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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 第二十五章 子曰: 「唯女子與小人為難養也,近之則不孫,遠之則怨。」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女子(侍妾)와 小人(奴僕)은 다루기가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養: 使(부리다) 또는 治(다스리다)의 뜻 此小人,亦謂僕隸下人也。 여기에서 말한 小人은 또한 僕隸와 下人을 말한다. 君子之於臣妾,莊以莅之,慈以畜之,則無二者之患矣。 君子[爲政者]가 臣妾에게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의 병폐가 없게 된다. ▶莅(리): 임하다
▣ 第二十六章 子曰: 「年四十而見惡焉,其終也已。」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으면 그대로 끝나고 만다.” 四十,成德之時。 40세는 德을 완성하는 때이다. 見惡於人,則止於此而已,勉人及時遷善改過也。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거기에서 그치고 말 터이니, 사람들에게 제때에 미쳐서 허물을 고치고 善으로 나아가기를 권면하셨다. 蘇氏曰 「此亦有為而言,不知其為誰也。」 蘇氏가 말하였다. “이것도 까닭이 있어서 말씀하셨겠지만,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 微子 第十八 此篇多記聖賢之出處, 이편에는 성현의 출처를 기록한 것이 많다. 凡十一章。 모두 11장이다 ▣ 第一章 微子去之,箕子為之奴,比干諫而死。 微子는 떠나갔고箕子는 종이 되고比干은諫하다가 죽었다. ▶마융,정현(마융의 제자),포함은 훈고학에 기초를 두고 논어를 주해함. ▶공안국은 공자의 후손으로 이론이 독특하였다 微、箕,二國名。 微와 箕는 두 나라 이름이다. 子,爵也。 子는 爵位이다. 微子,紂庶兄。 微子는 紂王의 庶兄이다.(紂王의 同母兄이다. 어머니가 왕비가 되기 전의 所生임) 箕子、比干,紂諸父。 箕子와 比干은 紂王의 諸父[叔父]이다. 微子見紂無道,去之以存宗祀。 微子는 紂王이 無道한 것을 보고 떠나가서 宗祀를 보존하였다. 箕子、比干皆諫,紂殺比干,囚箕子以為奴,箕子因佯狂而受辱。 箕子와 比干이 모두 諫하니..
▣ 第二章 柳下惠為士師,三黜。 柳下惠가 士師가 되어 세 번 내침을 당하였다. 人曰: 「子未可以去乎?」 혹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떠날 수 없었던가?” 曰: 「直道而事人,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何必去父母之邦。」 대답하였다. “道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겠는가? 道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어찌 굳이 父母의 나라〔故國〕를 떠나겠는가?” 士師,獄官。 士師는 獄官이다. 黜,退也。 黜은 내치는 것이다. 柳下惠三黜不去,而其辭氣雍容如此,可謂和矣。 柳下惠가 세 번 내침을 당하여도 떠나지 않고 그의 辭氣[말씨]가 雍容[和]함이 이와 같았으니, 和하다고 이를 만하다. ▶和聖(유하혜) 淸聖(백이 숙제) 然其不能枉道之意,則有確乎其不可拔者。 그러나 그가 道를 굽히지 못하는 뜻은 확고하여 ..
▣ 第三章 齊景公待孔子, 曰: 「若季氏則吾不能,以季、孟之閒待之。」 齊나라 景公이 孔子를 대우함에 대하여 말하였다. “季氏 같이는 내 능히 대우하지 못하겠거니와 季氏와 孟氏의 중간 정도로 대우하겠다.” 曰: 「吾老矣,不能用也」 “내 늙었으니, 등용하지 못하겠다.” 孔子行。 孔子께서 떠나셨다. 魯三卿,季氏最貴,孟氏為下卿。 魯나라 三卿 중에 季氏가 가장 貴하였고 孟氏가 下卿이었다. 孔子去之,事見世家。 孔子께서 떠나신 일은 《史記》〈공자世家〉에 보인다. 然此言必非面語孔子,蓋自以告其臣,而孔子聞之爾。 그러나 이 말은 필시 孔子를 대면하여 한 말이 아니요, 자신이 그 신하에게 말한 것인데, 孔子께서 들으신 것이다. 程子曰: 「季氏強臣,君待之之禮極隆,然非所以待孔子也。 以季、孟之閒待之,則禮亦至矣。 然復曰吾老矣不能用也,故..
▣ 第四章 齊人歸女樂,季桓子受之。 齊나라가 女樂[美女樂工]을 보내니, 季桓子가 그것을 받았다. 三日不朝,孔子行。 3日을 朝會하지 않자, 孔子께서 떠나셨다. ▶齊人: 제나라 임금을 낮추어 말함. 춘추필법 ▶歸: 饋의 가차 季桓子,魯大夫,名斯。 季桓子는 魯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斯이다. 按史記,「定公十四年,孔子為魯司寇,攝行相事。 齊人懼,歸女樂以沮之」。 《史記》를 상고해 보면, ‘定公 14년에 孔子께서 魯나라 司寇가 되시어 정승의 일을 攝行하시니, 齊나라가 (노나라가 강성해져서 병합될까) 두려워하여 女樂을 보내어 저지하였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受女樂而怠於政事如此,其簡賢棄禮,不足與有為可知矣。 夫子所以行也,所謂見幾而作,不俟終日者與?」 尹氏가 말하였다. “女樂을 받고 政事에 태만함이 이와 같았으니, 어진 이를..
▣ 第五章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何德之衰? 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 已而,已而!今之從政者殆而!」 楚나라 狂人인 接輿가 孔子 앞을 지나며 노래하였다. “鳳이여, 鳳이여! 어찌 그렇게 德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諫할 수 없거니와 오는 것은 그래도 다스릴 수 있다.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오늘날 政事에 종사하는 것은 위험하도다.” ▶諫: 匡正(바로잡다) ▶追: 隨 또는 治로 해석한다. 接輿,楚人,佯狂辟世。 接輿는 楚나라 사람이니, 거짓 미친 체하여 세상을 피하였다. 夫子時將適楚,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夫子께서 이때 楚나라로 가려 하셨다. 그러므로 接輿가 노래하며 그 수레 앞을 지나갔다. 鳳有道則見,無道則隱,接輿以比孔子,而譏其不能隱為德衰也。 봉황은 세상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
▣ 第六章 長沮、桀溺耦而耕,孔子過之,使子路問津焉。 長沮와 桀溺이 짝이 되어 밭을 가는데 孔子께서 지나시다가 子路를 시켜 나루를 묻게 하시었다. 二人,隱者。 두 사람은 隱者였다. 耦,並耕也。 耦는 함께 짝이 되어 밭을 가는 것이다. 時孔子自楚反乎蔡。 이때 孔子께서 楚나라로부터 蔡나라로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津,濟渡處。 津은 물을 건너는 곳이다. 長沮曰: 「夫執輿者為誰?」 長沮가 말하였다.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인가?” 子路曰: 「為孔丘。」 子路가 말하였다. “孔丘이십니다.” 曰: 「是魯孔丘與?」 “저분이 魯나라의 孔丘인가?” 曰: 「是也。」 “그렇습니다.” 曰: 「是知津矣。」 “그분은 나루를 알 터이오.” 執輿,執轡在車也。 執輿는 고삐를 잡고 수레에 있는 것이다. 蓋本子路御而執轡,今下問津,故夫..
▣ 第七章 子路從而後,遇丈人,以杖荷蓧。 子路가 陪從하다가 뒤처졌는데, 막대기로 대바구니를 멘 丈人을 만났다.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子路가 물었다. “어른께서 우리 夫子를 보았습니까?” 丈人曰: 「四體不勤,五穀不分。 孰為夫子?」 丈人이 말하였다. “四肢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 五穀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夫子라 하는가?” 植其杖而芸。 막대기를 세우고 김을 매었다. 丈人,亦隱者。 丈人도 隱者이다. 蓧,竹器。 蓧는 대그릇이다. 分,辨也。 分은 분별하는 것이다. 五穀不分,猶言不辨菽麥爾,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五穀不分란 菽麥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農業을 일삼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다니는 것을 책망하였다. 植,立之也。 植(치)는 세우는 것이다. 芸,去草也。 芸은 풀을 제거하는 것이다..
▣ 第八章 逸民: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少連。 逸民은 伯夷와 叔齊와 虞仲과 夷逸과 朱張과 柳下惠와 少連이었다. ▶逸民:節行超逸之民(절조와 행실이 뛰어난 隱士) ▶逸은 隱逸處士를 말하고 학식과 덕망으로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山林이라 한다. 逸,遺逸。 逸은 遺逸[벼슬길에서 빠져 있음]이요, 民者,無位之稱。 民이란 지위가 없는 이의 칭호이다. 虞仲,即仲雍,與大伯同竄荊蠻者。 虞仲은 곧 仲雍이니, 泰伯과 함께 荊蠻으로 도망한 자이다. ▶그리하여 막내 계력이 적통을 이었고 계력의 아들이 주문왕 창이다. ▶태백과 중옹은 창의 위인을 일찍이 알아보고 荊(오나라. 후의 초나라 지방)로 달아나서 계력이 후사를 잇도록 한 것이다. 夷逸、朱張,不見經傳。 夷逸과 朱張은 經傳에 보이지 않는다. 少連,東夷人。 少連은 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