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四章
林放問禮之本。
林放이 禮의 근본을 물었다.
林放,魯人。
林放은 魯나라 사람이다.
見世之為禮者,專事繁文,而疑其本之不在是也,故以為問。
그는 세상에서 禮를 실행하는 자들이 오로지 번거로운 文飾만을 일삼는 것을 보고, 禮의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물었다.
子曰:
「大哉問!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질문이여!
孔子以時方逐末,而放獨有志於本,故大其問。
孔子는 당시 사람들이 바야흐로 말단을 따르고 있는데, 林放만이 유독 근본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그 질문을 훌륭하게 여기신 것이다.
▶以 ~ 故의 용법에 유의
蓋得其本,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
대체로 그 근본을 얻으면 禮의 전체가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다.
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고, 喪은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
▶與其 A 寧(不如, 不若) B
A하기 보다는 B하는 것이 낫다.
易,治也。孟子曰:「易其田疇。」, 在喪禮,則節文習熟,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
易는 다스림이니, 《孟子》에 ‘그 밭두둑을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喪禮에 있어서 節文만 익숙하고, 애통하고 서글퍼하는 실상이 없는 것이다.
戚則一於哀,而文不足耳。
戚은 애통함에 전일하고 文이 부족한 것이다.
禮貴得中,奢易則過於文,儉戚則不及而質,二者皆未合禮。
禮는 中을 얻음을 귀중히 여기니, 奢와 易는 文에 지나치고, 儉과 戚은 미치지 못해서 質하니, 이 두 가지는 모두 禮에 부합하지 않는다.
然凡物之理,必先有質而後有文,則質乃禮之本也。
그러나 모든 사물의 이치는 반드시 먼저 質이 있은 뒤에 文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質은 바로 禮의 근본이다.
范氏曰:
「夫祭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禮失之奢,喪失之易,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
禮奢而備,不若儉而不備之愈也;喪易而文,不若戚而不文之愈也。
儉者物之質,戚者心之誠,故為禮之本。」
范氏가 말하였다.
“제사는 敬이 不足하면서 禮가 有餘하기보다는 禮가 不足하면서 敬이 有餘함만 못하며, 喪은 슬픔이 不足하면서 禮가 有餘하기보다는 禮가 不足하면서 슬픔이 有餘함만 못하다.
禮가 사치함에서 잘못됨과 喪이 형식적 데서 잘못됨은 모두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말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禮는 사치하면서 잘 갖춤이 검소하면서 갖추지 않음만 못하고, 喪은 형식적으로 잘 치러 문채남이 슬퍼하면서 문채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검소함은 사물의 바탕이고, 슬퍼함은 마음의 정성이다. 그러므로 禮의 근본이 된다.”
楊氏曰:
「禮始諸飲食,故污尊而抔飲,為之簠、簋、籩、豆、罍、爵之飾,所以文之也,則其本儉而已。
喪不可以徑情而直行,為之衰麻哭踴之數,所以節之也,則其本戚而已。
周衰,世方以文滅質,而林放獨能問禮之本,故夫子大之,而告之以此。」
楊氏가 말하였다.
“禮는 음식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옛날에는> 웅덩이를 그릇으로 삼고 손으로 움켜 마시다가 <후대에는> 보궤 • 변두 • 뇌작의 꾸밈을 만든 것은 文飾했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그 근본은 검소일 뿐이다.
喪은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어 곧바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衰麻와 곡하고 뜀의 數를 제정함은 절제하기 위한 것이니, 그렇다면 그 근본을 슬픔일 뿐이다.
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세속이 文으로 質을 없앴는데도 林放만은 홀로 禮의 근본을 물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것을 훌륭하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尊: 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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