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虛詞) 以 |
以及 및 以至 ~까지 以至于 ~ 때문에 以是 그래서 以故 그러므로 以此 이리하여 以는 허사 중에서 가장 많은 용법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또한 실사적인 용법도 실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① 명사로서 “까닭, 원인”의 뜻으로 쓰인다. 《列子 周穆王篇》에 “宋人執而問其以”[송나라 사람이 그를 잡고 그 까닭을 물었다.]라는 문장이 그 예이다. ② “채용하다”라는 뜻의 동사로서도 쓰인다. 《戰國策 韓策3》에 “昔齊桓公九合諸侯, 未嘗不以周襄王之命” [옛날 환공은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불러 모아 회맹을 하면서도, 한 번도 주양왕의 명령을 채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③ “여기다,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左傳 昭公25年》조 “公以告臧孫, 臧孫以難; 告郈孫, 郈孫以可, 勸” [소공은 계획을 장손에게 말했으나, 장손은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후손에게 말했더니, 후손은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소공에게 실행하기를 권했다.] ☞以가 허사로서는 대명사, 의문사, 전치사, 접속사 등으로 쓰이는데, 이 중에서도 전치사로서의 용법이 가장 많다. 이외에 以는 형성적 고정구가 많다. 以는 고서 중에 빈번하게 나오는 글자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의를 기울여 그 뜻과 용법을 잘 익혀둘 필요가 있다. |
(1) 以는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지시사로 쓰인다. 때로는 대명사가 되고, 형용사도 되며, 상황어, 즉 부사도 된다. “이, 이것, 이와 같이”
¶ 以告者過也. 《論語 憲問》
○ 이것은 이야기한 사람이 지나친 것입니다.
¶ 天則不雨, 而望之愚婦人. 於以求之, 毋乃已疏乎? 《禮記 檀弓下》
○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데, 어리석은 부인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부인에게 비를 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疏:친하지 않다. 사이가 멀다. 생소하다. 소원하다. 조잡하고 열등하다. 모자라다. 실속 없다.
¶ 周武君使人刺怜悝于東周, 令悝僵, 令其子速哭曰: “以, 誰刺我父也?” 《呂氏春秋 貴卒篇》
○ 주나라 무군은 사람을 시켜 동주에서 령리를 찔러 죽이게 했다. 령리가 찔려서 쓰러진 채로 죽은 척하고서는, 그의 아들로 하여금 빨리 울면서, “이런, 누가 나의 아비를 찔러 죽였는가?”라고 말하게 했다.
☞상기 예문에서 以는 모두 대명사로 쓰였다.
¶ “且無梁孰與無河內急?” 王曰: “梁急.” “無梁孰與無身急?” 王曰: “身急.” 曰 “以三者, 身, 上也; 河內, 其下也. 秦未索其下, 而王效其上, 可乎?” 《戰國策 魏策3》
○ “그리고 도읍인 량을 잃는 일과 하내를 잃는 일과 어느 쪽이 더 급합니까?” 왕이 말했다: “그야 량이 더 급하지.” “량을 잃는 일과 자신을 잃는 일과 어느 쪽이 더 급합니까?” 왕이 말했다: “그야 내 몸이 더 급하지.”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자기 몸이 가장 중요하고, 하내가 가장 덜 중요합니다. 진나라가 아직 가장 덜 중요한 하내조차 요구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왕께서는 가장 중요한 쪽을 먼저 헌상하러 가고자 하십니다. 옳은 일입니까?”
¶ 晉之分也, 齊之奪也, 皆以群臣之太富也. 夫燕、宋之所以弑其君者, 皆以類也. 《韓非子 愛臣篇》
○ 晋나라가 한씨와 위씨와 조씨에게 셋으로 분리되었고, 제나라가 나라를 빼앗긴 것도, 모두 이 신하들의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연나라와 송나라의 군주가 죽임을 당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종류의 이유에 기인한 것들이다.
¶ 妾唯以一太子一女, 奈何棄之匈奴 《漢書 類敬傳》
○ 저는 오직 이 태자 한 명과 공주 한 명을 두고 있을 뿐인데, 어찌 멀리 흉노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말씀입니까?
☞상기 예문에서 以는 다음에 명사 또는 명사구가 이어지고 있으므로 형용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 叔孫武叔 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論語 子張》
○ 숙손무숙이 중니를 헐뜯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 중니는 폄훼해서는 안 된다.”
¶ 有時朝發白帝, 暮到江陵. 其間千二百里, 雖乘奔御風, 不以疾也. 《水經注 三峽》
○ 어느 날 아침 백제성을 출발하여, 저녁 무렵에 강릉에 도착했다. 이동 거리는 1,200여 리, 설사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기 예문에서 以는 다음에 동사 또는 형용사가 이어지고 있으므로 부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2) 以는 주로 于자 다음에 쓰여 의문사로 쓰인다. 오직 《詩經》에서만 보인다. “어디”
¶ 于以采蘩? 于沼于沚. 于以用之? 公侯之事. 于以采蘩? 于澗之中. 于以用之? 公侯之宮. 《詩經 召南 采蘩》
○ 어디서 다북쑥을 뜯을까요? 그곳은 연못가와 물가지요. 그것을 어디에 쓸까요? 공후의 제사에 쓰지요. 어디서 다북쑥을 뜯을까요? 그곳은 산골짝 물가지요. 그것을 어디에 쓸까요? 공후의 묘당에 쓰지요.
¶ 爰居爰處, 爰喪其馬. 于以求之? 于林之下. 《詩經 邶風 擊鼓》
○ 정처 없이 떠도는 몸, 말마저 잃었으니. 어디 가서 찾으리오? 숲 속을 해매이네.
▶爰자와 焉자 모두 連詞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바로”의 의미가 있다.
(3) 以는 已자의 제3항 용법과 같이 정도 부사로 쓰인다. “매우, 너무”
¶ 晉陽處父聘於衛, 反, 過寗, 寗嬴從之, 及溫而還. 其妻問之, 嬴曰: “以剛.”《左傳 文公5年》
○ 진나라의 양처보가 위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가다가, 녕 지방을 지나게 되었다. 녕 지방의 여관 주인인 영이 그를 따라서, 온 지방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물었을 때, 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성품이 너무나 강경하기 때문이다.”
¶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子之報讎, 其以甚乎!” 《史記 伍子胥列傳》
○ 산중으로 피난을 간 신포서는, 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당신의 복수는 너무 심하다!”
¶ 木若以美然. 《孟子 公孫丑下》
○ 관의 재목이 지나치게 훌륭한 듯했습니다.
¶ 三月無君則弔, 不以急乎? 《孟子 藤文公下》
○ 석 달 동안 (섬길) 군주가 없으면 위로했다는 것은, 너무 조급하지 않습니까?
(4) 以는 전치사로 쓰이는데 그 용법이 대단히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용법이 수단、방법을 나타내는 용법이다.
“…으로써” “…을 사용하여” “…에 의하여” “…에 근거하여”
¶ 醒以戈逐子犯. 《左傳 僖公24年》
○ 후에 晉公子 重耳가 술에서 깨자 화를 내면서 창을 들고 자범을 뒤쫓았다.
¶ 久之, 能以足音辨人. 《歸有光: 項脊軒記》
○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발소리 만으로도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 以直報怨, 以德報德. 《論語 憲問》
○ 정직함으로써 원수를 갚고, 은덕으로써 은덕을 갚아야 한다.
☞以자 다음에 오는 목적어는 생략될 수 있다.
① 목적어가 비교적 길거나,
② 그 내용이 이미 전술된 경우에는,
문의가 손상되지는 않는 범위 내에서 以자 다음에 나와야 할 목적어가 생략됨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예다.
¶ 子力行之, 亦以新子之國. 《孟子 藤文公上》
○ 당신이 힘써서 그것을 행한다면, 또한 [그것]으로써 당신의 나라는 새롭게 될 것입니다.
¶ 童曰: “我, 區氏兒也, 不當爲僮. 賊二人得我, 我幸皆殺之矣. 愿以聞于官.” 《柳宗元: 童區寄傳》
○ 소년이 말했다: “나는 구씨 집안의 아들입니다. 아동 노예가 아닙니다. 두 악당이 나를 유괴했지만, 나는 두 사람을 살해하고 탈출했습니다. [이 사건을]을 관청에 고발해 주세요.”
¶ 明日, 子路行以告. 《論語 微子》
○ 그 다음날 자로가 떠나와서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멘 노인을 만난 일]을 공자께 아뢰었다.
☞한편 以자 다음에 나와야 할 목적어가 앞당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다음에서 그 예문을 들어보기로 하자. 이 경우 以는 後置詞이다.
¶ 老母在, 政身未敢以許人也. 《史記 刺客列傳》
○ 노모가 살아계신 한, 나 섭정의 몸을 감히 다른 사람에게 허락할 수 없습니다.
¶ 燕人行成曰: “敝邑知罪, 敢不聽命? 先君之敝器請以謝罪.”
○ 연나라 사람이 강화를 요구하면서 말했다: “우리 소국이 죄를 알았으니, 어찌 감히 대국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군이 사용하시던 기구로써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빌겠습니다.”
¶ 子玉剛而無禮, 不可以治民, 過三百乘, 其不能以入矣. 《左傳 僖公27年》
○ 원래 자옥은 고집이 세고 무례하여, 백성을 다스릴 수가 없오. 3백 승 이상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하면, [그들]과 함께 무사히 돌아오지를 못할 것입니다.
¶ 對曰: “忠之屬也, 可以一戰.” 《左傳 莊公10年》
○ 曹劌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충실에 속하는 방법이니, [이]에 근거하여 한 번 싸워 볼 만합니다.”
☞위에서 든 예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목적어가 짧지 않더라도, 필요한 경우 앞으로 내놓아 쓸 수 있다. 以를 써서 윗 문장을 잇고, 후속 목적어를 생략하는 것은
① 문의를 손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장의 기세를 살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외에도,
② 이중 목적어가 있는 문장에서 以를 사용하여 직접 목적어를 앞으로 내놓아 쓰거나,
③ 직접 목적어가 비교적 길어서 以를 써서 앞으로 내놓는 것은 문장의 요점을 분명하게 하고, 문의를 쉽게 설명하며, 문장을 유창하게 해 준다.
¶ 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 《孟子 公孫丑下》
○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고했다.
☞상기 예문은 본래 “陳子告孟子時子之言.”이라는 문장을 위와 같이 바꿔 쓴 것이다. 이 문장에서 “時子之言”은 “告”[고하다]라는 동사의 직접 목적어이다. 이 문장을 “陳子告時子之言于盟子.”라고 써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유창성에 있어서는 원문에 미치지 못한다.
¶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 《孟子 公孫丑上》
○ 자로는 남이 그에게 허물을 일러주면 기뻐했다.
☞ 이 문장은 앞에서 든 예문과 대체로 다르지 않다. 우선 子路를 앞에 내세운 다음, 그 다음 구절에서는 之자로 子路를 대신함으로써 문장의 중점이 子路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이 문장을 “人告子路有過則喜”로 쓴다면, 우선 문장의 해석이 헷갈릴 뿐만 아니라, 문장의 구조 또한 난삽하게 된다. 이 문장을 다시 “人告有過於子路”로 고쳐 쓰더라도 그 뜻하는 바를 오해하기 쉽다. 오직 상기 원문과 같이 써야만 그 뜻하는 바가 명확히 전달되고 문장이 유려하다. 이것은 본디 수사법상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어법 현상이다.
¶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 《孟子 公孫丑下》
○ 제나라 사람으로서 인의를 가지고 왕에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이 문장은 본래 “齊人無言王仁義者”라는 문장을 직접 목적어인 仁義를 以를 써서 앞으로 내놓고, 言王을 與王言”으로 바꾸어 쓴 것이다. 글자 수가 조금 늘었지만 문의가 뚜렷해졌다.
(5) 以는 전치사로 쓰여서 동작의 원인, 동기를 나타낸다. “…때문에” “…으로 인해”
¶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論語 衛靈公》
○ “군자는 말을 잘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쓰지 않으며, 사람이 나쁘다는 이유로 그의 좋은 말을 버리지 않는다.”
¶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老子 66章》
○ 무릇 다툼이 없기 때문에, 천하의 그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
¶ 而吾以捕蛇獨存. 《柳宗元: 捕蛇者说》
○ 그러나 나는 뱀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혼자 생활할 수 있었다.
¶ 卒以吾郡之發憤一擊, 不敢復有株治. 《張溥: 五人墓碑記》
○ 마침내 우리 지역 백성들이 격분하여 일격을 가했기 때문에, 감히 연루자를 모두 형벌에 처하는 일이 없었다.
¶ 以不能取容當世, 故終身不仕. 《史記 張釋之列傳》
○ 그 당시 세상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종신토록 벼슬을 하지 않았다.
(6) 以는 전치사로서 與자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와 함께” “…에게” 후대에 들어 이러한 용법은 극소화되었다.
¶ 天下有變, 王割漢中以楚和. 《戰國策 周策》
○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왕께서는 한중 땅을 떼어주고 초나라와 강화하십시오.
¶ 陛下起布衣, 以此屬取天下. 《史記 留侯世家》
○ 폐하께서는 포의로 일어나서,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 王以鞏伯宴, 而私賄之. 《左傳 成公2年》
○ 정왕은 공백에게 연회를 베풀고, 몰래 그에게 뇌물을 주었다.
☞ 이러한 용법으로 쓰이는 以의 목적어는, 때로는 以자 앞에 놓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강조를 나타낸다. 以자 밑에 아예 목적어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예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民, 可以樂成, 不可與慮始. 《史記 滑稽列傳》
○ 백성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일단 일이 성공한 뒤에는 [그들과] 함께 즐길 수는 있지만, [그들과] 함께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
(7) 以는 于(於)자로 쓰이는데 ① 시간을 표시하거나 ② 형용사 밑에 쓰인다.
① 시간 표시 용법 “…때에”
¶ 其弟以千畝之戰生, 命之曰成師. 《左傳 桓公2年》
○ 구의 동생을 천묘에서 전쟁 때 낳았는데, 이름을 成師라고 지었다.
¶ 韓說以太初三年爲游擊將軍. 《史記 衛靑列傳》
○ 한설은 태초 3년[BC 102년]에 유격장군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치사구는 때로는 도치 구문이 될 수 있는데, 이때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以 앞에 온다.
¶ 若晉君朝以入, 則婢子夕以死; 夕以入, 則朝以死. 《左傳 僖公15年》
○ 만일 진나라 임금이 아침에 들어오면, 저희들은 저녁에 죽을 것이고, 저녁에 들어온다면, 아침에 죽을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시간 표시 전치사 以는 고문에서 모두 于자로 바꿔 쓸 수 있다. 다음에 든 예문 중의 以자도 또한 于자로 바꿔 쓸 수 있지만, 형식은 같지 않다.
② 형용사와 함께 쓰이는 용법 “…하기에 …하다”
¶ 衆叛親離, 難以濟矣. 《左傳 隱公4年》
○ 대중이 이반하고 친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니, 성공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 可以興兵, 利以伐姜. 《左傳 哀公9年》
○ 군대를 동원할 수가 있어서, 제나라를 치는 데는 유리합니다.
¶ 君有攻伐之器, 小國諸侯有守禦之備, 則難以速得志矣. 《國語 齊語》
○ 군주께서 공격과 정벌에 필요한 무기를 가지시면, 소국의 제후들은 방어의 무기로 대비할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도 역시 뜻을 속히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8) 以는 자격, 신분, 지위를 표시하는 전치사로 쓰인다.
¶ 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論語 泰伯》
○ 유능한 자로서 유능하지 못한 자에게 물으며, 견문이 많은 자로서 적은 자에게 묻는다.
¶ 以萬乘之國, 伐萬乘之國. 《孟子 梁惠王下》
○ 만승의 나라로서, 만승의 나라를 치다.
¶ 以資政殿學士行. 《文天祥: 指南錄後序》
○ 자정전 학사 자격으로 가다.
자격, 신분을 표시하는 以자의 또 다른 용법이 있다. “…을 가지고”
¶ 臧文仲以防求爲後於魯. 《論語 憲問》
○ 장문중이 ‘방’읍을 가지고 노나라에게 후계자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9) 以는 전치사로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의 기준을 제시한다. 현대 중국어의 “以 … 論” 또는 “論 …”에 해당한다. “…으로 말하자면”
¶ 以賢, 則去疾不足; 以順, 則公子堅長. 《左傳 宣公4年》
○ 현명함으로 말한다면 제가 임금으로서 부족하고, 서열로 말한다면, 공자 견이 연장자입니다.
¶ 立適以長不以賢, 立子以貴不以長. 《公羊傳 隱公元年》
○ 맏아들을 세움에는 나이로 하고 현명함으로 하지 않으며, 후계자를 세움에는 귀함으로 하고 나이로 하지 않는다.
¶ 以位, 則子, 君也; 我, 臣也, 何敢與君友也? 以德, 則子事我也, 奚可以與我友? 《孟子 萬章下》
○ 지위로 말하자면 당신은 임금이고 나는 신하인데, 어찌 임금과 친구가 되겠는가? 덕으로 말하자면, 당신은 나를 섬기는 사람인데 어찌 나를 친구로 삼을 수 있겠는가?
(10) 以는 已자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이미” “벌써”
¶ 從者將以子行, 其聞之者, 吾以除之矣. 《國語 晉語4》
○ 수행하는 자가 그대가 여기를 빠져나가는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을 엿들은 여인은 제가 이미 제거했습니다.
¶ 知者之知, 固以多矣. 《荀子 王霸篇》
○ 지혜로운 사람의 지식은 이미 풍부하다.
¶ 且夫尊賢授能, 先善與利, 自古堯舜以然. 《莊子 庚桑楚篇》
○ 또한 현명한 사람을 중히 쓰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며, 선한 것과 이로운 것을 앞세우는 것은, 자고로 요순시대부터 이미 그러한 것입니다.
¶ 身以困窮, 雖後悔之, 尙將奚及? 《呂氏春秋 情欲篇》
○ 몸이 이미 위태로워지고 궁지에 몰렸으니, 비록 후회한들 장차 어떻게 뒤쫓아가 따라잡겠는가?
¶ 惠聞天下五難、四不可, 而明公皆以居之矣.《晉書 齊王冏傳 孫惠上書》
○ 내가 듣기로 천하에는 다섯 가지 곤란함과 네 가지 불가함이 있다고 하는데, 그대는 이미 이러한 상황에 처한 바 있다.
☞以가 “이미”라는 뜻으로 쓰인 예는 전국시대 이전에 비교적 많이 보이고, 진나라 시대 이후에는 아주 적게 보인다. 위에서 예로 든 《晉書》의 예문은 단지 드문 현상이다.
(11) 以는 “이어지다” “연루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용법은 오직 상고 시대에만 있었다.
¶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君, 凶. 《易經 復卦》
○ 군사를 일으켜도, 끝내는 패합니다. 이와 연루된 나라의 임금 역시 흉합니다.
¶ 余一人有罪, 無以萬夫 《國語 周語引湯誓》
○ 나 한 사람의 죄를 백성들과 연결지으면 안 된다.
(12) 以는 전치사로서 “…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용법은 상고시대에는 없었고, 양한시대에 간혹 보이다가, 위진시대 이후에 없어졌다.
¶ 以吾觀之, 必不久矣. 《史記 趙世家》
○ 내가 봤을 때로부터 반드시 오래지 않았다.
¶ 今以長沙豫章往, 水道多, 絶難行. 《漢書 西南夷傳》
○ 지금 長沙豫章으로부터 가는데 강이 많아서 가기가 매우 어렵다.
(13) 以는 접속사로서 용법이 而와 같다. 이 경우 而자로 바꿔써도 무방하다. “순접” “역접” 모두 쓰인다.
¶ 狐偃惠以有謀, 趙衰文以忠貞, 賈佗多識以恭敬. 《國語 晉語》
○ 狐偃은 자혜로우면서 모략이 있고, 趙衰는 문장에 능하면서 충정했으며, 賈佗는 지식이 많지만 공경스러웠다.
¶ 昔楚靈王不君, 其臣箴諫以不入. 《國語 吳語》
○ 옛날 楚靈王은 임금답지 않았는데, 그의 신하들이 좋은 말을 간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4) 以는 접속사 “與~과”자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와(과)”
☞만약 以及을 써서 두 가지 사항을 연결하면, 以及 다음에 언급되는 사항은 그 위에서 언급되는 사항에 비하여 그 비중이 떨어진다. 이같이 以及은 두 가지 사항을 동일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與자를 써서 연결하면 두 가지 사항의 비중이 같다.
¶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何之?” 《論語 魏政》
○ 季康子가 물었다: “백성들에게 공경스럽고 충성스러우며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賦常棣之七章以卒. 《左傳 襄公20年》
○ 《상체》라는 시의 제7장과 마지막 1장을 노래했다.
¶ 蕩意諸曰: “盍適諸侯?” 公曰: “不能其大夫, 至于君祖母, 以及國人, 諸侯誰納我?”
○ 蕩意諸가 “왜 제후에게 가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자, 소공은: “나는 나의 대부들에게 잘 하지 못해, 그것이 임금의 조모와 백성에게까지 미쳤으니, 제후 중 누가 나를 받아들이겠는가?”
(15) 以는 往,來,內,外,東,西,南,北,上,下 등과 함께 쓰여 시간, 방위, 장소 등을 나타낸다.
¶ 凡雨, 自三日以往爲霖. 《左傳 隱公9年》
○ 대체로 비가 3일 이상 내리는 것을 장마라고 한다.
¶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論語 雍也》
○ 중간 수준 이상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되지만; 중간 수준 이하인 사람에게는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
¶ 三王以上固皆用兵也. 《呂氏春秋 召類篇》
○ 하、은、주 삼왕 이상의 요、순까지도 물론 모두가 군대를 사용했다.
¶ 凡民七尺以上屬諸三官. 《呂氏春秋 上農篇》
○ 무릇 백성들은 키 일곱자 이상부터 농업、수공업、상업을 각기 관장하는 관리들에세 소속된다.
(16) 以至는 접속사로서 “(…부터) …까지”라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以至于”는
① “以至”와 같이 “…까지”라는 의미와
② 어떤 상황의 결과 즉 “…으로 해서” “…때문에”라는 의미로 쓰인다. 모두 고대인의 固定詞組이다.
(A) 시간을 표시하는 경우
¶ 觀于《春秋》, 自魯隱公以至哀公, 凡十二世. 《呂氏春秋 求人篇》
○ 《춘추》를 읽었는데, 노 은공전부터 애공전까지 모두 12전을 읽었다.
¶ 自耕稼陶漁以至爲帝, 無非取於人者. 《孟子 公孫丑上》
○ 농사짓고 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것에서부터 제왕의 지위에 이르는 것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 自穆侯以至于今, 亂兵不輟, 民志不厭, 禍敗無已. 《國語 晉語8》
○ 진목공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란이 그치지 않아서, 백성들은 재난이 그치지 않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었다.
¶ 堯復育重黎之後不忘舊者, 使復典之, 以至于夏商. 《國語 楚語下》
○ ‘당요’는 거듭 ‘여족’의 후예를 돌봐 주었다. 그들의 선대가 보여준 업적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다시금 천지를 주관하도록 허여했다. 이것은 하나라와 상나라 양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위에 든 예문에서 “以至于”는 모두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다음은 “以至于”가 결과를 표시하는 예문을 들어보기로 한다.
(B) 결과를 표시하는 경우
¶ 申生有罪, 不念伯氏之言也, 以至于死. 《禮記 檀弓上》
○ 나의 현명하지 못한 죄로, 그대의 말을 듣지 않다가, 그것 때문에 오늘 죽게 되었습니다.
¶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于無爲. 《老子48章》
○ 수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길, 없애고 또 없애, 그 결과 억지로 함이 없는 지경에 다다러야 한다.
(17) 以是, 以故, 以此는 모두 固定詞組로서 “그래서” “이리하여”라는 뜻을 나타낸다. 현대 중국어의 所以와 같다.
¶ 人之貌有與也, 以是知其天也, 非人也. 《莊子 養生主篇》
○ 사람의 모양에는 두 다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외발인 것은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의 짓은 아닌 것이야.
¶ 以京華清署,日與諸名公卿負海內文章重望者游,以故風氣日上,似有所師承. 《鄭日奎[5]: 與鄧衛玉書》
○ 서울의 ‘청산아문’에서 일하는 것을 계기로, 소생은 매일같이 천하에 명망이 높은 공경들과 더불어 교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의 명성 또한, 선생님께서 전수해 주신 바대로, 하늘 높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 而其子以智, 余之夙交也, 以此晨夕過從. 《侯方域: 與阮光祿書》
○ 그의 아들 ‘방이지’는 나의 어릴 적 친구이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왕래했다.
(18) 以는 단독으로 접속사가 될 수 있고,
① 어떤 상황의 결과 즉 “…으로 해서” “…때문에”라는 의미로 쓰이며,
② 동작의 목적이나 정도를 표시한다
① 상황의 결과를 나타내는 以
¶ 昔秦穆公不從百里奚、蹇叔之言以敗其師. 《漢書 息夫躬傳》
○ 옛날 秦穆公은 百里奚와 蹇叔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전쟁에서 패배했다.
¶ 爾以谗慝貪惏事君而多殺不辜, 余必使爾罷于奔命以死. 《左傳 成公7年 巫臣遺楚子重、子反書》
○ 너희들은 남을 모함하고 나쁜 짓을 하며 탐욕하는 마음으로 군주를 섬겨서,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나는 반드시 너희들이 군주의 명을 받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 결과 기진맥진하여 죽게 하리라.
② 행위의 정도를 표시하는 以
¶ 發憤忘食, 樂以忘憂. 《論語 述而》
○ (알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인하여 근심을 잊다.
¶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그것으로써)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
☞위 예문에서 忘憂는 樂의 정도를, 知十과 知二는 인재의 지적 정도를 나타낸다.
③ 행동의 목적을 나타내는 以
¶ 黔敖爲食於路, 以待餓者而食之. 《禮記 檀弓下》
○ 黔敖가 길에서 밥을 지어서, 굶주린 자를 기다려서 먹게 했다. [굶주린 자를 기다려서 먹게 하기 위해 黔敖는 길에서 밥을 지었다.]
¶ 斂資財以送其行 《張溥: 五人墓碑記》
○ 재물을 모금하여 그들에게 보냈다. [그들에게 보내기 위해 재물을 모금했다.]
☞상기 예문에서 以 이하는 모두 목적을 나타낸다. 爲食의 목적은 待餓者이며, 斂資財의 목적은 送其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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