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장성을 읊음(古長城吟)-왕한(王翰)
▶ 古長城吟 : 옛 長城을 읊음.
萬里長城을 쌓아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던 秦始皇의 폭정을 노래한 시. 밖의 적보다 안의 백성의 원한과 불만이 나라에 더 무서운 亡兆임을 강조한 시이다.
題下의 注에 일렀다.
“진시황은 흉노를 胡라 여기고 아들 胡亥가 胡임은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산을 파고 골짝을 메워 장성을 쌓아서 백성들의 원망이 모여 하루아침에 변란이 내부에서 일어났으니, 二世가 천하를 잃음은 당연하다. 왕한이 이 시를 지어 秦始皇의 어리석음을 비난하였는 바, 진실로 진나라의 병통을 잘 지적했다.”
진시황은 당시 ‘진나라를 멸망시킬 자는 胡이다.[亡秦者胡也]’라는 圖讖說을 믿고 흉노를 胡라 여겨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족을 멀리 쫓아냈으나 결국 둘째 아들인 胡亥가 즉위하여 나라를 멸망시켰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唐文粹》권12에 실려 있고 《樂府詩集》에는 〈飮馬長城窟行〉이란 제목 아래 들어 있다.
長安少年無遠圖,一生惟羨執金吾。麒麟殿前拜天子 , 走馬爲君西擊胡。
長安의 젊은이들 원대한 계획은 없고, 일평생 오직 執金吾만 부러워하다가, 麒麟殿 앞에서 천자께 절하고, 임금 위해 말 달리어 서쪽으로 오랑캐 치러 가네.
▶ 執金吾 : 옛날 벼슬 이름. 천자가 길을 나서면 앞에서 인도하며 비상에 대비하고, 평시에는 장안을 순시하며 비상에 대비하는 책임자[《漢書》百官公卿表·同注]. 손에 金吾라 부르는 銅에 금을 입힌 棒을 들었고, 御史大夫·司隷校尉 등도 금오를 들었었다[崔豹《古今注》].
▶麒麟殿 : 漢 未央宮에 있었던 전각 이름《三怖黃圖》
胡沙獵獵吹人面,漢虜相逢不相見。遙聞鼙鼓動地來,傳道單于夜猶戰。
오랑캐 땅 모래 펄펄 날려 사람의 얼굴에 불어와, 漢군과 胡軍이 만나도 보이지 않는데, 멀리서 종소리 북소리 땅을 진동하며 들려오는데, 單于는 밤에도 전투를 잘한다는 소문이네.
▶ 獵獵(렵렵) : 바람이 부는 모양.
▶ 單于 : 匈奴의 임금.
此時顧恩寧顧身,爲君一行摧萬人。壯士揮戈迴白日,單于濺血汙朱輪。
이런 때 임금의 은혜나 생각해야지 어찌 자기 몸을 돌보겠는가? 임금을 위해 한번 나가 萬人을 쳐부수는데, 장사가 창을 휘두르자 밝은 해도 되돌아오매, 선우가 피를 뿌리어 붉은 수레바퀴 더럽히네.
▶ 揮戈回白日 : 창을 휘두르면 밝은 해가 되돌아오다. 옛날 魯陽公이 韓나라와 싸울 때 해가 지려 하자 창을 휘둘러 해가 세 발이나 되돌아오게 하였다는 고사[《淮南子》覽冥訓]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는 모양을 비유하였다.
▶ 汙朱輪 : 전차의 붉은 바퀴에 묻다. 선우가 피를 뿌리며 싸움에 패하여 죽었음[또는 부상함]을 형용한 말.
歸來飲馬長城窟,長城道傍多白骨。
돌아오다 長城의 동굴에서 말에게 물 먹이는데, 장성의 길가에는 白骨이 많네.
▶ 長城窟 : 長城의 샘이 있는 동굴[《文選》飮馬長城窟行 李善注].
問之耆老何代人,云是秦王築城卒。
노인에게 어느 시대 사람이냐 물으니, 말하기를 秦始皇이 장성 쌓을 적의 병졸이라네.
▶ 耆老 : 노인. 耆는 60 또는 70세 이상. 老는 50세 이상의 노인이라 한다.
黃昏塞北無人煙,鬼哭啾啾聲沸天。
황혼의 국경 북쪽에는 인가의 밥 짓는 연기가 없고, 귀신들만 훌쩍훌쩍 울어 소리가 하늘로 비등하네.
▶ 啾啾(추추) : 많은 소리가 나는 모양. 여기서는 우는 소리.
▶ 聲沸天 : 소리가 하늘에 비등하다.
無罪見誅功不賞,孤魂流落此城邊。
죄 없이 죽임을 당하여 공로에 포상하지 않으매, 孤魂은 이 장성 근처에 떠도네.
▶ 流落 : 흘러다니다 떨어지다. 밖으로 떠다니다 곤경에 빠져 한 곳에 머묾.
當昔秦王按劒起,諸侯膝行不敢視。
옛날에 진시황이 칼을 만지며 일어서면, 제후들은 무릎으로 기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었네.
富國强兵二十年,築怨興徭九千里。
부국강병하기 20년, 원한 쌓으며 요역을 일으켜 9천 리의 장성.
▶ 興徭 : 徭役을 일으키다. 사람들을 징발하여 일하게 하는 것.
秦王築城何太愚,天實亡秦非北胡。
진시황의 축성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하늘이 실로 秦나라 망하게 하였지 胡 때문이 아니었네.
一朝禍起蕭墻內,渭水咸陽不復都。
하루아침에 재난이 집안에서 일어나자, 渭水 가의 咸陽은 더이상 도읍이 아니었네.
▶ 蕭墻(소장) : 집안 안. 蕭는 肅의 뜻. 墻은 屛의 뜻이다.
신하가 임금을 뵐 때 병풍 근처에 와서는 엄숙히 공경하는 태도를 지닌다고 하여, 몸 가까운 곳을 뜻함 [《論語》季氏 注]. 후에는 재난의 불씨가 내부에 있을 때 ‘蕭墻 안에 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 咸陽 : 함양은 渭水 북쪽에 있으며 秦나라 도읍이 있던 곳으로, 項羽가 함양의 궁성에 불을 질러 석 달 넘도록 탔다고 한다.
해설
예부터 나라가 큰 중국으로서는 나라의 급무가 언제나 국경 방비였다. 따라서 중국에는 예부터 〈飮馬長城窟行〉같은 국경문제를 주제로 한 시들이 무수히 지어졌다.
이 시는 장성을 쌓아 외적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內政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함이 주제이다.
한편 장안 젊은이들의 의기와 전쟁의 잔혹성도 아울러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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