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권의 연구를 채움(足柳公權聯句)-소식(蘇軾)
▶ 柳公權(유공권, 777~865) : 華原 사람. 公綽의 아우로 元和 초 進士에 급제, 侍學士를 거쳐 太子太保를 지냈다. 《唐詩紀》에 의하면 당나라 제10대 황제 文宗(827~840 재위)이 여름날 學士들과 聯句를 지었다. 문종이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이라고 읊자, 유공권이 이어 '薰風自南來, 殿閣生微涼'라고 읊고, 學士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문종은 오직 유공권의 두 구만을 읊조렸다. 그리고 문종은 그 연구를 벽 위에 써놓도록 하였는데, 그 글자를 보고 옛날의 鍾繇나 王羲之 같은 명필에 못지않다고 찬탄하였다 한다. 그러나 蘇東坡는 유명한 이 연구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이 네 구를 더 지어 붙이어 시로 완성시킨 것이다. 《東坡先生詩》에는 戱足柳公權聯句라 題하고 있는 판본도 있으며 다음과 같은 自注가 붙어 있다. ‘宋玉(:楚나라의 詩人)은 楚王에 대하여 “이것 [시원한 바람]은 다만 대왕의 雄風일 따름입니다. 庶人들이야 어찌 이를 함께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초왕이 자기만 알고 남은 모름을 풍자한 것이다. 유공권은 小子이매 문종과 지은 聯句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교훈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시구를 채워 시를 완성한다.’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
사람들은 모두 더위가 괴롭다지만, 나는 긴 여름날을 사랑하네.
薰風自南來, 殿閣生微涼.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엔 시원한 기운이네.
▶ 薰風(훈풍) : 남쪽에서 부는 따스하면서도 향기로운 바람. 《呂氏春秋》有始편에는 '무엇을 八風이라 하는가? ……………동남쪽의 것은 薰風이라 한다.'라고 있다.
▶ 殿閣(전각) : 임금의 궁전과 누각.▶ 微涼 : 시원한 기.
一為居所移, 苦樂永相忘.
한번 이런 곳으로 거소를 옮기면, 백성들의 고락은 영영 잊고 마네.
▶ 居所移 : 거처를 옮기는 것. 《孟子》 心 상에 '居는 氣를 옮기고, 養은 體를 옮긴다.'라고 하였다. 거처를 옮기어 화려한 전각 속에 살면 서인들이 炎熱을 싫어함과 처지가 달라진다.
▶ 苦樂 : 백성들의 괴로움이나 즐거움.
願言均此施, 淸陰分四方.
바라건대 이러한 쾌락을 고루 베풀어, 맑은 그늘을 온 세상에 나누어 즐기기를
▶ 願 : 바라다.
▶ 言 : 助詞.
▶ 均此施 : 이 전각의 시원함을 고루 백성들에게도 베풀어 즐기게 하다.
▶ 淸陰 : 맑고 시원한 그늘.
▶ 四方 : 사방의 백성들. 온 세상의 서인들.
해설
柳公權은 여러 朝에 벼슬하여 명망이 높았고, 穆宗이 筆法을 문자 '마음이 바르면 곧 筆도 바르게 된다.'라고 대답한 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 聯句만 보고 蘇東坡가 그를 '小子'라 한 것은 지나친 名人의 자부에서 나온 듯하다. 그러나 한편 중국시는 《詩經》 때부터 詩敎라 하여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시를 인정하여 왔고 또 창작되었다. 사회와 동떨어진 시나 일반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아무런 敎化도 못 미칠 시는 중국문학의 전통으로 보아 소외된대도 할 수 없다.
소동파가 유공권의 聯句를 보고 그를 '소자'라 잘라 말한 것도 그러한 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이 '사람들은 모두 더위가 괴롭다지만, 나는 긴 여름날이 좋다.'라고 읊은 것은 백성들의 입장은 전혀 도외시한 것이다. 여기에 신하로서 '훈풍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니, 殿閣엔 시원한 기운 인다.'라고 덧붙인 것은 임금에 대한 아부라면 지나칠지 몰라도 적어도 大臣의 위치는 잊어버린 장난에 불과하다고 동파는 본 것이다.
그러기에 '화려한 전각에 기거하면 백성들의 苦樂은 영영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전각의 시원함을 백성들에게 고루 베풀어 다같이 이를 즐기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뜻의 구절을 덧붙인 것이다. 전각의 시원함이나 맑은 그늘은 실제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함께 이를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위정자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백성을 위하여 정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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