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學集註(소학집주) 431

8-6-2-47.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七章

崔孝芬兄弟孝義慈厚. 崔孝芬 형제는 효도하고 의로우며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弟孝暐等 奉孝芬 盡恭順之禮 坐食進退 孝芬不命則不敢也. 아우 孝暐 등이 孝芬을 받들되 恭順한 禮를 다하여 앉으며 먹으며 나아가고 물러감에 孝芬이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하지 않았다. 鷄鳴而起 且溫顔色 一錢尺帛 不入私房 吉凶有須 聚對分給. 닭이 울면 일어나서 우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며, 一錢의 돈과 한 자의 비단을 개인적인 방에 들이지 않고, 길흉사로 씀이 있을 때는 모여 마주하여 나누어주었다. 諸婦亦相親愛 有無共之 《北史》〈崔挺列傳〉 아내들도 또한 서로 친애하여 있고 없음을 함께 하였다. 【集說】 陳氏曰 孝芬 北朝博陵人 陳氏가 말하였다. “孝芬은 北朝[北魏] 博陵 사람이다.” 孝芬叔振 旣亡後 孝芬等 承奉叔母李氏 若事所生 旦夕溫凊 出入..

8-6-2-46.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六章

陶淵明爲彭澤令 不以家累自隨. 送一力 給其子書曰 汝旦夕之費 自給爲難 今遣此力 助汝薪水之勞. 此亦人子也 可善遇之 《晉書》〈逸民列傳〉 陶淵明이 彭澤의 令이 되어 家累[처자]로써 자신을 따르게 하지 않았다. 일꾼 하나를 보내어 그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 일렀다. “네가 아침저녁의 비용을 스스로 충족하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이제 이 일꾼을 보내어 너의 땔나무를 하고 물긷는 수고로움을 돕게 한다. 이 또한 사람의 자식이니, 그를 잘 대우하라.” 【集解】 淵明 字元亮. 淵明은 字가 元亮이다. 家累 妻子也. 家累는 처자식이다. 力 僕也 力은 종이다.

8-6-2-45.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五章

龐公未嘗入城府 夫妻相敬如賓. 龐公이 城府[성안]에 들어간 적이 없고, 夫妻가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처럼 하였다. 劉表候之 龐公釋耕於壟上 而妻子耘於前. 劉表가 방문하자, 龐公은 밭둔덕 위에서 밭갈기를 멈추었고, 妻子는 앞에서 김매고 있었다. 表指而問曰 先生苦居畎畝而不肯官祿 後世 何以遺子孫乎? 劉表는 그의 妻子를 가리키며 물었다. “선생이 畎畝[농토]에서 괴롭게 살면서 관청의 녹을 즐기지 않으니, 후세에 무엇을 자손에게 남겨주려 하시오?” 龐公曰 世人 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 雖所遺不同 未爲無所遺也. 龐公이 말하였다. “세인은 모두 자손에게 위태로움을 남겨주는데, 나는 지금 홀로 자손에게 편안함을 남겨줍니다. 비록 남겨주는 것이 같지 않으나, 남겨주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表嘆息而去 《後漢書》〈逸民列傳〉 ..

8-6-2-44.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四章

疏廣 爲太子太傅 上疏乞骸骨 加賜黃金二十斤 太子贈五十斤. 疏廣이 太子太傅가 되어 上疏하여 해골[은퇴]을 빌자, 上은 황금 20근을 加賜[특별히 많게 下賜함]하였고, 태자는 황금 50근을 하사하였다. 歸鄕里 日令家 供具設酒食 請族人故舊賓客 相與娛樂 數問其家 金餘尙有幾斤? 趣賣以共具 《漢書》〈疏廣列傳〉 疏廣이 향리로 돌아와 날마다 집안에 명령하여 술과 밥을 장만하고 族人과 故舊와 빈객을 초청하여 서로 함께 즐겼으며, 자주 집안 식구에게 물었다. “黃金이 아직도 몇 근이 남았는가? 빨리 팔아서 음식을 장만하라.” 【集說】 陳氏曰 廣 字仲翁 東海蘭陵人. 太傅 官名. 上疏乞骸骨 猶今之告老也. 娛 歡也. 趣與促同 共與供同 言促賣餘金 以供酒食之具也. 陳氏가 말하였다. “廣은 字가 仲翁이니, 東海 蘭陵 사람이다. 太傅는..

8-6-2-43.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三章

萬石君石奮 歸老于家 過宮門闕 必下車趨 見路馬 必軾焉. 萬石君 石奮이 벼슬을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는데, 궁궐 문을 지날 때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걸었으며, 路馬를 보면 반드시 경례하였다. 子孫爲小吏 來歸謁 萬石君 必朝服見之 不名. 자손이 하급 관리가 되어 돌아와서 알현하면, 萬石君은 반드시 朝服을 입고 만났으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子孫有過失 不誚讓 爲便坐 對案不食 然後 諸子相責 因長老 肉袒固謝罪改之 乃許 《漢書》〈萬石君列傳〉 자손에게 過失이 있으면 꾸짖지 않고, 한쪽에 있는 방에 앉아 밥상을 대하여도 밥을 먹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 뒤에 아들들이 서로 꾸짖고, 연장자를 통하여 팔을 드러내고 두 번 세 번 사죄하고 고쳐야 허락하였다. 【集解】 漢石奮 四子 長建 次甲, 次乙, 次慶...

8-6-2-42.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二章

包孝肅公尹京時 民有自言以 白金百兩寄我者死矣 予身子 不肯受 願召其子 予之. 包孝肅公이 서울을 맡았을 때 백성이 스스로 말하였다. “白金 百兩을 저에게 寄託한 자가 죽었으므로 그 아들에게 주었는데, 받으려 하지 않으니, 그 아들을 불러 白金을 주소서.” 尹召其子 辭曰 亡父未嘗以白金委人也. 尹이 그 아들을 불렀으나 사양하여 말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白金을 남에게 맡긴 적이 없었습니다.” 兩人相讓久之 《童蒙訓》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기를 오랫동안 하였다. 【集說】 吳氏曰 公 名拯 字希仁 孝肅 諡也 廬州人. 尹京時 爲京尹之時也. 委人 委寄於人也 吳氏가 말하였다. “公의 이름은 拯이요 字는 希仁이며, 孝肅은 시호이니, 廬州 사람이다. 尹京時란 京兆尹이 되었을 때이다. 委는 남에게 맡김이다.” 呂滎公聞之 曰 ..

8-6-2-41.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一章

近世故家 惟晁氏因以道申戒子弟 皆有法度. 근세의 故家 중에 오직 晁氏 가문에 以道가 자제들을 거듭 훈계함으로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었다. 群居相呼 外姓尊長 必曰某姓第幾叔若兄 諸姑尊姑之夫 必曰某姓姑夫, 某姓尊姑夫 未嘗敢呼字也. 모여 살면서 서로 부를 적에 外姓의 尊長에게는 반드시 ‘무슨 성 몇째 아저씨, 또는 몇째 형’이라 하고, 여러 고모와 대고모의 남편에게는 반드시 ‘무슨 성 고모부, 또는 무슨 성 대고모부’라 하여, 일찍이 감히 字를 부르지 않았다. 其言父黨交遊 必曰某姓幾丈 亦未嘗敢呼字也 當時故家舊族 皆不能若是 《童蒙訓》 父黨의 交遊[친구]를 말할 때는 반드시 ‘무슨 성 몇째 어른’이라 하고, 또한 일찍이 감히 字를 부르지 않았으니, 당시의 故家와 舊族들이 모두 이처럼 하지 못하였다. 【集說】 陳氏曰..

8-6-2-40.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四十章

司馬溫公與其兄伯康 友愛尤篤. 司馬溫公은 그의 형 伯康과 우애가 특히 돈독하였다. 伯康年將八十 公奉之如嚴父 保之如嬰兒 每食少頃 則問曰 得無饑乎? 天少冷 則拊其背曰 衣得無薄乎? 《宋名臣言行錄》, 《范太史文集》 伯康의 나이가 80이 되려 하였는데, 溫公은 받들기를 엄한 아버지처럼 하고, 보호하기를 어린아이처럼 하여 매양 밥을 먹고 나서 조금 지나면 묻기를 “배고프시지 않습니까?” 라고 하였으며, 날씨가 조금만 추우면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옷이 얇지 않습니까?” 【集解】 公兄 名旦 字伯康. 公의 兄은 이름이 旦이요 字가 伯康이다. 奉之如嚴公 敬之至也 保之如嬰兒 愛之至也. 奉之如嚴公은 공경함이 지극함이요, 保之如嬰兒는 사랑함이 지극한 것이다. 老人 膓胃弱 易飽易饑 氣體虛 易寒易熱 故 公撫問之勤 如此. ..

8-6-2-39.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三十九章

唐英公李勣 貴爲僕射 其姊病 必親爲然火煮粥. 唐나라 英公 李勣은 존귀함이 僕射가 되었는데도 그의 누님이 병을 앓으면 반드시 친히 누님을 위하여 불을 때어 죽을 끓였다. 火焚其鬚 姊曰 僕妾多矣 何爲自苦如此? 불이 그의 수염을 태우자, 누님이 말하였다. “종과 첩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처럼 하는가?” 勣曰 豈爲無人耶? 顧今姊年老 勣亦老 雖欲數爲姊煮粥 復可得乎 《唐書》〈李勣列傳〉 李勣이 말하였다. “어찌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습니까? 생각해 보건대 지금에 누님이 연로하고 저도 늙었으니, 비록 자주 누님을 위하여 죽을 끓이고자 한들, 다시 뜻대로 되겠습니까?” 【集說】 吳氏曰 勣本姓 徐 爲唐相 封英公 賜姓李 字懋功 曹州人. 吳氏가 말하였다. “李勣의 本姓은 徐氏이니, 唐나라 재상이 되어 英公에 ..

8-6-2-38. 외편 - 선행 - 실명륜 - 第三十八章

隋吏部尙書牛弘弟弼 好酒而酗. 隋나라 吏部尙書 牛弘의 아우 牛弼이 술을 좋아하고 주정을 하였다. 嘗醉 射殺弘駕車牛 弘還宅 其妻迎謂弘曰 叔射殺牛. 언젠가 취하여 牛弘의 수레를 끄는 소를 활로 쏘아 죽였는데, 牛弘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牛弘을 맞이하며 말하였다. “시숙이 소를 쏘아 죽였습니다.” 弘聞 無所怪問 直答曰 作脯. 牛弘이 듣고 괴이하게 여겨 묻는 바가 없고 다만 대답하였다. “포를 만들라” 坐定 其妻又曰 叔射殺牛 大是異事. 牛弘이 좌정하자 그의 아내가 또다시 말하였다. “시숙이 소를 쏘아 죽였으니, 크게 이상한 일입니다.” 弘曰 已知. 顔色自若 讀書不輟 《隋書》〈牛弘列傳〉 牛弘이 말하기를 “이미 알고 있소.”라고 하고 안색이 태연자약하며 독서를 그치지 않았다. 【集說】 陳氏曰 弘 字里仁 安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