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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古岸子 稚珪蛙鳴- 稚珪의 집에서 개구리가 울다 南史 의 記事이다. 孔珪字德璋 會稽山陰人. 孔珪의 字는 德璋이니 會稽 山陰人이다. 齊明帝時 爲南郡太守. 齊나라 明帝 때 南郡太守가 되었다. 珪風韻淸疎 好文詠 飮酒七八斗 不樂世務. 孔珪는 풍도와 운치가 맑고 소탈하며 詩文을 좋아하고 술 7, 8斗를 마셨으며 세상의 일을 즐기지 않았다. ▶文詠: 詩文 居宅盛營山水 憑几獨酌 傍無雜事. 집에 있으면서 山水의 취미를 좋아하여 几案에 의지하고 혼자 술을 마시고, 신변의 잡된 일을 돌보지 않았다. 門庭之內 草萊不翦 中有蛙鳴. 집의 문과 뜰에는 풀과 쑥을 깎지 않아서 그 속에서 개구리가 울었다. 或問之曰 欲爲陳蕃乎. 어떤 사람이 물었다. “陳蕃이 되려 하는가?” 珪曰 我以此當兩部鼓吹. 何必效蕃. 공규는 말하였다. “내..

by 古岸子 彦倫鶴怨- 彦倫이 出仕하자 학이 원망하다 南史 의 記事이다. 周顒字彦倫. 周顒의 자는 彦倫이다. 宋元徽中 爲剡令. 宋나라 元徽 연중에 剡令이 되었다. 音辭辯麗 長於佛理 著三宗論 言空假義. 그는 文词와 언변이 아름다웠고, 불교의 교리에 뛰어나, 을 저술하여 空 ·假의 意義에 대하여 말하였다. ▶音辭: .言谈;辞令。 2.文词。 3.音调歌词。 入齊 終國子博士兼著作. 齊나라에 들어가서 國子博士 겸 著作郞으로 마쳤다. 大學諸生慕其風 爭事華辯. 大學의 諸生이 그의 풍도를 사모하여, 다투어 아름다운 변론을 일삼았다. 始著四聲切韻 行於時. 처음으로 을 저술하였고 그것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初隱鍾山. 及出爲縣令 孔稚珪過鍾山草堂 作北山移文. 처음에 鍾山에 은거하다가 나가서 縣令이 되었는데 孔稚珪가 언륜이 살던..

by 古岸子 廉頗負荊- 廉頗가 가시나무를 지고 藺相如에게 謝罪하다. 史記 의 記事이다. 廉頗爲趙將 藺相如拜上卿 位在頗右. 廉頗가 趙나라 장수가 될 때 藺相如는 上卿에 임명되었는데 그 지위가 염파보다 위였다. 頗曰 我爲將 有攻城野戰之大功. 而相如徒以口舌爲勞 位居我上. 且素賤人. 吾羞爲之下. 이에 염파가 말하였다. “나는 장수가 되어 攻城과 野戰의 큰 공이 있다. 인상여는 한갓 입과 혀를 수고롭게 했을 뿐인데 지위가 내 위에 있다. 또 본래 微賤하던 사람이다. 내 지위가 그의 아래에 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宣言曰 我見必辱之. 선언하였다. “내가 만나면 반드시 그를 욕보일 터이다.” 相如聞不肯與會. 인상여가 그 말을 듣고 함께 모이려 하지 않았다. 每朝時 常稱病 不欲與頗爭列. 조회 때마다 병을 稱託하여 염파..

by 古岸子 須賈擢髮- 須賈가 머리털을 뽑아도 贖罪가 안 된다며 사죄하였다 史記 의 記事이다. 范睢字叔 魏人. 范睢의 字는 叔이니 魏國人이다 遊說諸侯 欲事魏王. 諸侯들에게 遊說하여 魏王을 섬기게 하려고 하였다. 家貧無以自資.乃先事魏中大夫須賈. 처음에는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기에 먼저 魏나라 中大夫 須賈를 섬겼다. 賈使齊 睢從. 수가가 사신으로 齊나라에 갈 때 범수도 隨從하였다. 齊襄王聞睢辯口 乃使人賜金及牛酒. 齊襄王은 범수가 구변이 좋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돈과 쇠고기와 술을 내렸다. 賈怒以爲睢持魏國陰事告齊. 수가는 범수가 魏나라의 비밀한 일을 齊나라에 고한 까닭이라고 생각하여 노하였다. 旣歸以告魏齊. 귀국하고 나서 수가는 범수의 사건을 위나라 재상인 魏齊에게 고하였다. 齊怒使舍人..

by 古岸子 孔翊絶書- 孔翊이 請託의 글을 謝絶하였다 晉先賢傳 의 記事이다. 孔翊字元性. 爲洛陽令. 孔翊의 자는 元性이니 洛陽令이 되었다. 置水於庭 得求囑書 皆投水中 一無所發. 뜰에 물을 놓아두고 청탁하는 편지가 오면 모두 그 물속에 던지고 하나도 펴보는 것이 없었다.

申嘉私謁- 申屠嘉은 사사로운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前漢申屠嘉梁人. 前漢 申屠嘉는 梁나라 사람이다. 以材官蹶張 지방의 예비군으로 쇠뇌 [弩]를 발로 펼 정도였다. ▶材官: 1.谓区别各物的特性而加以利用,使物尽其能。 2.秦汉始置的一种地方预备兵兵种。 3.武卒或供差遣的低级武职。 4.主管工匠﹑土木之事的官署。 ▶蹶張: 1.亦作"蹷张"。 2.以脚踏强弩,使之张开。谓勇健有力。 3.借指弩箭。 4.气势汹汹的样子。 5.以手足支撑物体。 6.引申为勉力支拄。 從高帝擊楚. 고조를 좇아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孝文時稍遷至丞相. 孝文帝 때에 벼슬이 차츰 승진하여 승상에 이르렀다. 爲人廉直 門不受私謁. 사람됨이 청렴하고 곧았으므로, 집에서 사사로운 면회를 받지 않았다. 時鄧通方愛幸 居上旁 有怠慢之禮. 이때 鄧通이 바야흐로 임금의 사랑을 받..

by 古岸子 淵明把菊- 陶淵明에게 술이 없어서 국화를 잡고 앉아 있었다. 南史 의 記事이다. 陶潛字淵明. 或云 字深明名元亮. 陶潛의 자는 淵明인데, 혹은 자를 深明, 이름은 元亮이라고도 한다. 江州刺史王弘欲識之不能致. 江州刺史 王弘이 그와 사귀고자 했으나 이룰 수가 없었다. 潛嘗往廬山. 도잠이 廬山에 간 적이 있다. 弘令潛故人龐通之齎酒具 於半道要之. 王弘이 도잠의 친구 龐通之를 시켜 안주와 酒器를 가지고 도중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潛有脚疾.使一門生二兒擧籃轝. 도잠은 그때 다리에 병이 있어서, 한 門生과 두 아이에게 籃轝를 들게 하였다. 及至 欣然共飮. 그곳에 도착하여 기뻐하며 함께 마셨다. 先是顔延之在潯陽.與潛情款. 이보다 앞서 顔延之가 瀋陽에 있어 도잠과 몹시 가까이 지냈다. 後爲始安郡. 經過潛 臨去留..

by 古岸子 眞長望月- 眞長이 달을 보며 許詢을 생각하였다. 晉書 의 記事이다. 劉惔字眞長 沛國相人. 劉惔의 자는 眞長이니 沛國 相縣사람이다. 少清遠有標奇. 어렸을 때부터 기품이 맑고 高遠하여 남달랐다. ▶標奇: 与众不同 與母寓居京口 家貧織芒屩以爲養. 어머니와 함께 京口에서 타향살이를 하였는데, 집이 가난하여 짚신을 삼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雖篳門陋巷晏如也. 비록 대로 엮은 문에, 좁은 골목에 살아도 태연하였다. 王導深器之 後稍知名. 王導가 몹시 훌륭하다 여겼고 차츰 이름이 알려졌다. 惔雅善言理. 劉惔은 평소 이치를 말하기를 잘하였다. ▶雅: 평소 平素,素来:~爱。~善鼓琴。 簡文作相 惔與王濛並爲談客 俱蒙上賓禮. 당시 簡文帝가 會稽王이었는데 그의 정승이 되었고 王濛과 함께 談客이 되어 모두 上賓의 예우를..

by 古岸子 子房取履- 張子房이 신을 가져다 노인에게 신겨주다 前漢張良字子房 其先韓人. 前漢의 張良은 字가 子房이니 그 선조는 韓나라 사람이다. 嘗遊下邳圯上. 일찍이 下邳의 圯橋에 갔었다. 有一老父 衣褐 至良所 直墮其履圯下 謂曰 孺子下取履. 어떤 늙은이가 거친 베옷 차림으로 장량이 있는 곳으로 오더니, 곧장 자신의 신을 다리 아래에 떨어뜨리고 말하였다. “젊은이는 내려가서 신을 주워오게.” 良愕然欲歐之 爲其老 迺彊忍 下取履 因跪進. 장량이 깜짝 놀라서 때리려 하다가, 늙은이임을 생각하여 억지로 참고 내려가서 신을 가져다 무릎을 끓고 노인에게 드렸다. 父以足受之 笑去. 노인은 발로써 신을 받고 웃으면서 떠났다. 復還曰 孺子可敎矣. 後五日平明 與我期此. 다시 돌아와서 말하였다. “젊은이는 가르칠 만하겠구나...

by 古岸子 釋之結鞭- 張釋之가 王生의 버선을 매어주다 前漢張釋之字季 南陽堵陽人. 前漢의 張釋之는 字가 季이니 南陽 堵陽人이다. 以貲爲騎郞 事文帝. 재물로써 騎郎이 되어 文帝를 섬겼다. 十年不得調 亡所知名. 10년이 되도록 임용되지 않아 이름을 아는 자가 없었다. 後拜廷尉. 持議平 天下稱之. 뒤에 廷尉에 임명되자 持論이 공평하여 천하가 그를 칭송하였다. ▶持議: 持論 王生者善爲黃老言. 王生이란 자는 黃老의 말을 잘하였다. 嘗召居廷中 公卿盡會立. 불러서 조정에 있게 한 적이 있었는데 公卿이 모두 모여 서 있었다. 王生老人 曰 吾襪解. 王生 老人이 말하였다. “내 버선이 풀어졌다.” 顧謂釋之 爲我結襪. 장석지를 돌아다보고 말하였다. “내 버선을 묶어다오.” 釋之跪而結之. 장석지가 무릎을 꿇고 버선을묶어 주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