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古岸子
孔融讓果- 孔融이 큰 과일을 사양하고, 작은 것을 가지다.
後漢孔融字文擧 魯國人. 孔子二十世孫.
後漢 孔融의 자는 文擧이니 魯나라 사람으로 孔子의 20世孫이다.
幼有異才.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十歲隨父詣京師.
10세에 아버지를 따라 京師에 갔다.
時河南尹李膺 簡重不妄接士. 自非當世名人及與通家. 皆不得白.
이때 河南尹 李膺이 장엄하고 무게가 있어 망령되이 선비를 만나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當世의 名人이나 世交가 아니면 모두 만날 수가 없었다.
▶簡重: 庄严持重
融造門曰
我是李君通家子弟.
공융은 그 집에 가서 말하였다.
“나는 李君과 父祖 대대로 친분이 있는 집의 子弟이다.”
門者言之.
문지기가 이응에게 전하였다.
膺請融問曰
高明祖父嘗與僕有舊恩乎.
이응이 공융을 청해다가 물었다.
“그대의 父祖과 우리 집안에 舊恩이 있었는가?”
▶高明: 높이 알려진 이름. 남의 이름(존칭)
融曰
然. 先君孔子與李老君 同德比義而相師友. 則融與君累世通家.
공융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제 조상인 孔子님은 李聃, 즉 老子님과 德과 道를 함께하신 師友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즉 저와 나리는 世交인 셈이지요.”
衆坐歎息.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였다.
大中大夫陳煒後至 曰
夫人小而聰了. 大未必奇.
太中大夫 陳煒가 뒤늦게 도착하여 말하였다.
“어려서 총명한 자가 커서 반드시 뛰어난 법은 아니지.”
融曰
觀君所言 將不早慧乎.
공융이 말하였다.
“공의 말씀을 듣자니 어찌 어려서 총명하지 않았겠습니까?”
膺大笑曰
高明必爲偉器.
이응이 크게 웃고 말하였다.
“그대는 틀림없이 뛰어난 그릇이 될 터이다.”
融家傳曰
兄弟七人 融第六.
四歲時 每與諸兄共食梨棗 輒引小者.
人問其故. 答曰
我小兒. 法當取小者.
由是宗族奇之.
공융의 집에 전하는 말이 있다.
형제 7인에 공융이 여섯째이다.
4세 때 형들과 함께 배와 대추를 먹는데 그때마다 작은 것을 집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나는 어린아이이니 법에 마땅히 작은 것을 가져야 하지요.”
이것을 말미암아 宗族이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60의 기사임.
▶李膺- 後漢 襄城 사람, 桓帝 때 司隷校尉가 되었다. 뒤에 조정이 날로 어지럽고 綱紀가 무너졌는데 이응이 홀로 風裁를 지켜 聲名이 스스로 높으니 선비들이 그를 한번 만나면 이를 登龍門이라고 하였다.
▶李老君- 老子의 姓이 李氏였으므로 이렇게 말함.
'蒙求(몽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蒙求(몽구)474-劉昆反火(유곤반화) (0) | 2023.03.29 |
---|---|
蒙求(몽구)475-姜肱共被(강굉공피) (0) | 2023.03.29 |
蒙求(몽구)477-端康相代(단강상대) (0) | 2023.03.29 |
蒙求(몽구)478-亮陟隔坐(양척격좌) (0) | 2023.03.29 |
蒙求(몽구)479-趙倫瘤怪(조륜류괴) (0) | 2023.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