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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古岸子 郭伋竹馬- 郭伋의 행차에 아이들이 죽마를 타고 환영하다. ▶伋: 속이다 後漢郭伋字細侯. 後漢 郭伋의 자는 細侯이다. 少有志行. 젊어서 志向과 操行이 있었다. ▶志行: 志向(뜻이 지향하는 바)和操行(절조있는 행실) 王莽時爲幷州牧. 建武中復爲牧. 王莽 때 幷州牧이 되었다가 建武 연중에 다시 병주목이 되었다. 伋前在幷州 素結恩德 及後入界 老幼相携 逢迎道路. 곽급은 먼젓번 병주에서 평소 恩德을 베풀었으므로, 뒷번에 州의 경계에 들자 老幼가 서로 이끌고 길에서 맞았다. 所過問民疾苦 聘求耆德雄俊 設几杖之禮 朝夕與參政事. 곽급은 지나는 곳마다 백성의 괴로움을 물었고, 耆德과 雄俊을 초치하여 几杖의 예를 베풀고, 朝夕으로 정사에 함께 참여하였다. ▶耆德: 年高德劭﹑素孚众望者之称 ▶雄俊: 英雄俊杰 始至行部 ..

by 古岸子 劉寬蒲鞭- 劉寬은 너그러워 부들 채찍으로 벌을 주었다. 後漢劉寬字文饒 弘農華陰人. 後漢의 劉寬은 字가 文饒이니 弘農 華陰人이다. 桓帝時 遷南陽太守 典歷三郡. 桓帝 때 南陽太守로 옮기고 三郡의 군수를 거쳤다. 溫仁多恕. 雖在倉卒 未嘗疾言遽色. 온화하고 인자하며 용서하는 일이 많아서 비록 창졸간이라도 빨리 말하거나 안색을 갑자기 바꾸는 적이 없었다. 吏人有過 但用蒲鞭罰之 示辱而已. 아전과 백성에게 과실이 있으면 다만 부들 채찍으로 벌하여, 욕을 보일 뿐이었다. 靈帝時爲太尉. 靈帝 때 太尉가 되었다. 帝頗好學藝 每引見常令講經. 영제가 자못 學藝를 좋아하여 매양 引見하고 經書를 講義하게 하였다. 寬常於坐被酒睡伏. 유관은 자리에서 술에 취하여 机案에 엎드려 잠든 적이 있었다. ▶被酒: 为酒所醉。犹中酒..

by 古岸子 許史侯盛- 許氏와 史氏에 列侯가 많았다 前漢宣帝許皇后 元帝母也. 前漢 宣帝의 許皇后는 元帝의 어머니이다. 爲霍光夫人顯所毒崩. 霍光의 夫人인 顯의 독살로 崩하였다. 及元帝爲太子 迺封后父廣漢爲平恩侯 其弟舜爲博望侯 延壽爲樂成侯. 許氏侯者三人. 원제가 太子가 되자 許皇后의 아버지 許廣漢을 봉하여 平恩侯로 삼고, 그 아우 許舜은 博望侯로 삼고 許延壽를 樂成侯로 삼으니 許氏로서 諸侯가 된 자는 세 사람이었다. 廣漢薨 諡戴侯. 광한이 세상을 떠나자 諡號를 戴侯라 하였다. 宣帝以延壽爲大司馬‧車騎將軍輔政. 宣帝는 許延壽를 大司馬‧車騎將軍로 삼고 정사를 보좌하게 하였다. 元帝立 復封延壽中子嘉爲平恩侯 後亦爲大司馬‧車騎將軍. 원제가 즉위하자 다시 許延壽의 中子 許嘉를 봉하여 平恩侯로 삼았다가 뒤에 역시 大司馬 車..

by 古岸子 韋平相延- 韋賢과 平當은 父子가 재상이 되었다 前漢韋賢及子玄成皆爲丞相. 前漢의 韋賢과 아들 玄成은 모두 丞相이 되었다. 平當字子思 平陵人. 平當의 字는 子思이니 平陵人이다. 以明經爲博士. 明經으로 博士가 되었다. 公卿薦當 論議通明. 給事中. 公卿들이 平當을 천거하며 그의 論議가 아주 밝다고 하여 給事中이 되었다. 每有災異 輒傅經術言得失. 그는 天災地異가 있을 때마다 經術을 가르쳐 주고 得失을 말해 주었다. ▶經術: 經學 文雅雖不及蕭望之‧匡衡 然指意略同. 문장의 고상함은 비록 蕭望之‧匡衡에 미치지 못해도 뜻은 대략 같았다. 哀帝時爲丞相. 哀帝 때 丞相이 되었다. 上召欲封當. 當病篤不應召. 임금이 불러 평당을 列侯에 봉하려고 했으나 평당은 병이 위독하여 부름에 응하지 못하였다. 或謂當 不可强起受..

by 古岸子 雍伯種玉- 雍伯이 옥을 심다 搜神記 의 記事이다. 羊公雍伯洛陽人. 性篤孝. 羊公 雍伯은 洛陽사람이니 성품이 효도를 견지하였다. 父母亡 葬無終山 遂家焉. 부모가 죽자 無終山에 장사지내고 그곳에서 살았다. 山高無水. 公汲作義漿於坂頭 行者皆飮之. 산은 높고 물이 없어서 공이 물을 길어다가 고개 자락에 ‘義漿’을 만드니 다니는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셨다. 三年有一人就飮. 出懷中石子一升 與之云 種此. 玉當生其中. 又得好歸. 3년이 되어, 어떤 사람이 와서 물을 마시더니 주머니 속에서 돌 한 되를 꺼내 주면서 말하였다. “이 돌을 심으면 그 속에서 옥이 나오고, 좋은 부인도 얻을 터이오.” ▶歸: 古代稱女子出嫁 言畢不見.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乃種其石. 數歲時時往視 見玉子生. 이에 그 돌을 심었다..

by 古岸子 黃尋飛錢- 黃尋이 날아온 돈으로 부자가 되다 幽冥錄 의 記事이다. 海陵黃尋先貧. 海陵의 黃尋은 이전에는 가난했었다. 因大風雨 散飛錢 至其家. 거센 바람과 비로 인하여 날아온 돈이 그의 집으로 왔다. 觸籬園 誤落者無數. 울타리와 동산에 부딪쳐서 마구 떨어진 것이 수없이 많았다. 餘處皆拾得 富至數千萬 擅名江北. 다른 곳에서도 모두 주워서, 부유함이 수천 만에 달하였고, 이름을 강북에 드날렸다.

by 古岸子 王允千里- 王允은 천리마의 재주를 가졌다. 後漢王允字子師 太原祁人. 後漢의 王允은 字가 子師이니 太原 祁縣人이다. 郭林宗見而奇之曰 王生一日千里 王佐才也. 郭林宗이 만나보고 非凡하게 여겨 말하였다. “王生은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駿馬와 같으니 王佐의 인재이다.” 遂與定交. 그와 사귐을 맺었다. 允少好大節 有志於立功. 왕윤은 젊었을 때 고상한 절조를 좋아하고 공을 세우는 데 뜻을 두었다. 常習誦經傳 朝夕試馳射. 항상 經傳을 외우고 朝夕으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시험하였다. 三公並辟 以司徒高弟爲侍御史. 獻帝時爲司徒. 三公이 동시에 불러서 司徒의 高弟로서 侍御史가 되고 獻帝 때 司徒가 되었다. 及董卓遷都關中 朝廷大小 悉委於允. 동탁이 關中으로 遷都하고 朝廷의 大小事를 모두 왕윤에게 맡겼다. 允矯情屈意..

by 古岸子 黃憲萬頃- 黃憲의 1만 이랑이나 되는 器量 後漢黃憲字叔度 汝南愼陽人. 後漢의 黃憲은 字가 叔度이니 汝南 愼陽人이다. 世貧賤. 父爲牛醫. 대대로 貧賤하여 아버지가 수의사를 하였다. 陳蕃‧周擧常相謂曰 時月之間 不見黃生 則鄙吝之萌復存乎心. 陳蕃과 周擧가 항상 말하였다. “몇 달 동안 黃生을 보지 못하면 비루하고 인색한 싹이 다시 마음에 생겨난다.” ▶時月:1.四时和月分。 2.时间;时候。 3.指节令。 及蕃爲三公歎曰 叔度若在 吾不敢先佩印綬. 陳蕃이 三公이 되자 탄식하였다. “叔度가 있었으면 내가 감히 먼저 印綬를 차지 못했을 터이다.” 郭林宗少游汝南 先過袁閎 不宿而退 從憲累日方還. 郭林宗이 젊어서 汝南에 유람했는데, 먼저 袁閎에게 들렀으나 그곳에서는 잠자지 않고 물러 나왔고, 황헌의 집으로부터는 여러..

by 古岸子 虞𩦎才望- 虞𩦎는 재주와 人望을 겸하다 晉書 의 記事이다. 虞𩦎字思行 會稽餘姚人. 虞𩦎는 字가 思行이니 會稽 餘姚人이다. 歷吳興太守. 吳興太守를 거쳤다. 王導常謂曰 孔愉有公才 而無公望. 丁潭有公望 而無公才. 兼之者其在卿乎. 王導가 일찍이 말하였다. “孔愉는 三公의 재주는 있으나 삼공이 될 덕망을 갖추지 못하였고, 丁潭은 三公이 될 덕망은 갖추고 있으나 재능이 없는데, 그것을 겸한 자는 아마 卿일 터이다.” 官未達而喪 時人惜之. 벼슬에 이르기 전에 죽으니 당시 사람들이 애석히 여겼다. 舊本 才誤作體. 舊本에는 才를 體로 잘못 적었다. [註解] ▶晉書- 46의 기사임. 에도 있음.

by 古岸子 戴淵峰穎- 戴淵은 몹시 뛰어났다 世說 의 記事이다. 戴淵字若思. 戴淵의 字는 若思이다. 少遊俠. 嘗在江淮間攻掠. 젊었을 때부터 호협하여 일찍이 江淮 사이에서 사람을 치고 약탈하였다. 陸機赴假還洛 輜重甚盛. 陸機가 휴가를 갔다가 洛陽으로 돌아오는데 짐이 몹시 많았다. 淵在岸上 據胡床 指揮左右 皆得其宜. 대연은 언덕 위에서 의자에 앉아 좌우를 지휘하는데 그 지휘가 모두 적절하였다. 淵旣神姿峰穎 雖處鄙事 神氣尤異. 대연은 모습이 몹시 뛰어나서 비록 비루한 일에 처하여도 정신과 기운이 더욱 남달랐다. 機於船上遙謂之曰 卿才如此. 亦復作劫邪. 육기가 배 위에서 멀리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가 이와 같은데도 또다시 약탈을 하겠는가?” ▶劫: 위협하다 淵便泣涕 投劒歸機. 대연이 눈물을 흘리면서 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