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485-亮遺巾幗(양유건괵)

耽古樓主 2023. 3. 29. 02:01

蒙求(몽구) 亮遺巾幗(양유건괵)

by 古岸子

亮遺巾幗- 諸葛亮이 수건과 머리띠를 보내어 司馬懿를 嘲弄하다. 

 

晉書
<晉書>記事이다.

 

諸葛亮帥衆十餘萬 壘于郿之渭水南原.

諸葛亮이 군사 10여 만을 거느리고 郿縣 渭水의 남쪽 언덕에 진을 치고 있었다.

 

天子遣護軍秦朗. 督步騎二萬 受宣帝節度.

나라 明帝護軍 秦朗을 보내서, 步騎 2만으로 군사를 감독하며 宣帝(司馬懿)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朝廷以亮遠寇 利在急戰 每命帝持重 以侯其變

조정에서는 제갈량이 멀리서 침입해 왔으니 急戰이 그들에게 이롭다고 여기고 사마의에게 명하기를, 신중히 하되 그 변화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亮數挑戰. 帝不出.

제갈량이 자주 싸움을 걸어와도 사마의가 나가지 않았다.

 

因遺帝巾幗婦人之飾.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수건과 머리띠 따위 婦人의 장식품을 보냈다.

 

帝怒 表請決戰. 天子不許. 乃遣衛尉辛毗 杖節以制之.

사마의가 노하여 表文을 올려 決戰하려고 했으나, 천자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衛尉 辛毗를 보내서 符節로써 사마의를 제어하게 하였다.

 

亮復挑戰 帝將出兵以應之 毗杖節而立軍門. 帝乃止.

제갈량이 다시 싸움을 걸자 사마의가 군사를 내어 應戰하고자 했으나, 신비가 부절을 가지고 軍門에 서 있으므로 사마의가 중지하였다.

 

對壘百餘日 會亮卒.

對峙한 지 백여 일에 마침내 제갈량이 하였다.

 

先是亮使至. 帝問

諸葛公食可幾米.

이보다 앞서 제갈량의 使者가 오자 사마의가 물었다.

諸葛公은 하루 식사량이 얼마나 되느냐?”

 

對曰

三四升.

대답하였다.
“3, 4되쯤 됩니다.

 

次問政事.

다음으로 정사에 대하여 물었다.

 

二十罰已上 皆自省覽.

대답하였다.
“20대의 笞刑의 벌 이상은 모두 몸소 조사합니다.”

省覽:審閱觀覽

 

帝曰

其能久乎.

사마의는 말하였다.
그러고도 그가 오래 살겠느냐?”

 

竟如其言.

마침내 그 말과 같았다.

 

漢晉春秋曰

楊儀等整軍而出. 百姓奔告宣王 王追焉.

姜維令儀反旗鳴鼓若將向宣王者.

王乃退 不敢偪.

於是儀結陣而出. 入谷然後發喪.

宣王之退 百姓諺曰

死諸葛走生仲達.

或以告王. 王曰

吾能料生 不便料死也.

<漢晉春秋>에 말하였다.
楊儀 등이 (제갈량의 죽음을 비밀에 붙이고) 군사를 정제하여 철군하자, 백성들이 달려가서 고하니 사마의가 추격하였다.

姜維楊儀에게 깃발을 돌리고 북을 쳐서 사마의에게로 향할 듯이 하게 하였다.

사마의가 이에 퇴각하고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이에 양의는 을 이루고 나와서 골짜기로 들어간 뒤에 發喪하였다.

사마의가 물러가자 백성들의 속담에 말하였다.
죽은 諸葛이 산 仲達(사마의의 )을 쫓아버렸다.”

누군가 이 말을 사마의에게 고하자 사마의는 말하였다.
나는 生者를 예측할 수 있으나, 死者는 짐작하지 못한다.”

 

[註解]
晉書- <晉書><宣帝本紀>의 기사임.
天子- 여기에서는 나라 明帝를 말함.
衛尉- 九卿의 하나. 대궐 문의 경비와 兵營을 맡은 관직.
辛毗 -삼국시대 나라 陽翟 사람. 文帝 侍中이 되어 直諫을 좋아하고 明帝 潁卿侯에 봉해짐.
姜維- 삼국시대 蜀漢 天水 사람. 자는 伯約. 벼슬은 征西將軍. 諸葛亮하자 군사를 이끌고 여러 번 나라를 쳤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뒤에 위나라 군사의 난에 죽음을 당함.
發喪- 초상난 것을 알림.
仲達- 司馬懿의 자. 사마의는 삼국시대 나라의 名將. 의심이 많고 계략이 뛰어나 蜀漢諸葛亮을 잘 막았음. 文帝 때 승상이 되었고 손자 司馬炎帝位를 찬탈할 기초를 닦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