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낳으면 그 딸 몫으로 논두렁에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그 아들 몫으로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었다. 아이에게 있어 그 탄생과 더불어 심은 나무가 내나무인 것이다.
어릴 적에 즐겨 불렀던 동요에 <나무타령>이라는 게 있었다.
청명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나무타령>은 이처럼 내 밭두렁에 내나무로 끝난다. <나무타령>에 나오는 모든 나무들은 실제 있는 나무들이다. 그런데 내나무는 식물도감을 찾아보아도 없는 나무다. 그러나 내나무는 실제로 있었고 나도 분명히 내나무를 보았다. 없는 데도 있는 내나무의 연유는 이렇다. 내가 태어난 갈재의 깊은 산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나무를 심는 습속이 예부터 있어 왔다.
딸을 낳으면 그 딸 몫으로 논두렁에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그 아들 몫으로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었다. 그 아이에게 있어 그 탄생과 더불어 심은 나무가 내나무인 것이다.
그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어 혼례 치를 날을 받으면 십수 년간 자란 이 내나무를 잘라 농짝을 만들거나 반닫이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사내아이의 경우 내나무는 죽을 때까지 자라게 둔다. 60년 안팎 자라고 보면 우람한 관목으로 자라게 마련이다. 그런 이 내나무를 베어 그 속에 들어가 영생할 관을 짰던 것이다.
이처럼 내나무는 나의 탄생과 더불어 나와 숙명을 같이하고 죽을 때 더불어 묻히는 생명의 개체로서의 나의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반려인 것이다.
이 세상에 자연과 인생이 이토록 밀접한 동반관계를 맺고 사는 어떤 딴 나라가 있었을까 싶다.
한 그루 나무에 한 인생의 숙명을 기탁한 내나무이기에 내나무를 둔 민속도 다양했다.
이를테면 계집아이의 내나무 곁에는 해바라기를 심게 마련이었다. 해바라기 씨앗을 빻아 기름을 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해바라기 화심(花心)에는 씨앗이 촘촘하고 또 많이 달려서 아이 많이 낳길 바라는 기원으로 내나무 곁에 해바라기를 심었던 것이다. 곧 주술 기원을 그렇게 아름답게 했던 것이다.
시집가는 날 혼례 절차에 합근례가 있다. 표주박에 술을 따라 신랑신부가 번갈아 입을 댐으로써 동심일체를 확인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 합근박으로 쓰일 표주박을 내나무 밑둥에 심어 그 박줄기를 내나무에 기어오르게 했던 것이다.
내나무를 둔 사람의 상징 작업이 이렇게 차원 높게 다양화돼 있었던 것이다. 내나무 타고 자란 합근박에 입을 더불어 댐으로써 사랑을 서약하고 그 합근박을 신방의 천장에 매어 둠으로써 사랑을 감시시켰으니 내나무는 그 주인공인 '나'의 보금자리 속에 들어와 공생하는 것이 된다.
나는 어릴 적에 무척 병골이었다. 소학교 2학년 때였던가. 당시 크게 유행했던 염병에 재통까지 앓아 죽음을 예언받은 적이 있다. 이때 어머니는 선산에 심어놓은 내나무를 찾아가 시루떡 빚어 놓고 사흘동안 주야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또 언젠가 뜨내기 점장이에게 사주점을 치는데 수명이 단명하다는 점괘가 나왔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실 서른세 타래를 사 들고 내나무를 찾아가 그 실을 대나무에 감으며 백팔윤회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실은 길다 하여 수명을 연장시키는 주술 매체요, 서른세 타래의 실을 감은 뜻은 '33'이라는 수가 관음사상에서 그 모두 전체 영원을 뜻하기 때문이었을 게다.
옛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면 벼슬을 하면 맨 먼저 관대(官帶)를 내나무에 둘러 주었으며 회갑 되는 날이면 내나무 앞에 상을 차려 헌주를 시켰다고도 한다.
그 내나무가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6·25전쟁 중 누군가가 도벌했다기도 하고 공산 빨치산의 은거지가 된다 하여 베어버렸다고도 한다. 나의 반신이 어느 마을 동구 밖에 장승이 되어 서 있는지, 어느 가난한 집 집기둥이 되어 앙상하게 서 있는지, 한 줌 재가 되어 어느 초가집 맨드라미 봉선화의 뿌리 밑에 잠겨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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