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飮酒)-도연명(陶淵明)
▶ 飮酒 : 《靖節先生集》 권3에 실려 있는 〈飮酒〉 20수의 최종편이다. 앞에 나왔던 <雜詩> 두 수도 모두 이 종류의 시들이어서 다 같이 음주라 題함이 옳다.
羲農去我久, 擧世少復眞.
伏羲와 神農은 나에게서 오래되매, 온 세상엔 참됨으로 돌아가려는 이가 적네.
▶ 羲農(희농) : 三皇 중의 伏羲와 神農으로 태고시대를 가리킨다.
▶ 少復眞(소복진) : 하늘로부터 타고난 참된 모습으로 돌아감이 적다. 곧 진실한 인간의 본연의 性으로부터 멀어졌다.
汲汲魯中叟, 彌縫使其淳.
노나라의 노인이 애쓰시어, 손질하여 순박하게 만드셨다.
▶ 汲汲(급급) : 쉬지 않고 애쓰는 모양, 《漢書》 揚雄傳에도 '부귀에 급급하지 않았다.'라는 용례가 있다.
▶ 魯中叟(노중수) : 노나라의 노인, 곧 孔子를 가리킨다.
▶ 彌縫(미봉) : 해진 곳을 깁다.
▶ 淳(순) : 순박한 것.
鳳烏雖不至, 禮樂蹔得新.
봉황새는 날아들지 않았지만, 예악이 잠시 새로워질 수 있었네.
▶ 鳳鳥雖不至 : 봉황새는 비록 오지 않았으나. 봉황새는 太平聖代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새임. 봉황새가 나타나지 않았음은 聖君이 다스리는 태평시대는 못되었다는 뜻.
▶ 蹔(잠) : 잠시. 暫과 같은 字. 이 구절은 孔子가 六經을 편수하여 사회의 禮儀制度와 음악을 새롭게 부활하였음을 말한다.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공자의 영향이 미세해져서, 미친 진나라까지 떠내려왔다네.
▶ 洙泗(수사) : 洙水와 泗水. 洙水는 山東省 경계에 있는 泗水의 支流. 공자는 이 두 강물 가를 중심으로 하여 가르침을 폈다.
▶ 輟(철) : 그치다. 중지되다.
▶ 微響(미향) : 미소한 孔子의 遺響.
▶ 漂流(표류) : 역사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 내려옴을 형용한 말.
▶ 逮(체) : 이르다.
▶ 狂秦(광진) : 광포한 秦나라.
詩書亦何罪? 一朝成灰塵.
시서는 또 무슨 죄가 있나? 하루 아침에 재가 되고 말았다.
▶ 成厥塵(성회진) : 재와 먼지가 되었다. 秦始皇이 천하의 책을 모아 불사른 일을 말한다.
區區諸老翁, 為事誠慇懃.
구구한 할아버지들은, 일하심이 정말 은근하였다네.
▶ 區區(구구) : 잔일에까지 모두 마음을 쓰는 모양.
▶ 諸老翁 : 《書經》을 전한 濟南의 伏生, 《時經》을 전한 齊나라의 轅固生과 魯나라의 申公, 《禮記》를 전한 노나라의 高堂生, 《春秋》를 전한 母生 등을 가리킨다.《漢書》儒林傳.
▶ 爲事 : 앞에 나온 諸老翁들이 秦始皇의 焚書로 말미암아 失傳된 經書들을 다시 전한 일을 가리킴.
▶ 慇懃(은근) : 殷勤으로도 쓰며 ‘공을 들임’
如何絶世下, 六籍無一親?
어째서 먼 후대에는, 육경 가운데 하나도 잘 아는 이가 없는가?
▶ 絶世 : 오랜 세대가 떨어진 것. 훨씬 후대를 가리킴.
▶ 六籍 : 儒家의 六經. 詩·書·禮·易·春秋·樂의 여섯 가지 책.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하루 종일 수레 몰고 이익 찾아 달리지만, 나루터를 묻는 이를 보지 못했네.
▶ 馳車走(치거주) : 이익을 추구하려고 馬車를 몰고 달림.
▶ 不見所問津 : 나루터를 묻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論語》 微子편에 일렀다.
'長沮와 傑溺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孔子가 그곳을 지나다 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물었다.'
이 구절은 淵明 자신은 장저·걸익 같은 隱者로 자처하고 세상에 공자의 무리 같은 사람들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靖節先生集》 卷三 湯漢敬 注
若復不快飮, 空負頭上巾.
만약 다시 유쾌히 술마시지 않는다면, 공연히 머리 위의 갈건을 배반함이라.
▶ 頭上巾 : 淵明은 머리의 葛巾을 벗어 술을 걸러 마셨다. 따라서 술을 안 마심은 두건을 배반하는 것이 된다.
但恨多謬誤, 君當恕醉人.
다만 그릇됨이 많음을 한하노니, 그대는 마땅히 술 취한 사람 용서해야 하네.
▶ 謬(류) : 그릇된 것. 잘못된 것.
▶ 君當恕醉人 :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술을 안 먹고 견딜 수가 없다. 술을 빌어서만 사람 본연의 참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 먹고 탈선을 좀 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용서를 해주어야만 할 일이라는 뜻이다.
해설
태고시대 사람들의 마음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역사가 흐름에 따라 그 순박은 날로 소멸되었다. 孔子 같은 분이 나서 세상에 禮敎를 일으키려 가르침을 폈으나, 세상이 바로잡히기는커녕 더욱 어지러워졌다.
秦始皇이 나와서는 심지어 焚書라는 暴政으로 공자가 編修한 六經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漢代에 와서는 학자들의 노고로써 秦나라 때 없어진 經書들이 부활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순진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공자의 노력이 깃등 육경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술이나 마셔야지 또 무얼 하겠느냐?
술에 취해서나마 본연의 참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술 취하면 물론 실수도 약간 있지만 그런 실수쯤은 눈감아 주어야만 하지 않겠느냐? 淵明의 음주철학이 잘 표현된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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