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이공이 방문함(夏日李公見訪)-두보(杜甫)
▶ 李公 : 李炎. 唐나라 肅宗이 태자였을 때 家令이어서 一本엔 李家令見訪이라 題하고 있다 한다. 이 시는 《杜少陵集》 권3에 들어 있으며 天寶 14년(755)의 作이다.
遠林暑氣薄, 公子過我遊.
멀리 떨어진 숲속은 더위가 엷어, 이공께서 놀러 오셨네.
▶ 遠林 : 멀리 떨어진 숲. 市街에서 떨어져 있는 숲.
▶ 過我遊 : 내게로 놀러왔다. 過: 방문하다.
貧居類村塢, 僻近城南樓.
가난한 내 집은 마을가의 담이나 비슷하니, 외지게도 성 남쪽 망루(望樓) 가까이에 있다네.
▶ 村塢 : 마을에 있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흙으로 쌓아놓은 담. 塢 : 언덕.
▶ 僻(벽) : 외지다.
傍舍頗淳朴, 所願亦易求.
이웃들은 매우 순박해서, 아쉬운 것을 얻기도 쉽다네.
▶ 傍舍 : 이웃집.
隔屋問西家, 借問有酒不?
담너머 서쪽 집에 묻기를, 술 혹시 가진 것 없소?
▶ 隔屋(격옥) : 집을 사이에 두고. 隔屋問西家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지 않고 울을 사이에 두고 서쪽 집에 물어보는 것. 순박한 시골 이웃의 인정있는 관계를 표현하였다.
▶ 牆頭 : 담머리. 담 위.
牆頭過濁醪, 展席俯長流.
담너머로 막걸리를 넘겨주어, 자리를 펴고 멀리 흘러가는 냇물을 굽어보네.
▶ 醪(료) : 막걸리. 過濁穆는 막걸리를 넘겨주다.
▶ 俯長流 : 긴 흐름을 굽어본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멀리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본다.
淸風左右至, 客意已驚秋.
맑은 바람이 좌우에서 불어오니, 손님은 속으로 가을이 되었나 하고 놀랄 지경이네.
巢多衆鳥鬪, 葉密鳴蟬稠.
숲에는 새둥지가 많아 새들이 다투고, 잎 무성한 나무에선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네.
▶ 蟬(선) : 매미,
▶ 稠(조) : 많다.
苦遭此物聒, 孰謂吾廬幽?
이놈들이 시끄러워 괴롭기만 한데, 누가 내 집이 조용타 하였나?
▶ 遭 : 만나다.
▶ 此物 : 매미와 새들을 가리킨다.
▶ 聒(괄) : 요란하다. 시끄럽다.
水花晚色靜, 庶足充淹留.
연꽃이 저녁 빛을 띠고 조용하매, 손을 붙들어 머물게 하기에 충분하도다.
▶ 水花 : 못의 연꽃. 崔豹의 《古今注》에 일렀다.
‘芙蓉은 일명 荷華이고 池에서 자란다. 열매를 蓮이라 하고 꽃이 가장 秀異한 것이다. 일명 水芝 또는 水花라고도 부른다.’
▶ 晚色 : 저녁빛.
▶ 庶 : 거의.
▶ 淹留(엄류) :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
預恐樽中盡, 更起為君謀.
미리 술통 빌까 염려되니, 다시 일어나 그대 위해 주선하려네.
▶ 預(예 : 미리.
▶ 樽中(준중) : 술통 속의 술.
▶ 謀(모) : 계책. 술을 더 장만하는 것. 자기 집엔 돈이나 술이 없으므로 빌어오든가 또는 외상으로 사오게 되므로 ‘謀’로 표현한 것이다.
해설
李炎의 내방을 빌어 작자는 자기의 貧居를 중심으로 한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城南 망루가 있는 외딴곳에 자리잡은 자기의 가난한 집은 보잘것없으나,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 사이에 있으매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집이 높은 곳에 있어서 멀리 시냇물이 굽어 보이고, 바람이 불어오면 처음 찾아온 손님들은 벌써 가을이 되었는가고 놀랄 지경이다. 가난하긴 하지만 이웃 사람들도 인심이 좋아 담 너머로 술을 빌려 온다. 그리고 새소리, 매미소리가 요란함은 자기의 집이 더욱 으슥한 곳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梁나라의 王籍은 〈若耶溪에 들어간다〉란 시에서 읊었다.
‘매미가 시끄러울수록 숲속은 더욱 조용하게 느껴지고, 새들이 울수록 산은 더욱 으슥해진다.'
杜甫(712~770)가 이 왕적의 표현을 빌어다 쓴 것이다.
저쪽 연못 속에는 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貧居이긴 하지만 이만하면 손님의 마음도 흡족하리라 생각하고, 손님보고 며칠 묵어가기를 권한 뒤 두보는 또 술을 장만할 궁리를 한다.
자연 속에 순박하게 살아가는 두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風度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陶淵明과 통하는 天眞이 있음은, 그것이 적나라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일 터이다. 凡人들은 개인의 욕망이나 사회의 名利 때문에 이런 순박을 잃고 있다. 위대한 시인들을 통하여 범인들이 이러한 순박이나 천진에 젖을 수 있음은 시를 읽는 이득의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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