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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by 古岸子 蔡琰辯琴- 蔡琰이 거문고에 대하여 변론하다 後漢蔡琰字文姬 中郞將邕之女. 後漢 蔡琰의 자는 文姬이니 中郞將 將邕의 딸이다. 博學有才辯 妙於音律. 널리 배우고 재주와 구변이 있고 音律에 뛰어났다. 舊注云 琰年九歲時 邕夜鼓琴. 絃絶. 琰曰 第二絃. 邕故絶一絃以問之. 琰曰 第四絃. 邕曰 爾偶中耳. 琰曰 昔季札觀風知國之存亡 師曠吹律 識南風之不競. 以此推之 何不知也. 의 舊注에 말하였다. 채염의 나이 9세 때 채옹이 밤에 거문고를 타다가 줄 하나가 끊어졌는데 채염이 말하였다. “두 번째 줄입니다.” 채용이 일부러 줄 하나를 끊고 물었다. 채염이 말하였다. “네 번째 줄입니다.” 채용은 말하였다. “네가 우연히 맞힌 것이리라.” 채염이 말하였다. “옛날에 李札은 바람을 보고 나라의 存亡을 알았고 師曠은 ..

by 古岸子 王粲覆棋- 王粲이 바둑돌을 예전으로 회복하다 魏志 의 記事이다. 王粲累拜侍中. 王粲은 여러 번 侍中에 임명되었다. 博物多識 問無不對. 사물의 이치를 널리 알고 지식이 많아서,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與人共行 讀道邊碑. 어떤 사람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비문을 읽었다. 人問曰 卿能闇誦乎. 그 사람이 물었다. “그대가 외울 수 있겠는가?” 曰 能. 말하였다. “가능합니다.” 因使背而誦之 不失一字. 돌아서서 외게 하였더니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觀人圍棋. 局壞. 남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는데, 바둑판이 흐트러졌다. 粲爲覆之. 棋者不信. 왕찬이 바둑돌을 다시 놓으니 바둑 두던 자는 믿지 않았다. 以帊蓋局 使更以他局爲之. 用相比校 不誤一道. 비단 조각에 바둑판을 그리고 다시..

by 古岸子 西門投巫- 西門豹가 무당을 물에 던지다 史記 의 記事이다. 魏文侯時 西門豹爲鄴令. 魏文侯 때 西門豹가 鄴縣 縣令이 되었다. 豹到問民所疾苦. 長老曰 苦爲河伯娶婦 以故貧. 俗語 不爲娶婦 水來漂溺人民. 서문표가 임지에 도착하여 백성들이 괴로운 바를 묻자 長老가 말하였다. “河伯이 아내를 취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괴로움을 겪어 가난합니다. 세간에서는 하백에게 신부를 바치지 않으면, 홍수가 져서 백성을 물에 빠져 죽도록 한다고 합니다.” 豹曰 至時幸來告. 吾亦往送女. 서문표가 말하였다. “그때가 되거든 와서 알려 주시오. 나도 또한 가서 여자를 바치겠다.” ▶幸: 바라다. 희망하다. 至其時 豹往會河上. 때가 되어 서문표가 가서 황하에서 모였다. 三老‧官屬‧豪長者‧里父老皆會. 三老와 官屬과 豪長者와 마을..

by 古岸子 何謙焚祠- 何謙이 神祠를 불태우다 晉書 의 記事이다. 何謙字恭子 東海人. 何謙의 자는 恭子이니 東海 사람이다. 從謝玄征伐 驍果多權略. 謝玄을 좇아서 征伐을 나갔는데 날래고 과단성이 있고 권모와 임기응변의 계략이 많았다. 舊注云 謙不畏神祠. 遇有靈廟 皆焚之. 의 舊注에 말하였다. 하겸은 神祠를 두려워하지 않아서, 靈廟를 보기만 하면 불태워 버렸다. [註解] ▶晉書- 49의 기사임. ▶謝玄- 東晉의 名將. 謝安의 조카. 武帝 때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前秦 符堅의 백만대군을 淝水에서 무찌름.

by 古岸子 孟嘗還珠- 孟嘗이 善政을 펴니 진주가 되돌아오다 後漢孟嘗字伯周 會稽上虞人. 後漢의 孟嘗은 字가 伯周이니 會稽 上虞人이다. 遷合浦太守. 合浦太守로 옮겼다. 郡不産穀實 而海出珠寶. 그 고을에서는 곡식은 나지 않고, 바다에서 眞珠를 산출하였다. 與交阯比境 常通商販 貿糴粮食. 交阯와 국경이 닿아 항상 통행하고 거래하되, 진주와 양식을 무역하고 있었다. ▶糴(적): 쌀을 사다. 先時宰守 並多貪穢 詭人採求 不知紀極. 전임 守令들이 貪汚한 자가 많아서, 백성을 속이고 收奪하여 그 끝을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珠漸徙於交阯郡界 行旅不至. 人物無資 貧者餓死於道. 진주가 점점 교지의 경계로 옮겨가고 行商客도 이르지 않으니, 백성들은 재산이 없고 가난한 자들은 길에서 굶어 죽었다. 嘗到官 革易前弊 求民病利. 맹상..

by 古岸子 劉昆反火- 劉昆이 바람을 돌이켜서 불을 끄다. 後漢劉昆字桓公 陳留東昏人. 後漢 劉昆의 字는 桓公이니 陳留 東昏人이다.. 建武初 除江陵令. 時縣連年火災. 建武 초년에 江陵縣令에 제수되었는데 이때 고을에 해마다 화재가 있었다. 昆輒向火叩頭. 多能降雨止風. 유곤이 불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릴 때마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그치는 일이 많았다. 稍遷弘農太守. 얼마 후 弘農太守로 옮겼다. 先是崤黽驛道多虎災 行旅不通. 이보다 앞서 崤黽驛道에 虎患이 있어서 나그네들이 다니지 못하였다. 昆爲政三年 仁風大行. 虎皆負子渡河. 유곤이 정치한 지 3년 만에 仁德의 敎化를 크게 행하니, 호랑이가 모두 새끼를 업고 황하를 건너 가버렸다. 帝異之徵爲光祿勳. 황제는 이것을 기이하게 여겨 불러서 光祿勳으로 삼았다. 詔問昆 前..

by 古岸子 姜肱共被- 姜肱이 형제와 한 이불을 덮고 자며 繼母를 안심시키다. 後漢姜肱字伯淮 彭城廣戚人. 後漢 姜肱의 字는 伯淮이니 彭城 廣戚人이다. 與弟仲海‧季江俱以孝行著聞. 아우 仲海·季江과 함께 孝行으로 저명하였다. 其友愛天至 常共臥起. 그들의 우애는 천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눕고 일어나기를 항상 함께하였다. ▶天至:出于天性﹐天生而成 肱博通五經 兼明星緯. 士之就學者三千餘人. 강굉은 五經에 널리 통하고, 겸하여 천문학에도 밝아서, 찾아와 배우는 선비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二弟名聲相次. 두 아우도 명성이 서로 비슷하였다. 皆不應徵聘. 이들은 모두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肱嘗與季江夜遇盜. 欲殺之. 兄弟更相爭死. 遂兩釋焉. 강굉과 계강이 밤에 도둑을 만났는데 죽이려 하였다. 형제가 서로 죽기를 ..

by 古岸子 孔融讓果- 孔融이 큰 과일을 사양하고, 작은 것을 가지다. 後漢孔融字文擧 魯國人. 孔子二十世孫. 後漢 孔融의 자는 文擧이니 魯나라 사람으로 孔子의 20世孫이다. 幼有異才.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十歲隨父詣京師. 10세에 아버지를 따라 京師에 갔다. 時河南尹李膺 簡重不妄接士. 自非當世名人及與通家. 皆不得白. 이때 河南尹 李膺이 장엄하고 무게가 있어 망령되이 선비를 만나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當世의 名人이나 世交가 아니면 모두 만날 수가 없었다. ▶簡重: 庄严持重 融造門曰 我是李君通家子弟. 공융은 그 집에 가서 말하였다. “나는 李君과 父祖 대대로 친분이 있는 집의 子弟이다.” 門者言之. 문지기가 이응에게 전하였다. 膺請融問曰 高明祖父嘗與僕有舊恩乎. 이응이 공융을 청해다가 물었다. “..

by 古岸子 端康相代- 韋端을 대신하여 韋康이 凉州刺史가 되다 三輔決錄 의 記事이다. 韋康字元將 京兆人. 韋康의 자는 元將이니 京兆 사람이다. 父端從凉州牧徵爲太僕 康代爲凉州刺史. 時人榮之. 아버지 韋端이 凉州牧으로 있다가 부름을 받고 太僕이 되니 위강이 대신 凉州刺史가 되었고, 당시 사람들이 이를 영화롭게 여겼다. 孔融嘗與端書曰 前日元將來 淵才亮茂 雅度弘毅 偉世之器也. 昨日仲將又來. 懿性貞實 文敏篤誠 保家之主也. 不意雙珠近出老蚌. 孔融이 일찍이 위단에게 준 글에 말하였다. “저번에 元將이 왔는데, 깊은 재주가 밝고 무성하며 고상한 도량이 크고 굳세어서, 세상에 뛰어난 그릇이었소. 어제는 그 아우 仲將이 왔는데, 아름다운 성품이 곧고 충실하며 문장이 민첩하고 정성이 독실하니, 집안을 보존할 주요인물이었소...

by 古岸子 亮陟隔坐- 紀亮과 紀陟 父子는 조회 때 병풍으로 가리고 앉았다. 吳錄 의 記事이다. 紀陟字子上 丹陽人. 紀陟의 자는 子上이니 丹陽사람이다. 吳主孫休時 其父亮爲尙書而陟爲中書令. 吳主 孫休 때 그 아버지 紀亮은 尙書이고 紀陟은 中書令이었다. 每朝會 詔以屛風隔其坐. 조회 때마다 황제가 명령하여 병풍으로 그들의 자리를 가리게 하였다. 舊注引宣城記云 隔以雲母屛風. 陟誤作隲. 의 舊注에 를 인용하여 雲母屛風으로 막았다고 하였다. 紀陟을 紀隲로 잘못 적고 있다. [註解] ▶雲母- 돌비늘, 장식용으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