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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劉整交質- 劉整이 조카의 食代로 車帷를 저당잡다. 南史 의 記事이다. 劉整仕梁除中軍參軍. 유정이 梁나라에 벼슬하여 中軍參軍에 임명되었다. 初整兄寅爲西陽內史卒. 처음에 유정의 형 劉寅이 西陽內史가 되었다가 卒하였다. 其子往整墅 停住十二日. 그 아들이 유정의 별장에 가서 12일 동안 머물러 있었다. ▶墅: 별장. 농막 整就兄妻范求米. 范未還. 유정은 형수 范氏에게 가서 쌀을 청구했으나 범씨는 갚지 못하였다. 整怒仍自取范車帷爲質. 유정은 노하여 직접 범씨의 수레의 휘장을 가져다가 저당잡았다. 范詣臺訴. 범씨가 臺에 나가서 소송하였다. ▶臺: 御史臺. 관리의 감찰을 맡은 기관 御史中丞任昉論曰 昔人睦親 衣無常主. 整之撫姪 食有故人. 何其不能折契鍾庾 而襜帷交質.人之無情 一何至此. 實敎義所不容 紳冕所共棄. 臣請免整新..

五倫十起- 第五倫은 조카가 아플 때 하룻밤에 열 번 일어났다 後漢第五倫字伯魚 京兆長陵人. 後漢 第五倫의 자는 伯魚이니 京兆 長陵 사람이다. 爲京兆督鑄錢掾 領長安市. 경조의 督鑄錢掾이 되어 장안시를 다스리고 있었다. 時鑄錢多姦巧 倫平銓衡 正斗斛. 이때 鑄錢에는 간사하고 재주부리는 일이 많았으나, 第五倫은 저울을 공평하게 하고, 말(斗)과 섬(斛)을 정확하게 하였다. 市無阿枉 百姓悅服. 장안에 아첨하고 굽히는 일이 없으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복종하였다. 每讀詔書 常歎息曰 此聖主也. 一見決矣. 그는 詔書를 읽을 때마다 탄식하였다. “今上께서는 聖天子이시다. 한번 알현하고 의견을 아뢰면 결단을 내려주실 것이다.” 等輩笑之曰 爾說將尙不下. 安能動萬乘乎. 同輩들이 이를 비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州將을 설득하여 ..

張敞畫眉- 張敞이 부인의 눈썹을 그리다 前漢張敞字子高 平陽人 徙杜陵. 前漢의 張敞은 字가 子高이니 平陽人인데, 杜陵으로 이사하였다. 爲京兆尹. 경조윤이 되었다. 長安市偸盜尤多. 장안시에는 도둑이 더욱 많았다. 敞視事 窮治所犯 盡行法罰. 장창이 정사를 보게 되자, 범법한 자를 끝까지 다스리고, 법으로 벌주기를 극진히 하였다. 枹鼓稀鳴 市無偸盜. 북을 쳐서 죄인을 알리는 일이 드무니, 장안시에 도둑이 없어졌다. 敞本治春秋 以經術自輔. 장창은 본래 를 보아 익히고 經術로써 자신을 도왔다. 其政頗雜儒雅 表賢顯善 不醇用誅罰. 그 정치가 자못 儒雅했으니, 어진 사람을 표창하고 착한 사람을 나타내어 誅罰 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以此能自全. 이로써 자신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然無威儀. 그러나 위엄있는 행동이 없었다...

謝鯤折齒- 謝鯤이 여인을 꾀다가 이를 부러뜨렸다. 晉書 의 記事이다. 謝鯤字幼輿 陳國陽夏人. 謝鯤의 字는 幼輿이니 陳國 陽夏人이다. 少知名.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通簡有高識 不修威儀. 언행이 豁達하고 높은 식견이 있었으나, 威儀를 차리지 않았다. ▶通簡: 1.犹通刺。 2.豁达,不拘礼节。 東海王越辟爲掾. 東海王 司馬越이 불러서 掾吏가 되었다. 任達不拘 坐除名. 부하를 방임하고 단속하지 아니한 죄로 파직되었다. ▶任達: 放任旷达 ▶除名: 把姓名从名册上除掉,指取消原有资格,除籍 鯤淸歌鼓琴 不以屑意. 그러나 謝鯤은 맑은 노래를 부르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이것을 개의하지 않았다. 隣家高氏女有美色.鯤嘗挑之. 이웃집 高氏의 딸이 美色이 있어서 사곤이 일찍이 그를 꾀었다. 女投梭折其兩齒. 여인은 북(梭)을 던지어..

盛彦感螬- 盛彦이 굼벵이에 감사하다. 晉書 의 記事이다. 盛彦字翁子 廣陵人. 盛彦의 字는 翁子이니 廣陵人이다. 母因疾失明. 어머니가 병으로 인하여 失明하였다. 彦不應辟召 躬自侍養 母食必自哺之. 盛彦은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몸소 모시고 봉양하면서, 어머니가 먹는 것은 자신이 먹여주었다. 母疾久 婢使數見捶撻. 어머니의 병이 오래가자, 계집종은 자주 매를 맞았다. ▶使: 하인. 심부름꾼 ▶捶撻: 杖击,鞭打。 ▶捶: 때리다 婢忿恨 여종들은 분하여 한을 품었다. 伺彦暫行 取蠐螬炙飴之. 母食以爲美. 성언이 잠시 나간 틈에 婢女는 굼벵이를 구워서 먹였더니, 어머니는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였다. ▶飴: 飼(먹이다) 然疑是異物 密藏以示彦. 그러나 어머니는 이상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감추었다가 성언에게 보여주었다..

姜詩躍鯉- 姜詩는 샘물에서 나오는 잉어를 어머니의 반찬으로 삼았다. 後漢姜詩廣漢人. 後漢의 姜詩는 廣漢人이다. 事母至孝. 어머니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妻龐奉順尤篤. 아내 龐氏가 모시고 순종함이 더욱 도타웠다. 母好飮江水. 水去舍六七里. 어머니가 강물을 마시기를 좋아하는데, 물은 집에서 6, 7리 거리가 되었다. 妻常泝流而汲. 後値風不時得還 母渴. 아내는 항상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물을 길어왔는데, 어느 날 바람을 만나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니 어머니가 목이 마르게 되었다. 詩責而遣之. 강시는 아내를 꾸짖어 쫓아냈다. 妻寄止隣舍 晝夜紡績 市珍羞 使隣母以意自遺其姑. 아내는 이웃집에 붙어있으면서, 晝夜로 길쌈을 하여 맛있는 음식을 사다가, 이웃집 아주머니를 시켜 자신의 뜻이라며 시어미에게 보냈다. 如..

宗資主諾- 宗資는 남에게 위임하고 결재만 하였다 後漢桓帝受學於甘陵周福. 後漢의 桓帝가 甘陵의 周福에게서 受學하였다. 及卽位 擢爲尙書. 황제에 즉위하자, 주복을 발탁하여 尙書로 삼았다. 時同郡河南房植有名當朝. 이때 같은 郡 河南의 房植이 당시 조정에 명성이 있었다. 鄕人爲之謠曰 天下規矩房伯武 因師獲印周仲進. 시골 사람들이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 말하였다. “천하의 본보기는 房伯武요, 스승이기 때문에 출세한 것은 周仲進이다.” 二家賓客互相譏揣 各樹朋徒 漸成尤隙. 두 집의 賓客들이 서로 헐뜯고 비꼬더니, 각각 무리를 지어 점점 더 사이가 나빠졌다. ▶譏揣:谓猜度他人并加以讥评。 由是甘陵有南北部. 黨人之議自此始矣. 이로 인하여 감릉에 南北部가 있게 되니 黨人들의 의논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後汝南太守宗資任功曹范滂 ..

成瑨坐嘯- 成瑨은 남에게 위임하고 앉아서 휘파람만 불었다 後漢桓帝受學於甘陵周福. 後漢의 桓帝가 甘陵의 周福에게서 受學하였다. 及卽位 擢爲尙書. 황제에 즉위하자, 주복을 발탁하여 尙書로 삼았다. 時同郡河南房植有名當朝. 이때 같은 郡 河南의 房植이 당시 조정에 명성이 있었다. 鄕人爲之謠曰 天下規矩房伯武 因師獲印周仲進. 시골 사람들이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 말하였다. “천하의 본보기는 房伯武요, 스승이기 때문에 출세한 것은 周仲進이다.” 二家賓客互相譏揣 各樹朋徒 漸成尤隙. 두 집의 賓客들이 서로 헐뜯고 비꼬더니, 각각 무리를 지어 점점 더 사이가 나빠졌다. ▶譏揣:谓猜度他人并加以讥评。 由是甘陵有南北部. 黨人之議自此始矣. 이로 인하여 감릉에 南北部가 있게 되니 黨人들의 의논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後汝南太守宗資任..

伯成辭耕- 伯成子高는 벼슬을 내놓고 농사를 지었다 莊子曰 堯治天下 伯成子高立爲諸侯. 堯授舜 舜授禹. 伯成子高 辭爲諸侯耕. 에 말하였다. 堯가 천하를 다스리자 伯成子高는 諸侯가 되었다. 堯가 舜에게 帝位를 주고 舜이 禹에게 주자 백성자고는 제후의 자리를 사양하고 농사를 지었다. [註解] ▶莊子- 춘추시대 宋나라 사람. 이름은 周이지만 보통 莊子라고 존칭함. 그의 주장이 老子의 사상에 기초를 두었으므로 老莊이라고 병칭하기도 함. ▶堯- 요임금. 고대의 聖君으로 일컬어짐. ▶伯成子高- 堯임금 때 사람.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자 그는 諸侯가 되었고 요임금이 舜에게 帝位를 전하고 舜이 禹에게 제위를 전하자 그는 돌아가 농사를 지었다고 함. ▶舜- 堯임금의 선양을 받은 고대의 聖君. ▶禹- 夏나라를 창건한 聖王

嚴陵去釣- 嚴子陵이 낚시질하러 떠났다 後漢嚴光字子陵 會稽餘姚人. 後漢의 嚴光은 字가 子陵이니 會稽 餘姚人이다. 少與光武同遊學. 젊어서 光武帝와 함께 遊學하였다. 光武卽位 乃變名姓 隱身不見. 光武帝가 帝位에 오르자, 姓名을 바꾸고 몸을 숨겨 나타나지 않았다. 帝思其賢 乃令以物色訪之. 광무제는 그의 현명함을 생각하고, 형용을 가지고 찾게 하였다. ▶物色: 물색(어떤 기준에 맞는 사람, 물건 따위를 찾음). 形貌 後齊國上言 有一男子 披羊裘釣澤中. 뒤에 齊나라에서 아뢰었다. “어떤 남자가 양털로 만든 갖옷을 입고 늪지대에서 낚시질합니다.” 帝疑其光 乃備安車玄纁聘之 三反而後至. 광무제는 그가 엄광이라고 짐작하고, 安車에 玄纁을 갖추어 초청하였으나, 세 번 돌려보내고 나서 도착하였다. ▶安車: 앉아서 타는 수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