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173-龔勝不屈(공승불굴)

구글서생 2023. 4. 10. 00:42

蒙求(몽구) 龔勝不屈(공승불굴)

by 耽古書生

龔勝不屈- 龔勝은 굽히지 않았다 

 

前漢龔勝字君賓 舍字君倩 楚人也.
前漢의 龔勝은 字가 君賓이고 龔舍는 字가 君倩이고 초나라 사람이다.
; 예쁠 천

二人相友 並著名節.
두 사람이 벗이 되어 나란히 이름과 절개가 드러났다.

世謂楚兩龔.
세상에서 초나라 두 공씨라고 일컬었다.

哀帝時 勝爲光祿大夫 王莽秉政 乞骸骨.
哀帝 때 공승이 光祿大夫가 되었는데, 왕망이 정사를 장악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해골을 보존하기를 빌었다.

莽後遣使 卽拜講學祭酒 稱疾不應.
왕망이 뒤에 사자를 보내어 講學祭酒의 벼슬에 임명했으나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 우거질 망
; 절 배, 벼슬줄 배
: 벼슬이름 좨

復遣使者 奉璽書太子師友祭酒印綬安車駟馬 與郡太守縣長吏官屬諸生千人以上 入里致詔.
다시 사자를 보내어 칙서와 太子師友祭酒의 印綬와 네 마리 말이 끄는 편안한 수레를 받들어 보내고, 군의 태수와 현령과 관속 등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마을에 보내서 조서를 전하게 했다.

勝稱病篤 東首加朝服拕紳.
공승은 병이 위독하다고 칭하고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조복에 띠를 두르게 하였다.
; 끌 타.
; 띠 신

勝曰
吾受漢家厚恩 亡以報.
今老旦暮入地.
誼豈以一身事二姓 下見故主哉.
공승이 말하였다.
“내가 한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 보답하지 못했다.
지금 늙어서 朝夕間에 땅에 묻힐 터이다.
情誼로 보아 어찌 한 몸으로 두 성(劉씨와 王씨)을 섬겨 지하에 가서 옛 임금을 뵙겠느냐?”

語畢 不開口飮食 積十四日死.
말을 마치자 입을 열어 음식을 먹지 않고 열나흘이 되어 죽었다.

舍通五經 拜太山太守.
龔舍는 五經에 통달하여 太山군 태수에 임명되었다.

數月乞骸骨.
몇 달 후에 해골을 빌었다(퇴직하여 고향에 돌아갔다).

哀帝使使者拜光祿大夫 數賜告 終不起.
애제가 사자를 보내어 光祿大夫에 봉하고 자주 휴가를 주겠다는 칙서를 내렸지만 끝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賜告: 황제가 休息 또는 養病의 휴가를 주다

勝歸鄕 二千石長吏初至官 皆至其家 如師弟之禮.
공사와 공승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천석(태수의 봉록)의 지방관이 처음 부임할 때 모두 그의 집에 와서 師弟之禮를 갖추듯이 하였다.

[註解]
前漢- <한서> <열전> 42의 기사.
王莽- 나라 孝元王后의 조카. 策謀平帝를 죽이고 漢朝를 빼앗아 즉위하여 나라를 세웠으나 내치·외교에 실패하여 15년만에 光武帝에게 망했음.
講學祭酒- 옛날의 會同饗宴尊丈者가 먼저 술로 땅에 제사지내던 일을 좨주(祭酒)라 했음.
璽書- 천자의 도장을 찍은 문서. 勅書.
長吏- 縣吏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