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168-李廣成蹊(이광성혜)

구글서생 2023. 4. 10. 00:48

蒙求(몽구) 李廣成蹊(이광성혜)

by 耽古書生

李廣成蹊-李廣을 비유하여 복숭아나무 아래 길이 생긴다고 하였다.
;지름길 혜.좁은 길.발자국 

 

前漢李廣隴西成紀人.
前漢의 李廣은 隴西 成紀人이다.

世世受射法.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활쏘는 법을 전수받았다.

武帝時拜右北平太守 匈奴號曰漢飛將軍避之 數歲不入界.
武帝 때 右北平太守가 되었는데 흉노가 그를 한나라의 飛將軍이라고 부르며 피하여 여러 해 동안 국경을 침입하지 않았다.

廣出獵 見草中石以爲虎而射之 中石沒矢.
이광이 사냥을 나가서 풀숲 속의 돌을 호랑이라고 여겨 쏘았는데 화살이 돌에 박혔다.

視之石也.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他日射終不能入.
훗날 (그 돌을) 쏘았으나 끝내 꽂히지 않았다.

廣經七郡太守 前後四十餘年 得賞賜輒分其戱下.
이광은 일곱 고을의 태수를 거쳐 전후 40여 년에 상으로 받은 것은 그때마다 그가 거느린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 문득 첩, ‘~할 때마다로 풀이하라
; 놀 희, 와 같음. 戱下=麾下

飮食與士卒共之 寬緩不苛.
음식도 사졸들과 함께 먹었으며 관대하여 가혹하지 않았다.

士樂爲用.
병사들은 그에게 쓰임을 즐거워했다.

元狩中爲前將軍 從大將軍衛靑擊匈奴 惑失道.
무제 元狩 연간에 前將軍이 되어 대장군 위청을 따라 흉노를 쳤으나 미혹하여 길을 잃었다. (그래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靑欲上書報天子失軍曲折.
위청이 천자에게 군사를 잃은 사정을 보고하는 글을 올리려고 하였다.

長史責廣 之幕府上簿.
長史가 이광을 꾸짖으며 幕府에 가서 시말서를 올리라고 했다.

廣謂其麾下曰
廣結髮與匈奴大小七十餘戰 今又迷失道 豈非天哉?
且廣年六十餘 不能復對刀筆吏矣.”
이광이 그 휘하에게 말하였다.
“내가 머리를 묶고(성인이 되어) 흉노와 70여 회 크고 작은 전투를 하였는데 이번에 미혹하여 길을 잃어버렸다. 어찌 하늘의 운이 아니겠는가?
또 내 나이 60여 세인데 다시 刀筆吏(붓을 쥔 관리)를 대할 수는 없다.”

遂引刀自京.
마침내 칼을 끌어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 서울 경, 과 같음

百姓聞之 知與不知 老莊皆爲垂泣.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는 사람이거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贊曰
李將軍恂恂如鄙人.
口不能出辭.
及死之日 天下知與不知 皆爲流涕. 彼其中心 誠信於士大夫也.
찬양하여 일렀다.
‘이광 장군은 천한 사람도 정성으로 대하였다.
입은 (무거워서) 말을 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그가 죽은 날에 이르러서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알든지 모르든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마음이 사대부보다 정성스럽고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諺曰
桃李不言 下自成蹊.
此言雖小 可以喩大.
속담에 말하기를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 저절로 지름길에 생겨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비록 작은 말이지만 가히 큰 것을 깨우쳐준다.

[註解]
前漢- <한서> <열전> 24의 기사
衛靑- 나라 平陽 사람. 본래의 . 사람됨이 어질어 물러나고 양보하는 것에 능했다. 大司馬로 죽었다.
匈奴- 人種의 이름.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약 3백년간 지금의 몽고지방에서 遊牧하던 터키족의 일종.
長史- 三公屬官.
幕府- 장군이 집무하던 곳.
- 칭찬함. 讚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