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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古岸子史魚黜殯- 史魚가 殯所를 물리쳐서 屍諫하다 家語曰孔子家語>에 말하였다. 衛大夫蘧伯玉之賢 靈公不用. 彌子瑕不肖 反任之.衛나라 大夫 蘧伯玉가 현명하여도 靈公이 쓰지 않고, 彌子瑕가 不肖한데 도리어 그에게 정치를 맡겼다. 史魚驟諫不從. 史魚가 자주 諫했으나 영공은 따르지 않았다. 將卒 命其子曰 吾在朝不能進蘧伯玉退彌子瑕, 是不能正君也. 生不能正君 死無以成禮. 我死 汝置屍牖下. 於我畢矣. 죽을 즈음에 그의 아들에게 명령하였다.“내가 조정에 있을 때 蘧伯玉을 조정에 나가게 하지 못하고 彌子瑕를 내치지 못했으니, 이는 임금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살아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어서 예를 이룰 까닭이 없다.내가 죽거든 시체를 창문 아래에 놓아두어라. 내 분수에 맞는 짓이다.” 其子從之. 그의 아들은 ..

by 古岸子 子囊城郢- 子囊이 郢에 성을 쌓으라고 유언하다 左氏傳 의 記事이다. 楚子囊將死 遺言謂子庚 必城郢. 楚나라 子囊이 죽을 때 아들 庚에게 遺言하였다. “반드시 邪 땅에 성을 쌓아라.” 君子謂子囊忠. 君薨不忘增其名. 將死不忘衛社稷. 可不謂忠乎. 君子가 子囊의 충성됨을 일러 말하였다. “임금이 薨하는데 그 시호를 추증하기를 잊지 않았다. 죽으면서도 社稷을 지키기를 잊지 않았다. 충성스럽다고 이르지 않겠느냐?” 初楚共王疾. 告大夫曰 不穀不德. 若以大夫之靈 獲保首領以沒於地 請爲靈若厲. 처음에 楚共王이 병들자 大夫들에게 고하였다. “과인이 부덕하였소. 대부들의 덕택으로 내 머리를 보전하여 땅에 묻거든, 바라건대 시호를 靈, 또는 厲로 지어 주구려.” ▶不穀: 不穀,意為不善,是古代君主、諸侯用以自謙之稱。 ▶..

by 古岸子 戴封積薪- 戴封이 섶을 쌓고 그 위에서 祈雨하다 後漢戴封字平仲 濟北剛人. 後漢의 戴封은 字가 平仲이니 濟北 剛人이다. 擧賢良方正 對策第一 擢拜議郞. 遷西華令. 賢良 方正과로 천거되고 對策의 성적이 1등으로 발탁되어 議郞에 임명되었다가 西華令으로 옮겼다. 汝潁有蝗災 獨不入界. 그때 汝南과 潁川 두 郡에는 蝗災가 있었는데, 서화현 경계에는 재해가 들어가지 못하였다. 時督郵行縣 蝗忽大至. 及去蝗亦頓除. 一境奇之. 이때 督郵가 순시하며 서화현에 오자, 황충이 갑자기 크게 몰려오더니 독우가 가자 황충도 또한 갑자기 없어졌다. 그 지경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其年大旱. 그 해는 크게 가물었다. 封禱請無穫. 戴封이 기우제를 지냈으나 효과가 없었다. 乃積薪坐其上 以自焚. 이에 섶나무를 쌓아놓고 그..

by 古岸子 耿恭拜井- 耿恭이 우물에 절하고 기도하니 샘물이 솟았다. 後漢耿恭字伯宗 扶風茂陵人. 後漢의 耿恭은 字가 伯宗이니 扶風 茂陵人이다. 少慷慨多大略 有將帥才. 젊어서 바른 기상이 충만하고 큰 智略이 많아서 장수의 재목이었다. ▶慷慨: 充满正气 永平末爲戊己校尉 屯金蒲城. 匈奴攻城. 永平 말년에 戊己校尉가 되어 金蒲城에 주둔하였는데 匈奴가 성을 공격하였다. 恭乘城搏戰 以毒藥傅矢. 傳語匈奴曰 漢家箭神. 其中瘡者必有異. 경공은 성에 올라가 擊戰하다가 毒藥을 화살에 바르고 흉노에게 말을 전하였다. “이것은 漢나라의 箭神이니, 이것에 맞은 상처에는 틀림없이 이상한 일이 있을 터이다.” 因發强弩射之. 인하여 强弩를 쏘았다. 虜中矢者 視創皆沸. 화살을 맞은 오랑캐가 상처를 보니 모두 끓어 오르는 것이었다. 匈奴..

by 古岸子 汲黯開倉- 汲黯이 倉廩을 열어 백성을 구휼하다. 前漢汲黯字長孺 濮陽人. 前漢의 汲黯은 字가 長孺이니 濮陽人이다. 其先有寵於古之衛君. 그 조상들이 옛날 衛나라 임금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至黯十世 世爲卿大夫. 급암에 이르기까지 10世 동안에 代代로 卿大夫이었다. 孝景時爲太子洗馬. 以嚴見憚. 孝景帝 때 太子洗馬가 되었는데 성품이 엄격하여 남들이 꺼렸다. 武帝卽位 黯爲謁者. 河內失火 燒千餘家. 武帝가 즉위하자 급암은 謁者가 되었는데 河內에서 失火하여 천여 호를 태웠다. 上使往視之. 임금이 급암에게 가보라 하였다. 還報曰 家人失火 屋比延燒 不足憂. 河內貧人 傷水旱萬餘家. 或父子相食. 臣謹以便宜持節 發河內倉粟 以賑貧民. 請歸節伏矯制罪. 급암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가정집 사람이 失火하였는데, 집들이 ..

by 古岸子 馮煖折券- 馮煖(풍훤)이 채권 문서를 찢어버리다 戰國策曰 에 말하였다. 齊人有馮煖者. 貧乏不能自存. 齊나라 사람에 馮煖이란 자가 있었는데, 貧乏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貧乏: 贫穷,穷困;枯竭 使人屬孟嘗君曰 願寄食門下. 사람을 시켜 孟嘗君에게 부탁하였다. “門下에서 食客 노릇하기를 원합니다.” 君受之. 맹상군은 그를 받아들였다. 左右食以草具. 居有頃 倚柱彈其劒歌曰 長鋏歸來乎. 食無魚. 맹상군의 随從들이 그에게 풀만 차려서 밥을 먹여주었다. 얼마 후 풍훤이 기둥에 기대어 칼을 두드리면서 노래하였다. “긴 칼아! 돌아가자. 밥상에 생선이 없구나!” 君聞食之比門下客. 맹상군이 듣고 밥을 먹여주어, 밥을 먹여주는 식객으로 대우하였다. 有頃復彈鋏歌曰 長鋏歸來乎. 出無車. 얼마 후 다시 칼을 ..

by 古岸子 齊景駟千- 齊景公은 駟馬가 1천이었다 論語曰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得而稱. 에 말하였다. 齊나라 景公은 말이 千駟가 있어도, 죽는 날에 백성 중 칭송하는 사람이 없었다. [註解] ▶論語- 의 기사임. ▶齊景公- 춘추시대 齊나라 임금, 靈公의 아들. 莊公의 아우. 이름은 杵臼. 宮室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개와 말을 모았으며 세금을 무겁게 하고 형벌을 중하게 하였다. ▶千駟- 駟는 말 네 필이 끄는 마차.

by 古岸子 何曾食萬- 何曾이 萬錢의 음식을 먹는 사치를 부렸다 晉書 의 記事이다. 何曾字穎考 陳留陽夏人. 何曾의 字는 穎考이니 陳留 陽夏人이다. 少好學博聞.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견문을 넓혔다. 仕魏爲司徒. 魏나라에 벼슬하여 司徒가 되었다. 武帝踐祚 拜太尉. 武帝가 帝位에 오르자 太尉에 임명되었다. 曾性至孝 閨門整肅 하증은 성격이 지극히 효성스럽고 집안이 정제되고 엄숙하였다. 自少及長 無聲樂嬖幸之好. 젊어서부터 장성하기까지 음악과 여자를 좋아함이 없었다. 年老與妻相見 皆正衣冠 相待如賓. 늙어서 아내와 만날 때도 언제나 의관을 바르게 하고, 대우하기를 손님처럼 하였다. 然性奢豪 務在華侈. 그러나 성질이 사치하고 豪放하여, 豪華와 奢侈에 힘을 쏟았다. 帷帳車服 窮極綺麗 廚膳滋味 過於王者. 휘장이나 수..

by 古岸子 顧榮錫炙- 顧榮이 구운 고기를 주어 뒤에 보답을 받다 晉書 의 記事이다. 顧榮字彦先 吳人. 顧榮의 字는 彦先이니 吳人이다. 弱冠爲黃門侍郞. 弱冠에 黃門侍郎이 되었다. 吳平 與二陸同入洛 號三俊. 吳나라가 평정되자 陸機·陸雲과 함께 洛陽으로 들어가자 이들을 三俊이라고 불렀다. 歷廷尉正. 廷尉正을 거쳤다. 及趙王倫簒位 倫子虔爲大將軍 以榮爲長史. 趙王 倫이 惠帝의 位를 찬탈하자, 倫의 아들 虔이 大將軍이 되고 顧榮을 長史로 삼았다. 初榮與同寮宴飮 見執炙者 容貌不凡 有欲炙之色. 처음에 顧榮이 동료들과 잔치에서 술을 마시면서 구이를 굽는 자를 보니, 용모가 비범한데 고기를 먹고 싶은 안색이었다. 榮割炙啗之. 고영이 고기를 베어서 먹게 하였다. ▶啗(담): 먹이다 坐者問其故. 榮曰 豈有終日執之 而不知其味..

by 古岸子 518田文比飯- 田文이 자신의 밥과 객의 밥을 비교하다 史記 의 記事이다. 孟嘗君田文 齊威王孫. 孟嘗君 田文은 齊나라 威王의 손자이다. 父嬰爲齊相卒. 文代立 封萬戶於薛. 아버지 田嬰이 제나라 재상으로 卒하자 전문이 代立하여 薛 땅 萬戶의 封地를 받았다. 招致賓客 及亡人有罪者皆歸之. 그는 賓客과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사람을 불러모았으므로 모두가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以故傾天下之士. 食客數千人 無貴賤 一如文等. 그 까닭에 천하의 선비들이 모여들어 食客이 수천 명이 되었는데, 貴賤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전문과 동등하게 대접하였다. 曾待客夜食. 일찍이 손님을 기다려서 밤에 식사를 하였다. 有一人蔽火光. 어떤 사람이 불빛을 가렸다. 客怒以飯不等. 輟食辭去. 客이 먹는 밥이 같지 않다며 먹던 것을 그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