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說】
饒氏曰
小學者 小子之學也 題辭者 標題書首之辭也
饒氏[饒魯]가 말하였다.
“小學은 小子가 배우는 것이요, 題辭는 책머리에 표제하는 말이다.
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
元·亨·利·貞은 천도의 떳떳함이요, 仁·義·禮·智는 人性의 벼리이다.
【正誤】
元者 生物之始 亨者 生物之通 利者 生物之遂 貞者 生物之成 四者 謂之天道 天理自然之本體也 亘萬世而不易 故曰常.
元은 生物[물건을 낳음]의 시초요, 亨은 生物의 통함이요, 利는 生物의 이룸이요, 貞은 生物의 완성이니, 이 네 가지를 天道라 이르고, 天理 自然의 본체여서 만대에 이르도록 바뀌지 않으므로 常이라고 한다.
仁者 愛之理 義者 宜之理 禮者 恭之理 智者 別之理 四者 謂之人性 人心所具之天理也 統萬善而不遺 故曰綱.
仁은 사랑함의 이치요, 義는 마땅함의 이치요, 禮는 공손함의 이치요, 智는 분별하는 이치이니, 이 네 가지를 人性이라 이르고, 사람의 마음이 갖추고 있는 天理로서 모든 善을 통괄하여 빠뜨리지 않으므로 綱이라고 하였다.
▶ 亘 : 이어지다. 걸치다.
元 於時爲春 於人爲仁 亨 於時爲夏 於人爲禮 利 於時爲秋 於人爲義 貞 於時爲冬 於人爲智.
元은 시절에 있어서 봄이고 사람에 있어서 仁이며, 亨은 시절에 있어서 여름이고 사람에 있어서 禮이며, 利는 시절에 있어서 가을이고 사람에 있어서 義이며, 貞은 시절에 있어서 겨울이고 사람에 있어서 智이다.
【集說】
此一節言天道流行賦於人而為性也.
이 한 구절은 天道가 유행하며 사람에게 부여하여 性을 지음을 말하였다.
凡此厥初 無有不善 藹然四端 隨感而見.
무릇 이 性은 그 처음에 善하지 않음이 없어 성대히 네 가지 실마리가 감정에 따라 나타난다.
【集說】
饒氏曰
此者 指上文仁義禮智之性也.
“이는 윗글의 仁·義·禮·智라는 性을 가리킨다.
厥初 謂本然也.
厥初는 본연을 말한다.
藹然 衆盛貌.
藹然은 많고 성한 모양이다.
端 緖也 孟子曰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端은 실마리이니, 孟子가 말씀하시기를, ‘측은해하는 마음은 仁의 실마리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義의 실마리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실마리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은 智의 실마리이다.’라고 하였다.
感者 自外而動於內也 見者 自內而形於外也.
感은 밖으로부터 안에 움직임이요, 見은 안으로부터 밖에 나타남이다.
此 言人性 其初本善 是以 四者之善端 藹藹然隨其物之所感動而形見也
饒氏가 말하였다.
이는 사람의 性이 그 처음은 본래 善하므로 네 가지의 善한 실마리가 성대하게 사물의 감동하는 바에 따라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此一節 言性發而爲情也.
이 한 구절은 性이 발현하여 情이 됨을 말하였다.
愛親敬兄 忠君弟長 是曰秉彛 有順無彊.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함과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함, 이것을 秉彛[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떳떳한 천성]라 하니, 자연스러움이 있고 억지로 함은 없다.
【集說】
饒氏曰
饒氏가 말하였다.
忠者 盡己之謂.
“忠은 자기를[마음을] 다함을 이른다.
弟 順也.
弟는 순함이다.
秉 執也 彛 常也.
秉은 잡음이요, 彛는 떳떳함이다.
言愛親·敬兄·忠君·弟長此四者 乃人所秉執之常性 皆出於自然 而非勉彊爲之也.
愛親·敬兄·忠君·弟長 이 네 가지는 곧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불변의 性이니, 모두 자연에서 나온 것이요 힘써서 억지로 함이 아님을 말하였다.”
此一節 言性之見於行也.
이 한 구절은 性이 행실에 나타남을 말하였다.
惟聖 性者 浩浩其天 不加毫末 萬善足焉.
聖人은 본성대로 하시는 분이라 넓고 넓음이 하늘과 같으시니, 털끝만큼을 보태지 않아도 모든 善을 具足한다.
【集說】
饒氏曰
惟 語辭 .
浩浩 廣大貌 .
天 卽理也 .
毫末 言至微也 .
此 言聖人 無氣稟物欲之累 天性渾全 浩浩然廣大 與天爲一 不待增加毫末 而萬善自足 無少欠缺也
饒氏가 말하였다.
“惟는 어조사이다.
浩浩는 넓고 큰 모양이다.
天은 곧 理이다.
毫末은 지극히 작음을 말한다.
이는 聖人은 氣稟에 物欲의 누가 없고 天性이 渾全하여 浩浩하게 넓고 커서 하늘과 하나가 되어, 털끝만큼을 더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모든 善이 저절로 충족하여 조금도 결함이 없다는 말이다.”
此一節 言聖人之盡其性也.
이 한 구절은 聖人이 그의 性을 다함을 말하였다.
衆人 蚩蚩 物欲交蔽 乃頹其綱 安此暴棄.
衆人은 어리석고 어리석어 물욕이 서로 가려, 마침내 性의 벼리를 무너뜨려 이 自暴自棄함에 안주한다.
【集說】
饒氏曰
衆人 凡民 .
蚩蚩 無知之貌 .
物欲 謂凡聲色臭味之欲也 .
交 互也 蔽 遮也 暴 害也 .
此 言衆人 氣稟昏愚 物欲交蔽 是以 頹墜其仁義禮智之綱 而安於自暴自棄也.
饒氏가 말하였다.
“衆人은 보통 사람이다.
蚩蚩는 앎이 없는 모양이다.
物欲은 모든 음악과 여색, 냄새와 맛의 욕구를 이른다.
交는 서로요, 蔽는 가림이요, 暴는 해침이다.
이는 衆人들은 氣稟이 어둡고 어리석으며 물욕이 서로 가리매, 仁·義·禮·智의 벼리를 무너뜨려 自暴自棄에 안주한다는 말이다.”
此一節 言衆人之其性也.
이 한 구절은 衆人들이 그 性을 어지럽힘을 말하였다.
惟聖斯惻 建學立師 以培其根 以達其支.
聖人이 이것을 슬퍼하시어, 학교를 건립하고 스승을 세워, 그 뿌리를 북돋우며 그 가지를 키웠다.
【集解】
饒氏曰
斯語辭 此 言聖人 憫人安於暴棄.
故 爲建學立師以敎之 使之養其仁義禮智之性 如培壅木之根本 充其惻隱羞惡辭讓是非之端 與夫愛親敬兄忠君弟長之道 如發達木之支條也
饒氏가 말하였다.
“斯는 어조사이다.
이것은 聖人은 사람들이 自暴自棄에 안주함을 안타까이 여겼으매, <그들을> 위해 학교를 건립하고 스승을 세워 가르쳐서, 그들이 仁·義·禮·智의 性을 기르게 하기를 마치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 주듯이 하고, 惻隱·羞惡·辭讓·是非의 실마리와 愛親·敬兄·忠君·弟長의 도리를 채우기를 마치 나무의 가지를 발달시키듯이 하였다는 말이다.”
此一節 言聖人興學設敎之意.
이 한 구절은 聖人이 학교를 일으키고 가르침을 베푼 뜻을 말하였다.
小學之方 灑掃應對 入孝出恭 動罔或悖 行有餘力 誦詩讀書 詠歌舞蹈 思罔或逾
小學의 <교육>방법은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집에>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여, 동작이 혹시라도 <이에서> 어긋남이 없게 함이고, 이것을 행하고 餘力이 있거든 《詩經》을 외우고 《書經》을 읽으며, 읊고 노래하며 춤추고 뛰어, 생각에 혹시라도 <이에서> 넘침이 없게 한다.
【集解】
罔 無也 悖 戾也.
罔은 없음이다. 悖는 어긋남이다.
餘力 猶言暇日.
餘力은 暇日[한가한 날]이란 말과 같다.
手曰舞 足曰蹈.
손을 놀림을 舞라 하고, 발을 놀림을 蹈라 한다.
詠歌舞蹈 皆學樂之事.
詠歌舞蹈는 모두 음악을 배우는 일이다.
逾 越也
逾는 넘음이다.
【增註】
方 法也.
方은 방법이다.
饒氏曰
此 言小學之方 必使學者 謹夫灑掃應對之節 入則愛其親 出則敬其長 凡所動作 無或悖戾乎此也 行此數者 而有餘力 則誦詩讀書 詠歌以習樂之聲 舞蹈以習樂之容 凡所思慮無或逾越乎此也
饒氏가 말하였다.
“이는 小學의 교육 방법은 반드시 배우는 자에게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는 예절을 삼가며, 집에 들어와서는 그 어버이를 사랑하고 나가서는 그 어른을 공경하여, 무릇 동작하는 바가 혹시라도 이에서 어긋남이 없게 하고, 이 몇 가지를 실행하고 餘力이 있으면, 詩를 외우고 書를 읽으며, 읊고 노래하여 음악의 소리를 익히고 춤추고 뛰어 음악의 모양을 익혀, 무릇 생각하는 바에 혹시라도 이에서 넘음이 없으라는 말이다.”
【集說】
此一節 言小學之敎
이 한 구절은 小學校의 가르침을 말하였다.
窮理修身 斯學之大.
이치를 연구하고 몸을 닦음이 학문의 중대함이다.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
明命이 환하여 안팎이 있지 않으니, 德이 높고 業이 넓어야 이에 性의 처음을 회복한다.
昔非不足 今豈有餘?
<옛날에 자포자기했을 때에도 性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오늘에 <德이 높고 業이 넓다고 해서 性이>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
【集解】
饒氏曰
明命 卽天之所賦於人而人之所得以爲性者也.
赫然 明盛貌.
德者 道之得於內者也 業者 功之成於外者也.
復 還也 .
初 謂本然也 .
此 言格物致知以窮究其理 誠意正心以修治其身 此乃大學之道也.
然 天之明命 赫然昭著 無有內外之間 學者誠能從事於大學 使物格·知至·意誠·心正·身修 而德之積於內者 極乎崇高 業之施於外者 極乎廣博 則有以復其性之本然矣.
昔日之安於暴棄也 此性 固非不足 今日之德崇業廣也 此性 亦非有餘.
但昔爲氣稟物欲之所蔽 今則復其本然耳.
饒氏가 말하였다.
“明命은 곧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서 사람이 얻어 性이라 하는 것이다.
赫然은 밝음이 성한 모양이다.
德은 道를 안에 얻은 것이요, 業은 功을 밖에 이룬 것이다.
復은 돌아옴이다.
初는 본연을 이른다.
이것은 격물치지로써 그 이치를 궁구하며, 誠意正心로써 그 몸을 닦고 다스림은, 곧 大學의 교육 방법이다.
그러나 하늘의 明命이 赫然히 밝게 드러나 안팎의 간격이 있지 않으니, 배우는 자가 진실로 大學에 종사하여, 사물의 이치가 연구되고 지식이 극진해지고 뜻이 성실해지고 마음이 바루어지고 몸이 닦아져, 德이 안에 쌓임이 지극히 높고, 業이 밖에 베풀어짐이 지극히 넓게 되면 그 性의 본연을 회복하게 된다.
옛날 自暴自棄에 안주할 적에도 이 性이 진실로 부족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德이 높고 業이 넓음에도 이 性이 또한 有餘하지 않다.
다만 옛날에는 氣稟과 物欲에 가려졌는데, 이제는 그 본연을 회복할 뿐이다.”
【集說】
此一節 言大學之敎.
이 한 구절은 大學의 가르침을 말한 것이다.
世遠人亡 經殘敎弛 蒙養弗端 長益浮靡 鄕無善俗 世乏良材 利欲紛拏 異言喧豗.
융성했던 세대가 멀어지고 聖人이 별세하여, 經書가 이지러지고 교육이 해이해지니, 어린이를 기름이 바르지 않고 장성하면 더욱 경박하고 사치하여, 시골에는 좋은 풍속이 없고 세상에는 훌륭한 인재가 없으매, 利欲이 어지럽게 끌며 異端의 말이 시끄럽게 서로 공격한다.
【集解】
饒氏曰
人 謂聖人 .
經 六經也 .
端 正也 .
拏 牽引也 豗 相擊也 .
此 言自前世旣遠 聖人旣沒 六經殘缺 而敎法亦廢弛矣 .
小學之敎廢 則自童蒙之時 而養之不以其正 大學之敎廢 則至年長而所習 日益輕浮華靡.
是以 鄕無淳厚之習俗 世無粹美之人材 但見利欲之習 紛然而相牽引 異端之言 喧然而相攻擊也.
饒氏가 말하였다.
“人은 聖人을 이른다.
經은 六經이다.
端은 바름이다.
拏는 끎이요, 豗는 서로 공격함이다.
옛 세상이 이미 멀어지고 聖人이 이미 돌아가심으로부터 六經이 이지러지고 가르치는 방법 또한 廢弛해졌다.
小學의 가르침이 폐해지면 童蒙일 때로부터 기르기를 그 올바름으로써 하지 못하고, 大學의 가르침이 폐해지면 나이가 장성함에 이르러서 익히는 바가 날로 더욱 경박하고 사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을에는 순후한 풍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재가 없어져, 다만 이욕의 습속들이 어지럽게 서로 잡아당기고 異端의 말들이 시끄럽게 서로 공격함을 볼 뿐이다.”
【集說】此一節 言後世敎學不明之害.
이 한 구절은 後世에 가르침과 배움이 밝지 못한 폐해를 말하였다.
幸玆秉彛 極天罔墜.
다행히 秉彛는 하늘이 다하도록 추락함이 없다.
爰輯舊聞 庶覺來裔.
이에 옛날에 들은 것들을 모아서 바라건대 후학들을 일깨우려 한다.
▶ 庶 : 바라건대.
庶는 부사로서 희망 및 가능을 나타낸다.
때로는 庶幾, 庶乎로도 쓴다. “바라건대” “아마도”
¶ 聽用我謀, 庶無大悔. 《詩經 大雅 抑》
나의 계략을 좇는다면, 아마도 큰 후회는 없으리라.<한문의 허사 庶 참조>
嗟嗟小子 敬受此書.
아! 小子들아. 공경하여 이 책을 받아라.
匪我言耄 惟聖之謨
나의 말은 노망한 것이 아니라, 聖人의 가르침이시다.
【集說】
饒氏曰
極 終也 極天罔墜 言人之秉 萬古常存也.
爰 於也.
裔 衣襟之末 來裔 謂後學也.
嗟嗟 歎辭.
我 朱子自謂也.
耄 老而昏也
饒氏가 말하였다.
“極은 마침이니, 極天罔墜는 사람의 秉彛가 만고에 항상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爰은 ‘이에’이다.
裔는 옷섶의 끝이니, 來裔는 後學을 이른다.
嗟嗟는 탄식하는 말이다.
我는 朱子가 자신을 이름이다.
耄는 늙어 혼미함이다.”
【集說】
此一節 言集小學開後學之意.
이 한 구절은 《小學》을 편집하여 後學을 계도한 뜻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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