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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求(몽구)490-漢相東閤(한상동합) 본문

蒙求(몽구)

蒙求(몽구)490-漢相東閤(한상동합)

구글서생 2023. 3. 29. 01:48

蒙求(몽구) 漢相東閤(한상동합)

by 古岸子

漢相東閤- 漢나라 정승이 東閤을 열어서 賢人을 관리로 뽑았다.

 

前漢公孫弘 菑川薛人.
前漢公孫弘菑川薛縣人이다.

 

少家貧 牧豕海上. 年四十餘 乃學春秋雜說.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바다위에서 돼지를 기르다가 나이 40이 넘어서 春秋雜說을 배웠다.

 

武帝立 時弘年六十.

武帝가 즉위할 때 公孫弘의 나이 60이었다.

 

以賢良徵爲博士. 免歸.

賢良으로 불러 博士로 삼았으나 사직하고 돌아갔다.

 

後復徵賢良文學對策. 天子擢爲第一.

뒤에 다시 불러서 賢良文學對策을 내게 하니, 天子가 제일로 발탁하였다.

 

召見 容貌甚麗 拜博士.

불러서 보니 용모가 몹시 아름다워 박사에 임명하였다.

 

待詔金馬門 稍遷至丞相 封平津侯.

金馬門에서 待詔하다가 점차 승진하여 승상에 이르고 平津侯에 봉해졌다.

 

其後以爲故事 至丞相封自弘始.

그 후로 이것이 前例가 되었는데, 승상에 이르러 에 봉해지는 것은 公孫弘에서 시작된 것이다.

 

時上方興功業 婁擧賢良 弘自見爲擧首.

이때 황제가 바야흐로 功業을 일으켜 여러 차례 賢良의 천거를 받았는데, 공손홍이 천거의 으뜸이 되었다.

功業: 功勋与事业

 

起徒步 數年至宰相封侯.

徒步의 미천한 신분에서 몇 년 만에 재상에 이르고 諸侯에 봉해진 것이다.

 

於是起客館 開東閤 以延賢人 與參謀議.

이에 객관을 일으켜 東閣을 열고, 여기에서 어진 사람을 맞아 함께 謀議에 참여하였다.

 

弘身食一肉脫粟飯. 故人賓客仰衣食. 奉祿皆以給之. 家無所餘.

공손홍은 한 점의 고기와 거친 조밥을 먹었는데, 친구와 賓客衣食을 요청하면 祿俸을 모두 주었으므로, 집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然其性意忌. 諸嘗有隙. 雖陽與善 後竟報其過.

그러나 그의 성품에 의심과 猜忌가 많아서, 이전에 사이가 좋지 않은 자에게는 비록 겉으로는 좋게 대하여도 뒤에는 그의 허물을 보고하였다.

意忌: 疑忌

 

殺主父偃 徙董仲舒膠西 皆弘力也.

主父偃을 죽이고 董仲舒膠西左遷한 것은 모두 公孫弘의 힘이었다.

 

[註解]
前漢- <漢書> <列傳> 28의 기사임. 史記<열전> 52에도 있음.
主父偃- 나라 때 학자. 郎中에 임명되자 속에 숨겨두었던 사사로운 마음을 맘대로 부려 마침내 나라 재상이 되어 齊王을 죽게 하고 자신과 一族이 모두 주살됨.
董仲舒- 前漢 武帝 때의 학자. 처음엔 江都의 정승이었으나 公孫弘의 미움을 받아 膠西王의 정승으로 옮겨짐. 뒤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저술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