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先進 第十一(논어집주 선진 제십일) 第二十五章

구글서생 2023. 3. 2. 05:08

▣ 第二十五章

子路、曾皙、冉有、公西華侍坐。
子路、曾晳、冉有、公西華가 <孔子를> 자리에서 모시고 있었다.

皙,曾參父,名點。
曾參의 아버지이니, 이름은 이다.

 

子曰:
「以吾一日長乎爾,毋吾以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 다소〔一日〕 너희들보다 나이가 많다 하여 나 때문에 어렵게 여기지 말라.”

言我雖年少長於女,然女勿以我長而難言。
내가 비록 나이가 너희들보다 조금 많으나 너희들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蓋誘之盡言以觀其志,而聖人和氣謙德,於此亦可見矣。
말을 다하도록 유도하여 그들의 뜻을 관찰하려고 하시니, 聖人의 온화한 기운과 겸손한 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
和氣致祥 乖氣致異(後漢書 楊震列傳 )

 

居則曰:不吾知也!如或知爾,則何以哉?」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무엇으로 쓰이겠느냐?”

言女平居,則言人不知我, 如或有人知女,則女將何以為用也?
너희들이 平居[평소]에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쓰여지겠느냐고 물으셨다.

 

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攝乎大國之間,加之以師旅,因之以饑饉;由也為之,比及三年,可使有勇,且知方也。」
子路가 경솔히 대답하였다.
“千乘의 諸侯國이 大國의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師旅[전란]가 加해지고 따라서 饑饉이 들어도, 제가 다스려서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義理로> 향할 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夫子哂之。
孔子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率爾,輕遽之貌。
率爾는 경솔하고 급한 모양이다.

攝,管束也。
管束[속박]이다.

二千五百人為師,五百人為旅。
25백명이 가 되고, 5백 명이 가 된다.

因,仍也。
은 따라서이다.

谷不熟曰饑,菜不熟曰饉。
곡식이 성숙되지 않음을 라 하고, 채소가 성숙되지 않음을 이라 한다.

方,向也,謂向義也。
은 향함이니, 義理에 향함을 말한다.

民向義,則能親其上,死其長矣。
백성이 義理에 향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죽을 수 있다.

哂,微笑也。
은 미소이다.

 

「求!爾何如?」
“求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對曰:
「方六七十,如五六十,求也為之,比及三年,可使足民。
如其禮樂,以俟君子。」
대답하였다.
“方 60∼70里, 혹은 50∼60里 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려서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禮樂으로 말하면 君子를 기다리겠습니다.”

求,爾何如,孔子問也,下放此。
求爾何如孔子께서 물으신 것이니, 아래도 이와 같다.

方六七十里,小國也。
6070는 작은 나라이다.

如,猶或也。
과 같다.

五六十里,則又小矣。
5060는 더욱 작은 것이다.

足,富足也。
은 부유하고 풍족한 것이다.

俟君子,言非己所能。
君子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의 능한 바가 아님을 말한다.

冉有謙退,又以子路見哂,故其辭益遜。
冉有謙退[겸손]하였고, 子路가 웃음을 당하였으므로 그 말이 더욱 겸손한 것이다.

 

「赤!爾何如?」
“赤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對曰:
「非曰能之,願學焉。
宗廟之事,如會同,端章甫,願為小相焉。」
대답하였다.
“제가 능하다는 말이 아니오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宗廟의 일과 또는 諸侯들이 會同할 때에 玄端服을 입고 章甫冠을 쓰고 작은 執禮者가 되기를 원합니다.”

公西華志於禮樂之事,嫌以君子自居。
公西華禮樂의 일에 뜻을 두었는데, 君子라고 자처함을 혐의하였다.

故將言己志而先為遜辭,言未能而願學也。
자기의 뜻을 말하려 하면서 먼저 겸손한 말을 하여, 자신이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宗廟之事,謂祭祀。
宗廟의 일은 祭祀를 말한다.

諸侯時見曰會,眾眺曰同。
諸侯四時로 뵙는 것을 라 하고, 여럿이 뵙는 것을 이라 한다.

端,玄端服。
玄端服이다.

章甫,禮冠。
章甫禮冠이다.

相,贊君之禮者。
은 임금의 를 돕는 자이다.

言小,亦謙辭。
라고 말한 것은 역시 謙辭이다.

「點!爾何如?」
“點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鼓瑟希,鏗爾,舍瑟而作。
비파를 타기를 드문드문 하더니, 쨍그렁 하고 비파를 놓으며 일어나 대답하였다.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세 사람이 말씀드린 것과는 다릅니다.”


子曰:
「何傷乎?亦各言其志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기의 뜻[포부]을 말하는 것이다.”


曰:
「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늦봄에 봄옷이 만들어지고 나서 冠을 쓴 어른 5∼6명, 童子 6∼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
孔子께서 아! 하고 감탄하셨다.
“나는 點을 許與한다.”

四子侍坐,以齒為序,則點當次對。
네 사람이 자리에서 모심에, 年齒로 차례를 한다면 曾點이 마땅히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한다.

以方鼓瑟,故孔子先問求、赤而後及點也。
그러나 막 비파를 타고 있었으므로 孔子께서 먼저 에게 물으신 뒤에 에게 미치신 것이다.

希,間歇也。
間歇이다.

作,起也。
은 일어남이다.

撰,具也。
은 갖추어 말하다.

春服,單袷之衣。
[]은 온화하고 따스한 시절이다. 春服은 홑옷과 겹옷이다.

浴,盥濯也,今上巳祓除是也。
盥手濯足이니, 오늘날 3上巳日[삼짇날]祓除[한 해의 액을 씻어내는 의식]가 그것이다.

沂,水名,在魯城南,地誌以為有溫泉焉,理或然也。
는 물 이름이니, 나라 都城 남쪽에 있다. 漢書》〈地理志溫泉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상 혹 그럴 듯하다.

風,乘涼也。
은 시원한 바람을 쏘이는 것이다.

舞雩,祭天禱雨之處,有壇墠樹木也。
舞雩는 하늘에 제사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니, 祭壇과 터를 닦아놓은 자리와 수목이 있다.

詠,歌也。
은 노래하는 것이다.

曾點之學,蓋有以見夫人慾盡處,天理流行,隨處充滿,無少欠闕。
曾點學問人慾이 모두 사라진 곳에 天理가 유행하여, 곳곳마다 충만하여 조금도 결함이 없음을 봄이 있었다.

故其動靜之際,從容如此。
그러므로 그가 動靜할 때에 從容[차분하고 자연스러움] 함이 이와 같았다.

而其言志,則又不過即其所居之位,樂其日用之常,初無捨己為人之意。
그 뜻을 말함에는 현재 자기가 처한 위치에 나아가 그 일상 생활의 떳떳함을 즐기는 데에 지나지 않았고, 애당초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다.

而其胸次悠然,直與天地萬物上下同流,各得其所之妙,隱然自見於言外。
그리하여 그 가슴속이 悠然[한가롭고 자연스러움]하여 곧바로 천지 만물과 더불어 上下가 함께 흘러 각각 제자리를 얻은 묘함이 은연중에 말 밖에 나타났다.

視三子之規規於事為之末者,其氣象不侔矣,故夫子歎息而深許之。
저 세 사람이 事爲[정사]의 지엽적인 것에 規規[급급]한 것에 견주어 보면 그 氣象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감탄하시고 깊이 허여하셨다.

而門人記其本末獨加詳焉,蓋亦有以識此矣。
門人들이 그 本末[전말]을 기록함에 특히 이를 더욱 자세히 하였으니, 그도 또한 이것을 앎이 있었던 듯하다.

三子者出,曾皙後。
세 사람이 나가고 曾晳이 뒤에 남았다.

曾皙曰:
「夫三子者之言何如?」
曾晳이 말하였다.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또한 각각 제 뜻을 말했을 뿐이다.”

 

曰:
「夫子何哂由也?」
<曾晳이>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由를 비웃었습니까?”

點以子路之志,乃所優為,而夫子哂之,故請其說。
子路의 뜻은 바로 충분히 행할 수 있는데도 夫子께서 웃으셨으므로 그 설명을 요청하였다.

 

曰:
「為國以禮,其言不讓,是故哂之。」
“나라를 다스림은 禮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웃었다.”

夫子蓋許其能,特哂其不遜。
夫子는 그의 능력은 허여하시고 다만 그 겸손하지 못함을 비웃으신 것이다.

 

「唯求則非邦也與?」
“求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孔子께서> 대답하셨다.
“方60∼70里, 또는 50∼60里가 되고서 나라가 아닌 것을 어디서 보겠느냐?”

曾點以冉求亦欲為國而不見哂,故微問之。
曾點冉求도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였으나, 비웃음을 당하지 않았으므로 은미하게 물었다.

而夫子之答無貶辭,蓋亦許之。
夫子의 대답이 하는 말씀이 없으셨으니, 이 또한 허여하신 것이다.

 

「唯赤則非邦也與?」
“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宗廟會同,非諸侯而何?
赤也為之小,孰能為之大?」
“宗廟의 일과 會同하는 일이 諸侯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赤의 재주로 小가 된다면 누가 능히 大가 되겠느냐?”

此亦曾皙問而夫子答也。
이 또한 曾晳이 묻자 夫子께서 답하신 것이다.


孰能為之大,言無能出其右者,亦許之之辭。
孰能為之大란 그의 위로 나올 자가 없음을 말씀하셨으니, 이 또한 공서적을 허여하신 말씀이다.

程子曰:
「古之學者,優柔厭飫,有先後之序。
如子路、冉有、公西赤言志如此,夫子許之。亦以此自是實事。
後之學者好高,如人游心千里之外,然自身卻只在此。」
程子가 말씀하였다.
옛날의 학자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빠져들며 충분히 맛보아 先後의 순서가 있었다.
예를 들면 子路冉有公西赤이 뜻을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자, 夫子께서 허여하시기를 또한 이것으로써 하셨으니, 자연히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後世學者들은 高遠한 것을 좋아하여, 사람이 마음은 천리 밖에 노닐지만 자신은 도리어 다만 여기에 있는 듯이 한다.”

又曰:
「孔子與點,蓋與聖人之志同,便是堯、舜氣象也。
誠異三子者之撰,特行有不掩焉耳,此所謂狂也。
子路等所見者小,子路只為不達為國以禮道理,是以哂之。
若達,卻便是這氣象也。」
또 말씀하였다.
孔子께서 曾點을 허여하셨으니 이는 聖人의 뜻과 같은 것이니, 이것은 바로 堯舜氣象이다.
진실로 세 사람이 갖고 있는 뜻과는 다르다. 다만 행실이 말을 가리지 못함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이른바 狂者이다.
子路등 세 사람의 소견은 작았다. 子路는 다만 나라를 다스림에 로써 하는 도리를 통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孔子께서 웃으셨다.
만약 통달했다면, 이것도 바로 그러한 氣象이다.”

又曰:
「三子皆欲得國而治之,故夫子不取。
曾點,狂者也,未必能為聖人之事,而能知夫子之志。
故曰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言樂而得其所也。
孔子之志,在於老者安之,朋友信之,少者懷之,使萬物莫不遂其性。
曾點知之,故孔子喟然歎曰「吾與點也。」
또 말씀하였다.
세 사람은 모두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이다.
曾點狂者이니, 반드시 聖人의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능히 夫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다.’라고 말한 것이니, 도를 즐기며 제자리를 얻었음을 말하였다.
孔子의 뜻은 老人을 편안하게 해주고, 朋友를 미덥게 해주고, 젊은이를 감싸줌에 있어서 萬物로 하여금 그 本性을 이루지 않음이 없게 하셨다.
曾點은 이것을 알았으므로 孔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曾點을 허여한다고 말씀하셨다.”

又曰:
「曾點、漆雕開,已見大意。」
또 말씀하였다.
曾點漆雕開는 이미 큰 뜻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