程子曰 古之人 自能食能言而敎之.
是故 小學之法 以豫爲先.
蓋人之幼也 知思未有所主 則當以格言至論 日陳於前 使盈耳充腹.
久自安習 若固有之者 後雖有讒說搖惑 不能入也.
若爲之不豫 及乎稍長 意慮偏好 生於內 衆口辯言 鑠於外 欲其純全 不可得已.
程子가 말씀하였다.
“옛사람들은 아이가 밥을 먹고 말을 할 때부터 가르쳤다.
그러므로 小學의 법은 미리 준비함을 우선으로 삼는다.
사람이 어릴 때는 지식과 생각에 주장하는 바가 있지 않으니, 마땅히 올바른 말과 지극한 의논을 날마다 <어린이> 앞에서 말하여 귀를 채우고 배에 가득하게 하여야 한다.
오래되면 저절로 편안하고 익숙해져서 마치 固有한 듯하면, 뒤에 비록 나쁜 말의 동요와 유혹이 있더라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만약 가르침을 미리 하지 않아, 점점 자람에 이르면 뜻과 생각에 편벽되게 좋아함이 안에서 생기고, 사람들의 말이 밖에서 침식하니, 純全하고자 한들 될 수 없다.”
朱子曰
後生初學 且看小學書 那箇是做人底樣子.
朱子가 말씀하였다.
“後生의 初學者는 우선 《小學》을 보아야 하니, 이것이 사람을 만드는 樣子[틀]이기 때문이다.”
又曰 修身大法 小學書備矣 義理精微 近思錄詳之.
또 말씀하였다.
“몸을 닦는 큰 법은 《小學》에 갖추어져 있고, 의리의 정밀하고 미묘함은 《近思錄》에 자세히 말하였다.”
又曰 古人之學 固以致知格物爲先.
然其始也 必養之於小學 則在乎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習而已.
聖賢開示後人進學門庭, 先後次序 極爲明備.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의 학문은 진실로 致知와 格物을 우선하였다.
그러나 그 처음은 반드시 《小學》에서 길렀으니, 바로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禮·樂·射·御·書·數의 익힘에 있을 뿐이었다.
聖賢이 後人에게 학문에 나아가는 門庭과 先後의 次序를 열어 보여주시되, 지극히 밝게 갖추었다.”
又曰 古之敎者 有小學, 有大學 其道則一而已.
小學 是事 如事君事父兄等事 大學 是發明此事之理 就上面講究委曲所以事君事親等事是如何.
또 말씀하였다.
“옛날의 가르침에는 小學이 있고 大學이 있었는데, 그 道는 하나일 뿐이다.
小學은 곧 일이니, 이를테면 임금을 섬기고 父兄을 섬기는 등의 일이요, 大學은 곧 이 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니, 그 上面으로 나아가 임금을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등의 일이 어떠한 것인가를 자세함을 講究한다.”
▶委曲 : 仔細하고 昭詳함. 또는 그 曲折.
又曰
古人 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灑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
또 말씀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小學을 거쳐서 大學에 나아가,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감에 지킴이 굳게 안정되며 함양함이 순수하고 익숙함이 진실로 이미 오래되었으니, 大學의 순서는 다만 小學에서 이미 이룬 공을 통할 뿐이었다.”
又曰
古人於小學 存養已熟 根基已自深厚 到大學 只就上點化出些精采.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들은 小學에서 <본심을> 보존하여 <性을> 기름이 이미 익숙하여 根基[기반]가 이미 스스로 깊고 두터웠으니, 大學에 이르러서는 다만 그 위로 나아가 약간의 정채를 點化[變化, 融化]해 낼 뿐이었다.”
又曰
古人 小學 敎之以事 便自養得他心 不知不覺自好了.
到得漸長 更歷通達事物 將無所不能.
今人 旣無本領 只去理會許多閑汨董 百方措置思索 反以害心.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들은 小學에서 일을 가르쳐 곧 스스로 그 마음을 길러서 자신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좋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자람에 이르러서는 사물을 경험하여 통달해서 장차 능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지금 사람들은 이미 本領이 없고 다만 허다한 쓸데없는 잡동사니들만을 이해하니 백방으로 조치하고 사색하나, 도리어 마음을 해친다.”
▶ 汨董 : 여러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
又曰
古人於小學 自能言便有敎.
一歲有一歲工夫 到二十來歲 聖賢資質 已自有三分了 大學 只出治光彩.
而令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 只據而今地頭 便箚住立定脚跟做去.
如三十歲覺悟 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 便年八九十歲覺悟 亦當據現在箚住做去.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들은 小學에서 스스로 말할 때부터 곧 가르침이 있었다.
그리하여 한 살에는 한 살의 공부가 있어, 20세에 이르면 聖賢의 자질을 이미 스스로 3분[30%]을 갖고 있으니, 大學은 다만 광채만 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들 小學 공부를 놓치고 지나쳐버려 되돌아가서 공부할 수 없으니, 다만 지금의 처지에 의거하여 곧바로 머물러 입장을 정하고 공부해야 한다.
만일 30세에 깨달았다면 곧 30세에 입장을 정하고 공부하며, 곧 나이 80∼90세에 깨달았다면 또한 마땅히 현재에 依據하여 머물러 공부해야 한다.”
或問
某自幼 旣失小學之序矣 請授大學 何如?
朱子曰
授大學也 須先看小學書 只消旬月工夫.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小學의 순서를 잃었으니, 청컨대 大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朱子가 대답하였다.
“大學을 배움에는 반드시 먼저 《小學》을 보아야 하니, 단지 10개월만 공부하면 된다.”
李周翰請敎 屢歎年歲之高 未免時文之累.
朱子曰
這須是自見得 某所編小學 公宜仔細去看.
也有古人說話 也有今人說話.
李周翰이 가르침을 청하면서, 나이가 많고 時文[科文]에 얽매임을 면치 못한다고 자주 탄식하자, 朱子가 말씀하였다.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알아야 하니, 내가 엮은 《小學》을 公은 마땅히 자세히 보라.
여기에는 옛사람의 말도 있고, 또한 지금 사람의 말도 있다.”
▶ 也 : …도 (하고) …도 (하다). [앞뒤로 병용해서 병렬되어 있는 것을 모두 강조함] 风也停了, 雨也住了 바람도 자고, 비도 그쳤다
或問
某今看大學 如小學中有未曉處 亦要理會
朱子曰
相兼看不妨
學者於文爲制度 不可存終理會不得之心 須立箇大規模 都要理會得.
至於明暗 則係乎人之才如何耳.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제가 지금 《大學》을 보고 있는데, 《小學》 중에 알지 못하는 부분을 또한 이해하여야 합니까?”라고 하자,
朱子가 말씀하였다.
“서로 겸하여 보는 것이 무방하다.
배우는 자는 문장이나 제도에 있어,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하니, 모름지기 큰 규모를 세워 모두 이해하고자 하여야 한다.
밝게 알거나 밝게 알지 못함에 관하여 말하자면, 사람의 재주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陸氏曰
古者敎子弟 自能言能食 卽有敎 以至灑掃應對之類 皆有所習.
故長大易言 今人 自小只敎做對 稍大 卽敎作虛誕之文 皆壞其性質也
陸氏[陸九淵]가 말하였다.
“옛날에는 자제를 가르칠 적에 말을 하고 밥을 먹을 때부터 곧 가르침이 있어,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는 따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익히는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장성해서 말하기가 쉬웠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다만 對句를 짓기만 가르치고, 점점 자라면 곧 虛誕한 글을 짓도록 가르치니, 이는 모두 그 性의 바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陸九淵(1139년~1192년)은 중국 남송의 사상가이다. 자는 子靜, 호는 象山, 諡는 文安이다. 撫州 金谿縣(현재 장시성 푸저우시 금계현) 사람으로 형인 九韶(자는 子美), 九齡(復齋先生)과 함께 학문으로 이름을 남겼다. 1172년(乾道 8년)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지방관으로 종사하면서 자제 교육에 종사했다.
呂氏曰
後生小兒學問 且須理會曲禮, 少儀, 儀禮等 學灑掃應對進退之事 及先理會爾雅訓誥等文字然後 可以語上.
下學而上達 自此脫然有得.
不如此 則是躐等 終不得成也
呂氏[呂祖兼]가 말하였다.
“後生의 어린이가 學問할 때에는 우선 모름지기 〈曲禮〉·〈少儀〉·《儀禮》 등을 이해하여, 灑掃·應對·進退을 배우고, 또 먼저 爾雅·訓誥 등의 문자를 이해한 이후에야 上等의 것을 말할 수 있다.
아래로 人事를 배워 위로 天理를 통달하면 이로부터 脫然히 깨달음이 있을 터이다.
이렇게 하지 않음은 등급을 뛰어넘는 것이라서, 끝내 성공하지 못할 터이다.”
陳氏曰
程子說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闕 蓋主敬 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旣立然後 大學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內外 小學, 大學 皆不可無也
陳氏[陳淳]가 말하였다.
“程子는 敬을 위주로 공부가 小學의 闕漏를 보충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敬을 위주로 하면 放心을 거두어 큰 근본을 세울 수 있고, 큰 근본이 서고 나서 大學 공부도 순서를 따라 나아가면,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을 터이다.
대개 敬을 위주하는 공부는 始終을 관통하고, 動靜을 일관하고, 內外를 결합하니, 小學과 大學은 모두 없어서는 안 된다.”
▶ 陳淳: 1159~1223. 남송 漳州 龍溪 사람. 자는 安卿이고, 호는 北溪며, 시호는 文安이다. 젊어서 擧子業을 익혔는데, 林宗臣이 보고 “이것은 성현의 사업이 아니다.(此非聖賢事業)”고 말하자 그만두었다. 迪功郞을 지냈다. 黃幹과 함께 朱熹의 高弟로 일컬어진다. 날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해 열의를 보이자 주희가 “남쪽으로 내려온 이래 나의 도는 진순이 얻었다.(南來 吾道喜得陳淳)”고 말했다.
又曰
朱子小學書 綱領甚好 最切於日用 雖至大學之成 亦不外是.
또 말하였다.
“朱子의 《小學》은 綱領이 매우 좋아 일상생활에 가장 절실하니, 비록 大學의 완성에 이름도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李氏曰
先生年五十八 編次小學書成 以訓蒙士 使培其根以達其支 內篇 曰立敎, 曰明倫, 曰敬身, 曰稽古 外篇二 取古今嘉言以廣之 善行以實之.
雖已進乎大學者 亦得以兼補之於後 修身大法 此略備焉
李氏[李方子]가 말하였다.
“선생[朱子]의 나이 58세에 《小學》을 엮어 완성하여, 어린 선비들을 가르쳐 그 뿌리를 북돋고 그 가지를 발달하게 하시니, 內篇은 立敎·明倫·敬身·稽古이고, 外篇 둘은 古今의 아름다운 말들을 취하여 확충하였고 善行을 취하여 실증하였다.
비록 이미 大學에 진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이것으로써 뒤에 겸하여 보충할 수 있으니, 修身의 큰 법이 이 《小學》에 대략 갖추어져 있다.”
眞氏曰
小學之書 先載列女傳胎敎之法 而繼以內則之文 合二章觀之 小學之敎 略備矣
眞氏[眞德秀]가 말하였다.
“小學은 먼저 《列女傳》의 태교 방법을 싣고, 뒤이어 〈內則〉의 글을 실었으니 두 章을 합하여 본다면 《小學》의 가르침이 대략 갖추어져 있다.”
▶ 眞德秀: 字는 景元이며 후에 希元으로 바꾸었다. 浦城(지금의 福建省 浦城縣) 사람이다. 慶元 연간(1196-1200)에 進士가 되어 南劍州判官에 제수되었다. 후에 博學宏詞科에 합격하여 太學士가 되었으며 관직은 參知政事에 이르렀다. 직언을 잘하여 조정에 몸담은 10년 동안 수십만 자의 奏疏를 올렸는데‚ 모두가 사물의 핵심을 찌르는 말들이었다. 1235년(宋 端平 2)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58세였다. 書室의 이름은 虛綵堂이며 諡號는 文忠이다. 西山先生이라 부르기도 한다. ≪宋史≫ ≪本傳≫의 기록에 따르면‚ ≪四書集編≫‚ ≪西山甲乙稿≫‚ ≪對月甲乙集≫‚ ≪經筵講義≫‚ ≪端平廟議≫‚ ≪翰林詞草≫‚ ≪四六獻忠集≫‚ ≪江東救荒錄≫‚ ≪淸源雜志≫‚ ≪星沙集志≫ 등의 저서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 중 많은 저작이 이 책 속에 실려 있다. 이외에도 ≪大學衍義≫‚ ≪唐書考疑≫‚ ≪讀書記≫‚ ≪文章正宗≫ 등의 저서가 있다. 이 책은 ≪西山文集≫이라고도 불리며‚ 그의 여러 저작 중 주로 ≪西山甲乙稿≫‚ ≪對月甲乙集≫‚ ≪經筵講義≫‚ ≪翰林詞草≫를 중심으로 한데 엮은 것이다.
許氏(曰)小學大義 其略曰
自始皇焚書以後 聖人經籍不全 無由考較古人爲學之次第.
班孟堅漢史 雖說小學大學規模大略 然亦不見其間節目之詳也.
千有餘年 學者各以己意爲學 高者 入於空虛 卑者 流於功利 雖苦心極力 博識多聞 要之不背於古人者 鮮矣.
近世 新安朱文公 以孔門聖賢爲敎爲學之遺意 參以曲禮, 少儀, 弟子職諸篇 輯爲小學之書.
其綱目有三 立敎·明倫·敬身 次稽古 所以載三代聖賢已行之迹 以實前篇立敎·明倫·敬身之言 其外篇嘉言·善行 載漢以來賢者所言之嘉言 所行之善行 其綱目 亦不過立敎明倫敬身也.
衍內篇之言 以合外篇 則知外篇者小學之枝流 約外篇之言 以合內篇 則知內篇者小學之本源 合內外而兩觀之 則小學之規模節目 無所不備矣.
許氏[許衡]의 〈小學大義〉는 그 내용의 대략이 다음과 같다.
“始皇帝의 焚書 이후부터 聖人의 經籍이 온전하지 못하여, 옛사람이 학문하던 순서를 살필 곳이 없었다.
班孟堅[班固]의 《漢書》가 비록 小學과 大學의 규모의 대략을 말하였으나, 또한 그 속에 節目의 자세함을 보이지 않았다.
천여 년 동안 학자들이 각각 자기 뜻으로 학문하여, 높은 자는 空虛함에 들어가고 낮은 자는 功利에 흘렀으니, 비록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힘을 다하여 앎이 넓고 견문이 많으나, 요컨대 옛사람에 違背되지 않는 자가 적었다.
근세에 新安朱文公이 孔子 門下의 聖賢이 가르치고 배웠던 남은 뜻을 가지고, 〈曲禮〉·〈少儀〉·〈弟子職〉등 여러 편을 참작하고 모아서 《小學》을 만들었다.
그 綱目이 세 가지가 있어 立敎·明倫·敬身이요, 다음 稽古는 三代에 聖賢이 이미 행한 자취를 기록하여, 前篇의 立敎·明倫·敬身의 말을 실증하였으며, 그 外篇인 嘉言·善行은 漢代 이래 賢人들이 말한 아름다운 말과 행한 善行을 실었으니, 그 강목 또한 立敎·明倫·敬身에 지나지 않는다.
內篇의 말을 부연하여 外篇과 합해 보면 外篇은 《小學》의 枝流임을 알 터이요, 外篇의 말을 요약하여 內篇과 합해 보면 內篇이 《小學》의 本源임을 알 터이니, 內와 外를 합하여 양면으로 살펴보면 《小學》의 규모와 節目을 갖추지 않음이 없다.”
▶ 许衡 : 1209年5月8日出生,逝世于1281年,字仲平,号鲁斋,出生于河南沁阳,是宋末元初著名的理学家、教育家和政治家。
又曰 小學之書 吾信之如神明 敬之如父母
또 말하였다.
“《小學》을 나는 神明처럼 믿고, 父母처럼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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