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淵 第十二
凡二十四章。
모두 24章이다.
第一章
顏淵問仁。
顔淵이 仁을 물었다.
子曰:
「克己復禮為仁。
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
為仁由己,而由人乎哉?」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私慾을 이겨 禮에 돌아감이 仁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루 동안이라도 私慾을 이겨 禮에 돌아가면 天下가 그에게 仁을 허여할 터이다.
仁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서 말미암겠는가?”
仁者,本心之全德。
仁이란 本心이 온전한 德이다.
克,勝也。
克은 이김이다.
己,謂身之私慾也。
己는 一身의 私慾을 이른다.
復,反也。
復은 돌아감이다.
禮者,天理之節文也。
禮는 天理의 節文(品節에 맞게 하는 법도)이다.
為仁者,所以全其心之德也。
爲仁이란 자신의 마음의 德을 온전히 하는 방법이다.
蓋心之全德,莫非天理,而亦不能不壞於人慾。
마음의 온전한 德은 天理 아님이 없으나 또한 人慾에 파괴되지 않을 수 없다.
故為仁者必有以勝私慾而復於禮,則事皆天理,而本心之德復全於我矣。
그러므로 仁을 행하는 자가 반드시 私慾을 이기고 禮에 돌아갈 수 있다면, 일마다 모두 天理여서 本心의 德이 다시 나에게서 온전하게 된다.
歸,猶與也。
歸는 허여함과 같다.
又言一日克己復禮,則天下之人皆與其仁,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또 말씀하시기를 하루 동안이라도 克己復禮하면 天下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仁을 허여한다고 하시어, 그 효과가 심히 빠르고 지극히 큼을 極言하셨다.
又言為仁由己而非他人所能預,又見其機之在我而無難也。
또 仁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어서, 他人이 간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였으니, 또 인을 실천하는 기틀이 나에게 있어서 어려움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日日克之,不以為難,則私慾淨盡,天理流行,而仁不可勝用矣。
날마다 私慾을 이겨서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면 私慾이 깨끗이 다하고 天理가 流行하여 仁을 이루 다 쓸 수 없다.
程子曰:
「非禮處便是私意。
既是私意,如何得仁?
須是克盡己私,皆歸於禮,方始是仁。」
程子가 말씀하였다.
“禮가 아닌 곳이 바로 私意이다.
이미 私意라면 어떻게 仁을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자기의 私慾을 능히 진멸하여, 모두 禮에 돌아가게 하여야 비로소 仁이 된다.”
又曰:
「克己復禮,則事事皆仁,故曰天下歸仁。」
또 말씀하였다.
“克己復禮를 하면 일마다 모두 仁해진다. 그러므로 天下가 仁을 허여한다고 말씀하였다.”
謝氏曰:
「克己須從性偏難克處克將去。」
謝氏가 말하였다.
“克己는 모름지기 자기의 성질이 편벽되어 극복하기 어려운 것으로부터 이겨 나가야 한다.”
顏淵曰:
「請問其目。」
顔淵이 말하였다.
“극기복례의 條目을 묻겠습니다.”
子曰:
「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禮가 아니면 눈여겨 보지 말며, 禮가 아니면 귀담아 듣지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禮가 아니면 動하지 마는 것이다.”
顏淵曰:
「回雖不敏,請事斯語矣。」
顔淵이 말하였다.
“제[回]가 비록 不敏하오나 이 말씀에 종사하고자 합니다.”
目,條件也。
目은 條目과 일이다.
顏淵聞夫子之言,則於天理人慾之際,已判然矣,故不復有所疑問,而直請其條目也。
顔淵이 夫子의 말씀을 듣고 보니, 天理와 人慾의 사이에 대해서 이미 판연히 분별되었다. 그러므로 다시 의문하는 바가 있지 않아서 곧바로 극기복례의 조목을 청한 것이다.
非禮者,己之私也。
非禮란 자기의 私慾이다.
勿者,禁止之辭。
勿이란 금지하는 말이다.
是人心之所以為主,而勝私復禮之機也。
이것은 人心이 주장이 되어서 私慾을 이겨 禮에 돌아가는 바의 기틀인 까닭이다.
私勝,則動容周旋無不中禮,而日用之間,莫非天理之流行矣。
私慾이 이겨지면 動容하고 周旋함에 禮에 맞지 않음이 없어서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天理의 流行 아님이 없다.
事,如事事之事。
事는 일에 종사한다는 事字와 같다.
請事斯語,顏子默識其理,又自知其力有以勝之,故直以為己任而不疑也。
이 말씀에 종사하고자 함은 顔淵이 묵묵히 그 이치를 알고 또 자기의 능력이 이것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음을 스스로 알았다. 그러므로 곧바로 자신의 임무로 삼고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程子曰:
「顏淵問克己復禮之目,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四者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制於外所以養其中也。
顏淵事斯語,所以進於聖人。
後之學聖人者,宜服膺而勿失也,因箴以自警。
其視箴曰:
心兮本虛,應物無跡。
操之有要,視為之則。
蔽交於前,其中則遷。
制之於外,以安其內。
克己復禮,久而誠矣。
其聽箴曰:
人有秉彝,本乎天性。
知誘物化,遂亡其正。
卓彼先覺,知止有定。
閒邪存誠,非禮勿聽。
其言箴曰:
人心之動,因言以宣。
發禁躁妄,內斯靜專。
矧是樞機,興戎出好,吉兇榮辱,惟其所召。
傷易則誕,傷煩則支,己肆物忤,出悖來違。
非法不道,欽哉訓辭!
其動箴曰 :
哲人知幾,誠之於思;志士勵行,守之於為。
順理則裕,從欲惟危;造次克念,戰兢自持。
習與性成,聖賢同歸。」
程子가 말씀하였다.
“顔淵이 克己復禮의 條目을 묻자, 孔子께서 ‘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 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禮가 아니면 동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視 ‧ 聽 ‧ 言 ‧ 動 이 네 가지는 내 몸의 作用이다.
心中에서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에서 제재함은 자신의 心中을 기르는 방법이다.
顔淵이 이 말씀을 종사하였으니, 이 때문에 聖人의 경지에 나아간 것이다.
후세에 聖人을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가슴속에 두고 잃지 말아야 한다. 인하여 箴言을 지어서 나 자신을 경계하노라.
그 視箴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 虛明하니, 外物을 응함에 자취가 없다.
마음을 잡는 데는 요점이 있으니, 보는 것이 마음을 잡는 법칙이 된다.
물욕이 오가며 눈앞에 가리면 그 마음은 옮겨간다.
밖에서 제재하여 자신의 마음을 편안히 해야 한다.
克己復禮하여 오래되면 誠하게 될 터이다.’
그 聽箴에 말하였다.
‘사람이 가진 秉彛의 良心은 天性에 근본하였다.
知覺이 외물에 유혹되고 동화하여 마침내 그 바름을 잃는다.
드높으신 저 先覺者들은 그칠 데를 알아서 마음을 定함이 있었다.
외면의 邪를 막고 내면의 誠을 보존해서 禮가 아니면 듣지 말라.’
그 言箴에 말하였다.
‘人心의 動함은 말로 인하여 드러난다.
발언할 때 조급함과 경망함을 금하여야, 마음이 이에 고요하고 專一해진다.
하물며 몸의 樞機이니,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友好를 내기도 하고. 吉凶과 榮辱이 오직 말이 부르는 바이다.
너무 말을 쉽게 하면 虛誕해지고, 너무 번거로우면 支離해지며, 자신이 말을 함부로 하면 남도 거스르고, 나가는 말이 道理에 어그러지면 오는 말도 이치에 어그러진다.
法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서 훈계 말씀을 공경할지어다.’
그 動箴에 말하였다.
‘哲人은 幾微를 알아서 생각할 때에 성실히 하고, 志士는 實行을 힘써서 行爲에 지킨다.
天理를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人慾을 따르면 위험하니, 造次라도 능히 생각해서 戰戰兢兢하여 자신을 지켜라.
習慣이 天性과 더불어 이루어지면 聖賢과 같은 경지에 들어갈 터이다.’”
愚按:此章問答,乃傳授心法切要之言。
非至明不能察其幾,非至健不能致其決。
故惟顏子得聞之,而凡學者亦不可以不勉也。
程子之箴,發明親切,學者尤宜深玩。
내가 상고해 보건대, 이 章의 問答은 바로 心法을 전수해 준 간절하고 요긴한 말씀이다.
지극히 총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기미를 살필 수 없고, 지극히 강건한 사람이 아니면 그 결단을 이룰 수 없을 터이다.
그러므로 오직 顔子만이 이것을 들을 수 있었고, 모든 學者들도 또한 이것을 힘쓰지 않으면 안 될 터이다.
程子의 箴言이 발명하기를 매우 친절하니, 學者들은 더욱 깊이 완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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