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30-平淮西碑(평회서비)-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15. 03:39

古文眞寶(고문진보)

平淮西碑(평회서비)-韓愈(한유)

 

天以唐克肖其德,聖子神孫,繼繼承承於千萬年,敬戒不怠,全付所覆,四海九州,罔有內外,悉主悉臣。
하늘이 唐나라가 선왕의 덕을 잘 본받고, 성스러운 子孫이 연이어 천만년을 지나도록 왕업을 계승하여, 공경하고 경계하며 게으르지 않으리라 여겼으매, 온 천하를 전부 맡기니, 四海九州의 안팎 없이 모두의 주인이 되어 모두를 신하로 삼았다.
克肖其德 : 그 덕이 선왕들과 잘 본받다. 곧 선왕의 덕을 잘 본받음. : 부사로서 :본받다
聖子神孫 : 성스러운 자식과 신령스런 손자. 곧 성스럽고 신령스런 자손들. 당나라 역대 황제들을 가리킴.
全付所覆 : 온 천하를 전부 맡기어 다스리게 하다. 所覆은 하늘이 덮고 있는 온 천하를 가리킴.
悉生悉臣 : 모든 고장의 임금노릇을 하며 모든 사람을 신하로 삼다.

高祖太宗,既除既治;高宗中睿,休養生息;至於玄宗,受報收功,極熾而豐,物眾地大,孽牙其間;肅宗代宗,德祖順考,以勤以容,大慝適去。
高祖(618~626 재위)와 太宗(627~649 재위)께서 잘 정리하여 다스리시고, 고종(650~683 재위)과 中宗(684~710 재위), 睿宗(711~712 재위)이 백성을 쉬게 하며 길러주어 생산이 번성하였으며, 玄宗(713~756 재위)에 이르러서는 報應과 功業을 거두어 지극히 왕성하고 풍부해졌으나, 물산이 많고 땅이 커지니 그때 재앙의 싹이 움트고 있었고, 肅宗(757~762 재위)과 代宗(763~779 재위)과 德宗(780~804 재위)·順宗(805 재위)께서는 부지런하고 너그러이 다스리시어 큰 도적은 잘 제거하였다.
極熾而豊 : 극히 성하고 풍부해지다.
蘗牙其間 : 그때 걱정의 싹이 트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던 것을 가리킴. 와 통함.
大慝 : 크게 邪慝한 자. 안녹산을 가리킴.

稂莠不薅,相臣將臣,文恬武嬉,習熟見聞,以為當然。
다만 가라지풀은 다 뽑아버리지 못하는데도, 재상이나 장수는 문인으로서 편안히 지내고 무인으로서 즐기기만 하려 하여, 견문에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여겼다.
稂莠(낭유) : 가라지풀. 殘賊을 가리킴.
() : 풀 뽑다, 풀을 베다.
文恬武嬉 : 문인은 편안히 지내고, 무인은 즐김.

睿聖文武皇帝,既受群臣朝,乃考圖數貢,曰:
「嗚呼!天既全付予有家,今傳次在予,予不能事事,其何以見於郊廟?」
성스러운 文武의 憲宗(806~820 재위)황제께서는 신하들의 入朝를 맞아, 지도를 살피며 공물을 셈하신 다음 말씀하셨다.
"아아! 하늘이 우리에게 온 천하를 내려주시고 다스리게 하시어, 지금은 차례를 따라 내게로 왕위가 전하여졌는데, 내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하느님과 조상을 뵙겠는가?”
考圖數貢 : 여러 지방의 지도를 상고하고, 각지에서 바치는 공물을 따져봄. 이 있는 고장의 지형을 연구하고, 어디에서 공물을 제대로 보내오지 않는지 따져 봄.
傳次 : 왕위가 전하여지는 차례.
事事 : 일을 제대로 처리함.


群臣震懾,奔走率職。
신하들이 떨고 두려워하여 분주히 직책을 수행하였다.

明年,平夏;又明年,平蜀;又明年,平江東;又明年,平澤潞;遂定易定,致魏、博、貝、衛、澶、相,無不從志。
이듬해(永貞1년, 805)에는 夏州를 평정하고, 또 이듬해(元和원년, 806)에는 蜀을 평정하고, 다시 이듬해(元和 2년, 807)에는 江東을 평정하고, 또 이듬해(元和5년, 810)에는 澤州와 潞州를 평정하고 다시 易州와 定州가 안정되고, 魏州·博州·貝州·衛州·澶州·相州가 뜻을 따르지 않는 일이 없게 되었다.
震懾 : 떨며 두려워함.
奔走率職 : 소가 놀란 듯 뛰어다니며 직책을 수행함.
平夏 : 夏州( : 陝西省 橫山縣 서쪽). 元和 원년(806) 3월에 夏綏留後 楊惠琳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夏州兵馬使 張承金이 그를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平蜀 : 劍南節度使 韋皐가 죽자 行軍司馬 劉闢留後라 자칭하고 원화 원년 정월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해 9월에 東川節度副使 高崇文이 그를 토벌하였다. 평촉은 지금의 四川省 지방인 에서 유벽의 반란을 평정한 것.
平江東 : 원화 2(807) 鎭海節度使 李鎬가 반란을 일으키자, 병마사인 張子良이 그를 잡아 京師로 보냄.
平澤潞 : 원화 5(810) 昭義節度使 盧從史의 반란을 평정함. 澤州는 지금의 山西省 晉城縣 동북에, 로주는 지금의 산서성 長治縣에 있던 고을 이름.
定易定 : 원화 5년에 義武節度使 張茂昭易州定州를 갖고 관군으로 귀부한 일을 가리킴. 두 고을 모두 후의 直隷省에 속하게 된 지역임.
致魏博貝衛澶相 : 원화 7(812) 10魏博節度使 田弘正이 그가 관할하던 여섯 고을을 갖고 관군에게 귀부한 일을 가리킴. 여섯 고을 모두 지금의 하남·하북 두 에 걸쳐 있었음.

皇帝曰:
「不可究武,予其少息。」
황제가 말하였다.
“무력을 끝까지 쓸 수는 없으니 나도 좀 쉬어야겠다.”
究武 : 무력을 궁극적으로 쓰다. 끝까지 무력을 쓰다.

九年,蔡將死。
元和 9년(814)에 蔡州의 장수 吳少陽이 죽었다.

蔡人立其子元濟以請,不許。
채주 사람들이 그의 아들 吳元濟를 刺史로 삼기를 소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蔡將 : 蔡州의 장수. 淮蔡節度使였던 吳少陽을 가리킴. 채주는 지금의 하남성 汝南縣.

遂燒舞陽,犯葉、襄城;以動東都,放兵四劫。
이에 舞陽을 불태우고 葉과 襄城을 침범하였고, 東都를 소동케 하며 군사를 풀어 사방을 약탈하였다.
舞陽 : 지금의 하남성 舞陽縣.
襄城 : 은 지금의 하남성 葉縣. 襄城은 지금의 하남성 襄城縣.
東都 : 장안에 대하여 洛陽을 가리킴.

皇帝歷問於朝,一二臣外,皆曰:
「蔡帥之不廷授,於今五十年,傳三姓四將;其樹本堅,兵利卒頑,不與他等。
因撫而有,順且無事。」
황제께서 조정에서 대책을 물으셨으나, 한두 신하 이외에는 모두 말하였다.
“채주의 장수가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이 지금까지 50년간 세 姓의 네 장수에게 전하여지며 그 뿌리가 굳게 박히었고, 무기가 예리하고 병졸도 완고하여 다른 곳과 같지 않으매, 잘 달래어 거느리어야만 순종하게 되고 무사할 터입니다.”
三姓四將 : 李忠臣·陳奇·吳少誠·李希烈 등 그곳 절도사를 지낸 세 가지 성의 네 명 장수를 가리킴.
撫而有 : 어루만지며 거느리다, 잘 달래며 거느리다.

大官臆決唱聲,萬口和附,並為一談,牢不可破。
대관들이 멋대로 결정하고 소리쳐 아뢰니 모든 사람의 입이 부화하여 다 함께 한가지 얘기만을 하여, 그 굳은 뜻을 깰 수가 없었다.
臆決唱聲 : 멋대로 그릇된 결단을 내리고 함께 소리내어 아룀.

皇帝曰:
「惟天惟祖宗所以付任予者,庶其在此,予何敢不力。
況一二臣同,不為無助。」
황제께서 말씀하셨다.
“하늘과 조상께서 내게 책임을 부여한 까닭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터이니, 내 어찌 감히 노력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한두 명의 신하가 내게 동조하니 돕는 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一二臣 : 반란군을 평정하려는 황제의 뜻에 동의한 元衡을 가리킴.

曰:

이어 차례로 명령하였다.


「光顏,汝為陳、許帥,維是河東、魏博、郃陽三軍之在行者,汝皆將之。」
“李光顔이여! 그대를 陳州와 許州를 다스리는 忠武節度使에 임명하니, 河東의 魏州·博州·郃陽의 行營 중인 三軍을 그대가 모두 통솔하시오!”
光顔 : 元和 9(814) 10陳州刺史 李光顔忠武節度使에 임명하였는데, 충무절도사는 陳州許州를 다스렸다.
河東 : 山西省의 황하 동쪽 지역을 가리킴.
在行者 : 行營중에 있는 자들. 출동중의 군대를 가리킴.

曰:
「重胤,汝故有河陽、懷,今益以汝,維是朔方、義成、陝、益、鳳翔、延、慶七軍之在行者,汝皆將之。」
“烏重胤이여! 그대는 본시 河陽과 懷州를 맡고 있었는데, 이제 汝州를 덧붙여 주노니, 북방의 義州·成州·陝州·益州·鳳翔·延州·慶州의 행영 중인 7軍을 그대가 모두 통솔하시오!”
重胤 : 원화 9년 윤8월에 河陽節度使 烏重胤汝州刺史로 임명하고 河陽懷汝節度使 직책도 겸하도록 하였다. 하양·회주·여주 모두 지금의 河南省에 있던 지명.

曰:
「弘,汝以卒萬二千屬而子公武往討之。」
“韓弘이여! 그대는 병졸 1만 2천 명을 그대의 아들 公武에 예속시키고 가서 토벌하시오!”
: 韓弘. 원화 109宣武節度使에서 淮西諸軍都統이 되었는데, 그의 요청으로 韓公武3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蔡下에서 만나 군대에 물자를 보급하였다.

曰:
「文通,汝守壽,維是宣武、淮南、宣歙、浙西四軍之行於壽者,汝皆將之。」
“李文通이여! 그대는 壽州를 수비하고 있으니, 宣武·淮南·宣歙·浙西의 四軍으로 수주에 행영하고 있는 군대를 그대가 모두 통솔하시오!”
文通 : 원화 1012월에 左金吾大將軍李文通壽州團練使에 임명하였다. 수주는 지금의 安徽省 壽縣.

曰:
「道古,汝其觀察鄂岳。」
“李道古여! 그대는 鄂州와 岳州의 관찰사 소임을 맡으시오!”
道古 : 원화 11(816) 黔州觀察使 李道古鄂岳觀察使에 임명하였다. 鄭州는 지금의 호북성 武昌縣, 岳州는 호남성 巴陵縣 부근이었다.

曰:
「愬,汝帥唐、鄧、隨,各以其兵進戰。」
“李愬여! 그대는 唐州·鄧州·隨州의 절도사이니 각기 그곳 군대로써 나아가 싸우시오!”
: 원화 1112월에 太子事 李恕唐鄧隨節度使에 임명하였다. ·2주는 하남성, 隨州는 호북성에 있었다.

曰:
「度,汝長御史,其往視師。」
“裵度여! 그대는 御史中丞이니 가서 군사를 돌보시오!”
: 裵度.
長御史 : 배도는 御史中丞이어서, 御史臺의 우두머리란 뜻임. 이는 원화 10년의 일임.

曰:
「度,惟汝予同,汝遂相予,以賞罰用命不用命。」
“배도여! 그대야말로 나와 뜻이 같으니 내게 재상이 되어, 명을 잘 받드는지 받들지 않는지에 따라 상벌을 내리시오!”
相予 : 내 재상이 되다. 원화 12년 매도는 재상으로서 淮西宣慰處置使로 나갔다. 이때 한유는 그 밑에 行軍司馬로 따라갔다.

曰:
「弘,汝其以節度都統諸軍。」
“韓弘이여! 그대는 절도사로서 都統諸軍이 되시오!”

曰:
「守謙,汝出入左右,汝惟近臣,其往撫師。」
“梁守謙이여! 그대는 좌우에 출입하는 근신이니 가서 군사를 선무하시오!”
守謙 : 내시인 梁守謙. 원화 1111월에 知樞密이었던 그로 하여금 군대를 宣慰하고 감독케 하였다.

曰:
「度,汝其往,衣服飲食予士,無寒無饑。
以既厥事,遂生蔡人。
賜汝節斧,通天御帶,衛卒三百。
凡茲廷臣,汝擇自從,惟其賢能,無憚大吏。
庚申,予其臨門送汝。」
“배도여! 그대는 가서 의복과 음식을 군사에게 대주어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하시오.
그 일을 완수하여 蔡州 사람들을 잘 살게 하시오.
그대에게 節斧와 通天御帶와 衛卒 3백 명을 하사하오!
조정의 신하를 그대가 택하여 스스로 거느리되, 오직 賢能을 택할 뿐 고관이라고 꺼리지 마시오!
庚申일에 내가 문앞에서 그대를 전송하겠소!”
旣厥事 : 그 일을 완수하다. 반란 평정을 완성하다.
節斧 : 황제가 대장에게 내리는 信標符節과 통수권의 상징인 도끼.
通天御帶 : 황제의 권한을 대행함을 상징하는 띠. 원화 128월 배도가 淮西로 나갈 때 황제가 친히 외뿔소 뿔로 장식한 犀帶를 내렸다.

曰:
「御史,予閔士大夫戰甚苦,自今以往,非郊廟祠祀,其無用樂。」
“御史여! 나는 사대부가 전쟁으로 심히 괴로움을 가엾게 여기니, 지금부터는 郊廟의 제사가 아니면 음악을 연주하지 마시오!”

顏、胤、武,合攻其北,大戰十六,得柵城縣二十三,降人卒四萬。
李光顏과 烏重胤과 韓公武가 그들의 북방을 合攻하여 열여섯 번 크게 싸워서 城柵과 고을 스물세 곳을 빼앗고 人卒 4만을 항복받았다.
顔胤武 : 李廣顔·烏重胤·韓公武.

道古,攻其東南,八戰,降萬三千,再入申,破其外城。
李道古는 그들의 동남쪽을 공격하여 여덟 번 싸워서 3천을 항복받고 다시 申州로 들어가 그 外城을 파괴하였다.
入申 : 원화 12(817) 李道古申州를 공격하여, 그 외성을 무너뜨렸다. 신주는 지금의 河南省에 있던 고을 이름.

文通,戰其東,十餘遇,降萬二千。
李文通은 그들의 동쪽에서 10여 차례 싸워 만 2천을 항복받았다.

愬,入其西,得賊將,輒釋不殺,用其策,戰比有功。
李愬는 그들의 서쪽으로 쳐들어가서 적장을 사로잡았으나 그때마다 풀어주며 죽이지 않았는데, 그 계책으로써 전투에 자주 공을 세웠다.
得賊將 : 李愬는 적장 李祐를 사로잡았으나 죽이지 않고 잘 대우하여, 뒤에 적을 공격함에 이용하였다.
: 자주

十二年八月,丞相度至師,都統弘責戰益急,顏、胤、武合戰益用命,元濟盡並其眾,洄曲以備。
元和 12년(817) 8월에 丞相 裵度가 군중에 이르니, 都統인 韓弘이 더욱 다급히 전투를 독촉하매, 이광안·오중윤·한공무가 合戰하며 더욱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니, 吳元濟는 그의 무리를 모두 모아 洄曲에서 대비하였다.
洄曲 : 時曲이라고도 하며, 하남성 商水縣 서남쪽에 있는 지명, 溵水가 여기에서 굽이쳐 흘러 洄曲이란 이름이 생겼다.

十月壬申,用所得賊將,自文城因天大雪,疾馳百二十里,用夜半到蔡,破其門,取元濟以獻,盡得其屬人卒。
10월 壬申일에 이소는 사로잡은 적장을 이용하여, 文城으로부터 큰 눈이 내리는 날씨를 틈타서 120리나 급히 달려 한밤중에 蔡州에 도착할 수 있었고, 성문을 깨트리고 오원제를 잡아 바친 뒤, 그의 부하들도 모두 사로잡았다.
文城 : 文城柵. 하남성 遂平縣 서남쪽에 있었다.

辛巳,丞相度入蔡,以皇帝命赦其人。
辛巳일에 승상 배도가 채주에 들어와서 황제의 명으로 그곳 사람들을 용서하였다.

淮西平,大饗賚功,師還之日,因以其食賜蔡人。
淮西 지방이 평정되자 크게 잔치를 벌여 樹功者를 상주고, 군대가 개선하는 날에는 그때 장만했던 음식을 채주 사람들에게 하사하였다.
大饗 : 크게 잔치를 벌임.
賚功 :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술·음식 따위를 내려줌.

凡蔡卒三萬五千,其不樂為兵,願歸為農者十九,悉縱之。
채주의 군졸 3만 5천을 통틀어 병졸 노릇을 좋아하지 않고 돌아가 농부가 되기를 바라는 자가 열에 아홉이었으매, 그들을 모두 놓아주었다.

斬元濟京師。
오원제를 京師에서 참수하였다.
悉縱之 : 그들을 모두 놓아주다.

冊功:弘加侍中;愬為左僕射,帥山南東道;顏、胤皆加司空;公武以散騎常侍,帥鄜坊丹延;道古進大夫;文通加散騎常侍
공로를 따져 한홍은 侍中으로 올리고, 이소는 左僕射가 되어 山南東道의 절도사를 겸하고, 이광안·오중윤에게는 모두 司空으로 올리고, 한공무는 散騎常侍로서 鄜坊丹延의 절도사를 겸하고, 이도고는 대부로 승진하고, 이문통을 산기상시로 올렸다.
冊功 : 공로를 따져서 상을 내림.
帥山南東道 : 山南東道節度使를 겸함.
帥鄜坊丹延(수부방단연) : 鄜坊丹延節度使를 겸직함.

丞相度朝京師,進封晉國公,進階金紫光祿大夫,以舊官相,而以其副摠為工部尚書,領蔡任。
승상 배도가 경사에서 황제를 朝見하매, 晉國公으로 승진하여 봉하고 金紫光祿大夫로 승진하고 옛 벼슬인 승상을 맡았으며, 그의 副使였던 馬摠은 工部尙書가 되어 채주를 다스리는 刺史가 되었다.
副摠 : 배도 아래 부사였던 馬摠.
領蔡任 : 마총에게 蔡州刺史를 겸직시킴.

既還奏,群臣請紀聖功,被之金石。
돌아와 戰功을 상주하고 나자 신하들이 위대한 공로를 기록하여 쇠나 돌에 새기자고 요청하였다.
請紀聖功 : 성스런 공로를 글로 기록할 것을 요청하다.
被之金石 : 쇠나 바위에 새겨놓음.

皇帝以命臣愈。臣愈再拜稽首而獻文曰:
황제께서 그것을 나 한유에게 명하셨으니, 나는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게 되었다.
: 이하가 본격적인 碑文이다.

唐承天命,遂臣萬邦。孰居近土,襲盜以狂。
당나라가 천명을 받들어 온 천하를 신하로 삼았으니, 누가 가까운 땅에 살면서 반란과 도둑질로 미쳐 날뛰랴?
襲盜以狂 : 반란과 도둑질로 미쳐 날뛰듯 행동함.

往在玄宗,崇極而圮。河北悍驕,河南附起。
지난날 玄宗 때는 극도로 흥성했다가 무너지매, 河北사람이 사납고 교만하고 河南사람이 덩달아 반란을 일으키네.
崇極 : 홍성이 극도에 다다름.
() : 무너지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세상의 평화가 무너진 것.
河北悍驕 : 하북 지방이 악독하고 교만하다. 안녹산의 난 뒤 ··지방에 연이어 반란이 일어났던 것.
河南附起 : 하남 지방에도 덩달아 반란이 일어나다. 鄆州·蔡州 등지에 반란이 일어난 것.

四聖不宥,屢興師征。有不能克,益戍以兵。
네 성왕께선 용서치 않으시고 여러 번 군사를 일으키어 정벌하셨고, 다 평정하지 못한 경우엔 병졸로써 수비를 강화하였네.
四聖 : 당 현종을 뒤이은 肅宗·代宗·德宗·順宗의 네 황제를 가리킴.
益戍 : 戍兵을 늘리다. 군사력으로 계속 견제함을 뜻함.

夫耕不食,婦織不裳。輸之以車,為卒賜糧。
남자는 농사지어도 먹지 아니하고 부인들은 길쌈하여도 입지 아니하며, 그것을 수레로 날라다 병졸에게 군량으로 대어주었네.

外多失朝,曠不嶽狩。百隸怠官,事亡其舊
그러나 이부에서 조정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많고 오래도록 四嶽을 巡狩하지 않고, 관리들은 업무에 태만하여 나랏일에 옛날의 법도가 없어졌네.
失朝 : 내조하지 않게 되다, 조정에 복종하지 않음.
曠不嶽狩 : 오랫동안 四嶽하지 못하다. 사악은 사방의 큰 산으로 전 국토를 뜻하며, 순수하지 못했다 함은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百隷 : 모든 관리.
事亡其舊 : 일이 옛날 같은 것이 없게 되다. 나랏일이 옛날처럼 잘 다스려지지 않게 됨.

帝時繼位,顧瞻諮嗟。惟汝文武,孰恤予家。
憲宗 황제께서는 이런 때에 왕위를 이으시어 사방을 돌아보고 한탄하셨네.
“그대들 문무백관들이여, 누가 우리 왕실을 구제해 주겠는가?”
: 당시의 헌종 황제.
惟汝文武 : 이 구절은 앞머리의 ; 嗚呼~” 구절의 내용임.

既斬吳蜀,旋取山東。魏將首義,六州降從。
吳·蜀을 평정하자 군사를 돌려 山東을 되찾았으며, 魏博절도사가 가장 먼저 의로움을 깨달아 여섯 州를 가지고 항복해 왔네.
斬吳蜀 : 앞머리의 '夏州를 평정하고, 을 평정했다'는 내용과 같은 말.
取山東 : 앞에서 江東澤州·를 평정하고, 易州·定州를 안정시켰다고 한 것을 가리킴.
魏將首義 : 魏州의 장수가 가장 먼저 의를 따르다. 魏博節度使 田弘正이 자신이 관장하던 여섯 고을을 갖고 항복한 일을 가리킴.

淮蔡不順,自以為強。提兵叫讙,欲事故常。
淮西의 蔡州는 순종하지 않고 자신을 강하다 여겨, 군사를 이끌고 시끄럽게 굴며 옛날대로 버티려 하였네.
提兵叫讙(제병규환) : 吳元濟가 스스로 蔡州刺史가 되어 군사를 일으키어 소란을 피운 것. 곧 앞에서 '舞陽·을 습격했다'고 한 일들을 가리킴. : 시끄럽다

始命討之,遂連姦鄰。陰遣刺客,來賊相臣。
비로소 그들을 토벌하라고 명하니 마침내 간사한 이웃과 결탁하고, 몰래 자객을 보내어 재상 武元衡을 해쳤네.
遂連姦鄰 : 마침내 간사한 이웃 사람과 연합하다. 곧 오원제가 王承宗·李師道 등과도 손을 잡고 반란을 도모했던 일을 가리킴.
陰遣刺客 : 남몰래 자객을 파견하다. 원화 10(815) 6월에 재상 武元衡이 입조했을 때, 이사도가 자객을 보내어 그를 찌르게 하였고, 이때 배도도 습격을 받아 머리를 다쳤다.

方戰未利,內驚京師。群公上言,莫若惠來。
전투를 시작함에 불리하여 안으로 장안을 驚動시키매, 신하들은 상주하여 은혜로써 달램이 좋겠다고 말하였네.
惠來 : 은혜를 베풀어 잘 달램.

帝為不聞,與神為謀。乃相同德,以訖天誅。
황제께선 듣지 아니하시고 天神과 의논하시어, 뜻이 같은 이를 재상으로 삼으시고 하늘의 誅罰을 완수하게 하셨네.
相同德 : 황제와 뜻이 같은 사람을 재상에 임명함.
訖天誅 : 하늘의 誅罰이 이르게 하다. 하늘을 대신하여 반역자들에게 벌을 내리다.

乃敕顏胤,愬武古通,咸統於弘,各奏汝功。
이에 이광안·오중윤·이소·한공무·이도고·이문통에게 명하여, 모두 한홍의 통솔을 받으며 각각 자신의 공로를 세우라 하셨네.
咸統 : 모두 통솔을 받다.
: 1.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여쭈다 2.바치다, 드리다 3.이루다, (공을)세우다

三方分攻,五萬其師。大軍北乘,厥數倍之。
세 방향으로 나뉘어 공격하니 그 군사는 5만이었고, 대군이 북쪽에서 가세하니 그 수가 2배가 되었네.
三方 : 李道古가 동남쪽에서, 李文通이 동쪽에서, 李愬가 서쪽에서 적을 공격한 것을 말한다.
北乘 : 북쪽에서 기습함. 李光顔·烏重胤·韓公武가 북쪽에서 함께 공격한 것을 가리킨다.

嘗兵洄曲,軍士蠢蠢。既翦陵雲,蔡卒大窘。
洄曲을 치고 나니 적군이 어지러워졌고, 陵雲을 뺏고 나니 채주의 병졸은 크게 궁지에 몰렸네.
洄曲 : 吳元濟洄曲에 그의 무리를 모아 저항하다가 李愬에게 잡혔다(앞 서문 참조.)
蠢蠢(준준) :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동요하는 모양.
翦陵雲 : 능운을 쳐서 뺏다. 능운은 하남성 商水縣 서북쪽에 있던 城柵 이름.

勝之邵陵,郾城來降。自夏入秋,複屯相望。
邵陵에서 싸워 이기니 郾城이 항복해 왔고,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거듭 屯兵하며 관망하였네.
邵陵 : 다음에 보이는 郾城縣 동쪽에 있던 성 이름.
郾城(언성) : 하남성 臨潁縣 남쪽에 있던 땅 이름. 원화 123월 이광안이 공격하자 그곳 수령과 守將이 모두 항복하였다.
複屯 : 거듭 군대를 주둔시키며 수비만 하도록 함.

兵頓不勵,告功不時。帝哀征夫,命相往釐。
싸움 멈추고 힘쓰지 않자 보고되는 전공이 불리해졌고, 황제께서는 출정한 군인을 가엾게 여기시고 승상에게 가서 돌보라 명령하셨네.
告功不時 : 전과의 보고가 불리하다. 와 통함. 원화 11(816) 6월에 唐鄧節度使 高霞寓鐵城에서 패하고, 128월 이광안이 賈店에서 패하고, 9월엔 적병이 溵水鎭을 공격했던 일을 가리킴.
命相往釐 : 승상 배도에게 명하여 가서 군사를 잘 돌보아주도록 한 것.

士飽而歌,馬騰於槽。試之新城,賊遇敗逃。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노래하고 말이 말구유 위로 뛰어오르매, 新城에서 싸우도록 해보니 적은 만나자마자 패하여 달아났네.
新城 : 郾城 근처에 있던 城砦 이름.

盡抽其有,聚以防我。西師躍入,道無留者。
그곳의 적을 모두 무찌르고 군사를 모아 아군을 방위하게 하고는, 西軍이 쳐들어가게 하니 길에 남아있는 적이 없었네.
盡抽 : 모두 뽑다, 모든 적을 쳐 없애다.
西師躍入 : 서쪽에서 군대가 뛰어 들어가다. 서쪽으로부터 적을 기습하다.

頟頟蔡城,其壃千里。既入而有,莫不順俟。
편안할 날 없던 채주 성은 그 땅이 사방 천리인데, 쳐들어가 점령하자 순종하며 처분을 기다리지 않는 자 없었네.
頟頟(액액) : 쉴 사이가 없음, 편안한 날이 없음.
順俟 : 순종하면서 처분을 기다림.

帝有恩言,相度來宣:誅止其魁,釋其下人。
황제의 은혜로운 말씀을 승상 裵度가 와서 선포하니, 처벌은 魁首에게 그치고 아랫사람은 모두 놓아주라는 것이네.
相度 : 승상 裵度.
誅止其魁 : 誅罰은 적의 魁首에서 그치다. 곧 적의 괴수만을 처형함.

蔡之卒夫,投甲呼舞;蔡之婦女,迎門笑語
채주의 졸개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소리치며 춤추고, 채주의 부녀자는 문앞에 나와 웃으며 얘기하였네.

蔡人告饑,船粟往哺;蔡人告寒,賜以繒布。
채주 사람들이 굶주림을 호소하자 배로 곡식을 날라다 먹였고, 채주 사람들이 헐벗음을 호소하자 비단과 무명을 나누어 주었네.
船粟往哺 : 배로 곡식을 실어 날라다 먹임.
繪布 : 비단과 무명.

始時蔡人,禁不往來;今相從戲,里門夜開。
처음엔 채주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서로 장난치며 마을 문을 밤에도 열어놓네.

始時蔡人,進戰退戮;今旰而起,左餐右粥
처음엔 채주 사람들이 전쟁에 나갔다간 죽어 돌아왔는데, 이제는 늦게 일어나 밥도 먹고 죽도 먹게 되었네.
() : 늦은 낮. 아침에 늦게.
左餐右粥 : 마음대로 밥도 먹고 죽도 먹음.

為之擇人,以收餘憊;選吏賜牛,教而不稅。
그들에게 사람을 골라주어 남은 피곤을 회복시키고, 관리를 뽑고 소도 내려주며 교화하되 세금은 거두지 아니했네.
收餘憊 : 나머지 피곤함을 거두어들이게 하다. 전쟁 뒤의 백성의 고통을 돌봄.

蔡人有言,始迷不知。今乃大覺,羞前之為。
채주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에는 미혹되어 알지 못했으나, 지금은 크게 깨닫고 보니 전날의 행위가 부끄럽다 하였네.

蔡人有言,天子明聖;不順族誅,順保性命。
채주 사람들이 말하기를 천자께서 명철하고 성스러우시니, 순종하지 않으면 멸족할 터이나 순종하면 생명을 보존하겠다고 하였네.

汝不吾信,視此蔡方;孰為不順,往斧其吭。
그대 나를 못 믿으면 이 채주 지방을 보라! 그 누가 순종 않으리? 가서 그의 목에 도끼질할 터인데!
往斧其吭 : 가서 그의 목구멍을 도끼질하다. 가서 그의 목을 도끼로 자르다.

凡叛有數,聲勢相倚;吾彊不支,汝弱奚恃;
반역자가 아직도 여럿 있어 기세를 믿고 서로 의지하고 있으나, 우리의 강함을 의지하지 못하면서 그대들의 약함에 어찌 의존하는가?

其告而長,而父而兄;奔走偕來,同我太平。
그대들 어른과 그대들 부형들에게 고하여, 급히 함께 달려와 우리와 함께 태평 누리세.
: . 그대들.

淮蔡為亂,天子伐之。既伐而饑,天子活之。
회서의 채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니 천자께서 토벌하셨고, 토벌한 뒤 굶주리자 천자께선 그들을 먹여 살리셨네.

始議伐蔡,卿士莫隨。即伐四年,小大並疑。
처음 채주 토벌을 의논할 적에 대신들이 아무도 따르지 아니하고, 토벌하기 4년에도 大小 신하들이 모두 의심했었네.

不赦不疑,由天子明。凡此蔡功,惟斷乃成。
반란을 용서치 않고 토벌을 의심치 않음은 천자의 명철에서 나왔네. 이 채주 정벌의 공은 오직 결단으로 이룬 것이네.

既定淮蔡,四夷畢來。遂開明堂,坐以治之
회서의 채주를 안정시키고 나니 四夷가 모두 來朝하네. 이에 明堂을 열고 앉아서 나라를 다스리네.
四夷 : 사방의 오랑캐들.
明堂 : 천자가 政敎를 펴고 제후들의 내조를 받는 곳.

 

 

 해설


淮西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吳元濟를 평정한 공로를 쓴 碑文이다. 원화 9년(814) 창의절도사 吳少陽이 죽자 그의 아들 오원제가 스스로 채주자사가 되어 이를 조정에 表請하였으나 윤허되지 않자 반란을 일으켰다. 회서는 淮水의 상류지방인 하남성 일대를 가리키며, 채주는 하남성 汝南縣이다.
이때 憲宗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의견이 같은 裵度를 승상으로 임명한 다음 회서 토벌을 결행한다. 그 결과 원화 12년(817)엔 李愬가 오원제를 사로잡아 이 지역을 곧 평정하게 된다. 원화 14년에는 오원제의 무리였던 李師道까지도 잡아 죽이게 된다.

원화 12년에 승상 배도는 淮西宣慰處置使로 토벌군을 독려하러 나갔는데, 이때 이 글의 작자인 한유는 배도 아래의 行軍司馬로 따라갔다. 그해 회서를 평정하고 조정으로 돌아오자 헌종은 한유에게 〈平淮西碑文〉을 지으라고 명하여 이 글을 짓게 되었다.


한유가 지은 이 비문은 배도를 중심으로 그 공로가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 오원제를 사로잡아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이소는 唐安公主의 사위여서 궁중을 자주 드나드는 처지였다. 이소가 한유의 비문이 사실과 어긋난다고 호소하여, 다시 段文昌에게 〈평회서비문〉을 짓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까지 단문창의 글은 별로 알려지지 아니하고 한유의 이글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는 단지 문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헌종의 뜻을 잘 받든 배도의 용단이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이 글의 내용도 그릇되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