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小學集註(소학집주) (431)
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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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陳孝婦 年十六而嫁 未有子 其夫當行戍 且行時 屬孝婦曰 我生死 未可知 幸有老母 無他兄弟備養 吾不還 汝肯養吾母乎? 婦應曰 諾 《後漢書》〈列女傳〉 漢나라 陳州의 孝婦는 나이 16세에 시집와서 아직 자식을 두지 못하였는데, 그 남편이 변방을 지키러 가게 되어 떠나려 할 적에 孝婦에게 부탁하였다. “내 生死를 알 수 없고,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나 다른 형제로서 봉양을 갖출 사람이 없으니, 내가 돌아오지 못으면 당신은 기꺼이 내 어머니를 봉양하겠소?” 孝婦가 대답하였다. ‘예’ 【集解】 孝婦 後漢時人. 孝婦는 後漢 사람이다. 守邊曰戍. 변방을 지킴을 戍라고 한다. 屬 付託也 屬은 부탁이다. 夫果死不還 婦養姑不衰 慈愛愈固 紡績織紝 以爲家業 終無嫁意 남편이 과연 죽고 돌아오지 않자, 孝婦가 시어머니 봉양함이 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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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滎公自少 官守處 未嘗干人擧薦. 呂滎公이 젊었을 때부터 벼슬을 맡은 곳에서 남에게 천거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其子舜從 守官會稽 人或譏其不求知者 舜從 對曰 勤於職事 其他不敢不愼 乃所以求知也 《童蒙訓》,《伊洛淵源錄》 그의 아들 舜從이 會稽에서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혹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음을 譏弄하자, 舜從이 대답하였다. “직책과 일에 부지런하고, 그 나머지를 감히 삼가지 않음이 없노니, 이것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集解】 舜從 滎公第二子 名疑問 舜從字也. 舜從은 滎公의 둘째 아들이니, 이름은 疑問이요, 舜從은 字이다. 滎公生平未嘗求擧於人. 滎公은 生平에 남에게 천거해주기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故舜從 克紹父志 嘗曰 職事不敢不勤 他事不敢不愼 此雖不求知 而人必自知也.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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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川先生曰 安定之門人 往往 知稽古愛民矣 則於爲政也 何有? 《二程全書》〈遺書〉,《近思錄》 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安定先生[胡瑗]의 문하생들은 왕왕 옛날을 고찰하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았으니, 정사를 봄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增註】 門人 如劉彛·錢藻·孫覺·范純仁·錢公輔 是也. 門人은 劉彛·錢藻·孫覺·范純仁·錢公輔와 같은 이들이다. 何有 言不難也 何有는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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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器之待制初登科 與二同年 謁張觀參政. 三人同起身 請敎 張曰 某自守官以來 常持四字 勤謹和緩. 中間一後生 應聲曰 勤謹和 旣聞命矣 緩之一字 某所未聞. 張正色作氣曰 何嘗敎賢緩不及事? 且道世間甚事不因忙後錯了 《宋名臣言行錄》,《呂氏雜錄》 劉器之 待制가 처음 과거에 급제하여 두 同年[동방급제자]과 함께 張觀 參政을 알현하였다. 세 사람이 함께 몸을 일으켜 가르침을 청하자, 張氏가 말하였다. “나는 관직을 맡은 이래로 항상 네 글자를 지키노니, 勤·謹·和·緩이다.” 말하는 중간에 한 後生이 즉각 응하여 말하였다. “勤·謹·和는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마는 緩이라는 한 글자는 제가 아직 듣지 못한 바입니다.” 張氏는 정색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하였다. “내 언제 일찍이 그대들에게 느리게 하여 일에 미치지 못하라고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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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玄暐母盧氏嘗誡玄暐曰 吾見姨兄屯田郞中辛玄馭 曰 兒子從宦者 有人來云貧乏不能存 此 是好消息 若聞貲貨充足 衣馬輕肥 此 惡消息. 吾嘗以爲確論 《唐書》〈崔玄暐列傳〉 崔玄暐의 어머니 盧氏가 일찍이 玄暐를 훈계하여 말하였다. “내가 이종오빠인 屯田郞中 辛玄馭를 뵈니 말씀하였다.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하면 이것은 좋은 소식이거니와, 만약 재화가 充足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는 말이 들리면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 나는 항상 이것을 정확한 의논이라 여긴다. 【集說】 陳氏曰 玄暐 名曄 博陵人 仕至宰相. 姨兄 姨之子 長於我者也. 貧必廉 故曰好消息 富必貪 故曰惡消息. 陳氏가 말하였다. “玄暐는 이름이 曄이요, 博陵 사람이니,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다. 姨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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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君行先生 名潛 虔州人. 入京師 至泗州 留止 其子弟請先往. 君行 問其故 曰 科場近 欲先至京師 貫開封戶籍 取應. 君行 不許曰 汝虔州人 而貫開封戶籍 欲求事君而先欺君 可乎? 寧遲緩數年 不可行也 《童蒙訓》 李君行先生은 이름이 潛이니, 虔州 사람이다. 京師에 들어갈 적에 泗州에 이르러 머물러 있었는데, 그의 자제들이 먼저 가기를 청하였다. 李君行이 그 연고를 묻자 대답하였다. “科場이 가까우니, 먼저 京師에 가서 開封府에 호적을 올려 응시하겠습니다.” 李君行은 허락하지 않고 말하였다. “너는 虔州 사람인데 開封府의 호적에 올리면, 임금 섬기기를 구하고자 하면서 먼저 임금을 속이는 셈이니, 되겠느냐? 차라리 몇 년 늦을지언정 가서는 안 된다.” 【集說】 陳氏曰 君行 字. 虔州 今贛州府. 泗 郡名. 宋之京師 在開封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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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 魏遼東公翟黑子 有寵於太武 奉使幷州 受布千疋 事覺. 처음에 魏나라 遼東公 翟黑子는 太武帝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幷州에 사신의 임무를 받들고 가서 베 1000필을 뇌물로 받았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었다. 黑子謀於著作郞高允曰 主上問我 當以實告 爲當諱之? 翟黑子는 著作郞 高允과 상의하였다. “主上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마땅히 實告해야 하겠는가? 마땅히 숨겨야 하겠는가?” 允曰 公 帷幄寵臣 有罪首實 庶或見原 不可重爲欺罔也. 高允이 대답하였다. “공은 帷幄의 총애받는 신하이니, 죄가 있음에 사실을 자수하면 행여 혹 용서를 받을 터이니, 거듭 속여서는 안 됩니다.” 中書侍郞崔鑒公孫質曰 若首實 罪不可測 不如姑諱之. 中書侍郞 崔鑒과 公孫質은 말하였다. “만일 사실을 자수한다면 죄를 예측할 수 없으니, 우선 숨김만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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汲黯景帝時 爲太子洗馬 以嚴見憚. 汲黯이 景帝 때에 太子洗馬가 되었는데 엄격함으로 꺼림을 받았다. 武帝卽位 召爲主爵都尉 以數直諫 不得久居位. 武帝가 즉위하자 급암을 불러 主爵都尉로 삼았는데, 자주 直諫하여 벼슬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였다. 是時 太后弟武安侯田蚡爲丞相 中二千石拜謁 蚡弗爲禮. 이때 太后의 아우 武安侯 田蚡이 丞相이 되었는데, 연봉 2천 石의 관원들이 田蚡에게 절하고 알현하면 田蚡은 답례를 하지 않았다. 黯見蚡 未嘗拜 揖之 《漢書》〈汲黯列傳〉 그러나 汲黯은 田蚡을 봄에 절한 적이 없고 읍하였다. 【集說】 陳氏曰 黯字長孺 濮陽人. 太子洗馬 官名. 以嚴見憚 以正直 爲景帝所敬憚也. 主爵都尉 亦官名 中 滿也 中二千石 謂九卿之官 歲俸 滿二千石也. 蚡負貴而驕人 黯獨不爲之屈 但揖之而已 陳氏가 말하였다. “黯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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霍光 出入禁闥二十餘年 小心謹愼 未嘗有過. 霍光이 禁闥[대궐문]에 드나들기 20여 년, 조심하고 삼가서 일찍이 지나침이 없었다. 爲人 沈靜詳審 每出入下殿門 進止有常處. 사람됨이 침착하고 안정되며 자상하고 살피니, 매양 출입함에 대궐 문에서 내릴 때 나아가고 머무름에 일정한 곳이 있었다. 郞僕射竊識視之 不失尺寸 《漢書》〈霍光列傳〉 郞官과 僕射들이 몰래 표시를 해놓고 살펴보니, 한 자나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集解】 光 字子孟 平陽人 官至大將軍. 光은 字가 子孟이요, 平陽 사람이니, 벼슬이 大將軍에 이르렀다. 禁闥 宮中小門也. 禁闥은 궁중의 작은 문이다. 沈靜 謂不浮躁也 詳審 謂不麤率也. 沈靜은 들뜨고 경박하지 않음이요, 詳審은 거칠고 경솔하지 않음이다. 郞·僕射 皆官名. 郞과 僕射는 모두 官名이다. 不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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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川先生家治喪 不用浮屠 在洛 亦有一二人家化之 《二程全書》〈遺書〉 伊川先生의 집안에서는 상사를 다스림에 浮屠의 법을 쓰지 않았는데, 洛水가에 계실 때에 또한 한두 집안이 교화됨이 있었다. 【集說】 陳氏曰 浮屠 佛氏也. 洛 水名 在河南. 陳氏가 말하였다. “浮屠는 佛氏이다. 洛은 물 이름이니, 河南에 있다.” 或問 治喪 不用浮屠 親在而親意欲用之 不知當如何. 혹자가 물었다. “상사를 치름에 浮屠의 법을 쓰지 말라 하였으니, 부모가 살아 계시고 부모의 뜻에 불교 의식을 쓰려고 한다면 마땅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朱子曰 且以委曲開釋爲先 如不可回 則又不可咈親意也. 朱子가 말씀하였다. “우선 곡진히 열어드림을 우선하되, 만약 돌릴 수 없다면 또한 부모의 뜻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