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487-張翰適意(장한적의)

구글서생 2023. 3. 29. 01:56

蒙求(몽구) 張翰適意(장한적의)

by 古岸子

張翰適意- 張翰은 자기의 뜻에 맞추어 살았다. 

 

晉書
<晉書>記事이다.

 

張翰字季鷹 吳人.

張翰季鷹이니 吳人이다..

 

 

有淸才 善屬文.

탁월한 재능이 있고 글을 잘 지었다.

淸才:卓越的才能

 

而縱任不拘 時人號爲江東步兵.

그러나 방종하여 예의에 구속되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이 江東步兵이라고 불렀다.

 

旣入洛 齊王冏辟爲大司馬東曹掾.

洛陽에 들어가고 나서는 齊王 冏이 불러서 大司馬東曹掾이 되었다.

 

翰因見秋風起 乃思吳中菰菜‧蓴羹‧鱸魚鱠曰

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 以要名爵乎.

장한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라의 菰菜蓴羹鱸魚鱠를 생각하고 말하였다.
인생에는 뜻에 맞추어 사는 것이 귀하다. 어찌 수천 리 멀리 벼슬에 얽매여서 명성과 벼슬을 찾을 수 있겠는가?”

 

遂命駕而歸.

그리고는 수레를 불러 고향으로 돌아갔다.

 

俄而冏敗 人皆謂之見機.

이윽고 제왕 이 패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일러 기미를 본다고 하였다.

 

或曰

卿乃可縱適一時 獨不爲身後名邪.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는 한 시대를 그대의 뜻대로 따른다고 하는데, 유독 死後의 명성은 생각지 않는가?”

 

答曰

使我有身後名 不如卽時一盃酒.

대답하였다.
나에게 사후의 명성이 있다면, 그것은 즉석의 한 잔 술만 못하다.”

 

時人貴其曠達.

당시 사람들이 그의 활달함을 귀하게 여겼다.

 

[註解]

晉書- <晉書> <列傳> 62 文苑傳의 기사임.
步兵- 阮籍을 말함.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나라의 문인 완적은 세상을 백안시하며 거침없이 살았던 사람이다. 步兵步兵校尉라는 벼슬의 약칭으로 원래 완적의 벼슬이었다. 완적이 보병교위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보병 兵營의 주방에 술이 수백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 世說新語 任誕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보병교위 자리에 결원이 생겼다. 병영의 주방에 술이 수백 곡이 쌓여 있었는데, 완적이 이를 알고 보병교위를 하겠다고 나섰다.(步兵校尉缺, 廚中有貯酒數百斛, 阮籍乃求爲步兵校尉.)

菰菜- 줄나물. 줄은 水草.
蓴羹- 순채국. 나라의 名産.
鱸魚鱠- 농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