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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馬良白眉- 馬良이 白眉로서 5형제중에 가장 뛰어났다 蜀志 의 記事이다. 馬良字季常 襄陽宜城人. 馬良의 字는 季常이니 襄陽 宜城人이다.. 兄弟五人 並有才名. 형제 5명이 모두 재주가 있었다. 鄕里爲之諺曰 馬氏五常 白眉最良. 鄕里에서 그들을 두고 俗諺에 말하였다. '馬氏의 五常 중에 눈썹이 하얀 자가 가장 뛰어나다.' 良眉中有白毛. 故以稱之. 마량은 눈썹에 흰 털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先主稱尊號 以良爲侍中. 先主 劉備가 황제의 尊號를 칭하자 마량을 侍中으로 삼았다. 及東征吳 遣良入武陵 招納五溪蠻夷. 동쪽으로 吳나라를 칠 때, 마량을 武陵으로 보내서 五溪의 蠻夷를 받아들이게 하였다. ▶招納: 招引;接纳 예)招纳贤士 蠻夷渠帥皆受印號 咸如意指. 만이의 우두머리들은 마량의 말에 따라 모두 印號를 받..

阮籍靑眼- 阮籍은 靑眼 또는 白眼을 지어 사람을 대하였다. 晉書 의 記事이다. 阮籍字嗣宗 陳留尉氏人. 阮籍은 字가 嗣宗으로 陳留의 尉氏人이다. 爲散騎常侍 轉從事中郞. 散騎常侍가 되었다가 從事中郎으로 옮겼다. 聞步兵廚營人善釀 有貯酒三百斛 乃求爲步兵校尉. 步兵校尉의 주방 사람이 술을 잘 빚어서 술 3백 斛을 저장하고 있다 하므로, 이에 청원하여 步兵校尉가 되었다. 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완적은 禮敎에 구애받지 않고, 靑眼과 白眼을 지을 수 있었다. 見禮俗之士 以白眼對之. 세속의 예절을 따지는 선비를 만나면 백안으로 대하였다. 及嵇喜來弔籍作白眼 喜不懌而退. 嵇喜가 와서 弔喪하자 완적이 백안을 지으니, 嵇喜는 기뻐하지 않고 돌아갔다. 喜弟康聞之 乃齎酒挾琴造焉. 혜희의 아우 嵇康이 이 말을 듣고 술을 가지고 거문..

黥布開關- 黥布가 함곡관을 깨뜨렸다. ▶黥(경): 刺字하다. 죄인의 형벌로서 얼굴에 文身함을 말한다. 墨刑 前漢黥布六人. 前漢의 黥布는 六縣사람이다. 姓英氏. 姓은 英씨이다. 少時客相之 當刑而王. 젊었을 때 손님이 그의 相을 보고 말하였다. “형벌을 받고 王이 되겠다.” 及壯坐法黥. 欣然笑曰 人相我 當刑而王 幾是乎. 자라서 범법하여 죄를 얻어 黥刑을 받자, 기뻐하면서 웃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내 相을 보고 형벌을 받고 왕이 된다고 하더니, 이것을 말함이리라.” ▶坐法: 犯法获罪 聞者笑之. 듣는 사람이 비웃었다. 布以論輸驪山. 경포는 죄의 판결에 따라 驪山으로 옮겨졌다. ▶論: 定罪. 決罪 驪山之徒數十萬人. 여산의 죄수들 무리가 수십 만이나 되었다. 布與其徒長豪傑交通. 경포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와 豪..

張良燒棧- 張良이 棧道를 불태우라고 進言하다 前漢項羽自立爲西楚覇王 王梁楚地. 前漢 項羽는 자립하여 西楚의 覇王이 되어 梁楚의 땅에 군림하였다. 更立沛公爲漢王 王巴蜀漢中. 關中王이었던 沛公을 갈아서 세워 漢王으로 삼고, 巴蜀과 漢中의 왕이 되게 하였다. 漢王就國. 한왕이 영지에 갔다. 張良辭歸韓. 漢王送至褒中. 張良이 사퇴하고 韓나라로 돌아가는데 한왕은 褒中까지 餞送하였다. 因說漢王 燒絶棧道 以備諸侯盜兵 亦示羽無東意. 인하여 장량은 한왕을 설득하였다. “棧道를 불태워 끊어서, 諸侯의 반란에 대비하시고, 한편으로 항우에게 동쪽으로 나아갈 마음이 없음을 보이십시오.” ▶盜兵: 1.以狡诈手段取胜之兵。 2.叛乱之兵。 3.谓盗取兵权。指叛乱。 迺使良還行燒絶棧道. 이에 장량을 돌아가게 하고 잔도를 불살라 끊었다. [註..

陳遺飯感- 陳遺의 눌은밥에 하늘이 감응하였다 南史 의 記事이다. 宋初吳郡陳遺 少爲郡吏. 宋나라 초엽에 吳郡의 陳遺가 젊었을 때 郡吏가 되었다. 母好食鐺底焦飯. 어머니가 솥바닥의 눌은밥을 좋아하였다. ▶鐺: (당)쇠사슬 (쟁)솥 遺在役 常帶囊 每煮食 輒錄其焦以貽母. 진유가 근무할 때 항상 주머니를 차고 있다가, 밥을 지으면 눌은 것을 모아서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錄:收集;收藏 [collect; store up] 後孫恩亂 聚得數升 常帶自隨. 후에 孫恩의 난리에 눌은밥 두어 되를 모아서 항상 휴대하고 따라갔다. 及敗逃竄 多有餓死 遺以此得活. 적군에게 패하고 도망하여 숨게 되자, 주려 죽은 자가 많았으나, 진유는 이것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竄: 숨다 母晝夜泣涕 目爲失明 耳無所聞. 어머니는 밤낮으로 아들의..

淘侃酒限- 淘侃은 음주에 한도를 지켰다. 晉書 의 記事이다 陶侃字士行 鄱陽人. 陶侃의 字는 士行이니 鄱陽人이다. 徙潯陽. 潯陽으로 이사갔다. 早孤貧.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지냈다. 爲縣吏. 縣吏가 되었다. 孝廉范逵嘗過侃. 孝廉으로 范逵가 도간의 집을 지나다 들렀다. 時倉卒無以待賓客 其母乃截髮 得雙髲 以易酒肴. 이때 창졸간이라 손님 대접할 길이 없어서, 어머니가 머리털을 잘라 다리[髲] 두 개를 만들어서, 酒肴와 바꾸었다. ▶髮: 1.다리(여자들의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넣었던 딴 머리) 2.假髮 3.月子( 여자들의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넣었던 딴 머리) 樂飮極歡. 즐거이 술을 마시니 환락이 지극하였다. 雖僕從亦過所望. 비록 奴僕이라도 역시 바라지 못했던 은혜를 입었다. 侃至太尉‧都督荊江等諸..

楚昭萍實- 楚昭王이 개구리밥[萍]의 열매를 먹다. 家語曰 의 記事이다. 楚昭王渡江 江中有物. 楚昭王이 강을 건너는데, 강속에 어떤 물건이 있었다. 大如斗 圓而赤 直觸王舟. 크기는 말[斗]과 같고 둥글고 붉었는데 왕의 배에 부딪혔다. 舟人取之. 배 위의 사람이 그것을 가져왔다. 王怪問群臣 莫能識. 왕이 괴상히 여기고, 신하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使使聘魯 問孔子. 使者를 시켜 魯나라에 가서 孔子에게 묻게 하였다. 孔子曰 此萍實也. 可剖食之.吉祥也. 惟覇者爲能獲焉. 공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개구리밥의 열매[萍]이니 쪼개서 먹으면 길하고 상서롭다. 오직 覇者만이 이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使者反 王遂食之 大美. 사자가 초나라로 돌아왔고 왕이 드디어 그것을 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久之使來 ..

束晳竹簡- 束晳이 竹簡의 글을 해독하였다. 晉書 의 記事이다. 束晳字廣微 陽平元城人. 束晳의 字는 廣微이니 陽平의 元城人이다. 漢疎廣之後. 漢나라 疎廣의 후손이다. 廣曾孫避難徙居. 因去疎之足 遂改姓焉. 소광의 曾孫이 피난하여 이사왔는데, 疏자의 邊인 足을 버리고(疎-足= 束) 束으로 성을 바꾸었다. 晳博學多聞. 속석은 널리 배우고 들은 것이 많았다. 少遊國學 後爲佐著作郞. 젊어서는 國學에 유학하였고 뒤에는 佐著作郞이 되었다. ▶著作郞: 官名。三国魏明帝始置,属中书省,掌编纂国史。其属有著作佐郎(后代或称佐著作郎)﹑校书郎﹑正字等。 初太康二年汲郡人盜發魏襄王墓. 당초 太康 2년 汲郡 사람이 魏襄王의 墓를 도굴하였다. ▶盜發: 1.私下非法发掘。 2.私自开拆;私下泄露。 或言安釐王冢. 得竹書數十車. 혹은 安釐王 무덤이라고..

曼倩三冬- 曼情은 13세 겨울 석달에 文史를 익혔다 前漢東方朔字曼倩 平原厭次人. 前漢 東方朔의 字는 曼倩이니 平原 厭次人이다. 武帝擧方正‧賢良‧文學‧材力之士 待以不次之位. 武帝가 方正·賢良·文學·材力의 선비로 擧用하여 차서를 뛰어넘는 지위로 대우하였다. 四方士上書言得失 自衒鬻者以千數. 四方의 선비들이 글을 올려 得失을 말하였는데, 자신을 과시하는 자가 千을 헤아렸다. ▶衒鬻(현육): 1.叫卖;出卖。 2.犹夸耀。 朔上書曰 臣少失父母 長養兄嫂. 年十三學書三冬 文史足用. 十五學擊劒. 十六學詩書 誦二十二萬言. 十九學孫吳兵法戰陣之具鉦鼓之敎 亦誦二十二萬言. 又常服子路之言. 年二十二 長九尺三寸 目若懸珠 齒若編貝 勇若孟賁. 捷若慶忌. 廉若鮑叔 信若尾生. 若此可以爲天子大臣矣. 동방삭이 글을 올려 말하였다. “臣은 어려서..

陳思七步- 陳思王은 七步 안에 詩를 지었다 世說曰 에 말하였다. 魏文帝嘗令東阿王七步作詩 不成當行法. 魏文帝가 東阿王에게 七步에 詩를 짓게 하고, 짓지 못하면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卽應聲爲詩曰 煮豆持作羹 漉豉以爲汁. 萁在釜底然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를 지었다. ‘콩은 삶아서 콩국을 만드누나. 된장을 저어서 물이 나게 하누나. 콩깍지는 솥밑에서 타는데, 콩은 솥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났는데, 서로 지지기를 어찌 이리 급히 하는가?’ 帝深有慙色. 문제에게 몹시 부끄러운 안색이 있었다. 東阿卽陳思王曹植舊封. 東阿는 陳思王 曹植의 옛 封地이다. [註解] ▶世說- 의 記事이다. ▶東阿王- 曹植. 자는 建. 후에 陳思王에 봉해짐. ▶豉- 메주, 된장, 콩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