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八佾 第三(논어집주 팔일 제삼) 第四章

구글서생 2023. 3. 12. 02:46

▣ 第四章

林放問禮之本。
林放이 禮의 근본을 물었다.

林放,魯人。
林放나라 사람이다.

見世之為禮者,專事繁文,而疑其本之不在是也,故以為問。
그는 세상에서 를 실행하는 자들이 오로지 번거로운 文飾만을 일삼는 것을 보고, 의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물었다.

子曰:
「大哉問!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질문이여!

孔子以時方逐末,而放獨有志於本,故大其問。
孔子는 당시 사람들이 바야흐로 말단을 따르고 있는데, 林放만이 유독 근본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그 질문을 훌륭하게 여기신 것이다.
~ 의 용법에 유의

蓋得其本,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
대체로 그 근본을 얻으면 의 전체가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다.

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고, 喪은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

與其 (不如不若) B
A하기 보다는 B하는 것이 낫다.

易,治也。孟子曰:「易其田疇。」, 在喪禮,則節文習熟,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
는 다스림이니, 孟子그 밭두둑을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喪禮에 있어서 節文만 익숙하고, 애통하고 서글퍼하는 실상이 없는 것이다.

戚則一於哀,而文不足耳。
은 애통함에 전일하고 이 부족한 것이다.

禮貴得中,奢易則過於文,儉戚則不及而質,二者皆未合禮。
을 얻음을 귀중히 여기니, 에 지나치고, 은 미치지 못해서 하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에 부합하지 않는다.

然凡物之理,必先有質而後有文,則質乃禮之本也。
그러나 모든 사물의 이치는 반드시 먼저 이 있은 뒤에 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은 바로 의 근본이다.

范氏曰:
「夫祭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禮失之奢,喪失之易,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
禮奢而備,不若儉而不備之愈也;喪易而文,不若戚而不文之愈也。
儉者物之質,戚者心之誠,故為禮之本。」
范氏가 말하였다.
제사는 不足하면서 有餘하기보다는 不足하면서 有餘함만 못하며, 은 슬픔이 不足하면서 有餘하기보다는 不足하면서 슬픔이 有餘함만 못하다.
가 사치함에서 잘못됨과 이 형식적 데서 잘못됨은 모두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말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는 사치하면서 잘 갖춤이 검소하면서 갖추지 않음만 못하고, 은 형식적으로 잘 치러 문채남이 슬퍼하면서 문채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검소함은 사물의 바탕이고, 슬퍼함은 마음의 정성이다. 그러므로 의 근본이 된다.”

楊氏曰:
「禮始諸飲食,故污尊而抔飲,為之簠、簋、籩、豆、罍、爵之飾,所以文之也,則其本儉而已。
喪不可以徑情而直行,為之衰麻哭踴之數,所以節之也,則其本戚而已。
周衰,世方以文滅質,而林放獨能問禮之本,故夫子大之,而告之以此。」
楊氏가 말하였다.
는 음식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옛날에는> 웅덩이를 그릇으로 삼고 손으로 움켜 마시다가 <후대에는> 보궤 변두 뇌작의 꾸밈을 만든 것은 文飾했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그 근본은 검소일 뿐이다.
은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어 곧바로 행할 수 없기 때문에 衰麻와 곡하고 뜀의 를 제정함은 절제하기 위한 것이니, 그렇다면 그 근본을 슬픔일 뿐이다.
나라가 쇠약해지자, 세속이 으로 을 없앴는데도 林放만은 홀로 의 근본을 물었다. 그러므로 夫子께서 그것을 훌륭하게 여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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