汲黯景帝時 爲太子洗馬 以嚴見憚.
汲黯이 景帝 때에 太子洗馬가 되었는데 엄격함으로 꺼림을 받았다.
武帝卽位 召爲主爵都尉 以數直諫 不得久居位.
武帝가 즉위하자 급암을 불러 主爵都尉로 삼았는데, 자주 直諫하여 벼슬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였다.
是時 太后弟武安侯田蚡爲丞相 中二千石拜謁 蚡弗爲禮.
이때 太后의 아우 武安侯 田蚡이 丞相이 되었는데, 연봉 2천 石의 관원들이 田蚡에게 절하고 알현하면 田蚡은 답례를 하지 않았다.
黯見蚡 未嘗拜 揖之 《漢書》〈汲黯列傳〉
그러나 汲黯은 田蚡을 봄에 절한 적이 없고 읍하였다.
【集說】
陳氏曰
黯字長孺 濮陽人.
太子洗馬 官名.
以嚴見憚 以正直 爲景帝所敬憚也.
主爵都尉 亦官名
中 滿也 中二千石 謂九卿之官 歲俸 滿二千石也.
蚡負貴而驕人 黯獨不爲之屈 但揖之而已
陳氏가 말하였다.
“黯은 字가 長孺이니, 濮陽 사람이다.
太子洗馬는 官名이다.
以嚴見憚은 정직함으로써 景帝에게 꺼림을 받은 것이다.
主爵都尉 또한 관명이다.
中은 가득함이니, 中二千石은 九卿의 관원으로서 연봉이 滿2천 석에 이름을 말한다.
田蚡은 존귀함을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하였으나 급암만은 그에게 굽히지 않고 다만 읍할 뿐이었다.”
上 方招文學儒者.
上은 바야흐로 문학하는 儒者를 초청하고 있었다.
上曰
吾欲云云
上이 말하였다
“나는 이러저러 하려 한다.”
黯對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
汲黯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안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밖으로만 仁義를 행하려 하시니, 어찌 唐·虞의 치적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上怒變色而罷朝 公卿 皆爲黯懼.
上이 노하여 얼굴빛을 변하고 조회를 파하니, 公卿들이 모두 汲黯을 위하여 두려워하였다.
上 退謂人曰
甚矣 汲黯之戇也.
上은 退朝하여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심하다! 급암의 우직함이여!”
【集解】
云云 猶言如此如此也.
云云은 如此如此란 말과 같다.
戇 愚也.
戇은 어리석음이다.
黯直言 公卿皆恐獲罪 帝不之罪而止以爲愚 然則武帝之賢 豈當時公卿所能知哉?
급암이 직언하자, 公卿들은 모두 그가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였으나, 武帝는 그에게 치죄하지 않고 다만 어리석다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武帝의 어짐을 어찌 당시의 公卿들이 능히 알았겠는가?
群臣 或數黯 黯曰
天子置公卿輔弼之臣 寧令從諛承意 陷主於不義乎?
且已在其位 縱愛身 奈辱朝廷何?
신하들이 급암을 數罪하자, 급암이 말하였다.
“천자께서 公卿과 보필하는 신하를 둠이, 어찌 임금의 뜻을 따라 아첨하며 영합하여 임금을 不義에 빠지게 하려고 함이겠는가?
더구나 이미 마땅한 지위에 있으니, 비록 나 자신을 아껴도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
【集說】
陳氏曰
數 責也.
輔弼 輔德而弼違也.
從諛承意 順從阿諛 以奉承上意也.
已 旣也.
陳氏가 말하였다.
“數는 꾸짖음이다.
輔弼은 德을 돕고 도리에 어긋남을 바로잡는 것이다.
從諛承意는 순종하고 아첨하여 윗사람의 뜻을 받듦이다.
已는 ‘이미’이다.”
黯多病 病且滿三月.
급암에게 병이 많아, 병든 지 곧 3개월이 차려 하였다.
上 常賜告者數 終不瘉.
上이 일찍이 告[휴가]를 줌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병이 낫지 않았다.
最後嚴助爲請告 上曰
汲黯 何如人也.
최후에 嚴助가 급암을 위하여 휴가를 청하자, 上은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曰
使黯任職居官 亡以瘉人.
然至其輔少主守成 雖自謂賁育 弗能奪詭.
嚴助가 대답하였다.
“가령 汲黯이 직무를 맡아 벼슬에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린 임금을 도와 守成[이룩한 王業을 지킴]에 이르러서는, 비록 자신을 孟賁과 夏育이라 여기는 자도 그의 절개를 빼앗지 못할 터입니다.”
上曰
然 古有社稷之臣 至如汲黯 近之矣.
上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社稷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으로 말하면 이에 가깝도다.”
【集說】
陳氏曰
漢法 病滿三月 當免官.
告 休假也.
瘉通作愈 病瘉也 .
嚴助 人姓名 時爲侍中.
瘉當作愈 過也.
孟賁, 夏育 皆古之有力者.
言黯之正直 若託之擁輔幼君 以保守成業 雖自謂有賁育之勇者 亦不能奪其大節也.
然 是其言也.
社稷臣 能安社稷者也
陳氏가 말하였다.
“漢나라 법에 병이 3개월에 차면 마땅히 관직을 물러나야 한다.
告는 휴가이다. 瘉는 愈와 통해 쓰니, 병이 나음이다.
嚴助는 사람의 姓名이니, 당시 侍中이었다.
瘉人의 瘉는 마땅히 愈로 써야 하니, 지남이다.
孟賁과 夏育은 모두 옛날에 勇力이 있던 자들이다.
급암의 정직함을 만약 어린 임금을 擁輔[끼고 보필함]하여 이룩한 왕업을 保守하도록 맡긴다면, 스스로 孟賁·夏育의 용맹이 있다고 여기는 자라도, 그의 큰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는 말이다.
然은 그 말을 옳게 여김이다.
社稷의 신하라는 것은 능히 사직을 편안히 하는 자이다.”
大將軍靑侍中 上踞厠視之 丞相弘宴見上 或時不冠.
대장군 衛靑이 궁중에서 임금을 모실 때, 上은 平牀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으며, 승상 公孫弘이 한가할 때 알현하면 上은 어떤 때는 관을 쓰지 않기도 하였다.
至如見黯 不冠不見也.
급암을 접견함에 이르러서는 관을 쓰지 않고는 만나지 않았다.
上嘗坐武帳 黯前奏事.
上이 일찍이 武帳[군막]에 앉아 있는데, 급암이 앞으로 나와 일을 아뢰려 하였다.
上不冠 望見黯 避帷中 使人可其奏 其見敬禮如此.
이때 上은 관을 쓰지 않고 있다가 급암이 옴을 바라보고는 휘장 안으로 피하고, 사람을 시켜 그의 아룀을 可[좋다]라고 말하게 하였으니, 그가 공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았다.
【集說】
陳氏曰
靑 衛靑.
侍中 侍於禁中也.
踞 蹲坐也.
厠 牀邊側.
弘 公孫弘.
宴見 宴閑時進見也.
嘗 曾也.
武帳 帳中 置兵衛者.
可 猶是也 從其奏 則稱制曰可.
陳氏가 말하였다.
“靑은 衛靑이다.
侍中은 禁中[궁중]에서 모심이다.
踞는 걸터앉음이다.
厠은 平牀 가이다.
弘은 公孫弘이다.
宴見은 한가할 때 나아가 알현함이다.
嘗은 曾[일찍이]이다.
武帳은 휘장 안에 호위병을 설치한 곳이다.
可는 是[옳음]와 같으니, 그 아룀을 따르는 경우에 ‘制曰可’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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