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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556-禰衡一鶚(예형일악)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556-禰衡一鶚(예형일악)

구글서생 2023. 3. 26. 00:46

蒙求(몽구) 禰衡一鶚(예형일악)

禰衡一鶚- 禰衡은 한 마리의 물수리이어서 백 마리의 매보다 나았다
(,):아버지의 사당.신주

 

後漢禰衡字正平 平原般人.
後漢 禰衡正平이니 平原 般人이다.

 

少有才辯.

어렸을 때부터 재주와 구변이 있었다.

 

尙氣剛傲 好矯時慢物.

氣槪를 숭상하며 굳세고 傲慢하여, 사람들을 교정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때로는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遊潁川 乃陰懷一刺.

潁川에서 交遊하면서, 비밀히 한 장의 명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旣無所之 至於刺字漫滅.

가서 만날 방법이 없었으므로, 명함의 글씨가 마멸되고 말았다.

 

時許都新建 賢士大夫四方來集.

이때 許都를 새로 건설하니, 어진 士大夫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或問衡曰

盍從陳長文‧司馬伯達乎.

어떤 사람이 예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陳長文司馬伯達과 같은 名士를 좇지 않는가?”

 

對曰

吾安能從屠沽兒邪.

대답하였다.

내가 어찌 그렇게 천한 사람들을 따를 수 있겠소?”

屠沽兒: 도살업자와 술을 파는 자. 천한 직업을 가진 자.

 

又問

荀文若‧趙稚長云何.

또 물었다.
荀文若趙稚長은 어떠한가?”

 

衡曰

文若可借面弔喪.

稚長可使監廚請客.

예형이 말하였다.
文若은 가히 얼굴을 빌어 弔喪할 만하오.

稚長은 주방을 감독하고 손님이나 청하게 할 만하오.”

 

唯善孔融‧楊脩. 常稱曰

大兒孔文擧 小兒楊德祖.

餘子碌碌莫足數.

오직 孔融楊脩은 좋아하여 항상 칭찬하였다.

大兒孔文擧小兒楊德祖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용렬하여 헤아릴 것이 못된다.”

 

融亦深愛其才.

공융도 그의 재주를 깊이 아꼈다.

 

衡始冠 而融四十 遂爲們友.

예형은 겨우 冠禮를 했고 공융은 40세인데 사귀는 벗이 되었다.

 

上書薦之. 有云

鷙鳥累百 不如一鶚.

공융은 글을 올려 천거하였는데 거기에 일렀다.

수백 마리의 매를 얻는 것이, 한 마리의 큰 물수리를 얻는 것만 못합니다.”

 

融數稱述於曹操. 操以其言悖逆 送與劉表.

공융이 자주 曹操에게 예형을 칭찬하였으나, 조조는 예형의 말이 悖逆하다고 하여 劉表에게 보내버렸다.

 

表不能容. 送與江夏太守黃祖.

유표도 예형을 용납하지 못하여, 江夏太守 黃祖에게 보냈다.

 

祖性急 衡言不遜 遂殺之.

黃祖는 성질이 급하여, 예형의 말이 공손치 못하다며 그를 죽였다.

 

年二十六.

예형의 나이 26세였다.

[註解]
後漢- <한서><열전> 52 記事이다.

陳長文- 삼국시대 나라 사람. 이름은 . 孔融과 친하였는데 曹操가 불러서 司空이 되었다.
司馬伯達- 後漢 사람. 이름은 , 벼슬은 兗州刺史.

屠浩兒- 돼지 잡고 술파는 사람. 경솔하고 천한 사람의 비유.
荀文若- 荀彧. 後漢 사람. 曹操 밑에서 奮武司馬가 됨.
碌碌- 용렬함.
劉表- 東漢사람. 자는 景升. 曹操 袁紹와 싸울 때 中立을 지키고 傍觀하였음. 이때 그는 荊州刺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