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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董遇三餘- 董遇는 三餘로써 제자를 가르쳤다 魏略 의 記事이다. 董遇字季直. 董遇의 字는 季直이다. 性質訥好學. 성질이 朴訥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與兄季中采梠負販. 형 季中과 함께 나무를 채취하여 지고 가서 팔았다. ▶梠: 처마(屋檐). ▶中采梠負: 是去山上砍柴,背来卖 常挾持經書 投閑習讀. 항상 經書를 끼고 있다가, 한가할 때 익히고 읽었다. ▶投: 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明帝時官至大司農. 明帝 때 벼슬이 大司農에 이르렀다. 初遇作老子訓注 又善左氏傳 更爲作朱墨別異. 처음에 董遇는 의 訓注를 지었고, 또 을 잘하여 다시 를 지었다. 人有從學者 遇不肯敎云 必當先讀百遍. 그를 좇아 배우는 자가 있으면 동우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마땅히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 言讀書百遍而義自見. 글을 백 ..

譙周獨笑- 譙周가 典籍을 誦讀하며 홀로 웃다 蜀志 의 記事이다. 譙周字允南 巴西西充國人. 譙周의 字는 允南이니 巴西의 西充國人이다. 耽古篤學. 옛것에 耽溺하고 학문에 專心하였다. 家貧未嘗問産業. 집이 가난하였으나 生業에 대하여는 물은 적이 없었다. 誦讀典籍 欣然獨笑 以忘寢食. 典籍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기뻐하며 홀로 웃었다. 이것으로 寢食을 잊었다. 硏精六經 尤善書札 頗曉天文. 六經을 정밀하게 연구하였는데, 게다가 書札을 잘 지었고, 자못 天文도 환히 알았다. 遷光祿大夫 位亞九列. 光祿大夫로 옮겨 지위가 九卿에 버금갔다. 及魏大將軍鄧艾入陰平 後主使群臣會議 計無所出. 魏大將軍 鄧艾가 陰平으로 들어가자 後主는 신하들에게 회의하게 했으나, 계책이 나오지 않았다. 或以爲 蜀與吳本爲和國. 宜可奔吳. 이렇게 말하기..

551將閭仰天- 將閭가 하늘을 우러러 자신의 무죄를 부르짖다 史記 의 記事이다. 秦公子將閭昆弟三人. 秦나라 公子 將閭는 형제가 3인이었다. 二世胡亥信趙高之謀 囚於內宮 議其罪 使使令將閭曰 公子不臣 罪當死. 吏致法焉. 二世 胡亥가 趙高의 꾀를 믿고, 內宮에 가두고 그의 죄를 의논하더니, 使者를 시켜 장려에게 명령하였다. “公子가 신하 노릇을 하지 않았으니, 죄가 사형에 해당한다. 관리는 법으로 죄를 다스려라.” ▶致法: 以法治罪。 將閭曰 闕廷之禮 吾未嘗敢不從賓贊也. 廊廟之位 吾未嘗敢失節也. 受命應對 吾未嘗敢失辭也. 何謂不臣. 願聞罪而死. 장려가 말하였다. “대궐과 조정의 예절에, 내 감히 賓贊을 따르지 않은 적이 없소. 조정의 지위에, 감히 절도를 잃은 적이 없소. 명령을 받고 應對함에도, 내가 감히 틀리게..

552王凌呼廟- 王凌이 賈逵의 사당에서 부르짖다 魏志 의 記事이다. 王凌字彦雲 太原祁人. 王凌의 字는 彦雲이니 太原 祁人이다. 爲征東將軍‧都督揚州諸軍事. 累遷太尉. 征東將軍 都督揚州諸軍事에서 여러 번 승진하여 太尉가 되었다. 假節鉞 謀廢齊王立楚王彪. 節鉞을 받고 齊王 曹芳을 폐하고 楚王 曹彪를 세우려고 도모하였다. 嘉平三年凌詐言 吳人塞涂水. 請發兵以討之. 嘉平 3년에 왕릉이 거짓으로 아뢰었다. “吳나라 사람들이 涂水를 막았으니, 청컨대 군사를 내어 이를 치겠습니다.” 司馬宣王知其計不聽. 司馬宣王은 그것이 계교임을 알고 따르지 않았다. 自帥中軍 汎舟到甘城. 스스로 中軍을 이끌고 배를 띄워 甘城에 도착하였다. 凌計無所出 乃迎于武丘 面縛水次曰 凌若有罪 公當折簡召凌. 何苦自來. 왕릉은 계교가 없어서, 武丘에서 ..

553二疏散金- 疏廣과 疏受가 하사받은 금을 마음껏 쓰다 前漢疏廣字仲翁 東海蘭陵人. 前漢의 疏廣은 字가 仲翁이니 東海 蘭陵人이다. 兄子受字公子. 형의 아들 疏受의 자는 公子이다. 宣帝時 廣爲太子太傅 受爲少傅. 宣帝 때 疏廣은 太子太傅가 되고 疏受는 少傅가 되었다. 太子每朝 因進見.太傅在前 少傅在後. 태자가 조정에 나갈 때마다 따라 들어가서 천자를 알현하기를, 태부는 앞에 서고 소부는 뒤에 있었다. 父子並爲師傅. 朝廷以爲榮. 부자가 모두 師傅가 된 것을 조정에서는 영화롭게 여겼다. 後廣謂受曰 吾聞知足不辱 知止不殆. 功遂身退天之道也. 豈如歸老故鄕 以壽命終. 뒤에 疏廣이 疏受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를,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다. 功을 이루고는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

陸賈分橐- 陸賈가 纏帶의 돈을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다 前漢 陸賈楚人 有口辯. 前漢의 陸賈는 楚나라 사람이니 구변이 있었다. 時中國初定. 이때 중국이 처음으로 평정되었다. 尉佗平南越 因王之. 남쪽에서는 尉佗가 南越을 평정하고 王이 되었다. 高祖使賈賜佗印爲南越王. 高祖는 육가를 사신으로 보내어 尉佗에게 印綬를 주고 南越王으로 삼게 하였다. 賈至 尉佗魋結箕踞見賈. 육가가 도착하자, 위타는 상투를 틀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그를 만났다. ▶魋結: 상투 賈因說佗 佗蹶然起謝賈 육가가 위타를 설득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육가에게 사례하였다. ▶蹶: 뛰다. 넘어지다. 蹶然: 갑자기 뛰어 일어남. 벌떡 일어남. 留與飮數月 賜賈槖中裝直千金.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몇 달 동안 연회를 열고, 육가에게 전대에 千金의 값어치..

慈明八龍- 荀慈明은 八龍이라 일컫는 아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後漢荀爽字慈明 潁川潁陰人. 後漢 荀爽의 字는 慈明이니 潁川 潁陰人이다. 父淑字季和 擧賢良方正對策 補朗陵侯相. 아버지 荀淑의 자는 李和이니 賢良方正科에 對策으로 천거되어 朗陵侯의 宰相에 임명되었다. 莅事明理. 稱爲神君. 일 처리하는 것이 이치에 밝아서 神人이라고 일컬어졌다. 有子八人. 荀儉‧荀緄‧荀靖‧荀燾‧荀汪‧荀爽‧荀肅‧荀旉 아들 8명이 있는데 儉‧儉‧靖‧燾‧汪‧爽‧肅‧旉이다. 並有名稱 時人謂八龍. 모두 명성이 있었으니, 당시 사람들이 八龍이라고 하였다. 爽幼好學 十二通春秋‧論語. 荀爽은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12세에 와 에 능통하였다. 太尉杜喬見而稱之曰 可爲人師. 太尉 杜喬가 만나보고 칭찬하였다. “사람들의 스승이 될 만하다.” 爽耽思經書 慶..

禰衡一鶚- 禰衡은 한 마리의 물수리이어서 백 마리의 매보다 나았다 ▶禰(이,예):아버지의 사당.신주 後漢禰衡字正平 平原般人. 後漢 禰衡의 字는 正平이니 平原 般人이다. 少有才辯. 어렸을 때부터 재주와 구변이 있었다. 尙氣剛傲 好矯時慢物. 氣槪를 숭상하며 굳세고 傲慢하여, 사람들을 교정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때로는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遊潁川 乃陰懷一刺. 潁川에서 交遊하면서, 비밀히 한 장의 명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旣無所之 至於刺字漫滅. 가서 만날 방법이 없었으므로, 명함의 글씨가 마멸되고 말았다. 時許都新建 賢士大夫四方來集. 이때 許都를 새로 건설하니, 어진 士大夫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或問衡曰 盍從陳長文‧司馬伯達乎. 어떤 사람이 예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陳長文과 司馬伯達과 같은 名士를 좇지 않..

不占殞車- 陳不占이 仁者之勇을 보이고 수레에서 죽었다 新序曰 에 말하였다. 齊崔杼弑莊公. 齊나라 崔杼가 莊公을 弑害하였다. 有陳不占者 聞君難 將赴之. 陳不占이란 자가 임금의 危難을 듣고 가보려고 하였다. 比去 餐則失匕 上車失式. 떠날 무렵에, 밥을 먹는 데 수저를 떨어뜨리고, 수레에 올라서는 수레의 가로나무를 놓쳤다. 御者曰 怯如是. 去有益乎. 수레를 모는 자가 말하였다. “그토록 겁을 내시니 가본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曰 死君義也 無勇私也. 不以私害公. “임금을 위하여 죽는 것은 의리요, 용맹이 없는 것은 개인의 일이니, 사사로움으로써 公事를 해칠 수 없다.” 遂往. 마침내 떠났다. 聞戰鬪之聲 恐駭而死. 가다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는 두려워서 놀라더니 죽었다. 人曰 不占可謂仁者之勇也. 사람들이 ..

子雲投閣- 揚子雲이 天祿閣에서 몸을 던지다 前漢揚雄字子雲. 前漢 揚雄의 字는 子雲이다. 年四十餘 自蜀來遊京師. 나이 40이 넘어 蜀 땅으로부터 京師(長安)로 왔다. 大司馬王音奇其文雅 召爲門下史. 大司馬 王音이 그의 문장과 風雅를 뛰어나다고 여기고, 불러서 門下史로 삼았다. 與王莽‧劉歆並. 王莽‧劉歆과 동렬에 있었다. 哀帝之初 又與董賢同官. 哀帝 초년에는 또 董賢과 같은 벼슬자리에 있었다. 當成‧哀‧平間 莽‧賢皆爲三公 權傾人主 所薦莫不拔擢. 成帝·哀帝·平帝 연간에 왕망과 동현은 모두 三公이 되어, 권세가 그 임금을 능가할 정도였고, 그 두 사람이 천거한 사람으로 발탁되지 않은 자가 없었다. 而雄三世不徙官. 그러나 양웅은 3世 동안 벼슬이 옮겨지지 않았다. 莽簒位 談說之士用符命稱功德 獲封爵甚衆. 왕망이 簒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