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子絕四:毋意,毋必,毋固,毋我。
孔子에게 네 가지가 전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으며, 기필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고집이 없으셨으며, 이기심이 없으셨다.
絕,無之盡者。
絶은 전혀 없는 것이다. =絶無
毋,史記作「無」是也。
毋는 《史記》에는 無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옳다.
意,私意也。
意는 사사로운 뜻이다.
必,期必也。
必은 기필하는 것이다.
固,執滯也。
固는 執滯하는 것이다.
我,私己也。
我는 자기에게 사사롭게 함이다.
四者相為終始,起於意,遂於必,留於固,而成於我也。
이 네 가지는 서로 始終이 되니, 즉 <어떤 일이> 사사로운 뜻에서 시작되어 기필하는 마음에로 이행되고, 이것이 고집하는 데 머물러 이기적인 자아로 완성된다.
蓋意必常在事前,固我常在事後,至於我又生意,則物慾牽引,循環不窮矣。
意와 必은 항상 일이 생기기 전에 있고, 固와 我는 항상 일이 생긴 뒤에 있다. <그러나> 我가 다시 私意를 내게 되면 物慾에 이끌려 끊임없이 반복 순환한다.
程子曰:
「此毋字,非禁止之辭。
聖人絕此四者,何用禁止。」
程子가 말씀하였다.
“여기의 毋字는 <의도적으로> 금지하는 말이 아니다.
聖人은 이 네 가지가 전혀 없으시니, 어찌 <의도적으로> 금지사를 쓰겠는가?”
張子曰:
「四者有一焉,則與天地不相似。」
張子가 말씀하였다.
“위의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마음속에> 있으면 天地와 서로 같지 못하다.”
楊氏曰:
「非知足以知聖人,詳視而默識之,不足以記此。」
楊氏가 말하였다.
“지혜가 족히 聖人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아 묵묵히 깨닫는 자가 아니라면 <聖人의 이와 같은 점을> 기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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