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憲問 第十四(논어집주 헌문 제십사) 第二十二章

耽古樓主 2023. 2. 27. 04:42

▣ 第二十二章

陳成子弒簡公。
陳成子가 簡公을 시해하였다.

成子,齊大夫,名恆。

成子나라 大夫이니 이름은 (나중에 田恒이 됨)이다.


簡公,齊君,名壬。

簡公나라 君主이니 이름은 이다.


事在春秋哀公十四年。
이 사실이 春秋哀公 14年條에 기록되어 있다.

 

孔子沐浴而朝,告於哀公曰:
「陳恆弒其君,請討之。」

孔子께서 목욕하고 조회에 드시어 哀公에게 아뢰셨다.

“陳恒이 그 君主를 시해하였으니, 토벌하소서.”


是時孔子致仕居魯,沐浴齊戒以告君,重其事而不敢忽也。

이때 孔子께서는 致仕하고 나라에 계셨다. 목욕 재계하고 임금에게 아뢴 것은 그 일을 중히 여겨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신 것이다.

: 돌려준다는 뜻


臣弒其君,人倫之大變,天理所不容,人人得而誅之,況鄰國乎?

신하가 그 君主를 시해함은 人倫의 큰 변고이니 天理에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사람마다 모두 그를 주벌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이웃나라이겠는가?

 

故夫子雖已告老,而猶請哀公討之。
그러므로 孔子께서 비록 이미 告老(致仕)하셨는데도 哀公에게 토벌하기를 청하셨다.

 

公曰:
「告夫三子!」

哀公이 말하였다.
“저 三子에게 말하라.”

三子,三家也。

三子三家이다.


時政在三家,哀公不得自專,故使孔子告之。
당시에 政權三家에게 있어서 哀公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孔子로 하여금 그들에게 말씀하게 하였다.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
君曰告夫三子者。」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大夫의 뒤〔末席〕를 따랐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임금께서는 저 三子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孔子出而自言如此。

孔子께서 밖으로 나와 스스로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하셨다.


意謂弒君之賊,法所必討。

孔子의 뜻은 君主를 시해한 逆賊은 법에 반드시 토벌해야 할 것이다.


大夫謀國,義所當告。

大夫國事를 도모하니, 의리상 마땅히 아뢰어야 한다.


君乃不能自命三子,而使我告之邪?

임금께서는 마침내 스스로 三家에게 명령하지 못하시고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시는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之三子告,不可。
三子에게 가서 말씀하자, 不可하다 하였다.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大夫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以君命往告,而三子魯之強臣,素有無君之心,實與陳氏聲勢相倚,故沮其謀。

임금의 명령으로 가서 말씀하였으나, 三家나라의 强盛한 신하로 본래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서, 실로 陳氏聲勢가 서로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계획을 저지하였다.


而夫子復以此應之,其所以警之者深矣。

夫子께서 다시 이 말씀으로 응하셨으니, 그 경계하심이 깊다.


程子曰:
「左氏記孔子之言曰:陳恆弒其君,民之不予者半。
以魯之眾,加齊之半,可克也。
此非孔子之言。
誠若此言,是以力不以義也。
若孔子之志,必將正名其罪,上告天子,下告方伯,而率與國以討之。
至於所以勝齊者,孔子之餘事也,豈計魯人之眾寡哉?

當是時,天下之亂極矣,因是足以正之,周室其復興乎?

魯之君臣,終不從之,可勝惜哉!」

程子가 말씀하였다.

左氏孔子의 말씀을 기록하기를 陳恒이 그 君主를 시해하니 나라 國民 중에 편들어주지 않는 자가 반이나 됩니다.

나라의 많은 군사를 나라의 반에 보태면 나라를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孔子의 말씀이 아니다.

진실로 이 말과 같다면 이것은 힘으로 하는 것이지 義理로 하는 것이 아니다.

孔子의 뜻으로 말하면, 반드시 그 죄를 바로 지목하여 위로 天子에게 아뢰고 아래로 方伯에게 말한 다음 與國[뜻에 동조하는 나라]을 거느리고 토벌하려 하셨을 터이다.

나라를 이기는 방법은 孔子餘事(생각 밖의 일)인데, 어찌 나라 사람이 많고 적음을 계산하겠는가?

이때를 당하여 天下의 난리가 극에 달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바로잡았으면 나라 王室이 아나 復興하였을 터이다.

나라의 君臣들이 끝내 따르지 않았으니, 애석함을 이루 말할 수 없구나!”

 

胡氏曰

「春秋之法,弒君之賊,人得而討之。
仲尼此舉,先發後聞可也。」

胡氏가 말하였다.

春秋의 법에 君主를 시해한 逆賊은 사람마다 모두 토벌할 수 있었다.

孔子의 이번 일은 먼저 토벌하고 뒤에 天子에게 아뢰더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