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308-林宗折巾(임종절건)

耽古樓主 2023. 4. 5. 03:21

蒙求(몽구) 林宗折巾(임종절건)

by 古岸子

林宗折巾- 林宗의 쭈그러진 巾을 사람들이 본받다. 

 

後漢郭泰字林宗.
後漢郭泰林宗이다.

 

辟擧不應.

나라에서 부르거나 選擧에 응하지 않았다.

 

性明知人.

천성이 총명하고 知人之明이 있었다.

 

好獎訓士類.

士類들을 권장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했다.

 

容貌魁偉 襃衣博帶 周游郡國.

용모가 우람하였는데 헐렁한 옷에 넓은 띠를 두르고 郡國周遊하였다.

襃衣博帶: 宽衣大带古代儒者的装束

 

嘗於陳梁間行遇雨 巾一角墊.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길을 가다가 비를 만난 적이 있는데, 두건의 한 모퉁이가 찌그러졌다.

: 메우다. 돈을 치르다. 내려앉다

 

時人乃故折巾一角 以爲林宗巾. 其見慕如此.

당시 사람들은 일부러 두건의 한쪽을 꺾어서 썼으니 이것을 林宗巾이라고 했거니와 그를 사모함이 이와 같았다.

 

或問范滂曰

林宗何如人.

어떤 사람이 范滂에게 물었다.

林宗은 어떤 사람이오?”

 

滂曰

隱不違親. 貞不絶俗.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不知其他.

범방이 말하였다.

숨어서 살면서도 친척을 버리지 않소.

성품은 곧아도 풍속을 끊지 않소이다.

천자도 신하로 삼지 못하고 諸侯도 벗으로 삼지 못하오.

그밖의 일은 알지 못하오.”

 

林宗雖善人倫 而不爲危言覈論.

임종이 비록 사람들과 잘 지냈지만, 정직하고 진실한 언론을 펴지 않았다.

危言覈論:正直而翔实的言论

 

故宦官擅政 而不能傷.

그러므로 宦官이 정치를 擅斷하였지만,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

 

及黨事起 名士多被害. 惟林宗‧袁閎得免.

黨事가 일어나서 많은 名士들이 해를 입었지만 오직 임종과 袁閎은 면할 수 있었다.

 

閉門敎授 弟子以千數.

문을 닫고 지식을 가르치니 제자들이 천 명을 헤아렸다.

 

及卒 四方之士千餘人會葬.

그가 졸하자 사방의 선비 천여 명이 會葬하였다.

 

同志者刻石立碑. 蔡邕爲其文. 謂盧植曰

吾爲碑銘多矣. 皆有慙德. 唯郭有道無愧色耳.

同志들이 돌에 새겨서 비석을 세웠는데 蔡邕이 그 글을 쓰고 盧植에게 말하였다.

내가 碑銘을 쓴 것이 많았거니와 모두 慙德이 있었지만, 오직 곽태는 만 있고 부끄러운 빛은 없었소.”

 

其獎拔士人 皆如所鑒.

그가 선비를 권장하고 발탁한 사람은 모두 鑑識한 대로였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58의 기사임.
郡國- 封建郡縣倂用나라의 제도. 곧 조정의 직할인 군과 제후를 봉한 나라.
范滂- 東漢 征羌 사람. 자는 孟博. 孝廉에 뽑혔고 靈帝 때 크게 黨人을 숙청했는데 급히 범방을 체포하라 했다. 이때 범방은 스스로 옥에 나가서 해를 입었다.
袁閎-後漢 사람. 아버지 袁賀彭城相이 되었다가 官職에서 하자 형제가 가서 초상을 치르는데 衰絰의 몸으로 을 부축하고 서리와 이슬을 맞아 모양이 수척하고 수족에서 피가 흐르니 보는 자들이 마음 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조정에서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土室을 쌓고 문밖에 나가지 않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盧植-後漢 涿縣 사람. 성질이 강하고 굳세어 큰 절개가 있고 벼슬이 尙書에 이르렀다. 동탁이 천자를 폐할 것을 도모했으나 노식이 홀로 반대하여 벼슬을 내놓고 상곡(上谷)에 숨어 살다가 생을 마쳤다.
慙德- 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