 이곳에 와 반수 가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네.’라 하였으니,
물을 좋아함을 이름이다.”
▶ 詩云……在泮飮酒 : 《詩經》 〈魯頌 泮水〉에 보인다.
▶ 思樂泮水 : 思는 어조사이다.
泮水는 泮宮의 물이다. 반궁은 제후국의 學宮으로, 이곳에서 鄕射나 宴會를 거행하였다. 반궁의 동‧서‧남쪽에 물을 채우는데 그 모양이 半璧 같고, 天子의 학궁인 辟雍의 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물을 泮水라 하고 宮을 泮宮이라 한다.
▶ 茆 :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水草인 蓴菜이다.
「夫仁者何以樂山也?」
“仁한 사람은 무엇 때문에 山을 좋아하는가?”
曰:
이렇게 대답한다.
「夫山巃嵸𡻱嶵,萬民之所觀仰。
“산이란 높고 가파르게 우뚝 솟아 수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것이다.
▶ 巃嵸𡻭嶵(농종누죄) : 산이 가파르게 우뚝 높이 솟은 모양이다.
草木生焉,眾木立焉,飛禽萃焉,走獸休焉,寶藏殖焉,奇夫息焉.
草木이 거기서 生長하며, 많은 나무가 거기에 서 있으며, 날짐승이 거가에 모여들며, 짐승이 거기에 棲息하며, 보물이 거기에 저장되고 生殖하며, 奇人이 거기에 은거한다.
育群物而不倦焉,四方並取而不限焉。
온갖 사물을 養育하면서도 권태롭게 여기지 않으며, 사방에서 함께 채취하여도 한정이 없다.
出雲風通氣于天地之間,國家以成,是仁者所以樂山也。
구름과 바람을 일으켜 천지 사이에 大氣가 통하게 하여 국가가 이 때문에 형성되니, 이것이 仁者가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 風 : 저본에는 없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詩》曰:
『太山巖巖,魯侯是瞻。』
樂山之謂矣。」
《시경》에
‘태산이 높고 높은데, 魯侯가 이를 바라본다.’라 하였으니,
산을 좋아함을 이름이다.”
▶ 詩曰……魯侯是瞻 : 《詩經》 〈魯頌 閟宮〉에 보이는데, 다만 ‘侯’자가 ‘邦’자로 되어 있다.
48.
玉有六美,君子貴之:
玉에는 여섯 가지 아름움이 있어서 君子가 귀중하게 여긴다.
望之溫潤,近之栗理,聲近徐而聞遠,折而不撓,闕而不荏,廉而不劌,有瑕必示之於外,是以貴之。
멀리서 바라보면 溫潤하며, 가까이서 보면 堅實하면서도 무늬가 있고, 소리는 가깝게는 은은하지만 멀리까지 들리며, 절단은 되어도 굽어지지 않고, 殘缺이 있어도 유약하지 않으며, 날카로워도 상처를 내지 않고, 흠이 있으면 반드시 밖에 드러나매, 이 때문에 귀중하게 여긴다.
望之溫潤者,君子比德焉:
近於栗理者,君子比智焉;
聲近徐而聞遠者,君子比義焉;
折而不撓,闕而不荏者,君子比勇焉;
廉而不劌者,君子比仁焉;
有瑕必見於外者,君子比情焉。
멀리서 바라보면 溫潤함은 군자가 德을 거기에 견주고,
가까이서 보면 堅實하면서도 무늬가 있음은 군자가 智를 거기에 견주고,
소리가 가깝게는 은은하지만 멀리까지 들림은 군자가 義를 거기에 견주고,
절단되어도 굽어지지 않고, 殘缺이 있어도 유약하지 않음은 군자가 勇을 거기에 견주고,
날카로워도 상처를 내지 않음은 군자가 仁을 거기에 견주고,
흠이 있으면 항상 밖에 드러냄은 군자가 情을 거기에 견준다.
▶ 闕而不荏 : 闕은 殘缺이나 欠缺이고, 荏은 柔弱이나 軟弱의 뜻이다.
▶ 廉而不劌 : 廉은 모서리이니, 날카롭다는 뜻이다. 劌는 상처를 입힌다는 뜻이다.
49.
道吾問之夫子:
「多所知,無所知,其身孰善者乎?」
道吾가 夫子께 물었다.
“知識이 많음과 지식이 없음에, 어떤 사람이 좋습니까?”
▶ 道吾 :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對曰:
부자께서 대답하셨다.
「無知者,死人屬也;
雖不死,累人者必眾甚矣。
“지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은 부류로서, 죽지는 않고도 남에게 누를 끼침이 매우 많다.
然多所知者, 好其用心也多;
所知者出於利人即善矣,出於害人即不善也。」
그러나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마음 쓰기를 좋아하니,
남을 이롭게 하는 데 마음을 쓰면 좋고, 남을 해치는 데 마음을 쓰면 좋지 않다.”
道吾曰:
「善哉!」
도오가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50.
越石父曰:
越石父가 말하였다.
▶ 越石父(보) : 춘추시대 齊나라의 賢人이다. 晏嬰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났고, 또 그의 上客이 되었다. 《晏子春秋 雜 上》
「不肖人,自賢也;
愚者,自多也;
佞人者,皆莫能相其心口以出之,又謂人勿言也。
“不肖한 사람은 자신을 어질다고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칭찬하며,
말을 교묘하게 잘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하여 입으로 말을 뱉어버리고, 또 남더러 말하지 말라고 한다.
譬之猶渴而穿井,臨難而後鑄兵,雖疾從而不及也。」
비유하자면 마치 목이 마른 뒤에 샘을 파고, 환난이 닥친 뒤에 무기를 鑄造함과 같으니, 아무리 급하게 해도 미치지 못한다.”
51.
夫臨財忘貧,臨生忘死,可以遠罪矣。
재물 앞에서 가난을 잊고 삶 앞에서 죽음을 잊으면 죄를 멀리할 수 있다.
夫君子愛口,孔雀愛羽,虎豹愛爪,此皆所以治身法也。
君子는 말을 아끼고, 孔雀은 깃털을 아끼며, 虎豹는 발톱을 아끼니, 이는 모두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上交者不失其祿,下交者不離於患,是以君子擇人以交,農人擇田而田。
지위가 높은 사람과 사귀는 자는 녹봉을 잃지 않고, 지위가 낮은 사람과 사귀는 자는 환난에 걸리지 않으매, 이 때문에 군자는 사람을 가려서 사귀고, 농부는 논밭을 가려서 농사를 짓는다.
君子樹人,農夫樹田;
田者擇種而種之,豐年必得粟;
士擇人而樹之,豐時必得祿矣。
군자는 사람을 기르고, 농부는 논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종자를 가려서 파종하면 풍년이 들어 항상 많은 곡식을 수확할 터이고,
선비가 사람을 가려서 기르면 盛世에 필시 俸祿을 얻을 터이다.
52.
天下失道,而後仁義生焉,國家不治,而後孝子生焉,民爭不分,而後慈惠生焉,道逆時反,而後權謀生焉。
천하가 道를 잃고 나서 仁義가 생기고, 국가가 다스려지지 않고 나서 孝子가 생기며, 백성의 분쟁이 가려지지 않고 나서 慈惠가 생기고, 도를 거스르고 時勢를 위반하고 나서 權謀가 생기는 법이다.
凡善之生也,皆學之所由。
善한 품성이 생김은 모두 학문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一室之中,必有主道焉,父母之謂也;
故君正則百姓治,父母正則子孫孝慈。
한 집안에는 틀림없이 집안을 주장하는 도리가 있으니, 父母를 말하고,
그러므로 임금이 바르면 백성이 잘 다스려지고, 부모가 바르면 자손이 孝順하고 慈愛로워진다.
是以孔子家兒不知罵,曾子家兒不知怒;
所以然者,生而善教也。
이 때문에 孔子 집안의 아이는 남을 꾸짖을 줄 모르고, 曾子 집안의 아이는 벗에게 성을 낼 줄 모르니,
그렇게 된 원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잘 가르쳤기 때문이다.
▶ 怒 : 저본에는 ‘路’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少儀外傳 下》에는 ‘怒’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怒’로 바로잡았다.
夫仁者好合人,不仁者好離人.
仁者는 사람들을 화합하게 함을 좋아하고, 不仁者는 사람들을 이간시키기를 좋아한다.
故君子居人間則治,小人居人間則亂;
君子欲和人,譬猶水火不相能然也,而鼎在其間,水火不亂,乃和百味。
그러므로 君子가 세상에 있으면 치세가 되고, 小人이 세상에 있으면 난세가 된다.
군자가 사람들을 화합시키려 함은 비유하면 물과 불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지만 솥이 그 사이에 있으면 물과 불이 서로 혼란하지 않아서 온갖 맛을 조리함과 같다.
是以君子不可不慎擇人在其間!
이 때문에 군자는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람을 신중히 가리지 않을 수 없다.
53.
齊景公問晏子曰:
「寡人自以坐地,二三子皆坐地;
吾子獨搴草而坐之,何也?」
齊 景公이 晏子에게 물었다.
“寡人은 이미 스스로 땅바닥에 앉았고, 사람들도 모두 땅바닥에 앉았는데,
그대만 풀을 뽑아 깔고 앉음은 무엇 때문이오?”
▶ 以 : 已와 통용이다.
晏子對曰:
「嬰聞之:
唯喪與獄坐於地。
今不敢以喪獄之事侍於君矣。」
안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알기로는, 居喪할 때와 감옥에 있을 때 땅바닥에 앉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감히 거상과 감옥에 있을 때의 일로 임금을 모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4.
齊高廷問於孔子曰:
「廷、不曠山,不直地,衣蓑提執精氣,以問事君之道,願夫子告之。」
齊나라 高廷이 孔子께 물었다.
“제가 山이 막고 있음을 개의치 않고, 땅이 곧지 않음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도롱이를 입고 폐백을 가지고서 정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묻사오니, 夫子께서는 말씀해주십시오.”
▶ 高廷 : 齊나라 사람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 曠山 : 山이 막고 있다는 말이다. 《孔子家語》 〈六本〉의 王肅 注에 “曠은 막힘이다. 산이 막고 있음을 개의하지 않고 산을 넘어 왔다는 말이다.[曠 隔也 不以山爲隔 踰山而來]”라 하였다.
孔子曰:
「貞以幹之,敬以輔之,待人無倦,見君子則舉之,見小人則退之;
去爾惡心而忠與之,敏其行,脩其禮,千里之外親如兄弟;
若行不敏,禮不合,對門不通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忠貞으로 일을 주관하고 恭敬하는 마음으로 보좌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는 싫증을 내지 말아서 君子를 보면 추천하고 小人을 보면 물리치며,
너의 나쁜 마음을 버리고 충성으로 함께하고, 행동을 민첩하게 하고 禮儀를 修習하면, 천 리 밖의 사람도 친하기가 형제와 같을 터이고,
만일 행동이 민첩하지 않거나 예의에 맞지 않으면 문을 마주하여도 통하지 못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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