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學集註(소학집주) 431

8-6-3-76.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六章

柳玭曰 高侍郞兄弟三人 俱居淸列 非速客 不二羹胾 夕食蔔匏而已 《柳氏家訓》 柳玭이 말하였다. “高侍郞 형제 세 분이 함께 깨끗한 벼슬에 있었는데, 손님을 초청하지 않고는 국과 썰어놓은 고기를 두 가지 이상 놓지 않았으며, 저녁 식사에는 무와 박뿐이었다.” 【集解】 高氏兄弟 唐人 長釴翰林學士 次銖給事中 次鍇禮部侍郞. 高氏의 兄弟는 唐나라 사람이니, 맏이인 釴은 한림학사였고, 다음인 銖는 급사중이었으며, 다음인 鍇는 예부시랑이었다. 速 召也. 速은 부름이다. 不貳 無兼味也. 不貳는 兼味[두 가지 이상의 진미]가 없음이다. 胾 切肉也. 胾는 썰어놓은 고기이다. 蔔匏 菜名 무와 박은 나물 이름이다.

8-6-3-75.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五章

文中子之服 儉以潔 無長物焉. 文中子의 의복은 검소하면서도 깨끗하였고, 長物[남은 물건]이 없었다. 綺羅錦繡 不入于室 曰 君子非黃白不御 婦人則有靑碧 《中說》〈事君篇〉 綺羅와 綿繡를 집안에 들이지 않고 말하였다. “君子는 황색과 백색이 아니면 입지 않고, 婦人에게는 청색과 벽색이 있다.” 【集解】 儉 謂不侈 潔 謂不汚. 儉은 사치하지 않음이요, 潔은 더럽지 않음이다. 無長物 謂稱用而已 無多餘者也 長物이 없다는 것은 씀에 알맞게 할 뿐이요, 많이 남는 것이 없음을 이른다. 【正誤】長 剩也 長은 남음이다.

8-6-3-74.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四章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 潛心力行 不復仕進 其學以至誠爲本 事母至孝. 徐積 仲車가 처음에 安定胡先生[胡瑗]을 따라 배웠는데, 마음을 침잠하고 힘써 행하여 다시 벼슬에 나아가려 하지 않았으며, 그의 학문은 至誠을 근본으로 삼아 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自言 初見安定先生 退頭容少偏 安定忽聲云 頭容直. 某因自思 不獨頭容直 心亦要直也. 自此 不敢有邪心. 스스로 말하였다. “처음 安定先生을 뵙고 물러 나올 때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었는데, 安定이 갑자기 큰 소리로 ‘머리 모양은 곧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였다. 나는 인하여 스스로 생각하기를 ‘다만 머리 모양이 바를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바루어야 한다.’라고 여겼다. 이로부터 감히 나쁜 마음을 갖지 않았다.” 卒 諡節孝先生 《宋名臣言行錄》,《童蒙訓》..

8-6-3-73.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三章

劉公見賓客 談論踰時 體無欹側 肩背直 身不少動 至手足 亦不移 《宋名臣言行錄》 劉公은 빈객을 만나 한동안 담론을 하되 몸을 기대거나 기울임이 없어 어깨와 등이 꼿꼿하고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손과 발에 이르러도 또한 옮기지 않았다. 【集說】 吳氏曰 劉公 卽忠定公也. 心爲一身之主 百體皆聽命. 劉公 心一於誠 故 見於外者如此 吳氏가 말하였다. “劉公은 바로 忠定公[劉安世]이다. 마음은 一身의 주장이 되어 온갖 몸이 모두 명령을 듣는다. 劉公은 마음이 誠에 한결같았으므로 외모에 나타남이 이와 같았다.

8-6-3-72.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二章

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可以終身行之者 公曰 其誠乎. 劉忠定公이 溫公을 뵙고, 마음을 다하고 자신을 행하는 요점으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溫公이 말하였다. “그것은 誠일 터이다.” 劉公 問 行之何先? 劉公이 물었다.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公曰 自不妄語始 《宋名臣言行錄》 溫公이 말하였다. “함부로 말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한다.” 【集說】 陳氏曰 忠定 元城先生諡也. 陳氏가 말하였다. “忠定은 元城先生[劉安世]의 시호이다.” 朱子曰 溫公所謂誠 卽大學所謂誠其意者 指人之實其心而不自欺也 朱子가 말씀하였다. “溫公이 말한 誠은 바로 《大學》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이니, 사람이 그 마음을 성실히 하여 스스로 속이지 않음을 가리킨다. 劉公初甚易之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 與..

8-6-3-71.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一章

明道先生 作字時 甚敬 嘗謂人曰 非欲字好 卽此是學 《二程全書》〈遺書〉 明道先生은 글자를 쓸 때 매우 공경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글자를 좋게 하려고 함이 아니라, 곧 이것이 배움이기 때문이다.” 【集說】 朱子曰 此亦可以收放心. 朱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으로도 放心을 거둘 수 있다.”

8-6-3-70.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七十章

明道先生 終日端坐 如泥塑人 及至接人 則渾是一團和氣 《二程全書》〈外書〉 明道先生은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있어서 마치 진흙으로 만든 사람과 같았는데, 사람을 접함에 이르러는 완전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었다. 【正誤】終日端坐 如泥塑人 敬也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진흙으로 만든 사람과 같다고 함이 敬이다. 【集解】 所謂望之儼然 卽之也溫 《論語》〈子張〉에 이른바 ‘바라봄에 엄숙하고, 나아감에 온화하다.’이다.

8-6-3-69.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六十九章

呂正獻公自少 講學卽以治心養性爲本 寡嗜慾 薄滋味 無疾言遽色 無窘步 無惰容. 呂正獻公은 어릴 적부터 講學하되 곧 마음을 다스리고 德性을 기름을 근본으로 삼아, 嗜慾을 적게 하고, 滋味[맛좋은 음식]를 적게 하였으며, 말을 빨리하거나 얼굴빛을 급히 변함이 없었으며, 촉박한 걸음걸이가 없었으며, 게으른 모양이 없었다. 凡嬉笑俚近之語 未嘗出諸口 於世利紛華聲伎遊宴 以至於博奕奇玩 淡然無所好 《呂氏家傳》 무릇 희롱하며 웃거나 비속하고 淺近한 말을 입에서 낸 적이 없었고, 세상의 이익과 紛華[화려함]와 음악과 놀이와 遊宴[놀고 잔치함]과 장기·바둑과 기이한 노리개에 이르기까지 담박하여 좋아하는 바가 없었다. 【集說】 吳氏曰 治心 收其放心也 養性 養其德性也. 自寡嗜慾以下 皆治心養性之事. 遽 急遽也 窘 迫促也 俚 鄙俗也 聲..

8-6-3-68.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六十八章

管寧嘗坐一木榻 積五十餘年 未嘗箕股 其榻上當膝處皆穿 《三國志魏志》〈管寧列傳〉 管寧은 일찍이 하나의 나무 평상에 앉았었는데, 50여 년이 되도록 다리를 뻗은 적이 없어서, 그 평상 위에 무릎이 닿는 곳이 모두 뚫어졌다. 【集解】 寧字幼安 漢末避亂 依公孫度於遼東 日講詩書 所居成邑 民化其德 魏文帝立召寧 浮海以還. 寧은 字가 幼安이니, 漢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遼東의 公孫度에게 의지해 있으면서 날마다 詩·書를 강론하니, 거주하는 곳이 邑을 이루어 백성들이 그 德에 감화되었는데, 魏나라 文帝가 즉위하여 管寧을 부르자, 管寧은 바다를 항해하여 돌아왔다. 文帝明帝皆召之使仕 寧陳情不仕而終 文帝와 明帝가 모두 불러 벼슬하게 하였으나 管寧은 陳情하여 벼슬하지 않고 죽었다.

8-6-3-67. 외편 - 선행 - 실경신 - 第六十七章

司馬溫公 嘗言 吾無過人者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 《宋名臣言行錄》 司馬溫公이 일찍이 말하였다. “나에게 남보다 나은 것이 없거니와, 다만 평소 행함에 남을 대하여 말하지 못할 것이 없었을 뿐이다.” 【集說】 公 平生誠實不欺 故不可對人言者 則不爲也 公은 평소 성실하여 속이지 않으므로 남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