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八佾 第三(논어집주 팔일 제삼) 第十章

구글서생 2023. 3. 12. 02:35

▣ 第十章

子曰:
「禘自既灌而往者,吾不欲觀之矣。」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禘제사에 降神酒를 따른 뒤로부터는 내 보고 싶지 않다.”
忌祭는 사절사(正朝寒食端午秋夕)+기일의 5.
文王은 이미 實職의 왕인데도 을 追尊王追으로 삼으니 잘못이다.

趙伯循曰:
「禘,王者之大祭也。
王者既立始祖之廟,又推始祖所自出之帝,祀之於始祖之廟,而以始祖配之也。
成王以周公有大勳勞,賜魯重祭。
故得禘於周公之廟,以文王為所出之帝,而周公配之,然非禮矣。」
趙伯循이 말하였다.
제사는 王者의 큰제사이다.
王者始祖의 사당을 세우고 나서, 始祖가 나온 바의 임금을 추존하여 始祖의 사당에 제사하면서 始祖로써 配享한다.
成王周公(王家) 큰 공로가 있다 하여 나라에게 중요한 제사(천자의 예)를 내려주었다.
그러므로 周公의 사당에 체제사를 지내고 文王을 나온 바의 임금으로 삼아, 周公配享하였는데 그러나 가 아니다.”
증직: 당사자의 아버지는 당사자보다 1등급 올리며, 할아버지는 당사자와 같게 한다
직급보다 직책이 높으면
직급보다 직책이 낮으면
직급과 직책이 맞으면 “”

灌者,方祭之始,用郁鬯之酒灌地,以降神也。
은 바야흐로 제사하는 초기에 鬱鬯술을 사용하여 땅에 부어 을 강림하게 하는 것이다.

魯之君臣,當此之時,誠意未散,猶有可觀,自此以後,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이 때를 당해서는 誠意가 흩어지지 않아 그래도 볼만한 것이 있었으나, 이로부터 이후로는 점차 게을러져서 볼만한 것이 없었다.
: 점점, 점차
懈怠:(마음이 게으름) (몸이 게으름)

蓋魯祭非禮,孔子本不欲觀,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故發此歎也。
나라의 체제사는 가 아니었기 때문에 孔子께서 본래 보고 싶지 않으셨는데, 이때 이르러서는 失禮한 가운데 또 失禮를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탄식을 발하신 것이다.

謝氏曰:
「夫子嘗曰:『我欲觀夏道,是故之杞,而不足征也;我欲觀殷道,是故之宋,而不足征也。』
又曰:
『我觀周道,幽厲傷之,吾捨魯何適矣。
魯之郊禘非禮也,周公其衰矣!』
考之杞宋已如彼,考之當今又如此,孔子所以深歎也。」
謝氏가 말하였다.
夫子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라의 를 보려고 하여 나라에 갔으나 나라가 증거대주지 못하였고, 내가 나라의 를 보려고 하여 나라에 갔으나 나라가 증거대주지 못하였다.’라고 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내가 나라의 를 보려고 하나 幽王厲王이 손상시켰으니, 내가 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나> 나라의 郊祭禘祭가 아니니, 周公의 예법도 쇠퇴하였다.’
나라와 나라를 살펴봄에 이미 저와 같았고, 당시에 살펴봄에 또 이와 같았으니, 孔子께서 이 때문에 깊이 탄식하셨다.”
: 证明证验:~引用引证)。信而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