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七章
子路從而後,遇丈人,以杖荷蓧。
子路가 陪從하다가 뒤처졌는데, 막대기로 대바구니를 멘 丈人을 만났다.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子路가 물었다.
“어른께서 우리 夫子를 보았습니까?”
丈人曰:
「四體不勤,五穀不分。
孰為夫子?」
丈人이 말하였다.
“四肢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 五穀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夫子라 하는가?”
植其杖而芸。
막대기를 세우고 김을 매었다.
丈人,亦隱者。
丈人도 隱者이다.
蓧,竹器。
蓧는 대그릇이다.
分,辨也。
分은 분별하는 것이다.
五穀不分,猶言不辨菽麥爾,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五穀不分란 菽麥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農業을 일삼지 않고 스승을 따라 멀리 다니는 것을 책망하였다.
植,立之也。
植(치)는 세우는 것이다.
芸,去草也。
芸은 풀을 제거하는 것이다.
子路拱而立。
子路가 손을 마주잡고 서 있었다.
▶예기에 ‘遭先生於道 正立拱手’라고 하였다
知其隱者,敬之也。
그가 隱者임을 알고 공경한 것이다.
止子路宿,殺雞為黍而食(사)之,見其二子焉。
子路를 만류하여 묵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그의 두 아들에게 자로를 뵙게 하였다.
明日,子路行以告。
다음날 子路가 떠나와서 <孔子께> 아뢰었다.
子曰:
「隱者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隱者이다.”
使子路反見之。
子路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시었다.
至則行矣。
도착해 보니 떠나고 없었다
孔子使子路反見之,蓋欲告之以君臣之義。
孔子께서 子路로 하여금 돌아가 만나보게 하신 것은 君臣의 義理를 말씀해 주려고 하셨다.
而丈人意子路必將復來,故先去之以滅其跡,亦接輿之意也。
丈人은 子路가 필시 다시 올 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떠나가 그 종적을 없앤 것이니, 또한 接輿의 뜻이다.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不可廢也;君臣之義,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行其義也。
道之不行,已知之矣。」
子路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義를 무시하는 것이다.
長幼의 禮節을 폐할 수 없는데 君臣의 義를 어떻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여 大倫을 어지럽히는 짓이다.
君子가 벼슬하는 것은 그 義를 행하는 것이다.
道가 행하여지지 않을 것은 이미 알고 계셨다.”
子路述夫子之意如此。
子路가 夫子의 뜻을 서술하기를 이와 같게 하였다.
蓋丈人之接子路甚倨,而子路益恭,丈人因見其二子焉。
丈人이 子路를 대한 것이 매우 거만하였으나 子路가 더욱 공손히 하자, 丈人은 인하여 그의 두 아들에게 뵙도록 했다.
則於長幼之節,固知其不可廢矣,故因其所明以曉之。
그렇다면 長幼의 禮節에 있어 본래로 폐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장인이 분명히 알고 있는 장유유서로써 깨우친 것이다.
倫,序也。
倫은 차례이다.
人之大倫有五: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是也。
사람의 큰 人倫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父子間에 친함이 있고, 君臣間에 義가 있고, 夫婦間에 분별이 있고, 長幼間에 차례가 있고, 朋友間에 믿음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仕所以行君臣之義,故雖知道之不行而不可廢。
벼슬하는 것은 君臣의 義를 행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비록 道가 행하여지지 않음을 알아도 폐하여서는 안 된다.
然謂之義,則事之可否,身之去就,亦自有不可苟者。
그러나 그것을 일러 義라고 하였다면, 일의 可否와 몸의 去就에 있어서, 또한 자연히 구차스럽게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是以雖不潔身以亂倫,亦非忘義以殉祿也。
이 때문에 자신을 깨끗이 한다고 人倫을 어지럽혀서도 안 되고, 또한 義를 잊고 祿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福州有國初時寫本,路下有「反子」二字,以此為子路反而夫子言之也。
福州에 國初[宋初] 때의 筆寫本이 있는데, 路字 아래에 反子 두 글자가 있다. 이 때문에 子路가 돌아오자, (자로가 아니라) 夫子께서 말씀하신 것이 된다.
未知是否?
이것이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范氏曰:
「隱者為高,故往而不反。
仕者為通,故溺而不止。
不與鳥獸同群,則決性命之情以饕富貴。
此二者皆惑也,是以依乎中庸者為難。
惟聖人不廢君臣之義,而必以其正,所以或出或處而終不離於道也。」
范氏가 말하였다.
“隱者는 <자신이> 고상하다고 여기므로 떠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벼슬하는 자는 <자신이> 통달했다고 여기므로 하류에 빠져서 중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鳥獸와 더불어 무리하지 않으면, 性命의 情을 터뜨려 富貴를 탐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미혹된 것이다. 이러므로 中庸에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 어렵다.
聖人만은 君臣間의 義를 폐하지 않으면서도 틀림없이 그 正道를 쓰니, 혹은 세상에 나가고 혹은 은둔하여도 끝내 道를 떠나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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