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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劉寵一錢- 劉寵이 한자루의 돈만 받다. 後漢劉寵字祖榮 東萊牟平人. 後漢의 劉寵은 字가 祖榮이니 東萊 牟平人이다. 拜會稽太守 山民愿朴 乃有白首不入市井者. 會稽太守에 임명되었는데 山民이 성실하고 순박하여, 白首가 되어서도 市井에 나오지 않는 자가 많았다. 頗爲官吏所擾. 자못 官吏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였다. 寵除煩苛 禁察非法 郡中大化. 유총이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까다롭게 살핌을 법으로 금하니, 郡이 크게 교화되었다. 徵爲將作大匠. 조정에서 불러서 將作大匠에 임명하였다. 山陰縣有五六老叟.厖眉皓髮 自若邪山谷間出 人齎百錢 以送寵. 山陰縣에 5, 6명의 늙은이가 厖眉皓髮로 若邪山 골짜기에서 나왔는데, 각각 백 錢을 지참하고 유총을 전별하였다. 寵勞之曰 父老何自苦. 유총이 위로하여 말하였다. “노인장들께서 어찌 이리 ..

廉范五袴- 廉范이 善政을 행하자 蜀民이 바지 5개를 가지게 되었다 後漢廉范字叔度 京兆杜陵人也. 後漢의 廉范은 字가 叔度이니 京兆 杜陵人이다. 肅宗時遷蜀郡太守 厲以淳厚. 肅宗 때 蜀郡太守로 벼슬을 옮겼는데, 엄격하면서도 순박하고 충후하였다. 成都民物豊盛 邑宇逼側. 成都는 백성과 물자가 풍성했으며, 건물이 틈도 없이 櫛比하였다. 舊制禁民夜作 以防火災. 舊制에 의하면, 백성들이 밤에 일하는 것을 금하여 이로써 화재를 방지했다. 而更相隱蔽 燒者日屬. 그러나 주민들은 서로 감추어 주니, 불타는 일이 날마다 이어졌다. ▶屬(촉): 잇다 范乃毁削先令 但嚴使儲水而已. 염범은 이에 야간작업 금지의 법령을 없애고, 그 대신 엄하게 물을 비축하게 할 뿐이었다. 百姓爲便歌曰 廉叔度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 今五袴. 백성..

氾毓字孤- 氾毓은 집안의 고아도 자식처럼 키웠다 ▶字孤:抚爱孤儿。语本《左传•成公十一年》:“已不能庇其伉俪而亡之,又不能字人之孤而杀之,将何以终?”南朝·梁·任昉《奏弹刘整》:“马援奉嫂,不冠不入;泛毓字孤,家无常子。” 晉書 의 記事이다. 氾毓字稚春 濟北盧人. 氾毓의 字는 稚春이니 濟北 盧人이다. 奕世儒素 敦睦九族. 여러 대에 걸친 宿儒로서 九族이 敦睦하였다. ▶奕: 크다. 잇닿다. ▶儒素: 1.儒者的素质,谓符合儒家思想的品格德行。 2.宿儒,名儒。 3.泛指儒士。 4.儒术,儒学。 5.指读书人家。 6.儒雅质朴。 客居靑州 逮毓七世. 靑州에 寄寓하기를 氾毓에 이르기까지 7世이었다. 時人號其家 兒無常父 衣無常主. 당시 사람들이 그 집안을 칭하였다. ‘아이에게 정해진 아비가 없고, 옷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다.' 少履高操 安貧有志業..

郗鑒吐哺- 郗鑒이 구걸한 밥을 토하여 식구를 먹이다 晉書 의 記事이다. 郗鑒字道徽 高平金鄕人. 郗鑒의 字는 道徽이니 高平 金鄕人이다. 少孤貧 博覽經籍.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했으나 널리 經籍을 보았다. 躬耕隴畝 吟詩不倦 以儒雅著名. 몸소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의 詩를 읊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儒學으로 평소에 이름이 났다. 成帝時爲太尉. 成帝 때 太尉가 되었다. 初値永嘉喪亂 在鄕里甚窮餒. 처음에 永嘉의 난을 만나 鄕里에서 몹시 곤궁하고 굶주렸다. ▶餒(뇌): 주리다 鄕人以鑒名德 傳共飯之. 마을 사람들이 치감을 名德이라 여기고, 돌아가며 밥을 먹여 주었다. ▶名德: 1.名望与德行。 2.指有名望德行的人。 時兄子邁 外甥周翼並小. 그때 형의 아들 郗邁와 外甥 周翼이 모두 어렸다. 常携之就食. 항상 이들을 ..

583苟弟轉酷- 苟晞의 아우 苟純이 형보다 더욱 혹독하게 정치하였다. 晉書 의 記事이다. 苟晞字道將 河內山陽人. 苟晞의 字는 道將이니 河內 山陽人이다. 爲兗州刺史. 兗州刺史가 되었다. 晞練於官事 文簿盈積 斷決如流 人不敢欺. 구희는 관청 일에 세련되어서, 文簿가 가득히 쌓여 있어도 決斷하여 裁決하기를 물이 흐르듯이 하니, 사람들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其從母依之 奉養甚厚. 그의 從母가 그에게 의지하였는데, 봉양하기가 몹시 후하였다. 其子求爲將 晞距之曰 吾不以王法貸人 將無後悔. 그 종모의 아들이 將校가 되기를 희망하였는데 구희는 거절하고 말하였다 “나는 王法이 있기 때문에 남을 용서하지 않는데, 장차 후회함이 없겠느냐?” 固欲之 晞乃以爲督護. 굳이 원하였으므로, 苟晞가 그를 都護로 삼았다. 後犯法 晞仗節斬..

嚴母掃墓- 嚴延年의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떠나 墓地를 소제하다 前漢 嚴延年字次卿 東海下邳人. 前漢 嚴延年는 字가 次卿이니 東海 下邳人이다. 遷河南太守. 野無行盜. 威震旁郡. 河南太守로 옮기자, 郊野에서 횡행하는 도둑이 없어졌고, 위엄이 이웃 고을까지 떨쳤다. 其治務摧折豪强 扶助貧弱 貧弱雖陷法 曲文以出之. 豪傑侵小民者以文內之 그의 정치는 부호와 强者를 누르고, 貧弱者를 돕는 데 힘써서, 貧弱者가 비록 법에 빠지더라도 법을 굽히어 석방하고, 豪傑로서 약한 백성을 침해하는 자는 법문을 적용하여 잡아들였다. 衆謂當死者 一朝出之 謂當生者 詭殺之. 사람들이 여기기에 마땅히 죽을 자는 하루아침에 내보내고, 마땅히 살릴 자는 속여서 죽이는 것이었다. 吏民莫能測其意深淺. 관리나 백성들은 그 뜻의 깊이를 알지 못하였다. 冬..

585洪喬擲水- 洪喬가 남이 부친 서신을 물에 던지다. 晉書 의 記事이다. 殷羨字洪喬 陳郡長平人. 殷羨의 字는 洪喬이니 陳郡 長平人이다. 爲豫章太守. 都下人士 因其致書者百餘函. 豫章太守 되었는데 都下의 人士들로서 그에게 글을 부친 것이 백여 상자나 되었다. 行次石頭 皆投之水中曰 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爲致書郵. 행차가 石頭에 이르자 그 글(편지)을 모두 물에 던지면서 말하였다. “가라앉을 것은 스스로 가라앉고 뜰 것은 스스로 뜨라. 洪喬는 편지를 전하는 배달부가 아니니라.” ▶致書: 寄信. 남에게 부친 서신 其資性介立如此. 그의 바탕과 성질이 高傲하기가 이와 같았다. ▶介立: 獨立, 形容孤教 [註解] ▶晉書- 47의 記事이다.에도 있음. ▶石頭- 도읍 建業의 西郊.

陳泰挂壁- 陳泰는 膳物받은 寶貨를 벽에 걸어두고 封緘을 뜯지 않았다. 魏志 의 記事이다. 陳泰字玄伯 司空群之子. 陳泰의 字는 玄伯이니 司空 陳群의 아들이다. 爲幷州刺史 加振威將軍‧使持節‧護匈奴中郞將. 幷州刺史가 되었는데 振威將軍을 더하여 使持節 護匈奴中郞將이 되었다. 懷柔吏民 甚有威惠. 그는 관리와 백성들을 부드럽게 달래어, 몹시 위엄과 은혜가 있었다. 京邑貴人多寄寶貨 因泰市奴婢. 泰皆挂之於壁 不發其封. 京師의 貴人들이 寶貨를 많이 보내왔다. 진태는 奴婢를 사서, 물건을 모두 벽에 걸어두게 하고 봉함을 뜯지 않았다. 及徵爲尙書 悉以還之. 그 후 부름을 받아 尙書가 되자 모두 돌려보냈다. [註解] ▶魏志- 권22 에 있음.

王述忿狷- 王述은 성질이 몹시 급하였다 晉書 의 記事이다. 王述字懷祖 東海太守承之子. 王述의 字는 懷祖이니 東海太守 王承의 아들이다. 安貧守約 不求聞達. 安貧하며 검소한 것을 지켰고, 聞達을 추구하지 않았다. ▶聞達: 이름이 世上에 드러남. 性沈靜. 성질이 침착하고 조용하였다. 年三十尙未知名 人或謂之癡. 나이 30이 되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혹 어리석다고 여겼다. 累遷尙書令 屢居州郡. 여러 번 벼슬이 옮겨져서 尙書令이 되고 여러 번 州郡에 있었다. 淸潔絶倫 祿賜皆散之親故. 淸廉高潔이 뛰어나서 祿賜는 모두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但性急爲累. 그러나 성질이 급한 것이 累가 되었다. 嘗食雞子 以箸刺之不得 大怒擲地. 일찍이 달걀을 먹는데, 젓가락으로 찔러도 되지 않자, 화를 내며 땅에 ..

荀粲惑溺- 荀粲이 美色에 惑溺하다 荀粲傳曰 에 말하였다. 粲字奉倩. 순찬의 자는 奉倩이다. ▶倩: (천)남자의 미칭. 예쁘다 (청)사위 常以婦人才智不足論. 自宜以色爲主. 여성의 才智 따위는 논할 가치도 없으니, 자신은 미색을 위주로 하겠다고 여겼다. 驃騎將軍曹洪女有美色 粲聘焉. 驃騎將軍 曹洪의 딸이 美色이 있어서 순찬이 처로 맞았다. 容服帷帳甚麗. 용모, 의복, 침실의 휘장이 몹시 고왔다. 專房燕婉.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歷年後 婦病亡. 1년이 지난 후에 부인이 병으로 죽었다. 傅嘏往唁. 粲不哭而神傷. 傅嘏란 사람이 와서 조상하였는데 순찬은 哭하지 않고 마음을 몹시 아파하였다. 嘏問曰 婦人才色並茂爲難. 子遺才而好色. 此自易遇 何哀之甚. 부고가 물었다. “婦人은 才色이 모두 뛰어나기가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