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浮屠文暢師序(송부도문창사서)-韓愈(한유)
人固有儒名而墨行者, 問其名則是, 校其行則非, 可以與之游乎?
사람 중에 본시 儒家의 명분을 가지고 墨家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명분을 물어보면 옳되 그의 행동을 따져보면 잘못되었는데 그와 交遊하여도 되겠는가?
▶ 儒名 : 유학자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음. 儒士라고 불리우고 있음.
▶ 墨行 : 묵가의 행동을 함. 墨子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함. 여기서는 墨으로 이단의 학문을 총칭한다.
▶ 校 : 조사하다. 따지다.
如有墨名而儒行者, 問其名則非, 校其行則是, 可以與之游乎?
만약에 묵가라는 명분을 가지고 유가의 행동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의 명분을 물어보면 잘못되었으되 그의 행실을 따져보면 옳은데, 그와 교유하여도 되겠는가?
揚子雲稱:
“在門墻則揮之, 在夷狄則進之.”
揚雄이 말하였다.
“내 집 문 앞이나 담에서는 쫓아버리지만, 오랑캐 땅에서라면 그를 들여놓겠다.”
▶ 揚子雲 : 漢대의 賦 작가인 揚雄. 이곳의 말은 《法言》 修身편에 보인다.
어떤 사람이 “공자의 집 담에 기대어서 어떤 사람이 음탕한 노래를 하거나 韓非子나 莊子(: 道家의 책)을 읽고 있다면 문 안으로 들여놓겠는가?”라고 물은 데 대한 대답으로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이단의 글을 공자의 집 곁에서 읽고 있는 자라면 쫓아버리지만, 오랑캐 땅에서 읽고 있는 자라면 맞아들인다는 뜻이다. 오랑캐 땅에서라면 이단의 공부라도 하지 않음보다는 하는 편이 좋고, 또 그는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門墻 : 집의 문과 담.
▶ 揮之 : 그를 쫓아 버림.
▶ 夷狄 : 오랑캐. 東夷와 北狄.
吾取以爲法焉.
나는 그 말을 취하여 본보기로 삼고 있다.
文暢喜爲文章, 其周遊天下, 凡有行, 必請於搢紳先生, 以求詠謌其所志.
文暢은 글짓기를 좋아하여, 그가 천하를 주유함에 가는 곳마다 항상 지식인들에게 요청하여 자신의 뜻하는 바를 시로 읊어달라고 요청하였다.
▶ 搢紳先生 : 옛날 지식인. 벼슬아치. 神은 사대부가 관복의 큰 띠[紳]에 笏을 꽂고[搢] 있음을 뜻하는 말임.
▶ 詠謌 : 읊고 노래하다. 시를 짓을 뜻한다.
▶ 其所志 : 그가 뜻하는 바. 그의 생각이나 사상 등을 가리킨다.
貞元十九年春, 將行東南, 柳君宗元, 爲之請作詩.
貞元 19년(803) 봄에 동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려 할 적에, 柳宗元이 그를 위해 시를 지어달라고 요청하였다.
▶ 貞元 : 唐나라 德宗의 연호
▶ 柳君宗元 : 柳宗元. 한유와 함께 고문운동을 추진했던 문인. 〈작자약전〉 참고
解其裝, 得所得叙詩累百餘篇, 非至篤好, 其何能致多如是邪.
그의 행장을 풀어보니 그가 받은 시가 수백 편이었으니, 문학을 지극히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많게 되었겠는가?
▶ 其裝 : 그의 旅裝.
▶ 叙詩 : 남들이 지어 보내준 시.
▶ 致 : 이르다, 나아가다
惜其無以聖人之道告之者, 而徒擧浮屠之說, 贈焉.
그것으로 성인의 도를 일러준 것은 없고, 부질없이 불교의 이론을 논하여 써주었음이 애석하였다.
夫文暢浮屠也, 如欲聞浮屠之說, 當自就其師而問之, 何故謁吾徒而來請也?
저 문창은 중이매, 만약 불교의 이론에 대하여 알고 싶으면 마땅히 그의 스승에게 찾아가서 물어야 하지, 무슨 까닭으로 우리 문도를 찾아와 의견을 요청하겠는가?
彼見吾君臣父子之懿, 文物禮樂之盛, 其心必有慕焉, 拘其法而未能入.
그는 우리의 군신과 부자 관계의 아름다움과 문물과 예악의 성대함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흠모하나, 그 법에 얽매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 懿 : 큰 것. 위대한 윤리.
故樂聞其說而請之, 如吾徒者宜當告之以二帝三王之道, 日月星辰之所以行, 天地之所以著, 鬼神之所以幽, 人物之所以蕃, 江河之所以流而語之, 不當又爲浮屠之說而瀆告之也.
그리하여 성인의 이론을 듣기를 좋아하여 시를 요청하였을 터이니, 우리 儒者들은 마땅히 그에게 二帝三王의 道와 日月星辰이 운행하는 원리와 天地가 분명한 까닭과 귀신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과 사람과 만물이 번성하는 이유와 江河가 흐르는 까닭을 얘기해 주어야지, 역시 불교의 이론이나 펴면서 쓸데없는 것을 일러주어서는 안 된다.
▶ 二帝三王 : 堯·舜과 夏나라 禹王·商나라 湯王·周나라 文王과 武王.
▶ 蕃 : 번성하다, 많아지다.
▶ 瀆(독) : 함부로, 어지러이.
民之初生, 固若禽獸然, 聖人者立然後, 知宮居而粒食, 親親而尊尊, 生者養而死者藏.
사람이 처음 생겨났을 적에는 본시 새나 짐승과 같았는데, 성인이 나온 뒤에야 집에서 살며 곡식을 먹고, 어버이를 받들고 윗사람들을 모시며, 산 사람은 부양하고 죽은 사람은 장사지낼 줄을 알게 되었다.
▶ 宮居 : 집을 짓고 삶.
▶ 粒食 :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음.
▶ 親親 : 어버이(또는 친척)과 친근히 잘 지냄.
▶ 尊尊 : 윗사람을 잘 받들어 모심.
▶ 藏 : 매장하다, 장사지내다.
是故道莫大乎仁義, 敎莫正乎禮樂刑政, 施之於天下, 萬物得其宜, 措之於其躬, 體安而氣平.
그러므로 도에는 仁과 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는 예악과 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어서 그것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된다.
▶ 措 : 놓다, 두다, 적용하다.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ㆍ武, 文ㆍ武以是傳之周公ㆍ孔子, 書之於冊, 中國之人, 世守之, 今浮屠者, 孰爲而孰傳之邪.
堯임금은 이것을 舜임금에게 전하였고, 순은 이것을 禹왕에게 전하였으며, 우왕은 이것을 湯왕에게 전하였고, 탕왕은 이것을 文王과 武王에게 전하였으며, 문왕과 무왕은 이것을 周公과 공자에게 전하여, 그것을 책으로 지어놓아 중국인이라면 대대로 이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불교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하였는가?
▶ 冊 : 대쪽, 竹簡. 옛날에는 대쪽에 글을 종이 대신 책을 엮었다.
夫鳥俛以啄, 仰而四顧, 夫獸深居而簡出, 懼物之爲己害也.
새가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거나, 짐승이 숨어 살면서 드물게 나옴은 사물이 자기를 해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 俛 : 몸을 굽히다.
▶ 啄 : 먹이를 부리로 쫌.
▶ 簡出 : 때를 골라 위험하지 않을 때 나타남. 簡은 고름[選].
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今吾與文暢, 安居而暇食, 優游以生死, 與禽獸異者, 寧可不知其所自邪.
그렇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는데도, 내가 문창과 함께 편안히 거주하고 여유 있게 먹으며 편안히 살다가 죽을 수 있으매 금수와 다름을, 어찌 그 연유하는 곳을 몰라서 되겠는가?
▶ 猶且 : 그리고도 또.
猶는 부사로서 “그 남아 있는 여세가 사그러들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 있음”을 나타낸다. “아직도” “여전히” “오히려” “그래도”로 해석한다.
猶且, 猶然, 猶若, 猶尙, 猶自, 猶之 등의 다음절어는 그 뜻과 용법이 위와 같으니, “오히려” “아직도” “여전히”로 해석할 수 있으며, 猶에 다른 글자를 덧붙여 다음절어로 표시한 것은 다만 그 표현을 도드라지게 하여 요점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낼 뿐이다.
ex)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韓愈 師說》
옛날 성인은, 일반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오히려 스승을 좇아 물어서 배웠다. <허사 猶 참조>
▶ 不脫 : 위해에서 벗어나지 못함.
▶ 暇食 : 식생활에 여유가 있음.
▶ 優游 : 여유있게 마음대로 노님. 편안히 삶.
▶ 所自 : 그것이 온 바. 그 유래.
夫不知者, 非其人之罪也, 知而不爲之者惑也, 悅乎故, 不能卽乎新者弱也, 知而不以告之者不仁也, 告而不以實者不信也.
대저 알지 못함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나, 알면서도 행하지 않음은 미혹이며, 옛것을 좋아하여 새것으로 나아가지 못함은 약한 것이며, 알면서도 일러주지 않음은 不仁한 것이며, 일러주되 사실이 아니면 미덥지 않다.
余旣重柳請, 又嘉浮屠能喜文辭, 於是乎言.
나는 유종원의 요청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중이 문학을 좋아함을 가상히 여기매, 이렇게 말해 둔다.
▶ 旣 ~ 又 : 旣A 且B, 旣A 又B, 旣A 終B의 형식으로 양자를 병렬적으로 묶어 “A뿐만 아니라 B도”를 뜻한다. <허사 旣 참조>
¶ 旣竊時名, 又欲竊時之富貴. 《白居易: 與元九書》
일시적인 명성을 절취할 뿐만 아니라, 부귀도 또한 절취하려 한다.
▶ 於是乎 : 于(於)是乎, 于(於)是焉, 于(於)是乃(迺), 于(於)是遂는 모두 于(於)是[이렇게, 그리하여]와 같다.
¶ 夫州吁弑其君, 而虐用其民. 於是乎不務令德, 而欲以亂成, 必不免矣.
대저 위나라 州吁는 그의 임금을 죽이고, 그 백성들을 학대하면서 부리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덕을 힘써 닦지 않고, 어지러움으로써 성공하고자 하니, 반드시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허사 于 참조>
해설
浮屠는 '붓다'라는 梵語의 음역으로, 부처·불교 또는 중을 가리킨다.
文暢은 중의 法號이며, 師는 경칭으로 붙인 말이다.
이 글은 한유가 柳宗元의 부탁을 받고 문창이란 문학을 좋아하는 중에게 써 보낸 글로서, 그의 불교관이 잘 드러나 있다.
앞의 〈重答張籍書〉 및 〈上佛骨表〉와 함께 한유의 排佛論을 대표하는 글의 하나이다. 그는 불승과 교유하며 그로부터 많은 지식을 흡수하면서도, 불교 그 자체에 대하여는 유가의 입장에서 철저한 배척을 하고 있다.
아래는 작자 불명의 해설이다.
洪容齋曰:
홍용재(洪邁, 1123~1202)가 말했다.
“韓公送文暢云:
“한유가 문창을 전송하며 序에서 말했다.
‘文暢, 浮屠也, 欲聞浮屠之說, 當自就其師而問之, 何故謁吾徒而來請也?’
‘문창은 스님이니 불교의 말을 듣고자 한다면, 스스로 스승에게 가서 물어야지 무슨 이유로 우리를 만나 요청하는가?’
元微之「永福寺石壁記」云:
元微之(元稹)의 「永福寺石壁記」에서 일렀다.
‘佛書之妙奧, 僧當爲予言, 予不當爲僧言.’
‘불경의 오묘함을 스님이 마땅히 나에게 말해줘야 하지, 내가 스님을 위해 말함은 부당하다.’
二公之語, 可謂至當.”
한유와 원진 두 공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만하다.”
○ 此篇, 告以吾聖人之道, 而欲拔之浮屠之中, 略與「原道」之說, 相表裏.
이 글은 우리의 성인의 도를 말하여 불교에서 그글 빼내려 했으니 대략 「원도」의 주장과 서로 表裏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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